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까지 듣고 있던 윤희가 돌연 자리에서 발딱 일어났다. 그리고는 외쳤다. “불결하고 천박해요! 언니가 이런 사람인 줄 몰랐어요.” 그러나 이민지는 흥분하기는커녕 쓰디쓴 미소를 띠면서… 밤새 한숨도 잠을 이루지 못했다. 밥 한 숟가락도 목구멍으로 넘길 수가 없었다. 텔레비전 아침 뉴스에서 경찰서 조사를 받고 나오는 백두 단장과 최현규를 보았다. 수갑 찬 손목을 까만 수건으로 둘둘 말아 가린 그는 초췌한 얼굴로 카메라 앞에 섰다. 그런 상황에서도 그의 눈빛이 빛난다는 게 신기했다. 그는 예의 걸걸한 목소리로 말했다. 놀랍게도 신념에 찬 어조를 잃지 않고 있었다. “오해라고 말하지 않겠습니다. 무죄라고도 주장하지도 않겠습니다. 모든 진실은 제 예술 안에 있습니다. 모두가 예술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서 벌인 일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진정한 예술이 뭔지 아는 자가 세상에 몇이나 되겠습니까?” 그쯤에서 경찰은 기자들을 가로막고 백 단장을 호송 차량으로 이끌고 가서 머리를 누르면서 태웠다. 이어서 최현규가 나타났다. 언제부터 피해자에게 범행을 저질렀습니까? 몇 번이나 그랬나요? 기자들이 잇달아 소리쳐 물었다. 그러나 그는 얼굴을 푹 숙이고 빠른 걸음으로 호송차로 걸어가
지난 2000년에 도입된 인사청문회 제도가 정착돼가면서 많은 문제점을 노출해왔다. 첫 번째가 공직 후보자가 자료 제출을 한사코 기피하면서 시간만 끄는 행태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두 번째는 소위 ‘도덕성 검증’ 과정에서 개인정보와 사생활이 무차별적으로 까발려지는 문제다. 이 문제는 인재들이 공직 진출 자체를 꺼리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동하면서 진작부터 개선돼야 할 병폐로 지목돼 왔다. 여야 정치권이 청문회의 ‘도덕성 검증’을 비공개로 바꾸기로 방향을 잡은 것은 잘한 것이다. 그러나 이런 변화가 잘못하면 공직자 자격의 도덕 기준점을 떨어뜨려서 말도 안 되는 적폐형 인사들이 고위공직을 장악하게 되는 망국적 상황이 전개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있다. 제도의 취지를 더욱 살릴 수 있는 대안이 준비돼 있지 않은 상태에서 제도를 함부로 바꿈으로 인해서 오히려 퇴보를 불러오는 경우도 왕왕 있기 때문이다. 무차별적 공격조와 낯두꺼운 방어팀으로 나뉘어 도덕성 난타전만 벌이다가 청문보고서 채택을 포기해버리고, 인사권자는 청문회에서 무슨 소동이 벌어졌거나 말거나 임명을 해버리는 일이 관행처럼 돼버린 게 현실이다. 자칫하면 도덕성 비공개가 인사권자의 독선만을 강화해주는 역
대학수학능력시험이 2주일도 남지 않았다. 코로나 한파에도 수험생들이 준비한 만큼 제 실력을 발휘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겠지만 아무쪼록 큰 탈 없이 시험이 치러졌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이번 수능은 어느 해보다 우리 자녀들의 아품이 깊게 배어있는 시기에 치러지는 것 같아 많은 생각을 갖게 한다. 우선 올해 수능 응시생이 재수생을 합쳐 49만3천여명(2000년 86만명)이다. 사상 처음으로 50만명 밑으로 떨어졌는데, 우리나라 출산율의 현주소를 다시한번 확인시켜주고 있다. 그런데 올해는 코로나 여파로 정상적인 공교육이 이뤄지지 못하면서 수능 포기자가 더해졌고, 더욱 안타까운 것은 교육 양극화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6월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주관으로 고3 재학생에 대한 모의평가가 있었는데 성적 중위권학생들이 줄어드는 양극화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났다고 한다. 아무래도 경제적 여건이 받쳐주는 상당수 상위권들은 코로나로 인한 공교육 공백을 사적 영역으로 메울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집안형편이 그렇지 못한 수험생들의 경우는 교육의 사각지대에 내몰리게 돼 학력저하로 이어진다. 경제적 중산층이 붕괴되는 것과 비슷한 흐름이다. 또 이번 수능은 상대적으로 재
