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門)은 약속이다. 허락과도 다름없다. 열고 닫음은 허락과 거절의 몸짓인 셈이다. 내가 묵고 있는 바다남쪽(海南) 기와집의 솟을대문도 그렇다. 대문은 안으로 열리는 안여닫이 방식인데, 높이와 넓이가 넉넉해서 팔을 벌리거나 들어도 끝에 닿지 않는다. 양쪽 기둥에 매단 두 짝의 문은 각각 여덟 칸의 널빤지를 세로로 켜고 다듬어서 만들었다. 세로로 세운 여덟 칸의 널빤지는 네 개의 각목을 가로로 덧대 고정시켰는데, 간격이 고르고 반듯해서 세로로 세운 널빤지의 평생 동무로 적격이다. 잘 짜진 문은 하루에 한 번 열린다. 열림이 한 번이니 닫힘 역시 그렇다. 열렸다 닫히는 하루를 흉내 내듯 문은 안으로부터 딱 한 번 열렸다 닫힌다. 생각해 보면 사람의 열림과 닫힘도 한 번이다. 엄마를 열고 나왔다가 세상을 닫고 사라진다. 시간을 열고 생겼다가 기억을 닫고 흩어지는 것은 어김없이 한 번이다. 한 번을 뛰어넘는 열고 닫음은 사람의 영역에서는 불가능하다. 껍질을 벗어버리거나 고치를 뚫고 나와 다시 사는 사람은 없다. 플라톤도 피카소도 제임스 딘도 그렇게 닫혔다. 진시황도 이르지 못했던 다시 열림의 길을 보란 듯이 걷는 사람을 나는 보지 못했다. 열렸으면 당연히 닫힌다.…
지인들과 파스○○ 커피숍에서 만나자고 했다가 장소를 급하게 변경했다. SPC그룹 계열사 브랜드 목록을 공유하면서 당분간은 다른 커피숍을 이용하면 좋겠다고 말한 이가 있어서였다. SNS에 ‘#SPC불매’, ‘#멈춰라SPC’ 해시태그가 늘었다. 불매운동 지지가 쉽사리 끝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SPC계열사 평택 SPL 제빵공장에서 끼임 사망 사고가 발생한 것이 지난 15일이다. 동료들이 사고를 목격하고 직접 수습했다. 사고가 난 기계는 가림막을 해 두고 동료 노동자들이 일했다. 노동부가 사고를 목격한 노동자의 트라우마 등을 이유로 작업 중지를 권하자 그제야 일단 중단했다. 사망한 노동자 빈소에 회사가 놓고 간 파리바게뜨 빵 상자 사진이 알려지고 비판 여론이 조금씩 확산했다. 노동과 인권을 존중하지 않는다는 비난이 일자 관행이고 회사방침에 따랐다는 대답이 사태를 키웠다. 허영인 SPC그룹 회장이 사고 발생 엿새 만인 21일 기자회견을 열고 공식 사과에 나섰다. 하지만 대체로 ‘늦었다’는 반응이 많았다. 그룹 회장이 내는 사과문 낭독은 소리가 작았다 하고, 기자 질문은 받지 않겠다고 공지한 기자회견이었으니 ‘보여주기식 사과’라는 뒷말이 나오는 것도 당연했다.…
미사일이 마구 날아다니고, 총알이 우박처럼 쏟아지네요. 청백 군사들이 호시탐탐 상대방의 심장을 노려 일격필살의 승기를 잡겠다고 눈에 불을 켜고 날뛰는 모습이 험악하군요. 이러다가 정말 큰 변고를 당하지나 않을까 하는 공포가 수시로 엄습해요. 러시아 침공으로 참혹한 전장이 돼버린 우크라이나 풍경이냐고요? 아니에요. 최근 여야 정쟁이 깊어지고 있는 우리 정치권 이야기에요. ‘적폐 청산’은 사전적으로 ‘과거의 쌓아온 폐단을 없앤다’는 용어예요. 그런데 우리 국민은 지난 몇 년 사이에 살짝 다른 의미로 느껴왔지요. 문재인 정권이 내세운 ‘적폐 청산’ 구호는 헌정사상 최초의 대통령 탄핵 국면과 맞아떨어지면서 반론의 여지가 좁았어요. 그 시절 속절없이 당해야 했던 보수 야당은 사뭇 ‘정치보복’이라며 부글부글 끓었지만요. 지난 3월 대선으로 정권교체가 된 이후 공수(攻守)가 뒤바뀐 정치권은 처음부터 시커먼 전운(戰雲)을 피워올렸지요. 대선 전부터 각종 논란에서 온전히 자유롭지 못했던 야당 대표를 겨냥한 사법기관의 수사가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네요. 후보 경선 때 불거진 의혹을 중심으로 공세가 이뤄지고 있으니 여간 곤혹스러운 게 아니겠군요. 이번에는 민주당에서 ‘정치보복’,
만약 우리 모두의 생명의 근본이 같지 않다면, 우리가 늘 경험하는 동정이라는 감정을 설명할 길이 없다. 누군가의 분노를 진정시키려면, 예를 들어 그것이 아무리 정당한 분노라 하더라도, 화를 내고 있는 사람에게, “하지만 저 사람도 불행한 사람 아닌가!” 하고 말하는 것만큼 효과적인 것은 없다. 빗물이 불을 끄듯, 곧 동정은 분노를 사라지게 하기 때문이다. 누구라도 좋으니 그 사람에 대해 불같이 화를 내며 그에게 고통을 주고 싶다면, 자신이 이미 그 고통을 상대방에게 주었고, 실제로 상대방이 정신적, 육체적으로 고민하거나 어려움과 결핍을 고생하는 것을 보면서, 그것이 나 때문이라고 중얼거리는 광경을 상상해 보라. 나머지 일은 어떻게 되든 그것만으로도 분노가 사라질 것이다. (쇼펜하우어) 남을 욕하며 그와 다투고 있을 때, 너는 인간은 모두 형제라는 것을 잊고 있으며, 사람들의 친구가 되는 대신 적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것으로 인해 너는 자신에게 해악을 끼치고 있다. 왜냐하면 네가 맨 처음 신이 창조한 선량하고 자비로운 인간이 아니라, 몰래 다가가서 먹이를 덮쳐 물어 죽이는 야수로 변한다면, 너는 너의 가장 소중한 재산을 잃게 되기 때문이다. 너는 지갑을 잃으
