1950년대 초 최고의 인기직업은 군 장교였다. 6·25를 겪으면서 나타난 자연스런 현상으로, 자식이 사관학교에 들어가면 마을잔치를 벌일 정도였다. 여성들 사이에선 타이피스트가 인기직업이었다. 특히 미군부대 영문타이피스트는 그중 최고였다. 당시엔 전차운전사도 유망·인기직업군으로 분류됐다. 1960년대 수출에 힘입어 섬유엔지니어와 가발기술자가 인기를 끌었다. 동시에 버스안내양이란 직업이 등장했다. 1961년 버스 여차장제를 도입했기 때문이다. 곧이어 농촌을 탈출(?)한 젊은 여성들 주요 직업군으로 부상했다. 버스안내양은 한때 9급 공무원보다 높은 임금을 받으며 1만5천여명에 달했다. 전차가 사라지고 택시가 교통수단을 대신하면서 제복 입은 택시기사도 인기 직업으로 떠올랐다. 비행기 조종사와 스튜어디스는 하늘의 꽃이라 불리며 1970년대 최고의 인기직업이었다. 중동 건설특수를 타고 건설 관련 기술자와 함께 국외 노동자들의 대우와 처우 문제를 담당하는 노무사도 시대 특수를 반영한 인기직업이었다.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육성되고 올림픽이 열렸던 1980년대는 관련 직종이 대거 유망 직업으로 등장했다. 이때 특히 부상한 직업이 광고기획자, 카피라이
“우리 헌법에 왜 국회 해산제도가 없는지 하는 생각을 문득 했다. 딱 국회를 해산시키고 다시 국민의 판단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최근 김황식 전 총리의 ‘국회 해산’ 발언으로 정치권이 시끄럽다. 가뜩이나 민생은 뒷전인 채 여야 간 지루한 소모적 대립으로 ‘식물국회’ 비난이 쏟아지고 있는 마당에 전직 총리의 일갈은 정치권에 커다란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덧붙여 김 전 총리는 “‘국회폭력을 막겠다’고 만든 것이 선진화법인데 선진화법으로 국회가 마비돼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며 여야 모두에게 민감한 국회선진화법까지 지적하고 나섰다. 김 전 총리의 이 같은 발언에 대해 야당이 가만있을 리 없다. 민주당은 “대통령이 마음대로 국회를 해산했던 박정희 유신독재시대로 돌아가자는 말이냐. 헌법정신을 부정하는 발언을 대법관까지 한 전직 총리가 했다는 사실에 어이없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하지만 “오죽하면 그런 말이 나오겠느냐”는 공감대도 형성되고 있다. 최근 한 여론조사에서도 국회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어느 정도인지…
1896년 2월11일 고종과 왕세자는 러시아 공관으로 급히 거처를 옮긴다. 을미사변 이후 신변에 위협을 느꼈기 때문이다. 고종은 그로부터 약 1년간 공관에 머물며 정사를 살폈는데 이 사건이 바로 아관파천(俄館播遷)이다. 고종은 여기서 커피와 처음 만난다. 초대 러시아 공사였던 웨베르(Waeber)의 처형인 독일여인 손탁(Sontag)에 의해서다. 이때 마신 ‘로서아 가비’(러시아커피의 옛 명칭)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최초의 커피라는 게 정설이다. 아관파천에서 돌아온 고종이 본격적으로 커피를 즐긴 건 덕수궁 내 정관헌(靜觀軒)이라는 건물에서다. 고종은 여기서 서양음악을 들으며 사발로 음미할 정도로 커피를 좋아했다고 한다. 고종은 커피를 전파한 손탁에게 정동의 건물 한 채를 하사했다. 손탁은 그 건물을 자신의 이름을 붙인 ‘손탁 호텔(Sontag Hotel)’로 개조했는데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호텔이다. 1902년, 건물 1층에 우리나라 최초의 커피숍 ‘정동구락부’가 들어섰고 그 이후 커피는 대중화의 길을 걷게 된다. 110년이 넘는 세월이 지난 요즘 커피는 일상의 한 부분이 됐다. 2030세대는…
