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 니콜로 파가니니(Niccolò Paganini). 이탈리아에서 태어나 프랑스 사르데뉴왕국(현재의 니스)에서 눈을 감았다. 니스 남서쪽 190킬로 지점에 있는 그의 고향 제노바. 지중해의 넘실거리는 푸른 물결과 끝없는 평원이 펼쳐져 있다. 이곳 부두의 하역인부였던 안토니오 파가니니(Antonio Paganini)는 가난한 여인 테레사 보시아르도(Teresa Bocciardo)를 만나 천재 바이올리니스트를 낳았다. 칠삭둥이였던 파가니니. 병치레가 많고 허약했지만 아버지의 만돌린 소리를 들으며 유년기를 보냈다. 니콜로가 다섯 살이 되면서 음악에 큰 재능을 보이자 안토니오는 그에게 만돌린과 바이올린을 가르쳤다. 아들의 음악교육에 큰 열정을 보였던 아버지는 바이올리니스트 지오반니 세르베토(Giovanni Cervetto)에게 아들을 보내 레슨을 받게 했다. 여덟 살이 되면서 파가니니는 소나타를 작곡했고, 열한 살이 되면서 성당에서 정기적으로 연주했다. 파가니니가 대중의 주목을 받은 건 그의 나이 열세 살 때. 1795년 여름 연 콘서트가 성공했다. 여기서 번 돈으로 파가니니의 아버지는 아들을 파르마로 보내 알렉상드로 롤라(Alessandro…
모든 학문을 다 잘 알면서 자기 자신에 대해 모르는 사람은 무지한 자이다. 아무것도 모르지만 자기 자신과 자신의 영적 자아를 알고 있는 사람은 충분히 깨달은 사람이다. 인간이 자연을 향해 도대체 나는 무엇인가 하고 질문해도 대답은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자신이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이기 때문이다. 그는 스스로 자신을 알지 않으면 안 된다. (류시 말로리) 폭력을 휘두르고 싶어지면 사람들 앞에서 즉시 떠나라. (소로) 명예의 길은 왕궁으로 통하고, 행복의 길은 시장으로 통하며, 선의 길은 황야로 통한다. (중국 속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내적 세계는 너무 넓어서 연구하고 싶은 생각조차 들지 않는 큰 바다와 같다. 그러나 언젠가는 그 속에 들어가 그때까지 헛되이 외부 세계에서 찾아 헤맸던 하늘의 은신처를 찾아내지 않으면 안 된다. (류시 말로리) 인간에게는 언제나 모든 불행에서 벗어날 수 있는 피난처가 있다. 그것은 곧 그의 영혼이다. 만일 인간으로서 자신이 누구인지 깨닫는다면, 자신의 슬픔이 얼마나 하찮은 것인지 느끼게 될 것이다. 살아서 선을 쌓자 이게 아니라, 사는 것이 곧 선이야. 이렇게 살아나가는 게 곧 이기는 것이야. 사람은 죄를 알지 않고
이준석 전 대표에 대한 윤리위 징계 소동으로 된서리를 맞고 있는 여당 국민의힘의 내홍 사태가 좀처럼 가라앉을 기미가 없다. 법원의 가처분신청 인용 결정 이후 국민의힘은 장장 5시간 마라톤 의원총회를 열고 당헌·당규를 정비한 다음 새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기로 결의했다. 그러나 정당사상 초유의 분란 속에서 반성도 쇄신도 없는 ‘오기 다툼’뿐이어서 국민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대체 어쩌자는 건가. 코로나19 재유행 공포 속 혹독한 경제난 먹구름까지 겹치는데, 막중한 여당의 사명을 아주 망각한 것인가. 입법부에 속한 정당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사법부의 판단에 예속된 것 자체가 수치스러운 일이다. 사법부의 판결 요지는 ‘당내에 비대위를 출범시킬 비상 상황이 없었다’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당헌·당규를 무리하게 해석해 밀어붙이다가 낭패가 난 것으로 정리할 수 있다. 그런데 국민의힘은 이 결정을 편의적으로 해석하여 고작 당헌상 비대위 구성요건을 ‘최고위원 절반 사퇴’ 등으로 바꿔 위법 소지만 피하려는 꼼수 잔꾀를 묘책이랍시고 찾아냈다. 국민의힘 안팎에서 일어나는 잡음들은 시간이 갈수록 잦아들기는커녕 점차 확산하는 분위기다. 파벌의 색깔이 오히려 더욱 짙
