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어김없이 3·1절이 지나갔다. 모든 언론이 3·1운동 102주년이라고 썼다. 오랫동안 사용해 화석화된 잘못된 용어이다. 102년 전 3월 1일 민족대표들은 탑골공원 인근의 태화관에 모여 독립선언을 했고 일경에 체포되어 갔다. 독립만세를 외치는 경성 거리의 민중들을 바라보며 끌려가던 그들은 뜨거운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3월 1일의 거사를 준비하는 과정은 한 편의 드라마였다. 국외의 독립선언과 의문스러운 고종황제의 죽음으로 민중의 분노가 치솟자 당시 국내 최대 종단인 천도교의 지도자들은 비밀리에 독립선언을 준비하였다. 각계의 지도층에게 함께 할 것을 제의했지만 대부분 동학의 후신인 천도교를 무시하며 함께 하기를 거부했다. 마침 개신교에서 독립청원을 준비하고 있었고 불교계의 두 분의 스님이 합류하니 종교계가 앞장서는 모양새를 갖추었다. 천도교는 과거 실패했던 동학혁명을 다시 일으킨다는 자세로 준비했다. 준비된 독립선언서를 자체 인쇄소인 보성사에서 비밀리 인쇄하다가 종로경찰서의 악질 조선인 순사에게 발각되기도 하고 완성된 선언서를 옮기는 과정에 파출소에서 불심검문을 당하는 등 곡절 끝에 3만 5천 장의 선언서를 종교 조직을 활용해 전국에 퍼트리는 데 성공하
뉴스 보기 겁날 때가 있다. 아동학대, 아동살해 사건이 그렇다. 그것도 친부모에 의한 사건일 때는 인간에 대한 회의감이 든다. 부모가 어린 자녀를 살해하는 행위를 어떻게 봐야 할까? 부모의 정신 상태는? 온갖 생각이 교차한다. 독일의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 학살에 참여한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을 다룬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그 유명한 ‘악(惡)의 평범성’을 논하고 있다. 아이히만은 악인이라기보다는 평범하고 심지어 따분한 인격의 소유자로 묘사된다. 명령받은대로 했을 뿐 자신이 무엇을 했는지 조차 깨닫지 못한다는 대목에 이르면, 악행이란 악인뿐만 아니라 평범한 사람에 의해서도 저질러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자신의 자녀를 살해한 부모도 여느 부모와 마찬가지로 아이가 태어났을 때는 이를 기뻐하는 평범한 인간이지 않았을까? 필자는 정신분석학자가 아니므로 아동학대를 범한 부모의 정신상태에 대해 논하지는 않겠다. 단지, 우리가 한 눈 팔고 있는 사이에 아동학대가 아주 평범하게 보이는 이웃에 의해 스스럼없이 자행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유엔아동권리협약(UN Convention on the Rights of the Child,…
한국토지주택공사(LH) 임직원들의 광명·시흥 신도시 예정지 부동산투기 의혹이 민심을 강타하고 있다. 4.7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코앞에 두고 정부와 여당은 불똥 확산 차단을 위해 전전긍긍이다. 반면 야당은 온갖 수사법을 다 동원하여 선동에 열을 올린다. 진정 나라를 생각한다면 정치권의 지나친 ‘정쟁’ 확대는 바람직하지 않다. 머리를 맞대고 긴 호흡으로 공직사회 청렴성을 구축할 방도를 찾는 게 옳다. 문재인 대통령은 “LH 투기 의혹 사건은 검·경의 유기적 협력이 필요한 첫 사건으로 발본색원하라”고 특명을 내렸다. 정세균 국무총리도 정부합동특별수사본부(특수본)를 설치를 지시했다. 