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리 서머스는 킬러다. 지금까지 16건인지 17건인지, 비교적 오랜 기간 이 ‘업계’에서 이름을 날려 온 저격수이다. 그는 원 샷 원 킬로 사람을 죽이는 킬러로 빌런(악당)만을 죽인다는 자부심을 지니고 있는 자이다. 에밀 졸라의 『테레즈 라캥』을 끼고 다니며 토마스 하디의 작품을 좋아한다. 제임스 M. 케인(『포스트 맨은 두 번 벨을 울린다』)과 데이비드 포스터 같은 작가 얘기도 심심치 않게 머릿속에서 뱅뱅 거리며 살아가는 특이한 인물이다. 그는 닉이라는, 메릴랜드와 펜실베이니아, 그러니까 미 동부 지역을 장악한 마피아 보스에게서 조엘 앨런이라는 인물을 ‘처치해’ 달라는 ‘주문’을 받는다. 빌리는 200만 달러라는 큰돈을 바하마에 예치하는 것을 조건으로 인생의 마지막 작업에 착수한다. 착수하되 이건 좀 시나리오가 필요한 일이라 그는 당분간, 조엘 앨런이란 인물이 곧 출두할 법원 주변에 똬리를 틀고 보통사람으로 스며들어 살아가야 하며 다운타운에도 사무실을 유지하는 척해야 한다. 직업은 출판사 에이전트에게 원고 마감에 쫓기는 무명작가 노릇으로 정한다. 재미있는 것은 그에게 이번 일을 맡기면서 조직 보스 닉과 그의 하수인 중 한 명인 조지 러소라는 인물은 빌리에게
부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은 세 가지밖에 없다. 노동과 걸식과 도둑질이다. 그런데 만약 노동자의 몫이 적다면 그것은 거지와 도둑의 몫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헨리 조지) 사람이 선의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는 것을 이해하는 데 특별히 깊은 사상은 필요하지 않다. 나는 전 세계의 일을 알 수도 없고 거기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이해하고 그것을 설명할 능력도 없지만, 단 한 가지, 자기 자신을 향해 내 행위의 기본 원칙이 모든 사람에게 보편타당한 법칙이 될 수 있는지 물어본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내 행위의 기본 원칙은 옳지 않은 것이며, 그것은 그로 인해 나나 다른 사람들에게 해악이 생길지 모르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모든 사람에게 타당한 근본 법칙이 될 수 없기 때문에 잘못된 것이다. (칸트) 신은 자신이 자신을 닮은 모습으로 창조한 인간들한테서 칭송이나 숭배를 바라지 않고, 인간들이 신이 준 이성을 토대로 그 행위에서 자신을 닮기를 바란다. 무화과도 때가 오면 영글고, 개와 벌도 자기들이 해야 할 일은 알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인간이 자신의 사명을 다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러나 이 위대하고 거룩한 진리는 네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갈 뿐, 나날의 삶의…
이전 경기도 교육감의 정책이던 혁신학교가 사라지고 있다. 올해 1학기에 경기도에서 혁신학교 재지정을 요청한 180개 학교 중 179개 학교가 재지정에서 탈락했다. 혁신학교 재지정에 성공한 1개 학교는 일반적으로 알던 의미의 혁신학교는 아닌 것 같으니 지정에 큰 의미는 없어 보인다. 혁신학교는 기간이 남은 학교들이 차례로 재지정에서 탈락하면 역사로 사라질 일몰제에 들어갔다. 혁신학교는 좋아하는 사람보다 싫어하는 사람이 더 많았다. 혁신학교를 추진했다가 학부모들의 역풍을 맞고 포기한 학교가 한두 개가 아니다. 