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이 바뀌면 새 정부는 ‘규제 철폐’, ‘공기업 민영화’를 구호처럼 외친다. ‘맛깔 나는’ 메시지다. 국민의 지지 획득에 ‘규제 철폐’만큼 좋은 것은 없다. 반면에 규제 철폐와 결은 다르나, 비슷한 맥락의 ‘민영화’에 대해 국민은 ‘호의적’이지 않다. 먹고사는 일에 바빠서 민영화에 관심을 가질 여유조차 없지만, 국민은 공공재가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주는 재화임을 잘 알고 있다. 지난 5월 17일, 국회 운영위에서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김대기 대통령비서실장의 질의와 응답이 논란이 됐다. 김 실장은 민영화와 관련해 “경영은 정부가 하되 30~40%의 지분을 민간에 팔자는 것”이라고 했다. 민감한 이슈다 보니 대통령실은 ‘개인 의견’일 뿐이라고 선을 그었다. 민영화는 종국적으로 ‘요금 인상’의 결과를 낳는다. 때론 국민의 생명을 위협한다. 선진국에선 이미 홍역을 치렀다. 40년 전 일이다. 재정적자를 이유로 시작된 1980년대 영국의 철도, 프랑스의 수돗물, 미국과 독일의 전력 민영화가 그 예다. 국민들의 값진 희생 후에 다시 국유화, 공영화가 됐다. 돌이켜보면 우리나라는 박정희 군사독재정권 때부터 줄곧 ‘계획경제체제’와 ‘큰 정부 이념’을
윤석열정부 출범 3주가 지났다. 윤석열씨가 대통령에 당선된 것은 지난 3월 9일이다. 후보자시절 윤석열씨는 매주 언론사 기자와 만나겠다고 말 한 적이 있다. 당선된 후에도 자주 언론과 만나겠다고 했다. ‘출퇴근하는 대통령’이기 때문에 오며 가며 공식, 비공식적으로 기자들을 만나기도 쉬워졌다. 다른 건 몰라도, 윤석열 정부의 ‘언론공약’은 100% 이상 실현될 것으로 보인다. 한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윤대통령은 5월 16일 자신의 참모들에게 "점심시간을 이용해 각계 전문가들은 물론 언론과 충분히 만나고 대화하면서 적극 소통하라"며 “'낮술'이 필요하면 얼마든지 하라”고 말했다고 한다. ‘낮술 권하는’ 혹은 ‘접대와 소통을 구분하지 못하는’ 대통령이라는 비판이 비등했다. "시중의 민심을 가감 없이 파악해 국정에 반영하기 위해 참모들에게 적극적인 소통을 강조한 것이지 낮술을 마시라고 권유한 게 아니다"라는 해명을 담은 기사가 쏟아져나왔다. 일본 지지통신은 5월 13일 “국제 기준에 따른 원전처리수(오염수) 방출, 반대 없는 한국”이라는 기사를 내보냈다. 이 기사에 대해 민주당 송영길 서울시장 후보 등은 SNS를 통해 "오염수 방출, 윤석열 반대 안 해…일본 언론…
한국방송협회가 주관하는 한국방송대상은 73년부터 그 해의 최고 프로그램에 시상하는 한국방송의 아카데미상이다. 지상파 3사의 연말 방송대상이 자기들만의 위로와 격려잔치를 하는 셀럽들의 송년 프로그램인데 비해 방송대상은 말 그대로 최고의 프로그램을 선정하는 권위 있는 시상식이다. 드라마가 대상을 처음 받은 게 96년 KBS의 일일연속극 바람은 불어도 이며 이어 98년에는 대하드라마 용의 눈물이, 오락 프로그램으로는 MBC의 칭찬합시다가 99년 대상을 받았다. 교양 다큐가 아닌 오락 프로그램이 대상을 받는데 물경 23년이 필요했다. 2000년대 들어 드라마의 한류 바람과 웰메이드 사극의 인기로 대장금, 불멸의 이순신 등이 대상을 수상하였고 2015년에는 무한도전이 대상의 영예를 얻었다. 그 시기에도 차마고도, 누들로드 등 정말 좋은 다큐멘터리가 대상의 단골 수상자였다. 그러고 보면 오락 프로그램은 시청률이 높아도 좋은 프로그램이란 소리를 듣기 참 어렵다. 많이 보고 재미는 있는데 좋지는 않다는 명제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원래 시청자가 그렇게 수준이 낮은 거라면 시청자를 위한다는 말은 지나치게 계몽적인 표현이 된다. 과연 시청자는 프로그램을 통해 가르치고 계
