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중동에스와 종편 등 ‘적폐언론’의 무기는 불법, 탈법으로 장악한 기득권과 선택적 ‘담합저널리즘’이다. 이들의 특권을 통한 여론시장 개입과 왜곡은 대한민국 민주주의 발전의 가장 큰 장애물이다. 최근 이들 적폐언론의 부당한 기득권과 여론시장에서의 횡포를 무력화할 수 있는 몇 가지 사건이 발생했다. 하나. 서울행정법원은 11월 19일 미디어오늘, 뉴스타파, 셜록 등 ‘독립언론’들이 지난해 12월 서울고등법원(서울고등검찰청)을 상대로 제기한 ‘출입증발급 등 거부처분 취소소송’에서 거부처분 취소 판결을 내렸다. ‘법조기자단’을 배타적으로 운영하는 것은 불법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행정법원은 “신청이 거부됨에 따라 침해되거나 제한되는 기본권 내지 법률상 이익은 그 소속 기자들에 대한 것뿐만 아니라 언론기관 고유의 것도 포함된 것으로 봄이 타당하다.”고 적시함으로써 배타적 기자단 운영으로 특정 언론기관이 배제될 경우, 그 언론과 관련한 국민의 보편적 권리가 침해될 수 있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그동안 법조기자단 카르텔은 검찰과 언론 유착과 ‘부당거래’의 핵심 고리였다. 감시대상과 감시자의 담합결과 언론사는 기소되지 않는 특권집단이 되었고 검찰비리는 언론보도의 성역이 되었
한의원 대기실이 시끄럽다. 알고 보니 한 환자가 이사회 회의하다 말고 너무 아파왔다고 하며 빨리 치료받고 가야 한다며 간호사를 재촉하였고 이런 과정에서 큰 소리가 난 모양이었다. 처음 내원하면 하는 잠깐의 예진 시간에도 마음이 쫓기는 말쑥한 양복차림의 그는 붉은 얼굴과 크고 짜증이 가득한 목소리로 급하게 들어온 진료실에서도 목이 아파 움직일 수 없는데 중간에 나온 이사회 회의 걱정이 먼저이다. 목과 어깨 근육이 긴장으로 전체적으로 돌처럼 단단하게 굳어있었고 아니나 다를까 고혈압으로 혈압약도 복용 중이다. 그녀는 프리랜서 작가이다. 마감에 항상 쫓긴다. 예민한 성격인데 완벽하게 일하길 원하고 또 그 시간에 쫓기는 마음이 지속되니 몸이 영향을 받는다. 혼자서 일하다 보니 입맛이 없을 때도 있고 귀찮기도 해서 식사시간이 들쭉날쭉이다. 입맛도 없고 해서 밀가루와 간식 위주의 배달음식으로 식사를 대충대충 때우기 일쑤다. 언택트 시기에는 더 심해졌다. 이러한 생활이 누적이 되니 소화도 잘 안되고 야간에 잠을 자주 깨고 소변을 자주 보러 간다. 불안하다, 가슴이 두근거린다. 잘 놀란다. 한의원에서 만나는 풍경들이다. 바쁜 일상은 호흡조차 여유롭지 않다., 오징어게임속의…
‘개고기 식용’ 관련 논란을 생각한다. 얼핏 떠오르는 것이 구라파와 미국, 특히 불란서에서 고급요리로 치는 푸아그라(foie gras)다. 유럽과 유에스에이(U.S.A. 아메리카), 프랑스를 동아시아 방식으로 부른 것은 ‘문화의 차이’를 보이고자 함이다. ‘개천에서 용 난다.’의 동아시아의 용(龍)과 동굴 속 공주를 구하는 기사(騎士)의 창에 찔려 피 흘리는 서구(西歐)의 드래곤(dragon)은 전혀 다른 상상의 동물이다. 상당수가 龍의 번역어가 ‘드래곤’이라고 착각하는 마당이다. 개고기 문제의 (문화적) 발생 지점으로 읽는다. 나는 푸아그라를 즐기는 저 사람들을, 속으로는 못마땅하지만, 비난하지 않는다. 현지에서 먹어봤다. 맛있었다. 그 후 먹지 않았다. 그 뜻은 ‘기름진 간’이다. 고대 이집트에서 시작된 유서 깊은 요리다. 한국의 일부 식품점, 서양요리점에서 만날 수도 있다. 인간이 제 입맛을 위해 다른 생명을 학대할 수 있는가? 깔때기를 거위 오리의 목에 넣고 옥수수 같은 곡물을 밀어 넣는다. 간이 0.5~1Kg까지 커지고(붓고) 맛이 좋아진단다. 세계 곳곳에는 공감 못할 음식이 있다. 나는 ‘그것을 먹지 말라.’ 윽박지르거나 비난하지 않는다. 왕년의…
포퓰리즘, 그 진실은? 정치에서 “포퓰리즘(populism)”은 비하(卑下)의 언어다. 이 말은 가치나 원칙없이 대중들의 욕망에 영합해서 표를 모으는 행위를 지탄할 때 등장한다. 그렇게 인기에만 기대는 정치인은 “포퓰리스트(populist)”라는 공격을 받는다. 사실이 아니라도 정적(政敵)을 모함하기 위해 쓰이는 경우도 적지 않다. 시대마다 같은 단어라도 그 의미가 달라지긴 하나, 사실 “포퓰리즘”은 본질적으로 민주주의 정치의 근본이다. 이 단어는 “피플(people)”에서 나온 것이자 미국의 내전(Civil War)인 남북전쟁 당시인 1863년 에이브라함 링컨이 게티즈버그에서 행한 연설로 더욱 분명한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민주정치의 주체를 확정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우리말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생겨나는데 ‘people’은 ‘국민(the nation)’이 아니라 ‘인민(人民)’이다. 링컨의 말에 따르면 민주주의는 “인민의, 인민에 의한, 인민을 위한 정부(government 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와 일치한다. 이 인민을 앞세우는 사상과 태도가 “포퓰리즘”이다. 그 정확한 번역은 “인민주의”가 되는데