기사화된 것만 여러 학교가 있으니 그렇지 않은 학교는 더 많을 것이다. 혁신학교는 아이들을 놀게 하는 학교라는 오명이 붙었고, 혁신학교에 다니면 학력이 떨어진다는 근거 없는 소문이 돌았다. 교육청 연구에 따르면 혁신학교에 다녔을 때 학력이 오히려 평균보다 높다는 결과가 존재하는데도 말이다. 아이러니한 건 혁신학교에 근무하는 교사 중 몇몇은 자신이 어린 시절 다녔던 특목고의 수업과 혁신학교의 수업이 매우 흡사하다고 했다. 강의식 수업보다 토론과 활동 위주의 수업이 많고, 교육과정 외의 다양한 걸 배울 수 있다는 점이 그렇다고 했다. 아이를 특목고 자사고에 보
지난 25일 북한이 동해상으로 단거리 탄도미사일 1발을 발사했다. 북한의 거듭된 미사일 도발을 놓고 머리를 맞대고 대응책을 논의해도 시원찮을 여야 정치권이 서로 상대 당에 책임을 돌리는 ‘네 탓’ 공방을 벌이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정치권이 벌이는 안보 이슈의 ‘정쟁 도구화’는 국민에 대한 추악한 배신이다. ‘국가안보’, ‘국민 안전’마저도 정쟁의 먹잇감으로 삼는 이 천박한 정치풍토는 즉각 혁파돼야 한다. 일본의 배타적경제수역(EEZ) 밖에 떨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이번 북한의 단거리 탄도미사일은 비행거리 600여㎞, 고도 60여㎞, 속도 약 마하5로 탐지됐다. 군은 북한판 이스칸데르 탄도미사일(KN-23)에 무게를 두고 이 미사일을 분석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북한의 미사일 도발은 순항미사일 발사 후 한 달여 만이자 지난 8일 전술핵 선제사용을 공식화한 핵무력정책 법제화 발표 이후 첫 탄도미사일 발사다. 미국 국무부는 입장을 묻는 한국 언론사의 질의에 “북한 주변 국가 및 국제사회에 위협이 된다”면서 “다수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결의를 위반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총리 관저에서 기자들과 만나 “올해 들어…
영국·미국·캐나다 3국을 순방한 대통령의 정상외교가 국민의 자긍심을 심기보다 국민이 대통령을 걱정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18일부터 24일까지 순방일정엔 여왕 장례식 참석, 유엔총회 기조연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및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회담이 예정돼 있었다. 런던에선 장례식 전날 예정됐던 참배일정이 현지교통 사정으로 무산되는 일이 벌어졌다. 1분의 오차도 허용되지 않게 치밀히 짜여지는 대통령의 외교행사라고는 믿기지 않았다. 국민을 당혹게 했다. 뉴욕에선 조 바이든 대통령과 48초 동안 환담하고, 기시다 일본 총리와의 30분 간의 정상회담을 가졌다. 대부분 언론이 저자세 외교라고 비판했다. 일본은 정상회담이 아닌 간담이라고 두 정상간 만남의 격을 낮췄다. 순방 성과를 국민 앞에 내놓기가 민망한 수준이다. 실제로 이번 순방에서 어떤 성과가 있었는지 기억하는 국민은 거의 없다. 21일 뉴욕에서 있었던 ‘글로벌 펀드’ 행사장을 나서며 한 대통령의 발언으로 극에 달했다. “국회 이 xx들 승인 안해주면···바이든 쪽팔려서 어떡하나”. 이 발언이 22일부터 국내 언론을 뜨겁게 달궜다. 프랑스의 AFP를 필두로 미국의 CNN, 영국의 가디언 등 세계 유력언론들까