그는 외국인 최초로 무형문화재인 가야금 산조(散調) 전수자다. 미국 알래스카 출신, 본명은 Jocelyn Clark. 이 이름에서 한국이름 '조세린'이 나왔다. 그 이름을 "고향 떠나(趙) 이역만리 타향살이(世)에서 중국 황제시대에 신수(神獸)로 여겨졌던 상서로운 동물(麟)이 될 팔자"라고 풀어줬다. 자칭 '알래스카 조씨'라 한다. '얼음 氷, 북쪽 北, 새鳥'를 합하여 옥편에 없는 글자를 만들기도 했다. 확고한 정체성을 자기존엄성의 전제조건으로 여기는 사람들의 특징이다. 1970년생 개띠. 현재 대전 배재대학교 동양학과 교수다. 그를 만난 건 최근 모 일간지에 실린 그의 칼럼을 감동적으로 읽은 것이 계기였다. 내용도, 문장도 특출하였다. 뿐만 아니다. 그는 음악을 우주 운행질서의 일부로 이해하고 연주하는 큰 예술가다. 그도 가야금 뜯으며 손가락이 멍들고 피흘리며 여기까지 왔다. 그 고행은 멈춤이 없다. '천류불식'(川流不息)의 운명이다. 개천이 쉬지 않고 흘러가야만 강에 이르고, 마침내 대해(大海)에 도달하는 것처럼... 다행스럽게도 그는 천재였다. 서너 살에 이미 바이올린, 클라리넷을, 열살 전에 오보에와 피아노를 연주했다. 일본에 가면 일본어, 중국 가
‘아~베`마리~~아(Ave Maria)!~’ 한국어로 번역하면 ‘안녕하세요 마리아님!’이다. 천사 가브리엘이 동정녀 마리아를 찾아와 예수를 수태한 사실을 알리며 건넨 인사라고 한다. 이를 모태로 슈베르트가 ‘아베마리아’를 작곡했고, 카치니도 마찬가지였다. 모두 아름답고 손색이 없지만, 아베마리아는 역시 ‘구노의 아베마리아’가 으뜸이다. 이 곡은 천재 작곡가 샤를르 구노(Charles Gounod)가 1853년 바흐의 서곡에 가사를 넣어 만든 것이다. 듣고 있노라면 마음이 진정되고 영혼이 맑아진다. 프랑스 그랑 오페라의 가장 뛰어난 작곡가 구노. 그는 1818년 파리에서 화가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다섯 살 때 돌아가셨고, 어머니가 피아노 선생을 해 생계를 유지했다. 어린 구노는 어머니께 레슨을 받는 학생들 사이에 끼어 피아노를 배웠다. 그 후 파리음악원에 들어 가 앙뚜안 레이체의 지도를 받으며 화성을 공부했고, 스무 살 때 이미 로마 대상을 받았다. 구노는 초년기 종교음악에 몰두했다. 하지만 세속적 영감으로 눈을 돌렸고 오페라를 작곡했다. 그가 첫 오페라 사포(Sapho)를 작곡한 건 1851년. 그로부터 5년 후 걸작 ‘파우스트’를 발표했다. 하지만…
돈을 많이 버는 일보다 더 어려운 일이 잘 쓰는 일이다. 큰 자산을 모은 사람은 많아도 잘 쓴 사람은 많지 않다. 그냥 잘 쓰는 것을 넘어 의를 위해 잘 쓰는 일은 더욱 어렵다. 자신이 가진 재산을 줄이는 데 그치지 않고 위험을 불러들이는 일에 나서는 일이 어찌 쉽겠는가. 그래도 자신이 누리던 것을 포기하고 의를 위해 가진 것과 누리던 것을 내놓은 사람들이 없지는 않았다. 나라를 일본에 빼앗겼던 식민지 시대에도 그런 드문 의인들이 있었다. 이제 사람들에게 제법 알려진 이회영 형제가 대표적이다. 삼한갑족으로 불리던 이회영의 6형제는 막대한 재산을 모두 처분하고 만주로 가서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다. 이회영의 형제와 함께 신흥무관학교 설립해 수많은 독립군을 양성하고 이끌었던 안동 권문세가의 종손 이상룡도 아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이회영 형제와 이상룡 가문은 알아도 최진동 형제를 아는 사람은 아직도 드물다. 최진동은 전통적인 명문가의 자손이었던 이회영이나 이상룡과는 달리 자수성가한 인물이었다.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했지만 총명하고 의기가 높았던 그는 주변의 신뢰를 얻었고, 중국의 공직에도 진출했다. 그의 사람됨을 알아본 아버지의 친구였던 중국인 부자는 그를 양아들
