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북한이 ‘우리 당의 숙원이자 거창한 혁명’으로까지 선전하고 있는 지침은 무엇일까? 바로 ‘지방발전 20x10 정책’이다. 지난 1월 15일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0차 회의에서 김정은 총비서가 매년 20개 군에 현대적 공장을 건설해 10년 안에 ‘인민의 물질문화 수준’을 발전시키겠다며 제시한 것으로 지방발전 사업의 모범사례로 제시된 김화군의 성과를 강조한 것에서 비롯되었다. 북한은 김화군 소재 지방공업공장들이 지난 2년간 공업 생산액이 2배 이상으로 성장하고 군 인민들의 사상정신 상태와 물질·문화 생활 영역에서 놀라운 진전이 이룩되고 있다고 선전하고 있다. 해당 정책에 대해 통일부는 즉각 “아랫돌을 빼서 윗돌을 괴는 사업”이 될 것이라며 부정적 전망을 내놓았다. 북한의 내부 형편상 최고지도자가 “내가 직접 책임지고 총화하며 완강히 내밀 생각”을 언급하며 최측근 조용원 당 조직비서를 비롯하여 3년 이상 내각 살림을 책임지고 있는 박정근 내각부총리, 전현철 당 중앙 비서 등 당 중앙과 성, 중앙기관의 책임일꾼들로 꾸린 화려한 라인업을 앞세워 비상설추진위를 구성한 만큼 실제 도농격차 완화와 국가 균형 발전의 진전이 가능할지 지켜볼 일이다. 다만 초판 페이스
얼마 전 모 대학에서 ‘말하기’특강을 했다. 특강이 끝나자 많은 학생이 일대일로 다양한 질문을 해 왔다. 그런데 학생들의 이야기에서 느끼는 바가 있었다. ‘말하기’를 잘하려면 스스로를 믿는 자신감이 중요하다. 우리 젊은이들에게 자신감을 만들어줄 ‘칭찬’이 필요하다. 1964년 하버드대 심리학과 교수였던 로젠탈교수는 인상적인 실험을 했다. 샌프란시스코의 한 초등학교 학생 중 20%를 무작위로 뽑아 매우 우수한 지능지수의 학생들이라고 하면서 그 명단을 교사에게 전달했다. 그리고 8개월 후 확인해보니 명단에 있던 학생들이 일반 학생들보다 우수한 성과를 내고 있었다. 교사의 기대와 격려가 학생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이다. 이렇듯 우리는 칭찬의 중요성을 잘 안다. 인간관계에서 칭찬은 꼭 필요한 소통의 방법이다. 그렇지만 우리가 칭찬을 잘하고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칭찬(稱讚, compliment)이란 좋은 점이나 착하고 훌륭한 일을 높이 평가함 또는 그런 말’이라고 한다(국립국어원, 2018). 이 정의에 칭찬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나타나 있다. 칭찬을 잘 할 수 있는 방법을 소개한다. 칭찬도 연습이 필요하다. 첫째, 비언어를 활용하자! 말
인간은 농담에 약하다. 농담은 마음을 사로잡는다. 상대방이 고심하여 던진 농담에 당신이 웃었다면, 상대방은 당신을 지원군으로 얻은 셈이다. 농담은 또한 상대방의 속내를 들여다볼 좋은 창이기도 하다. 어떤 농담을 구사하고, 무엇에 웃는지를 보면 상대방의 진솔함이 드러난다. 그러니 상대방과 함께 웃어 동료가 되기 전에 그 속내부터 꿰뚫어 보자. 그는 왜 이런 농담을 했을까? 오픈AI가 GPT-4o(omni, 옴니) 음성 챗봇의 데모 영상을 발표했고, 많은 이들이 자연스러운 대화에 놀랐다. 빠르게 응답하고, 응답을 중간에 끊을 수도 있고, 여러 사람의 목소리를 구분하여 인식한다. GPT-4o의 성능은 그것이 ‘구사하는’ 유머를 통해 한층 자연스러워진다. 대화 곳곳에 섞인 그것의 웃음소리는 생동감을 더한다. “내가 너를 웃겨보마” 하며 던지는 썰렁한 농담이 아니라, 이용자를 배려하는 듯한 부드러운 농담에 손쓸 도리 없이 마음을 홀라당 빼앗겨 버렸다. 오픈AI는 자신들의 기술에 농담으로 해자(垓子)를 둘렀고, 성공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GPT-4o의 농담에 웃음으로 화답하기는 이르다. 오픈AI의 새로운 음성 챗봇은 왜 우리에게 ‘그녀’ 목소리로 농담을 건네는가?…