난데없이 떠오른 음률. 그런데 언제 어디서 들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가려운 곳을 긁지 못해 안달 난 것처럼 하루 종일 기억의 재를 뒤지다 아하! 하는 탄성을 내뱉는다. 영화 속 음악이었다. 이제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닌 이탈리아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의 영화 ‘마지막 사랑(The Sheltering Sky, 1990)’. 데보라 윙거가 나왔을 거야. 사막이 무대였어. 줄거리가 어떻게 됐더라......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일본 음악가 류이치 사카모토가 작곡한 장엄한 주제곡, 처연한 느낌의 아프리카 음악들의 가슴을 적신 기억은 선연하다. 그 기억이 오래전 영화를 호출해 다시 보게 만든다. 영화 ‘마지막 사랑’의 무대는 아프리카 모로코다. 부부관계 권태와 작품 창작의 벽을 만나 여행길에 오른 작곡가, 작가 부부 포터와 키트. 그들 곁에는 부유하고 잘생긴 동행자가 있어 삼각관계를 예상하게 했는데 돌연 동행자는 다른 길로 새 버린다. 일단 러브 스토리는 아니라는 이야기. 영화 첫 장면부터 나와 심장을 강타하더니 중간중간 배경에 흘러 감정을 뒤흔들던 아프리카 토속 목소리들이 있었다. 가장 강렬했던 목소리에 대해 영화 속에서도 대화가 나온다. 부부에게 비극의 광풍이…
84년 즈음 한 친구가 읽어보라며 책 한 권을 건넸다. 책 제목이 ‘황강에서 북악까지’였는데 표지의 사람 얼굴이 낯익었다. 9시를 알리는 땡소리만 나면 “전두환 대통령은..”으로 뉴스를 시작했던 ‘땡전뉴스’의 주인공이었다. 그를 ‘전대갈’이라 부르며 이를 갈았던 우리는 지피지기라며 책을 펼쳤지만 차마 끝까지 읽을 수 없었다. 어릴 때 사과서리를 하다가 들켜서 거짓말을 했는데 이때 부끄러움 때문에 평생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거나, 아버지가 악질순사를 강에 처박고 만주로 도망갔다면서(실상은 노름빛 때문이라는데..) ‘행패를 부리는 순사 놈을 보는 소년 두환의 주먹이 불끈’ 운운하며 시작하는데 80년대 피끓는 청춘들이 완독하기에는 보통 어려운 미션이 아니었다. 작가 천금성은 당시 권력핵심이자 서울대 농대 2년 선배인 허문도의 권유로 전기를 창작(?)했다. 문단의 평가는 혹독했으나 작가는 글을 판 댜가로 문화방송 편집위원이라는 달콤한 자리까지 거쳤다. 책 제목대로 경남 합천 황강변에서 태어나 서울 북악산까지 탱크를 몰고 접수했던 전두환이 죽었다. 그는 국민들을 자기가 통솔하던 군대의 졸로 여겼다. 오월 광주를 비롯해 수많은 청춘들이 그의 군홧발 아래 피어보지도 못하고
인생의 의의를 결정하는 것은, 사람이 신을 향해 무엇 때문에 자기를 이 세상에 보냈느냐고 물을 때는 매우 난처하고 해결하기 어려운 과제가 되지만, 자기 스스로를 향해 무엇을 해야 하느냐고 물을 때는 매우 간단해진다. 자신의 장례식에서 비참한 웃음거리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지금 삶의 의미를 가지지 않으면 안 된다. 자신의 영원한 상대적 위대함과 왜소함을 인정하는 것, 신에 다다를 힘은 없지만 신의 뜻을 찾아 실천하는 삶에 만족하는 것, 자기보다 낮은 생명체를 사랑과 자비로 대하면서, 그 동물적 욕망을 가지지 않고 그것을 모방하지 않는 것, 그것이 신에 대해서는 경건함이고 그 생명체에 대해서는 선량함이며,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현명함이다. 삶의 의의를 외면한 채 살고 싶다면 딱 한 가지 길이 있다. 술과 아편에 절어 육체적 마비상태 속에서 살거나, 갖가지 유혹과 소비 오락에 빠져 감성적 마비상태 속에서 살면 된다. 이 세계는 결코 허구의 세계가 아니다. 단순한 시련을 위한 속세도 아니고, 더 나은 영원한 세계로 안내하기 위한 속세도 아니다. 우리가 우리와 함께 사는 사람들과 우리 뒤에 살게 될 모든 사람들에게 아름답고 즐거운 지구 환경이 되도록 하는 세계, 아니
