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죽음을 향한 끊임없는 접근이다. 따라서 삶은 죽음이 더 이상 어둠으로 생각되지 않을 때 비로소 행복한 것이 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쇠사슬에 묶여 있는 광경을 상상해 보라. 그들은 모두 사형선고를 받고 있고, 날마다 그들 가운데 몇 사람이 눈앞에서 죽어 가고 있다. 이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자기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에게는 자신에게 다가오고 있는 운명이 보일 것이다. 이런 상황에 있을 때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과연 서로 때리고 괴롭히고 죽이고 해도 되는 것일까? 아무리 흉악한 강도들도 이런 상태에서는 서로 악을 행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인간은 모두 그러한 상태에 놓여 있다. 그런데도 그들은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것인가? (파스칼) 우리는 중요한 지위에 있는 사람이 갑자기 쓰러져 이내 죽어가는 것을 보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이 매일 조금씩 소모되고 쇠약해지는 것을 알고, 언젠가 결국 죽어버리는 것을 보기도 한다. 이러한 충격적인 사건이 어느 누구의 관심도 끌지 못하고 어느 누구의 마음도 움직이지 못한 채 끝난다. 사람들은 그런 사람에 대해 꽃이 시들거나 잎이 떨어지는 것을 볼 때만큼의 관심도 기울이지 않는다. 단지 그
재판정은 억울한 사람으로 가득하다. 원고도 피고도, 피해자도 피고인도 모두 억울하다고 말한다. 억울함은 내가 예상치 못한 불이익한 대우를 받았을 때 쓰는 말이고, 다분히 주관적인 정서이기 때문에 느끼는 사람마다 제각각이다(졸저 ‘우리는 왜 억울한가’ 중에서). 세상이 온통 내 맘 같지 않아서 인간관계가 어렵고, 거래나 계약도 입장에 따라 이해관계가 다르기 때문에 분쟁이 생길 수밖에 없다. 본의 아니게 얽히고설킨 분쟁이 지긋지긋하다면서 민·형사로 흩어진 분쟁을 제발 좀 한방에 끝낼 방법이 없냐고 묻는 사람이 많지만, 그게 그렇게 쉽지가 않다. 소송은 본질적으로 양 당사자가 신사적으로 싸울 방법을 국가에서 공식적으로 마련해주고 판사가 심판을 보는 구조이다. 다만 형사소송에서는 원고 자리에 국가를 대리하는 검사가 앉는다. 심판인 판사가 다소 약해 보이는 사람이 있다고 그 편을 들어줄 수는 없는 노릇이고, 분쟁의 대상만을 판단할 권한이 있을 뿐 다른 사정이나 주변 사람을 끌어들여 사건을 해결할 수도 없다. 판결은 당사자 사이에 과거에 벌어진 수많은 일 중 개별 쟁점에 대한 판단일 뿐이다. 예를 들면, A가 B에게 1천만 원을 빌려줬고, A는 그 채권을 자신의 채권자
미국인 평론가 달시 파켓은,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지난 30년간 한국에서 체류하면서 평론 일과 저널리스트 일, 무엇보다 한국영화 자막 번역가 일을 해 오고 있다. 그는 솔직히 한국말보다는 한글을 아주 정교하게 쓰고 사용하는 미국인이다. 한국말은 약간 어눌한데(30년을 살았음에도!) 글을 쓰는 데 있어 마침표 하나, 따옴표 하나 불필요하게 사용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완벽하다. 그가 작업한 ‘기생충’ 영어 번역은 감독 봉준호가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무대에 서는 데까지 큰 역할을 한 셈이다. 그는 보스턴에서 태어났으며 국적은 미국으로 한국인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서울 강북 어디메쯤에서 산다. 그 역시 아이들의 교육 문제를 놓고 고민하며 살아가는 한국 아버지, 여느 부모와 다를 게 없다. 나는 그에게 늘, 너의 아이들을 하루라도 빨리(근데 이미 늦었다.) 부모가 살고 있는 보스턴 외곽으로 보내라는 말을 하곤 한다. 한국에서의 입시가 다소 너무 강고(强固)하다고 생각하는 터라 미국인인 그마저 그걸 고스란히 떠안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걸 한국에 살고 있는 미국인 특유의 특혜이자 특권이라고까지 생각하지 않는다. 고백하건대, 나는 아이를 10년 넘게