수사권이 없는 정부합동조사단(합조단)이 진상 규명에 나선데 대한 비판론이 제기되자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국수본)를 중심으로 수사를 확대하도록 조치한 것이다. 속속 드러나는 LH 임직원들의 투기 행각은 혀를 내두르게 한다. 시흥에 있는 논을 공동 매입한 직원 4명은 농업경영계획서에 주 재배 예정 작목을 벼로 기재하고 실제로는 묘목을 심었다. LH 직원 5명과 가족 2명 등 7명이 공동 구매한 다른 농지의 농업경영계획서도 서로 입을 맞춘 듯 대동소이했다. 토지 보상비, 수목 이식비를 계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는 말이 있다. 이는 자본주의의 논리를 연상시킨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 말은 성경구절로 기독교문명의 서구사회 논리다. 이 관념이 무너질 찰나에 놓여 있다. 코로나 위기 앞에 기본소득 논의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일하지 않는 데도 매월 꼬박꼬박 돈을 준다는 기본소득. 이런 세상이 온다면 이는 분명 혁명이다. 프랑스의 유명한 싱크탱크 장-조레스 재단(Fondation Jean-Jaurès)이 “프랑스가 기본소득제를 도입한다면 이는 혁명에 가까운 조치”라고 보는 이유다. 프랑스 기본소득의 상징인 아몽 역시 “기본소득은 새로운 사회계약(contra social)의 시작”이라고 평가한다. 이러한 혁명을 정치인 혼자만의 힘으로 가능할까. 제갈량이 살아 돌아온다 해도 어림없는 소리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시민이 뭉치는 수밖에 없다. 프랑스는 기본소득제 도입을 위해 시민들이 발 벗고 나섰다. 지난해 5월 프랑스 정치인들, 경제인들, 대학교수들, 시민단체 대표들은 일반시민들과 함께 수상과 예산회계부장관, 보건복지부장관, 국무장관을 소환했다. 2021년 재정 법안에 기본소득을 추가해 줄 것을 요구하기 위해서였다. 프랑스의 이
청년은 “학살중단! 군부퇴진!”이란 피켓을 들고 있었다. 마스크 위 청년의 눈은 맑고 깊었다. “고향 가족들 걱정에 많이 힘들겠어요”라고 말을 던지자 눈동자에 금방 물기가 맺혔다. 7일 창원시청 앞 미얀마민주화투쟁 연대집회에서 만난 청년이었다. 코로나 때문에 미얀마교민들과 창원시민들이 광장에 띄엄띄엄 둥글게 섰다. 그야말로 국제집회였다. 교민들은 ‘미얀마의 임을 위한 행진곡’이라 알려진 민중가요 ‘예찌비’(Thway Thitsar)를 불렀다. “형제자매들이여. 단결하고 또 단결하자. 우리는 피로 역사를 썼다..”로 시작하는 내용으로 3천명이 희생된 88년 투쟁을 기리는 상징노래이다. 집회에 참여한 창원시민들은 답가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불렀다. 군부의 탄압을 피해 떠돌다 94년 한국으로 망명한 '한·미얀마연대'의 조우모아대표는 한국어와 미얀마어로 번갈아 말했다. “버마는 세 번의 쿠데타가 있었고, 이번이 세 번째 저항입니다. 한국의 민주주의를 나눠주세요. 도와주세요”라며 애타게 호소했다. 이들은 전날 문재인대통령이 “군부의 폭력진압을 규탄하고 민주주의 회복을 간절히 바란다”는 입장을 밝힌 것에 대해서 진심으로 고마워했다. 시민들의 연대사도 미얀마어로 통역