이 글을 쓰는 목적은 아베 개인을 찬양하고자 함이 아니다. 한 국가의 지도자로서 아베가 이룬 업적을 평가하고 이로부터 교훈을 얻고자 함이다. 잠시 민족적 감정을 뒤로 하고 객관적으로 아베를 바라보도록 노력해 보자. 아베는 일본 평화헌법의 개정과 안보 강화에 노력한 정치가로서 이미지가 강하다. 그러나 아베의 업적은 국내정치 분야보다 국제정치 분야에서 더 두드러진다. 아베는 일본의 지경·지정학적 위상을 재구축함으로써 일본의 대외 영향력 향상에 기여하였다. 회자되는 대표적 사례는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과 쿼드 및 인도-태평양 비전이다. 아베는 CPTPP의 침몰 위기를 극복한 선장이다. 2017년 미국의 일방적으로 탈퇴로 인하여 붕괴의 위기에 직면하였을 때, 리더십을 발휘하여 CPTPP를 성공적으로 출범시켰다. CPTPP는 중국이 준수하기 어려운 높은 수준의 무역 개방을 요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21년 중국이 가입을 신청하는 의외의 사건이 발생하였다. 만장일치제이므로 일본은 중국의 가입을 거부할 수 있다. 이는 일본이 중국의 국내 거래 등 관행을 CPTPP 기준에 맞추어 개혁하도록 요구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놀라운 지경학적 역전이다
성은 마 씨고 이름은 승미다. 더하면 마승미가 되는데, 나는 그녀의 이름을 쉬 부르지 못하고 입안에서 머금고 있다가 잃어버리기 일쑤다. 하기는 우물쭈물하다가 잃어버리는 것이 어디 이름뿐일까. 무심한 척 웃어넘기지만, 내 속은 갈치 꼬랑지마냥 좁아터져서 그녀의 눈길 하나도 온전히 담아낼 수 없다. 담아냄이란 담을 것 보다 크고 넓어야 가능한 일인데, 담을 수 없음을 빤히 알면서도 내밀 수밖에 없는 그릇은 얼마나 옹색한가. 그러함에도, 어쩌지 못하고 그녀에게로 발걸음을 옮기는 까닭은 그곳에 뒷마당이 있기 때문이다. 고백하거니와 나는 그녀의 집 뒷마당에만 서면 오금이 저려 쩔쩔매고 만다. 그녀의 집 뒷마당은, 그러니까 마승미가 사는 집의 뒷마당은 마당 자체로 산이다. 그 산을 사람들은 두륜산(頭輪山)이라 부른다. 듣자마자 떠올리는 그 산이 틀림없다. 대흥사(大興寺)와 일지암(一枝庵), 초의(草衣)와 다산(茶山)을 품고 있는 바로 그 산이다. 산이 내어준 것은 동쪽 끄트머리의 숲과 계곡과 오솔길인데, 그녀는 산이 내어준 경이로움을 집 뒷마당의 차밭에 오롯이 담아냈다. 그런 이유로 그녀의 집 뒷마당은 마당 자체가 산이다. 뒷마당에 일군 만 오천 평의 녹차밭 역시 밭이
지난 22일 수원시 팔달구 덕영대로895번길 9-14에 문화 공간이 개관됐다. 이 건물의 이름은 시민들과 이어지는 공간, 어두웠던 과거와 밝은 미래를 잇는다는 뜻을 가진 ‘기억공간 잇-다’다. 기억공간 잇-다는 연면적 84.23㎡, 단층 건물로 전시 공간과 커뮤니티 공간으로 활용한다. 이 지역은 수원역 동쪽 성매매집결지였다. 빛과 단절된 어둠의 장소였던 구 수원역성매매집결지가 60년 넘게 이곳에 있었다. 잇-다는 지난 해 5월 31일 밤 모든 성매매업소가 자진 폐쇄한 후 도로 개설구간 내 잔여지에 있던 성매매업소 건물을 리모델링해 만들었다. 개관과 함께 첫 기획전을 개최하고 있다. 기획전 ‘집결지의 기억, 도시의 미래를 잇다’는 22일부터 10월 21일까지 열리는데 1900년부터 2022년까지 집결지 형성·변천 과정을 볼 수 있는 근대도시 수원과 수원역 성매매집결지의 변천 과정, 수원역 성매매집결지 폐쇄·변화의 흐름, 집결지를 기억하는 사람들, 미래를 향한 기록, 기억을 함께 잇는 방법 등 5개 주제의 아카이브로 구성돼 있다. 수원역 앞에 성매매업소가 생긴 것은 1960년대라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최근 수원시정연구원 수원학연구센터 연구진은 6.25 전쟁 직
지난 21일 ‘수원 세 모녀 사건’이 발생했다. 정치권, 행정부 곳곳에서 ‘특단 조치’를 말한다. 공동체주의와 연대가 대안이란다. 좋은 말이지만 현실과 괴리가 있다. 두 가지 경우를 보자. 먼저,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20년 장애인현황 통계’의 등록장애인은 263만3000명이다. 전체 인구 대비 5%대다. 실제 장애인 수는 더 많다는 것이 전문가들 얘기다. ‘장애인이라는’ 낙인, 수치심 등은 등록과 신고를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두 번째, ‘된장녀’, ‘된장남’(의존적 과소비자, 혹은 여성과 남성을 비하하는 신조어)이라는 단어엔 ‘불편한 진실’이 함의돼 있다. 어쩌면 된장녀, 된장남은 정신지체나 발달장애가 있는 사람들의 행태일 수 있다. 한국 사회에는 정신질환과 장애를 숨기는 문화가 있다. 장애인 등록과 정신과 치료를 터부시하기도 한다. 등록과 신고를 저해하는 요인 중 하나다. 2014년 ‘송파 세 모녀 사건’과 2022년의 ‘수원 세 모녀 사건’은 무등록, 무신고가 공통점이다. ‘송파 사건’ 이후 국민기초생활보장법, 긴급복지법 등이 개정됐다. 사회보장 정보시스템을 운영 중이다. 지자체별로 ‘찾동(찾아가는 동주민센터)’도 생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사무