오는 6월 1일 실시되는 지방선거에 출마한 경기도지사 선거 후보자는 물론 새 정부도 깊은 관심을 갖고 경기연구원이 최근 발표한 ‘경기북부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3대 전략’ 보고서를 살펴보길 권한다. 이 보고서에는 혁신테크노밸리 조성, GTX(수도권광역급행철도) 중심 광역복합 대중교통 역세권 개발, 규제자유특구 설치 등 경기도 북부지역 활성화 3대 전략이 들어 있다. 북부 지역은 정부의 각종 규제정책으로 경기남부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낙후되어 불균형과 저성장이 심화되고 있다. 연구원 역시 저성장의 원인으로 수도권정비권역, 개발제한구역, 군사시설보호구역 등 중첩규제를 지목했다. 그러면서 “접경지역의 특수성과 누적된 기회비용, 지역 주민들의 제한된 기본권 등을 고려해 성장 돌파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경기북부 주민들의 여론이 들끓자 지난 2000년 1월 9일 정부는 군사규제로 묶여있던 경기북부지역 내 1502만2000여㎡ 규모 부지를 ‘군사시설 보호구역’에서 해제한다고 발표했다. 파주, 고양, 연천, 양주, 포천 등 북부지역 5개 시·군과 김포시가 포함됐다. 개발 자체가 불가능했던 4만9800여㎡ 규모의 ‘통제보호구역’도 ‘제한보호구역’으로 변경됐다. 주민
빛의 벙커에서는 자신의 경계가 흐려진다. 캔버스를 벗어난 그림이 벽과 바닥을 넘어 전시를 관람하는 사람까지 물들이기 때문이다. 온 공간을 채운 예술 속에선 사람도 예술이 된다. 몰입형 미디어아트의 본질이다. 미디어아트란 현대 커뮤니케이션의 주요 수단인 사진, 영화, TV, 비디오, 컴퓨터 등 대중에게 파급효과가 큰 미디어 테크놀로지를 미술에 적용시킨 예술을 의미한다. 미디어아트는 정적으로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관객의 감각에 직접 호소하며 상호작용을 일으킨다. 몰입형 미디어아트가 처음으로 한국에 정착한 곳은 제주였다. 넓은 공간과 장기간의 전시, 꾸준히 찾아올 사람들이 필요했기에 늘 관광객이 많은 제주가 적합했다. 한국 안에서 가장 멀리 떠나온 사람들은 궂은 날씨에도 찾아갈 만한 실내관광지를 원했고, 독특하고 신선한 체험을 바랐으며, 조건만 맞는다면 제주 어느 곳이든 찾아가려 했다. 2018년, 국가 기간 통신시설이었던 9백 평 면적의 철근 콘크리트 건축 구조물에 빛과 색이 들어섰다. 자연 공기 순환방식을 이용해 쾌적한 온도가 유지되고 외부의 빛과 소리가 완전히 차단되는 비밀벙커는 작품에 몰입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으로 관광객들을 맞이했다. 그렇게 미디어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한 지 어느새 3개월에 접어들었다. 참혹한 전쟁의 뒤편에서 벌어지고 있는 지경학 쟁투는 전쟁 못지않게 치열하다. 유럽은 신규 천연가스 파이프라인의 개통을 유보하는 외에 러시아산 석유와 천연가스의 수입을 축소하였다. 그리고 러시아를 스위프트 국제금융결제시스템에서 축출하였다. 그 결과 러시아는 루블화 가치가 폭락하고 국가부도의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이에 대응하여 러시아는 석유·가스 거래 대금 결제 방식을 루블화로 제한함으로써 루블화의 가치를 방어하고자 안간힘을 쓰고 있다. 미국은 유가 상승으로 경쟁력을 회복한 셰일 석유·가스를 유럽에 수출하는 등 에너지 공급 허브로 발돋움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고 있다. 중국과 인도는 러시아 산 석유·가스를 싼 가격에 수입하는 이득을 취하고 있다. 게다가 인도는 러시아와의 에너지 거래를 위안화 결제 방식으로 변경을 검토하고 있다. 쿼드 국가 중 하나인 인도의 이런 이중 행동을 미국은 쳐다 보고만 있다. 전통적 친미 국가인 사우디아라비아는 중국 및 러시아와 밀착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중국과의 석유 거래 결제 통화로서 위안화 도입을 저울질하고, 중국은 숙원 사업인 페트로 위안화 시대의 조기…