문재인 대통령이 우리도 이제는 개고기를 먹는 걸 그만둘 때가 되지 않았냐, 면서 임기말에 매우 민감한 사안을 제기했다. 개나 고양이 등을 가족으로 여기며 함께 사는 반려인구가 1500만 명이 넘는다. 대선후보들의 당락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언론이 지금 '품격 저널리즘'까지는 아니더라도, 전반적으로 비교적 공정하고 이성적이며 상식적이라면, 윤석열 후보는 소위 '개사과' 논란만으로도 낙마할 수 있었다. 자멸적으로 황당무계하고 불가사의한 언동이 날마다 벌어져도 그가 건재한 것은 이번 대선과정에서 제일의 특징이다. 개를 자식과 다름없이 키운다는 그는 또 반려견과 식용견을 구분하는 망언을 했다. 자가당착이다. 바보 같지만, 교활하다. 이에 이재명 후보를 지지하는 동물정책연대는 "사람에게 먹히기 위해 태어나는 개는 없다"며 심지어 후보사퇴를 요구하기도 했다. 지지율은 그대로다. 나는 채식주의자다. 고기를 먹지 않으면 훗날 건강에 치명적인 상황이 발생한다면서 걱정과 충고를 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들에게 고맙지만 이 길을 멈출 마음은 없다. 변함없이 이렇게 가다가, 어느 날 낙엽지듯 소리없이 쓸쓸하게 이번 생을 마치고 싶다. 아래의 체험이 초식 인생의 결정적 계기가…
지난 22일 이재명 39.5%, 윤석열 40%라는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 여론조사 결과가 나오자 윤석열 후보 캠프서 인재영입위원장을 맡은 김영환 전 의원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다. “이런 엉터리 여론조사를 받아 쓰는 언론도 있다”며 “혹세무민의 여론조사를 규제할 방법은 없는가”라고 했다. 많은 언론이 이 내용을 그대로 기사화했다. 같은 날 개그맨 강성범 씨의 유튜브 채널도 뉴스원으로 등장했다. “정권을 재창출해서 다음 정부가 이 정부를 계승한다면 부동산 폭등에 대한 ‘원죄의식’이 상당할 것이다. 그래서 기를 쓰고 부동산을 잡으려고 머리카락을 세울 것이다. 근데 정권이 넘어가면 ‘우리가 한 거 아닌데’라며 집값을 잡으려는 의지가 낮을 것”이라는 주장을 폈다.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를 비롯한 여러 언론이 이 내용을 보도했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지난 23일 김종인 씨의 윤석열 선대위 합류 문제가 난항을 보이자 이를 두고 “여당을 견제하는 야당이라고 화력지원을 해주었는데, 이젠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는 요지의 글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렸다. 스스로 정파적 발언을 했음을 자인했다. 이 사례가 아니더라도 그가 페이스북에 올리는 글들은 속보성으로 기사화된
최근 내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기사의 제목은 ‘이재명을 몰라서’였다. 기사의 내용은 《인간 이재명》 읽기가 국회의원회관에서 유행이라는 것이다. 물론 민주당 국회의원과 보좌관들이다. 그만큼 민주당 국회의원들조차도 이재명이란 사람을 몰랐다는 얘기다. 어쨌든 반가운 기사였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윤석열의 진심》이란 책을 읽고 있다는 기사도 나왔으면 좋겠다. 샴푸 한 통을 파는 판매원도 상품을 팔려면 그 상품의 성분과 효능, 임상결과를 정확히 알고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아무 근거도 없이 ‘이 상품 좋으니까 사세요’라고만 줄기차게 외치는 판매원은 빵점짜리다. ‘우리 상품이 좋진 않지만 그래도 저 상품 사면 안 돼요’라고 떠드는 판매원은 없는 것만 못하다. 더구나 자신이 마케팅하려는 상품이 나라의 살림을 5년이나 맡길 대통령 후보라면 말할 나위도 없다. 그런데도 민주당은 이재명을 모르고 국민의힘은 윤석열을 모른다. 몰라도 아주 많이 모른다. 자신의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면 알 것이다. 이재명이 정말 훌륭하다고 믿어서 이재명을 지지하고, 선택을 호소하는가. 윤석열이 정말 잘할 것이라고 믿어서 윤석열을 지지하고, 줄을 서는가. 윤석열이 싫어서, 이재명이 싫어서가 아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