창해일속(滄海一粟)이란 멋진 표현이 있다. 당·송(唐·宋) 600년 역사에서 최고의 시인 소동파의 절창 '적벽부'에 나온다. "우리 인생이 천지간 부질 없이 날아다니는 하루살이와 뭐가 다른가. 이 몸뚱아리는 저 넓고 넓은 바다에 던져진 좁쌀 하나와 또 뭐가 다른가." 영어로는 'a drop in the ocean'(대양에 떨어진 물 한 방울)이라고 한다. 이 근사한 시어(詩語)는 나에게 광대무변의 세계인 우주에 관한 호기심과 상상력,이해를 도와준다. 빅뱅으로 시작된 '우리 우주'의 나이는 138억년이다. 지구는 46억년. 아, 30여년 전 읽었던 마쓰이 다까후미 동경대 교수의 '지구, 46억년의 고독'이라는 시적인 제목의 책이 생각난다. 다시 보고 싶다. 생명은 38억년, 인간은 4만년, 인류문명은 4000년의 퇴적층이다. '우리 은하'의 크기는 대략 13만 광년(光年)으로 추정된다. 빛은 진공 속에서 1초에 30만km를 진행한다. 그렇게 1년 동안 달려간 거리가 1광년이다. 상상해보라. 그 속도로 13만년을 가야하는 길이와 두께를... 인류는 예수탄생 기준으로 겨우 2000년을 살아왔다. 우주학(cosmology)에서 쓰이는 숫자들은 너무나 커서 초현실적이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에 이르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서 그리로 가는 사람이 많지만, 생명에 이르는 문은 좁고 또 그 길이 험해서 그리로 찾아드는 사람이 적다.” (예수) 여러 가지 나쁜 일, 즉 우리에게 불행을 가져다주는 여러 가지 나쁜 일을 하기는 매우 쉽다. 우리에게 선이자 행복인 일을 하려면 크게 수고하지 않으면 안 된다. (부다) 지혜에 이르는 길은 결코 백합꽃이 피어 있는 잔디밭을 지나가서는 안 된다. 그것은 항상 초목이 자라지 않는 낭떠러지를 기어 올라가야 한다. (존 러스킨) 진리의 탐구에는 항상 동요와 불안이 뒤따른다. 그렇더라도 진리는 탐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왜냐하면 진리를 발견하고 그것을 사랑하지 않으면 너는 멸망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약 진리 쪽에서 먼저 나타나면 된다고 너는 말할지도 모른다. 그렇다. 진리는 모습을 드러내고 있지만 네가 그것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있을 뿐이다. 진리를 찾아라, 진리가 그것을 원하고 있다. (파스칼) 끊임없이 선량한 삶에 마음을 쏟는 사람만이 그것을 실현할 수 있다. 통증은 일을 할 때는 잘 느끼지 못하지만, 일을 하지 않을 때는 비명이 나올 정도로 심하게 느껴진다. 이처럼 자신의 내면적…
깊어져서 가을이다. 새벽 닭 울음조차 어스름 너머에서 깊다. 깊음도 흐를 수 있을까. 나는 창문을 열고 한동안 바라만 본다. 방 안에 고인 어둠이 창틀을 타고 넘어가 새벽 속으로 흩어진다. 새벽은 푸름 속에서 더디게 흐른다. 산과 들과 마을에서 흘러온 밤의 색깔들이 푸름 속으로 스며든다. 그런 까닭으로 푸른 것들은 깊다. 밤과 어둠을 삼킨 푸름은 깊다. 바다가 그렇고, 새벽이 그렇고, 피멍 든 가슴 또한 그러하다. 푸름의 깊이는 어떤 눈금으로도 가늠할 수 없다. 하물며 가을이 익어가는 새벽의 푸름 아니던가. 나는 실눈을 뜨고 어둠과 푸름의 경계에서 발돋움 하고 선 여인을 떠올린다. 움푹 파인 그녀의 볼우물에도 새벽은 고이고 있을까. 땅끝, 해남(海南)에서 만난 봄은 목이 말랐다. 갈증 난 논과 밭과 들이 마른하늘을 향해 손가락질을 퍼부었다. 원망 섞인 삿대질에도 하늘은 좀체 비를 뿌리지 않았다. 나는 갈라진 논바닥과 타들어가는 밭고랑을 그대로 뮤지컬 대본에 옮겼다. 해남에서 만난 가뭄은 뮤지컬의 배경이 되는 마을에서도 시뻘겋게 타올랐다. 그녀에게서 처음 연락이 오던 날도 비는 오지 않았다. 보자는 연락에 그러자고 답했다. 약속장소는 해남과 완도가 마주보고 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