초등학교 같은 학년에서는 비슷한 일주일 시간표를 운영한다. 반은 달라도 하루에 배우는 과목이나 내용은 동일하게 맞춘다. 매년 2월 즈음에 교사들이 모여서 한 주 시간표를 어떻게 운영할지 정하거나, 학년 부장이 반별 시간표를 결정해서 공유하면 다른 교사들이 틀에 맞춰 비슷하게 짠다. 드물지만 매주 회의를 통해 모든 시간표가 바뀌는 경우도 있다. 일 년에 한 번 시간표를 정하든, 매주 한번 시간표를 정하든 암묵적으로 지켜지는 규칙이 있다. 체육은 가급적 1교시를 피하라. 길지 않은 교사 경력이지만 체육을 1교시에 고정해 둔 시간표를 보거나 짠 적이 없다. 아침부터 운동장에서 수업하는 장면을 보는 건 드문 일이다. 체육 전담교사나 스포츠 전문 강사가 아닌 담임교사가 체육 수업을 하는 경우에 특히 그렇다. 체육은 보통 점심 먹고 잠이 쏟아지는 5교시나 햇빛이 너무 강하지 않은 오전 어느 때에 하는게 일반적이다. 처음 교사가 되어서 동학년 회의에 들어갔을 때 50대 초반의 교사 경력 30년 차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이 귓가에 생생하다. "1교시에 체육하면 애들이 너무 산만해져서 안돼." 다른 선생님들께서도 격렬한 활동 후에 아이들 집중력이 떨어진다는 의견에 동의했다.…
하루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가는데 바로 아랫집에 사는 아저씨를 보게 되었다. 얼굴을 자주 마주쳤던 터였고, 한동안은 아들이 뛰어다녀서 층간소음에 대한 미안함 때문에 몇 차례 인사를 간 일도 있어서 가깝지는 않지만 그런대로 알고 지내는 정도는 되었다. 그날도 인사를 하고 묵묵히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는데 그가 내게 말을 붙였다. “혹시 대학 졸업했습니까?” 나는 졸업했다고 말했다. “그럼, 내가 학원을 하고 있는데 혹시 나와서 강의해 볼 생각 없어요?” 오? 말로만 들었던 스카우트? 그럴 리가 없었다. 그는 내가 대학에서 무엇을 전공했는지, 그리고 내가 뭘하며 살아왔는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일산에서 작게 학원을 하고 있는데, 하는 일 없으면 우리 학원에 나와 강의 해봐요. 보아하니 젊은 사람이 집에만 있는 거 같은데. 뭐든 해야지.” 얼굴이 붉어졌지만 고마운 일이었다. 그 분은 마음 내키면 연락을 주라는 말을 남기고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나는 그 분의 뒤를 따라 나가 출근하는 모습을 말없이 지켜보았다. 아파트 같은 라인에 사는 다른 분들 역시 그 분처럼 나를 백수로 생각했을 터였다. 일반적인 시각으로 보자면 난 백수다. 그 즈음의 나는 글을 생
윤석열 검찰총장이 대선후보 선호도에서 최상위 그룹에 부상되면서 여야 정치권이 일대 혼란에 빠졌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요란스러운 핍박을 꿋꿋이 버텨내는 그의 모습이 민심에 깊숙이 각인된 결과라는 해석이 주류다. 한때 그를 영웅시하던 집권당 더불어민주당은 모진 적대감을 드러내고 있다. 졸지에 현직 검찰총장이 대항마 1위로 부각된 현실에 국민의힘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이다. 여야 정치권은 윤석열 현상에 대해 따따부따하기 전에 먼저 부끄러워해야 맞다. 오죽 ‘못하고, 못났으면’ 이런 돌발사태가 발생할까. 차기 대선에서 윤석열 검찰총장이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나 이재명 경기도지사 누구와 붙어도 오차범위 내에서 접전을 벌이는 것으로 나타난 가상 양자 대결 여론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아시아경제가 ‘윈지코리아컨설팅’에 의뢰해 지난 15~16일 전국 만 18세 이상 1천 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다. 차기 대선 지지도 맞대결 질문에서 윤석열 총장은 42.5%로 이낙연 대표 42.3%보다 근소하게 앞서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재명 경기도지사와 윤석열 검찰총장이 맞붙는 경우엔 이재명 42.6%, 윤석열 41.9%였다. 여론조사기관 ‘한길리서치’가 쿠키뉴스 의뢰를 받아 지