인간의 지적 활동은, 종종 진리를 해명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은폐하는 데 이용되곤 한다. 재판의 목적은 현재의 사회체제를 유지하려는 것에 불과하다. 그래서 지적 수준이 높은 사람들 또한 수준 낮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박해하고 처벌한다. 나는 농부들을 사랑한다. 그들은 잘못된 판단을 내릴 만큼 많이 배우지 않았으므로. (몽테뉴) 도대체 왜 그 사람은 종교적, 정치적, 학문적으로 그토록 괴상하고 불합리한 입장을 옹호하는 것일까 하고 참으로 이상하게 여겨질 때가 종종 있지만, 잘 살펴보면 그저 자신의 입장을 변호하는 호신술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잘 알 수 있다. 사람이 자신의 행위를 복잡한 이론으로 설명하려 할 때는, 그 행위가 나쁜 행위라는 것을 믿어도 된다. 양심의 결정은 항상 간단명료하고 솔직하다. 영혼이 구원 얻기 위해 먼저 도덕적인 인격의 자유로운 사람이 되지 않을 수 없고, 자유의 길을 걷기 위해서는 현실의 발길에 차이는 돌을 우선 치워놓지 않을 수 없다. 목적은 하늘에 있으나 일은 땅에 있다. 땅을 박차지 않고 날아오르는 새는 하나도 없다. 이 의미에서 예수께서 기도를 가르치실 때에 “나라가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일본 극우’라는 단어를 들을 때마다 토야를 떠올린다. 20여 년 전 남인도에서 만난 친구! 나는 시간을 아껴야하는 단기 여행자였고 토야는 돈을 아껴야하는 세계일주 여행자였다. 오토바이는 내가 빌리고, 운전은 그가, 주유비는 반반씩 부담해 고아와 함피를 둘러보자는 제안에 숫기 없는 그는 당황한 듯 망설이다 겨우 말을 꺼냈다. "저는 극우입니다” 혐한(嫌韓)시위를 다닐 정도라는 그에게 "그게 어때서?”라 되물으며 우리는 역사가 아닌 비즈니스로 만난 관계라 했다. 그렇게 계약이 성립되어 고아와 함피를 둘러봤다. 스콜-늦은 오후 소나기가 내리면 짜이 집에 뛰어 들어가 지붕 아래에서 비를 피하며 우리는 친해졌다. 그는 어릴 때 이지매를 당했고 와세다 법대에 진학, 유흥업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거기서 만난 접대부 여성이 그의 첫사랑. 그러나 사랑에 실패하면서 은둔형 외톨이가 되었고 몇 번의 자살 시도, 몇 번의 사법시험 실패 끝에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고 했다. 자신이 극우였던 것을 진심으로 사과한다고 말했다. 마지막 날 그는 데려갈 곳이 있다며 언덕 능선을 한참 달리다 한적한 바닷가에서 오토바이를 세웠다. 모래밭 오두막에서 술을 팔고 있었다. 우리는 파도소리를 들
6·1 지방선거일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지난 27~28일 이틀간 사전투표에 이어 본 투표가 내일 실시된다. 이번 지방선거는 광역단체장을 비롯해 지역구·비례대표 광역의원, 기초단체장, 지역구·비례대표 기초의원, 교육감 등 모두 7단계의 지방정부 관련 일꾼을 뽑는다. 또 일부 지역에서는 국회의원 보궐선거까지 치러진다. 이번 선거는 3‧9 대선 이후 3개월여 만에 그리고 새정부 출범 20여일 만에 갖게 돼 ‘풀뿌리 민주주의’라는 지방선거 고유의 취지가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특히 공천이 워낙 촉박하게 진행돼 지방선거에 나설 후보들의 준비 기간이 짧았고, 그만큼 후보 자신들의 면면을 알릴 기회도 적었다. 