완전성에 대한 관념을 가지지 않는 사람은, 있는 그대로의 현실에 만족하고 현실과 다투지 않으며, 그 현실이 그대로 정의이고 행복이며 아름다움이라고 믿고 있다. 그런 사람에게는 아무런 진보도 없고 생명도 없다. (아미엘) 개인의 경우나 집단의 경우나 모두 마찬가지이지만, 완전성을 향한 추진력은 그 개인과 집단이 현재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한 지식이 아니라 가질 수 있는 것에 대한 관념이다. (마르티노) “하늘에 계시는 ᄒᆞᆫ님처럼 너희도 완전하라.” 신의 완전성, 즉 모든 사람의 최고선에 대한 이념이야말로 전 인류가 지향하는 궁극의 목표이다. 해안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헤엄치고 있는 사람에게는 저 언덕, 저 곶, 저 해안을 따라 헤엄치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해안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항해하고 있는 사람에게 지침이 될 수 있는 것은 오직 아득한 별과 나침반뿐이다. 아무리 타락한 사람이라도 항상 자신이 지향해야 하는 완전성만은 볼 수 있을 것이다. 신앙은 힘이다. 말이 아니다. 생각이 아니다. 사상이 아니다. 지식이 아니다. 이론도 아니고 학설도 아니다. 술(術)도 아니요 방편도 아니다. 신앙은 힘이다. 살리는 힘이다. 말로써 영혼을 구원하였다는 일을…
문재인 제19대 대한민국 대통령이 지난 9일 5년 임기를 마치고 퇴임했다. 지난 10일 국회에서 열린 새 대통령 취임식 참석한 후 KTX 편으로 사저가 있는 경남 양산으로 내려갔다. 이후 문 전 대통령은 농사도 짓고 반려견도 기르고, 이웃 주민들과 막걸리도 나누면서 평범하게 지낼 계획이다. 문 전 대통령은 성공한 대통령이다. 재임 중에 한국경제가 회복되었고 코로나19 팬데믹 사태에 모범적으로 대응했을 뿐만 아니라 같은 시기 ‘오징어 게임’과 같은 한류 콘텐츠는 세계를 제패했다. 이례적으로 퇴임하는 문 전 대통령 지지율이 취임하는 윤석열 씨 보다 더 높았다. 그럼에도 보수언론은 문 전 대통령의 성과를 애써 무시한다. 오히려 ‘졸렬한 퇴임’이니 ‘줄소송예고’니 하는 악담 기사만 내보내고 있다. 문 전 대통령은 2017년 5월 10일 취임식에서 “국민과 수시로 소통하는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주요 사안은 대통령이 직접 언론에 브리핑하겠습니다. 퇴근길에는 시장에 들러 마주치는 시민들과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누겠습니다. 때로는 광화문 광장에서 대토론회를 열겠습니다.”라고 말 한 바 있다. 언론 브리핑 이야기도 했지만 취임사의 핵심은 국민과 직접 소통을 늘리겠다는 점이었다
윤석열 새정부가 출발했지만 나라안팎으로 현안들이 첩첩산중이다. 고물가 등의 경제 악재에 대외적으로 반(反) 세계화의 국제 질서 변동기, 북핵 등 복합 위기가 에워싸고 있다. 어느 하나 우리가 주체적으로 헤쳐나가기 어려운 환경이다. 코로나19보다 구조적으로 더 어려운 시기다. 모든 사안들이 발등의 불같아서 무엇부터 손을 대야할지 판단하기 어려울 정도다. 그러나 이런때일수록 필요한 응급처방은 하되 냉철한 원칙과 철학을 갖고 긴 안목의 국가 펀더멘털을 다지는 일이 중요하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11일 취임사에서 “민간·시장·기업 중심으로 경제의 역동성을 되살려 저성장의 고리를 끊겠다”고 말했다. 민간 주도의 미래먹거리와 일자리를 강조한 것은 매우 당연하고 바람직한 방향이다. 그러나 반드시 선행해야 할 정부 차원의 몫이 있다. 이른바 공공·노동·금융·교육 등 4대 부문 구조개혁이다. 그 중에서도 연금과 노동개혁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워낙 예민하고 이해충돌의 범위가 넓어 역대 정부에서도 계획만 있었을 뿐이다. 윤석열 정부에서 또다시 실기하면 한국은 저성장의 늪에서 탈출하기 어렵다는 비상 경보음이 울리고 있다. 기득권의 저항을 뚫고 개혁을 추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