노화는 마모가 아니라 마침입니다. 마칠 수 없는 삶처럼 고달픈 게 또 있을까요. 그런 점에서 노화는 생각의 종결이자 살아내는 일의 마침입니다. 다만 예상치 못했던 마침이 불쑥 던져질까 걱정되는 건 사실입니다. 준비되지 못한 노후처럼 마침 또한 그러하다면 당혹스러울 일입니다. 두 해 전에 처음 통풍을 앓았습니다. 요관을 막은 돌(결석)을 체외충격파로 부수며 통풍의 원인이 신장에 있음도 알게 되었지요. 오른쪽 신장에만 십여 개의 돌이 생겼는데 신장 기능이 떨어져 노폐물(요산)을 걸러내지 못한 결과입니다. 작년에는 갑상선에 이상이 생겨 낭종 치료를 받았고, 최근에는 참기 힘든 복통에 시달리다 병원을 찾아야 했습니다. 위 내시경 시술과 함께 간과 췌장을 초음파로 검사하였습니다. 위가 아니라 간이나 담낭에 결석이 생겨도 복통에 시달릴 수 있음을 처음 알았습니다. 그뿐이겠습니까. 돋보기안경을 벗으면 책을 볼 수도 글을 쓸 수도 없습니다. 치아야 뭐 덧붙일 필요도 없겠지요. 허우대만 말짱하지 걸어 다니는 종합병동인 셈입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여 처음 예방주사를 맞던 순간부터 지금까지 ‘병’ 혹은 ‘병원’이라는 단어는 두려움의 대상입니다. 두려움의 뿌리에는 병을 앓다 일찍
초안 큰스님의 본명은 송만석(1926~1998)이며 승려 생활을 하다가 1950년 6.25전쟁에 육탄용사로 참전한 국군용사다. 전쟁 전에 사병으로 군복무를 마쳤고 전쟁이 발발하자 하사로 재입대하여 ‘육탄용사’가 되면서 상사로 승진했다. 민첩하고 달리기에 능한 실력으로 5사단의 旗手(기수)가 되었다. 태극기를 가슴에 간직하고 적의 탱크를 수류탄으로 무찔렀다. 6.25전쟁을 온몸으로 겪어내는 과정에서 총상을 입었고 육군병원에서 ‘명예제대 제1국’으로 전역했다. 전역후 1954년에 경기도 양주 오봉산 석굴암으로 들어와 승려생활을 이어갔으며, 폐허가 된 석굴암에 움막을 짓고 불사에 일생을 바쳤다. 6.25전쟁 중 전사하여 오봉산에 즐비해 있던 군인들의 시신을 매장하거나 화장하는데 온 힘을 기울였다. 총상으로 인해 자주 병원 치료를 받았지만 보훈신청을 하지 않아 자비로 진료비를 냈다. 국가가 해야 할 일이었으나, 초안스님은 혼자 묵묵히 해냈다. 이후 불사에 매진하는 동안 군법당을 건립하고 군포교에 전념하는 등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초안스님의 유일한 제자이자 현재 석굴암 주지인 도일스님이 보훈처에 보훈등록을 신청하였으나 직계 가족이 아니라는 이유로 접수조
서울에서 자유로를 타고 가면 편도 왕복 8차선의 넓은 도로 위에 적힌 생소한 이정표가 보인다. 직진 화살표와 함께 적힌 지명은 ‘개성’이다. 그 화살표를 따라 개성공단으로 매일 아침 출근을 하는 남쪽 사람들을 태우고 달리던 통근버스는 이제 임진강을 건너지 못한다. 개성으로 가는 길이 막힌 자유로의 마지막 마을이 마정리다. 남에서 북으로 가는 끝 마을이고, 북에서 남으로 오는 첫 마을인 마정리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마주치는 것이 육중한 콘크리트로 축조한 대전차 방호벽이다. 성문처럼 버티고 선 대전차 방호벽을 통과하면 지하 주민대피소가 있다. 지난 17일 이 주민대피소 입구에 새로운 간판이 내걸렸다. ‘마정리 마을박물관 평화충전소’다. 남북대치가 첨예해지면서 일촉즉발의 상황까지 치닫던 2015년 ‘뭔가’ 하지 않을 수 없었던 정부가 만든 대피소는 단 한 번도 쓸 일이 없었다. 5년 넘게 비어 있던 주민대피소를 단장해서 문을 연 마을 박물관의 첫 전시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얼굴과 손’이다. 마을의 제일 연장자인 홍갑이 할머니(97세)와 정정순 할머니(94세)를 비롯한 스물아홉 분의 손 석고상은 마정리 사람들의 고단했던 삶을 보여준다. 더러 지워지고 끊긴 자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