대학을 입학하자마자 군대에 갔었다. 그 당시 가정 형편도 어려웠고 젊은 시절의 치기어린 고민들을 회피하기 위한 도피처가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강원도 모처에 위치한 훈련소를 퇴소하고 자대 배치를 받았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그 때는 철책이 쳐진 해안가의 작은 부대였다. 군 복무를 마친 남성들은 공감하겠지만 신병이 부대에 들어오면 선임들의 장난과 관심을 동시에 받게 된다. 나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온갖 몹쓸 말들을 들어야 했고 육체적으로 힘들어야 했다. 그러나 육체적인 괴롭힘보다 더 마음이 힘들었던 것은 선임들의 말이었다. 어느 한 선임이 내게 말했었다. “너희는 돼지 새끼나 마찬가지야. 예전 시골에서 잔칫날 때려잡기 위해 사료 먹이고 물을 주는 거다. 너희도 다르지 않다. 전쟁이 일어나면 앞에 나가서 총알받이 하라고 밥 주고, 재워 주고, 옷도 주는 거다.” 나는 군대에 있는 동안 그 말이 계속 생각났다. 지금 생각해도 비참하고 모욕적인 말이다. 아마도 짐작컨대 국방의 의무를 마치기 위해 입대하는 청춘 대부분은 본인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징집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군에 복무하는 기간 동안은 국가에서 더 보살피고 자존감이 떨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렇게 해
스트레스가 쌓이면 몸과 마음에 영향을 준다. 가슴이 답답하고 잘 체하고 소화가 안되기도 하고 머리가 아프고 잠을 잘 못자기도 한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다 보면 몸이 점점 피로해지고 면역이 저하된다. 면역이 저하되니 염증질환이 잘 생기고 잘 낫지않는다 증상만 덜하게 하는 약은 먹어도 일시적이고 몸을 더 건강하게 하는게 아니다, 부작용도 있고해서 몸이 아픈데가 점점 늘어난다. 이런 즈음에 내원하는 분들을 20년이상 치료해오면서 제대로 나으려면 왜 스트레스가 병이 되는지에 대해 이해가 필요하다고 느낀다. 그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이별, 상실 등 충격적인 관계적 사건이나 경제적인 큰 손실 등 화가나고 억울하고 슬픈 그런 감정들은 해소 되지 않는 정신적 스트레스이다. 어린시절의 일들, 아버지가 알콜중독에 폭력적이었던 경험이 어른이 되어서 결혼하고 자식을 키우면서도 지속되기도 한다. 가슴두근거리고 불안하고 과민한 몸이 된다. 오래동안의 육체적인 과로와 사고등의 육체적 스트레스 혹은 환경오염, 인스턴트음식 등도 화학적 스트레스도 몸과 마음에 영향을 미친다, 이런 스트레스가 병이 되는 이유를 알려면 자율신경을 이해하는게 필요하다. 자율신경은 소화되고 대변보고 소변보고 심장
친목 차원에서 화투 놀이나 운동 경기를 하다가 사소한 걸로 다툼이 일어나 마침내 큰 싸움에 이르는 일이 드물지 않다. 대개는 그 게임의 규칙을 두고 일어나는 다툼이다. 그런데 이런 장면에서 죽기 살기로 나서서 우기는 사람이 있다. 꼭 있다. 예컨대, 축구 경기에서 자살골이 터졌는데, 자살골은 골이 아니라고 우기는 사람이 있다면, 어떡할 것인가. 그는 제법 논리적인 주장인 양, 골은 반드시 상대가 공격해서 상대 선수가 넣는 골만이 정정당당하다고 우긴다. 그에게 FIFA(국제축구연맹) 규정을 들이밀며 자살골도 엄연한 골이라며 다그쳐 보아도 그는 막무가내 우긴다. 그건 FIFA 규정이 잘못된 것이란다. 독선의 극치를 본다고나 할까. 그의 우기기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이 그에게 너는 무슨 근거로 자살골은 골이 아니라고 우기는 거냐? 근거를 대라고 다그친다. 그는 이게 무슨 근거가 필요한 거냐고 버틴다. 근거 없는 규칙이 어디 있느냐. 이렇게 되 몰아붙이면 그는 조금도 밀리지 않으면서, 마침내 우기기의 끝장 끝판을 보여 준다. “야, 우리 동네에서는 진작부터 자살골은 골로 치지 않는 축구를 해 오고 있단 말아야. 뭘 좀 알고 이야기하란 말이야!” ‘우기다’의 사전적
초저출산과 초고령화, 2024년 우리 사회의 최대 화두(話頭)다. “앞으로 5년, 마지막 골든타임”이라는 우려와 함께 사회부총리급‘저출생대응기획부’신설 구상까지 나올 정도이니 대한민국의 미래가 어떻게 전개될지 매우 궁금해진다. 국가는 왜 존재하는가. 1948년 자유총선거(5.10)로 선출된 대한민국 건국의 아버지들이 제헌국회를 구성하고 제헌헌법을 제정한 후 초대 대통령을 선출할 수 있었던 동력은 무엇이었을까. 두말할 나위 없이 국민 때문이었다. 국민이 있어야 국가도 있고 국가가 있어야 국민도 있다. 1919년 3·1운동으로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된 이후 수많은 애국선열과 재외동포가 기회 있을 때마다 애국가를 부르고 태극기에 경의를 표했던 이유는 국민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지켜줄 내 나라를 되찾겠다는 일념 때문이었다. 국제사회에서 자주·독립하려면 든든한 국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국력은 인구수를 비롯한 영토·자원·경제·군사·외교·과학기술·교육·문화·국민성 등의 총합(總合)인데, 국력이 강해질수록 국가 지도자들의 인구문제 관리 역량의 비중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 미국 닉슨행정부 시절 상무장관이자 세게 최대 사모펀드인 블랙스톤의 공동창업자 피터 G. 피터슨(1