흔히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는 ‘소확행 (小確幸)’.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수필집 ‘랑겔한스섬의 오후’에 등장하는 말이다. 갓 구운 빵을 손으로 찢어 먹는 것, 서랍 안에 반듯하게 접어 돌돌 만 속옷이 잔뜩 쌓여 있는 것, 새로 산 정결한 면 냄새가 풍기는 하얀 셔츠를 머리에서부터 뒤집어쓸 때의 기분'이라고 했다. 소소한 일상 속에서의 ‘작은 행복’ 뜻도 포함된다. 코로나 펜데믹(대유행) 시대를 맞이하면서 모든 이들이 대면 생활을 절제하고 있다. 이러다 보니까 마음의 치유에 출구를 찾고자 이들이 늘어나는 것 같다. 제주 올레길을 걷다가 어느 탐방객 배낭에 이렇게 적혀있는 글귀가 눈에 들어온다. ‘코로나, 길을 걸으면서 치유한다’라고 인쇄되어 있다. 눈에 들어오면서 공감을 했다. 지금 우리는 소소한 일상 속에 작은 행복을 찾고 있는지 모르겠다. 최근 제주도 천연의 숲길인 ‘사려니숲’을 다녀왔다. 아침부터 바람이 세차게 불어 가는 길 걱정했지만 역시 ‘사려니숲’을 거닐면 일상 속 ‘작은 행복’을 느낀다. 초여름 가랑비나 이슬비가 내리는 날 ‘사려니숲’을 찾으면 최고다. 그리고 이렇게 늦은 겨울 무렵 ‘사려니숲’을 찾는 것도 갔다 오
인간은 누구나, 특히 그리스도교는 더더욱, 직접적인 행동을 통해서든 재물을 통해서든 언론을 통해서든, 전쟁과 그 준비에 참여해서는 안 된다. 전쟁과 그리스도교는 양립할 수 없다. 왜냐하면 전쟁이란 내가 살기 위해 너를 죽이는 것이고, 그리스도교는 내가 진정 살기 위해서는 내가 죽어야 하기 때문이다. (조헌정) 무장된 국가와 전쟁, 이 두 가지가 언젠가는 없어진다 하더라도, 그것은 결코 통치자들이나 이 세상의 권력자들에 의해서는 아닐 것이다. 전쟁은 그들에게 너무나 큰 이익을 주기 때문이다. 전쟁은, 전쟁으로 인해 가장 큰 피해를 입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운명은 자신들에게 달려 있음을 깨닫고, 자신들을 전쟁터로 내모는 자, 자신들을 병사로 만들려고 하는 자의 명령에 복종하기를 그만 둘 때, 비로소 사라질 것이다. (하르두엔) 만약 세계의 모든 민족들이 서로 손을 잡고 평화를 지킨다면 우리는 권력자들에게 그들의 병사들이 가져다주는 이익보다 훨씬 많은 이익들을 가져다줄 것이다. 이에 더하여 사람들이 온갖 번뇌로부터의 벗어나기 위한 사색과 수련까지 배운다면 우리는 진정으로 인류의 복지를 위해 일하게 된다. 우리는 권력자의 행복을 위해 누구보다 치열하게 싸우고 있다.…
조금씩 봄기운을 더해가며 바깥 세상을 보고 싶다가도 창문을 열고 싶지 않은 계절이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땅 투기 의혹 사건으로 우리 사회 선별된 계층의 민낯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실명으로 버젓이 땅을 매입하고 희귀 수종까지 심으며 추가 보상까지 노렸다. LH 일부 직원들은 “왜 우리는 부동산을 투자하면 안 되느냐”고 말한다. 직전 LH 사장을 맡았던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은 한술 더 떠 "LH 직원들이 개발정보를 미리 안 것도 아니고 이익 볼 것도 없다"며 해당 직원들을 두둔하는 듯한 발언까지 했다가 사과했다. LH 직원들의 법적인 문제는 아직 속단할 수 없다. 하지만 의혹이 불거진 이후 나온 이같은 공직사회의 인식은 경이롭다. 또 LH 직원만 그랬을까. 광명·시흥 이외 지역은 문제 없을까. 진짜 ‘숨은 고수’들은 수용되지 않는 인접 지역으로 더 큰 이득을 본다는 보도도 잇따르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법과 정의, 공정은 무엇인가. 우리는 지난해 검찰인사 개혁을 둘러싼 이른바 ‘추-윤 갈등’을 지켜봤다. 그리고 올해 검찰의 수사·기소를 분리하는 중대범죄수사청 신설을 놓고 여권과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2라운드로 정면 충돌하다가 결국 윤 전 총장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