형제를 비난하면 안 된다는 것은, 형제를 비난한 것을 후회할 때는 수백 번도 더 있었지만, 비난하지 않았던 것을 후회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는 것만 미루어 봐도 확신할 수 있다. 미망에 빠져 있는 사람에게 화를 내서는 안 된다. 좋아서 미망에 빠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을 알라. 어느 누구도 자신의 판단력이 흐려지기를 바라지는 않는 법이다. 미망에 빠져 있는 사람은 허위를 진리라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사실은 미망에 빠져 있지도 않으면서, 진리가 눈앞에 훤히 보이는 데도 일부러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 그들은 진리를 이해하지 못해서 인정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진리가 그들의 악업을 폭로하고 그들의 죄에 대한 변명을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런 사람에게도 역시 화를 내기보다는 동정을 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육체적으로는 환자가 아니지만 마음에 병이 있기 때문이다. (에픽테토스) 시간은 지나가도 말은 남는다. 많은 사람들이 누군가를 미워하더라도, 그 사람을 비판하기 전에 무엇 때문에 그렇게 되었는지 사려 깊게 생각해 보아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누군가를 추켜세우더라도 역시 그 사람을 비판하기 전에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 (공자)…
한 곡의 음악이 여행을 부르기도 한다. 기타곡,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이 그 예다. 스페인을 처음 여행했을 때 3박 4일의 짧은 기간에도 불구하고 남단 도시 그라나다까지 간 것은 그 연주곡의 탄생지를 직접 딛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 곡을 만든 전설적인 기타리스트, 프란시스코 타레가(Francisco Tarrega 1852-1909)의 작곡 배경을 들으면 음악이 더 사무친다. 타레가는 음악을 배운 제자, 콘차 부인을 사랑하게 된다. 유부녀였기에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었다. 고백조차 못한 상처를 품고 여행길에 오른 타레가는 그라나다의 알함브라 궁전에 이른다. 사랑에 빠지면 아름다운 모든 것은 임을 떠올리게 한다. 어둠 내린 알함브라 궁전 위에 뜬 달을 바라보다, 콘차 부인을 생각한 타레가. 그 풍경이 가락을 만들어냈고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을 탄생시킨다. 사연을 알고 들으면 옥구슬 굴리는 듯한 트레몰로(Tremolo)멜로디가 타레가의 눈에서 끊임없이 떨어지는 눈물방울을 표현한 듯 느껴진다. 타레가의 작품과 연주는 19세기까지 별 볼일 없는 악기였던 기타의 황금시대를 열었는데, 그 중심에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이 있다. 알함브라 궁전은 스페인 영욕의 역사를
정치권이 극심한 혼돈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김용 민주연구원 부원장이 19일 긴급 체포됐고, 이와 관련해 검찰이 민주당사 내부에 있는 민주연구원에 대한 압수수색을 시도했기 때문이다. 검찰이 민주당을 압수수색하려고 하자, 민주당 의원들은 "검찰이 제1야당 당사에 압수수색을 나왔다. 대한민국 정치사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무도한 행태"라며 적극 저지에 나섰다. 그런데 이런 주장은 정확한 팩트가 아니다. 2006년 노무현 정권 당시에도 당원 불법 모집 혐의와 관련해 당시 제1야당이었던 한나라당 중앙당사를 압수수색하려 한 바 있기 때문이다. 현재 민주당은 압수수색의 부당성을 주장하며 “보여주기식 수사”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첫째, 김용 부원장이 취임한 지 열흘도 지나지 않아, 김 부원장은 지금까지 총 세 차례의 회의에 참석했을 뿐이며, 당사에 머문 시간은 3시간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점, 둘째 민주연구원 내에는 김 부원장 개인 사무실은 없고 다수가 함께 쓰는 공용 공간이 있기 때문에, 개인 소장품이나 비품도 당사 내 갖다 놓지 않았다는 점을 들고 있다. 이런 주장도 설득력은 있다. 또한, 중앙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