게다가 지방선거 및 함께 실시되는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지난 대선 주자들이 대거 출사표를 던지며 선거전이 ‘대선 2라운드’ 양상으로 전개됐다. 이렇다 보니 정책이나 인물 대결은 뒷전으로 밀리고 선거프레임이 국정안정론 대 견제론이 충돌하는 중앙정치화라는 우려를 낳았다. 결국 정당대결의 ‘줄투표’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이러면 지방자치는 퇴행의 길을 걷게 된다. 지역 맞춤형 인물을 잘 골라내야 한다. 이를위해서는 무엇보다 유권자들의 꼼꼼한 선택이 중요하다. 대통령…
일요일 꼭두새벽, 칸영화제에서 박찬욱 감독과 배우 송강호 씨가 각각 《헤어질 결심》과 《브로커》로 감독상과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진부하지만 이런 생각을 했다. 마침 지방자치단체장 선거 이틀째 사전투표를 마친 날이다. 한국은 정말 정치만 잘하면 된다는 생각. 그런데 그것이 참으로 요원하다는 생각. 아마도 다들 비슷한 생각과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영화를 비롯해 한국 사람들의 개인기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지경으로까지 확대 발전하고 있는데 그 개인들의 역량을 담아낼 국가나 사회와 같은 체제의 용기(容器)는 매우 부실하다. 걱정은, 당연히, 그렇기 때문에, 과연 이런 분위기가 오래갈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몇 번을 얘기하지만 아베 이후 일본 영화는 큰 빛을 보지 못하고 있다. 물론 하마구치 류스케 같은 신성(新星)이 나오고 있긴 하지만 오죽했으면 고레에다 히로카즈 같은 명장(名匠)이 한국에 와서 한국영화를 찍겠는가. 일본 자국(自國) 내 침체된 분위기를 넘어서고 싶다는 욕망이 읽히는 부분이다. 고레에다는 한국 영화사와 《브로커》를 찍었고 그 주인공이 송강호이며 송강호가 이번에 남우주연상을 탄 것이다. 한국영화와 한국의 배우가 아시아형 영화의 정체
-전공투의 시작 “내가 와세다(早稻田))를 들어갔을 때가 1965년이었습니다. 당시 유행하던 실존주의에 매료되어 문학에 탐닉할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정의에 대해 눈을 뜨면서 전공투 운동에 뛰어들었지요. 좌익 지식인으로서의 인생이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전공투(全共鬪) 이후 30년이 지난 시점에서 그 시절을 회상한 일본의 사회사상 연구가 아라 다이스케(荒岱介)의 진술이다. 전공투는 ‘전학공투회의(全學共鬪會議)’의 약칭으로 1968년, 일본 전국 학생운동의 결집이 이뤄낸 조직이다. 그때까지 학생운동을 이끌던 ‘전학련(全學聯) 시대’가 종언을 고하고 새로운 단계로 보다 전투화된 운동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그러기 전에는 어떤 일들이 있었던가? 1967년 10월 8일, 경대(京大/교토(京都)대학)에 다니던 야마자키 히로하키(山崎廣明)가 하네다 공항으로 가는 길목인 다마가와(多摩川) 다리 위에서 경찰봉에 맞아 숨진다. 베트남 전쟁 반대 운동이 격렬했던 시기에 사토 에이사쿠(佐藤榮作) 수상이 베트남으로 가는 것을 학생들이 막는 과정에서 발생한 참극(慘劇)이었다. 그의 친구들이 나중에 가족들에게 야마자키의 가방을 전달했는데 그 안에는 1권의 노트와 10권의 책이 들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