사람들은 ‘조선의 잔다르크’라 불렀다. 45년 12월, 항일무장투쟁을 벌이던 김무정 장군과 함께 조선의용군을 이끌고 종로거리로 행군해 들어오던 날 ‘백마탄 여장군’이 왔다며 환영인파가 거리를 가득 메웠다. 이후 친일파나 민족반역자를 뺀 모든 사람들이 통일된 나라를 만드는데 힘을 모아야 한다고 설파하던 장군은 48년 10월, 해방된 조국의 부평경찰서에서 의문의 죽음을 맞는다. 조선의용군 지휘관 김명시의 이야기다. 1907년 마산에서 태어난 김명시 장군은 일찍이 오빠 김형선의 영향으로 사회주의계열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다. 모스크바유학을 마치고 상해에서 독립운동을 시작해 1930년 하얼빈 일본 영사관을 습격하면서 본격적인 무장투쟁의 길에 들어선 장군은 1932년 국내잠입 활동 중 일경에 체포되어 신의주형무소에서 7년의 옥고를 치렀다. 이때 오빠 김형선은 서대문형무소, 동생 김형윤은 부산형무소로 삼남매가 모두 갇히는 신세가 되기도 했었다. 감옥에서 풀려난 장군은 즉시 중국으로 탈출하여 해방될 때까지 휘하에 2000명의 부대원을 이끌고 싸웠다. 해방 이후 46년 3월 시인 노천명이 김명시 장군을 인터뷰하고 서울신문에 “김명시 여장군의 반생기(半生記)”라는 제목으로 글을
소년은 통창 앞 의자에 혼자 앉아있다. 책을 떨군 것도 모른 채 한 시간 넘도록 한 곳을 응시하고 있다. 창 너머 하늘을 찌르고 선 메타세콰이어 나무들을 보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나무 사이에 걸린 구름일까, 나무들 뒤 주차장을 오가는 차와 사람들일까. 소년의 시선을 이끈 것은 마음, 영혼, 무의식같은 그의 내면일 것이다. 어린 날, 그가 점령했던 왕국의 일용할 양식이던 것들. 웃음소리와 고집과 도발로 융성했던 그 아름다운 나라를 찬탈한 이는 누구였을까. 소년은 최근 자퇴한 고교 2년생이었던 내 아들이다. ‘멍 때리고 있던 아들’ 그 아들의 뒷모습에 감동해 ‘멍 때리고 있던 나’, 모자(母子)의 생경한 모습은 어제 헤이리 내 작업실에서의 실황이고. 입시지옥에 영육이 말라가는 것을 보다 못한 남편의 권유가 시작이었고 아들의 빠른 수용으로 일사천리 결정된 자퇴 후, 한 달이 지났다. 아들은 다시 깔깔 웃기 시작했고, 말이 많아졌고, 없었던 애교(?)까지 부린다. 숙제와 시험에서 해방돼 행복한 비명을 지르는 아들 뒤에서 난데없이(물론 동의했지만) 그의 삼시세끼 해결이라는 숙제와 시험을 받은 나는......소리도 못내는 비명을 지른다. 아이들 키우며 한숨과 함께 튀
정의는 그것을 추구하는 것에 의해서가 아니라 사랑에 의해 실현된다. 과녁을 명중시키려면 그 과녁보다 위를 겨냥해야 하듯이 공정하려면 자기를 희생해야 한다. 즉 자기 자신에게는 오히려 불공정해야 하는 것이다. 오로지 공정하려고만 하면 결국 자신에게 관대해져서 다른 사람들에게는 불공정하게 되어버린다. 완전하게 올바른 행동만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정직한 인간이 오로지 진실만을 얘기하려고 노력함으로써 거짓말쟁이와 구별되듯이, 정의로운 사람은 정의롭고자 하는 노력에 의해 정의롭지 못한 사람과 구별된다. 부정 그 자체보다 나쁜 것이 있다. 그것은 사이비 기독교 세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거짓 선행, 거짓 사랑, 하느님에 대한 거짓 봉사이다. 사람들은 사랑의 법칙을 실천할 생각으로, 또는 실천하는 척하면서 정의의 요구를 외면하고 자못 우쭐하여 악랄한 부정에 빠져든다. 그들은 교회에 헌금하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자선을 베풀지만, 그들이 내는 것은 그의 형제들이 피땀 흘려 만든 결과물이다. 재판관은 문제의 어느 한 면만을 보고 옳고 그름의 판단을 내린다. 그러나 사실상 인생에 있어 어떤 측면에서 문제를 보느냐에 따라 어는 것이나 옳다고 말할 수 있는 다양한 대답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