올해로 포르투갈은 혁명 50주년을 맞았다. 결전의 날은 1974년 4월 25일이었다. 젊은 장교들이 중심이 되어 결성한 국군운동(MFA)이 혁명을 단행했다. 그들이 원한 것은 민주주의, 자유, 식민지 전쟁의 종료, 그리고 포르투갈의 발전이었다. 라디오 방송을 통해 혁명의 신호를 알렸고, 장교들의 지휘로 공항, 방송국, 군사기지 등 주요 시설이 점령되었다. 혁명 소식을 들은 리스본 시민들은 광장을 가득 메웠다. 그들의 손엔 카네이션이 들려있었는데, 혁명군을 지지한다는 표시였다. 시민들은 집에서 음식과 커피를 만들어 군인들에게 가져다주었다. 이 날 정부 측 경찰의 발포로 인한 사망자가 네 명 있었을 뿐 혁명군에 의한 사상자는 한 명도 없었다. 카에타누 총리는 브라질로 망명하였고, 군인들은 시민들이 준 카네이션을 총구에 꽂았다. 무혈로 이룬 ‘카네이션 혁명’은 이렇게 막을 내렸고, 매년 4월에는 ‘자유의 날’을 기리는 카네이션, 사진, 그림들이 즐비하다. 포르투갈은 1933년 개헌과 함께 안토니우 드 올리베이라 살라자르 총리의 독재 치하가 되었다. 파시즘 단체 ‘에스타도 노보’의 중심인물이었던 살라자르 총리는 입법권과 행정권은 물론 거의 모든 권력을 장악하였다.…
누군가 그랬다지요. “백상예술대상을 한국이 싹쓸이했다면서?” 물론 우스갯소리일 겁니다. 얼핏 생각해도 비슷한 게 많으니까요. 이를테면, 베를린 필하모닉 내한 공연 포스터를 보고 이렇게 물은 사람이 있었다지요. “어느 나라에서 데려왔데?” 그뿐이겠습니까. 선물 받은 티켓으로 공연을 감상했던 방청객의 소감은 또 어떻고요. “나쁘진 않은데, 가사가 없어서 아쉽더라.” ‘교향곡’에 ‘교양곡’을 오버랩한 우스갯소리라고나 할까요. 따라서 웃긴 했지만 속으로 뜨끔했습니다. 나 역시 꽉 막힌 ‘막귀’에 ‘막눈’이니까요. 책에도 그렇게 적혀 있잖아요. 들은 만큼 들리는 것이 음악이고, 보는 만큼 보이는 것이 미술이라고요. 그러니 어찌 뜨끔하지 않았겠습니까. 듣고 보았던 게 형편없이 짧고 얕은 나로서는 도둑이 제 발 저릴 수밖에요.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글이라고 다를 게 있을까? 들은 만큼 들리고, 보는 만큼 보이는 것처럼, 나 역시 쓴 만큼 술술 써낼 수 있는 사람이 되었을까? 작가라는 명함을 내밀어도 부끄럽지 않을 정도는 되었을까? 부끄럽게도 그 질문에 대한 나의 대답은 “글쎄요.”입니다. 나는 지금도 글을 쓰는 게 어렵고 힘이 듭니다. 단어 하나 문장 한
서울 강남역 인근에서 발생한 ‘교제 살인’ 사건에 대해 일부 언론은 가해자가 명문대생, 의대생이라는 점을 주목했다. 가해자가 과거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좋은 점수를 받았다고 보도한 언론도 많았다. 순식간에 ‘의대생 살인 사건’으로 사건이 명명되고 여론의 관심이 옮겨갔다. “여자친구 살해한 20대, 수능만점 의대생”, “수능만점 명문대 의대생, 강남 건물서 여자친구 살해” 등이 대표적이다. 한때 연인 사이에 발생하는 폭력을 ‘연인 간 폭력’, ‘데이트 폭력’이라고 불렀다. 연인 사이에서 발생하는 정서적, 물리적, 성적 폭력을 사랑싸움 정도로 가볍게 여긴 데에는 이런 명명이 일조했을 것이다. 연인 사이니까 어쩌다 다투는 일은 흔하다는 식의 편견이 쉽게 작용할 수 있게 했다. 그런 이유에서 다소 로맨틱하게 들리는 표현을 대신해서 ‘교제 폭력’으로 부르는 것이 낫다는 주장은 수긍할 만하다. 교제 폭력은 친밀한 사이의 연인을 대상으로 발생한다. 대부분 지속적으로 일어날 가능성이 높고 폭력의 수위가 점점 커지기 쉽다. 최종에는 살인과 같은 강력범죄로 나아간다는 점에서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다. 그러나 현재 법은 폭행죄나 협박죄 등으로만 교제 폭력 가해자를 처벌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