의왕시가 추진하는 왕송호수 레일바이크 사업에 대한 주민들의 찬반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찬성하는 측은 왕송호수가 있는 부곡동 주민들이고, 반대하는 측은 환경단체 등이 참여하는 의왕레일바이크 설치반대시민연대(이하 시민연대)다. 레일바이크 설치사업은 이르면 내년 3월에 착공될 예정이다. 레일바이크 설치를 찬성하는 부곡동 8개 주민단체는 사업성이 우수하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부곡동은 수도권에서 전철로 1시간 이내 거리이고, 각 고속도로의 인터체인지가 5개나 되는 등 다른 지역의 레일바이크보다 접근성이 뛰어나다는 것이다. 의왕시도 이 사업이 시 이미지를 향상시키고 더불어 재정수입 확대에도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예상한다. 왕송호수 주변 환경과 어우러지는 명품 개발사업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며 사업에 대한 의욕을 보이고 있다. 특히 시와 주민들은 지금이 부곡동을 발전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며 한시라도 빨리 이 사업이 추진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시민연대의 생각은 다르다. 왕송호수는 사계절 철새가 찾아드는 도래지인 만큼 이곳에 레일바이크를 설치하면 생태 환경이 파괴되므로 철새들이 오지 않는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레일바이크가 설치돼도 사업성이 없기 때문
농민들은 저조한 소득으로 어려운 삶을 영위해가고 있는데 전·현직 농민단체장과 임직원이 국고보조금을 횡령해 문제다. 조직구성원인 농민들의 권익을 위해 봉사하겠다고 나선 이들이 범죄행위를 자행했다. 경기지방경찰청은 농림축산식품부가 쌀 소비촉진과 품질향상 등을 위해 지원하는 국고보조금을 불법으로 횡령한 이들을 적발했다. 경찰은 허위 사업계획서와 계약금 부풀리기로 여러 차례에 걸쳐 국고보조금 10여억원을 횡령했다. 범죄내용은 농민 사기진작 행사, 각종 농민교육, 유기벼 재배 설명서 발간, 소비촉진 포스터 제작 등의 사업계획서를 허위로 꾸미거나 계약금을 부풀리는 수법이었다. 여기에 회장은 전국회원대회 개최 명목으로 지원받은 보조금 5억4천만원 가운데 2억6천만원을 빼돌렸다. 이렇게 챙긴 돈을 각종 경조사비에 사용하고 임원진의 해외여행경비, 차량유지비, 생활비 등 개인적 용도로 사용한 것으로 밝혀졌다. 허술한 관리감독과 방치행정으로 농림축산식품부와 농수산식품유통공사, 농어촌공사 등은 국고보조금의 횡령을 막지 못하고 있다. 국가보조금 지급 시에는 사업계획서와 지출내용에 대한 철저한 확인과 검증이 필요함에도 불과하고 경시행정의 방관에서 사건을 발생시켰다. 여기
1991년 프랑스어를 익히러 프랑스 남서부의 보르도 대학에 갔다. 읽는 것은 꽤 할 줄 알았지만, 말하는 일은 젬병이었다. 당시만 해도 내가 다닌 대학에는 회화수업이 거의 없었다. 졸업 무렵에야 외국인 교수의 강의가 두어 개 생겼지만, 민주화로 어수선할 때라 들을 분위기가 아니었다. 비록 전공이지만 이래저래 말 벙어리 수준이었다. 그런데 졸업을 한 뒤에 생각해보니, 평생 외국어문학을 한 이력이 따라다닐 텐데, 말을 못 하는 일로 스트레스를 받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돌아가신 스승의 당부도 있었다. 당신 시대에는 외국어를 못하는 게 흠이 아니지만, 내 세대에는 꼭 필요한 능력이 될 것이니, 회화를 익히라는 것이었다. 젊어 돌아가신 스승의 마지막 당부가 내내 가슴에 남았다. 그래서 떠난 유학이었다. 꼭 학위를 따야할 생각은 없었다. 일상생활 회화를 익히고 1년 뒤 돌아올 계획으로 떠났다. 그래서 선택한 대학이 보르도였다. 도시의 규모와 대학의 역사가 있으며, 한국학생이 비교적 적고, 무엇보다 생활비가 적게 드는 곳을 고르다보니, 마지막 결정이 보르도대학이었다. 현명한 선택이었다. 시 외곽에 위치한 대학 주변 환경이 좋았고, 기후가 온화했으며, 일상이 평온했다.…
해를 보내면서 아쉬운 일들이 참 많다. 글을 쓰는 이들에게는 남다른 사고와 고답한 경지를 초월하는 고독감들이 남아 있다. 평범한 일상에서 벗어나 작가들만의 치유와 위로가 필요하니 공동체를 원하는 것이다. 남다른 사유로 인한 통증을 문학이란 범주로 이해하고 소통하는 길을 모색하기에 문인들만의 단체를 만들어 뜻을 모으고 마음을 모은다. 그런데 이렇게 모인 단체에서도 많은 말들로 상처 받고 적지 않은 회의감을 목도하기도 한다. 얼마 전 필자가 경험한 일이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상대를 위해 따뜻하게 할 수 있는 말과 그렇지 못한 말을 꺼내놓곤 하는데, 후자의 경우 신중한 처신이 필요한 법이다. 상대의 기분과 처지를 헤아리지 않고 내뱉는 말은 상처를 안기기 때문이다. 시간이 많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상대에게 들은 말로 인해 상처가 채 아물지 못했다. 그는 왜 필자에게 그 말을 꺼내놓았을까?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관계를 맺고 인연을 맺으며 살아간다. 고통과 불행은 결국 고립감을 안기고, 인간관계에서 관계의 소원을 회복하기 어려운 것을 눈여겨보면 말이 나은 상처가 얼마나 큰 것인가를 알 수 있다. 필자 역시 누군가에게 상처 줄 말은 하지 않았는
서울에 있는 한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작은 규모의 사업을 운영하던 그는 6·25 전쟁이 일어나자 한시바삐 피란을 떠나야 할 형편이었다. 그런데 피란길에 오를 준비를 하던 중 그는 자신이 빌린 돈을 은행에 갚아야 할 기일이 된 것을 알고 돈을 준비해 은행에 갔다. 전쟁이 나자 사람들은 돈이 될 만한 것이면 뭐든 챙겨서 떠나는 상황이었는데, 그는 거꾸로 돈을 들고 은행을 찾아간 것이다. “여기 빌린 돈을 갚으러 왔습니다.” 남자는 돈이 든 가방을 열며 은행 직원을 불렀다. 은행 직원은 남자를 보고 매우 난처한 표정으로 말했다. “빌린 돈을 갚겠다고요? 전쟁 통에 대출 장부가 어디 있는지도 모릅니다. 장부의 일부는 부산으로 보냈고, 일부는 분실됐습니다. 돈을 빌린 대부분의 사람들은 돈을 갚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마당에… 그래도 갚으시게요?” 은행 직원의 말에 남자는 잠시 어떻게 해야 할지 망설였다. 사실, 갚을 돈을 은행 직원에게 준다고 해서 그 돈을 은행 직원이 자기 주머니에 넣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었다. 그러나 남자는 여러 생각 끝에 돈을 갚기로 결심하고, 은행 직원에게 영수증에 돈을 받았
남태평양에는 지구에서 가장 태양이 먼저 뜬다는 인구 10만명의 키리바시공화국이 있다. 2년 전 이 작은 섬이 지구 온난화로 인해 해수면이 급상승, 바다에 잠길 위기에 처했다며 지원을 호소하고 나서 세계인의 관심이 집중됐었다. 당시 환경전문가들은 현재 침수가 진행형이며 섬 전체가 잠기는 데 불과 30년밖에 걸리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온난화로 인한 환경변화에 속수무책인 나라는 키리바시뿐만 아니다. 태평양군도의 투발루나, 통가, 몰디브, 토켈라우, 사모아 쿡 제도와 솔로몬 제도와 같은 나라들 또한 마땅한 대안 없이 상승하는 해수면을 막기 위해 전전긍긍이다. 그러면서 비용을 대는 데 급급해 하고 있다. 키리바시만 하더라도 사회 기반 시설을 지키기 위해 댐을 쌓는다면 9억 달러라는 엄청난 비용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따라서 키리바시 정부는 960만 달러를 투자해 아예 1천400마일 떨어진 피지에 6천 에이커의 땅을 구입하기로 결정했다. 이 정도 규모라면 전체 10만여명의 인구를 충분하게 수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키리바시 정부는 당장 국민 모두가 피지로 이동하지는 않겠지만 언제 이주해야 할지 판단하지 못하고 있다. 현재 섬 주민들의 가
전국철도노동조합(이하 철도노조)이 오는 9일 오전 9시부터 철도 민영화에 반대하는 총파업에 돌입한다고 선언했다. 철도노조가 마지막 수단인 파업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택하게 된 것은 10일 ‘수서발 KTX 법인에 대한 출자 결의’를 할 것으로 보이는 한국철도공사(코레일) 이사회를 막기 위한 것이다. 철도노조는 이날 결의가 철도 민영화의 단초라 예상하고, 이를 저지하기 위해 총파업에 들어가는 것이다. 정부와 코레일 측은 철도노조의 파업이 불법이라며, 노조파업과 관계없이 10일 이사회를 개최한다는 입장이다. 이에 따라 파업이 강행돼 무궁화호와 새마을호, ITX, 화물열차(KTX와 수도권 전동차 제외) 운행에 일부 차질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철도노조는 그동안 민영화 관련 토론회, 공청회 등을 거치자며 민영화 반대 100만인 서명부까지 전달했으나 정부는 끝내 외면했다. 이에 마지막 수단인 파업을 해서라도 철도 민영화를 막겠다는 입장이다. 정부는 회사 설립의 지분 70%가량을 국민연금으로 출자, 공공성을 확보하고 민간자본이 마음대로 매각 못하도록 장치를 마련하겠다고 했지만 철도노조는 정부를 믿지 못하고 있다. 왜냐하면 지난 국정감사에서 국민연금관리공단이 투자계획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