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여수 바닷가 근처의 마을에 사신다고 했다. 서울에 사는 맏딸의 집에 잠깐 올라오신 칠십대 중반의 그녀는 속쓰리고 잘 먹지 못하며 몸도 퉁퉁 붓고 기운도 너무 없다고 하며 내원하셨다. 허리와 무릎이 아픈건 오래되어서 치료받고픈 우선순위에서 밀렸다. 밭농사를 제법 크게 하시니 일이 끊임없는데 소화도 안되고 입맛도 없으니 잘 먹지도 않고 간단히 때우면서 쉼없이 밭일을 하셨다고 했다. 오랜 밭일에 까무잡잡하게 그으른 자글자글 주름진 얼굴속에 웃는 눈매와 오목조목한 이목구비가 곱게 숨어있다. 진료과정의 문답중 술고래 남편과의 50년의 경혼생활을 포함한 이야기에 ‘아이고 힘들어서 어떻게 지내셨어요’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말씀하시는 중 ‘몸이 약하고 안좋다고 하니까 남편이 자신이 먹는 민들레 달인즙이 효과가 너무 좋다고 나에게도 한박스 달여 만들어줬는데 나는 맛도 별로고 속쓰리고 몸도 무거워지는거 같았어요’ 하신다. ‘그럼 그만 드시지 그랬어요’라고 말하니 ‘먹기 싫어서 안먹을려고 했는데 남편이 몸에 좋은건데 안 먹는다고 화내기도 하고 해서 억지로 먹었지요. 글고 나도 남편이 모처럼 해준건데 싶어 미안하기도 하고 챙겨먹었지요’ 하신다. 민들레가 그녀에게 적절치
아버지는 한마디로 법 없이도 사실 분이었다. 중학교 졸업 학력이었지만 필체가 좋으셨다. 아버지의 펜글씨를 보고 있자면 ‘아, 나는 왜 아버지 필체를 닮지 못했나!’ 안타까워했다. 필체를 빼고 나는 아버지를 빼다 박았다고 들었다. 아버지가 마실 나갈 때 따라나선 나를 본 동네 어르신들이 웃으며 말했다. “아이고 저 놈 보소. 뒷짐 지고 걷는 것도 지 애비를 닮았네.” 나는 그 말이 싫지 않았다. 아버지는 장흥에서 양복 가봉하는 일을 하다가 목포로 나가서 택시회사 경리를 하셨다. 몇 년 후 우리 식구들도 전부 목포로 이사했다. 아버지는 걸핏하면 새로 산 옷을 가난한 동료 택시기사들에게 벗어주고 들어오셨다. 월급봉투를 제대로 채워 들어오시는 경우가 없었다. 그런 아버지를 어머니는 타박했지만 아버지는 ‘허허’ 거리고 그뿐이었다. 아버지는 노래를 잘 하셨다. 요즘 유행하는 트로트 말이다. 한밤에 나는 이불속에서 동네 어귀에서부터 들려오는 아버지의 노래 소리를 들었다. 아버지의 손에는 빵 봉투가 들려있었다. 문제는 술이었다. 아버지는 술이 아무리 취하셔도 자전거를 타고 오셨다. 어쩔 때는 퇴근하는 택시기사님들이 집에 내려주고 가시기도 했다. 어머니의 ‘아이고 내 팔자야
주로 성범죄 혐의가 있는 이들의 신상정보를 임의로 공개해온 누리집 ‘디지털교도소’의 개인정보 공개로 한 대학생이 결백을 주장하다가 숨지는 비극이 발생하면서 ‘사적 응징’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 공적 기관에 대한 깊은 불신을 파고드는 ‘사적 복수’는 선동적 공감을 얻을 가망이 다분하다. 그러나 ‘사적 응징’은 법치의 근간을 무너뜨리는 결정적인 병폐로 작동할 수 있는 까닭에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게 옳다. 불세출의 명배우 크린트 이스트우드가 주연한, 1973년 제작된 미국영화 ‘더티 해리2-이것이 법이다’는 무기력한 공권력의 허점을 파고드는 ‘사적 응징’의 명암을 극명하게 드러낸 명작이다. 권력과 금력의 힘으로 법망을 빠져나가는 인사들을 처단하는 사적 응징을 일삼는 신참 교통경찰 3인조 뒤에 브릭스 반장이 있다는 사실을 주인공 경찰 갤러한이 밝혀내는 내용이다. 영화에서처럼 우리 사회에는 범죄를 저지르고도 교묘히 빠져나가는 존재들이 없지 않다. 지난 6월 만들어진 홈페이지 ‘디지털교도소’에는 성범죄와 살인, 아동학대 등 3개 유형에 100여 명의 신상이 올라와 있다. 디지털교도소 운영진은 사이트를 개설하면서 “대한민국 악성 범죄자들의 신상정보를 직접 공개해 사회
정(情)이란 무엇인가? 인간의 본성 중 하나로 오랫동안 지내오면서 생기는 사랑하는 마음이나 친근한 마음, 느끼어 일어나는 마음으로, 심리학에서는 마음을 이루는 두 가지 중 이지적(理智的)인 요소에 대비되는 감동적인 요소를 말하며, 불가에서는 혼탁한 망념(妄念)으로 본다. 맹자는 ‘성(性)은 마음의 이치요, 정(情)은 마음의 쓰임이다’라고 말했는데 ‘잔잔한 마음에 무언가 움직임이 시작되면 그것이 곧 정’이라는 말이다. 미국에 ‘사랑’이 있다면 ‘정’은 한국적인 정서로, 친밀한 사람들 사이의 따뜻한 감정을 의미한다. 끈끈한 정이란 아껴주고, 함께 있으면 편하고, 오랜만에 만나면 반갑고, 잘못을 이해해주고, 흉허물 없이 굴 수 있는 마음이다. 어느 광고 카피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처럼 그런 마음이기도하다. 사자성어 한정담원(閑情淡遠)은 ‘큰 정은 영원하고 담백하다’는 말이다. 인간의 정이란, 주고받음을 떠나서 사귐의 오램이나 짧음에 상관없이 서로 만나 함께 호흡하다 정이 들면서 더불어 고락도 나누고 기다리고, 또한 반기기도 한다. 기쁘면 기쁜 대로 슬프면 슬픈 대로,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또한 아쉬우면 아쉬운 대로 그렇게 소담하게 살다가 미련이…
“수수료가 비싸도....울며 겨자먹기로 배달앱에 입점할 수 밖에 없어요.”(식당주인) 코로나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재택근무가 늘고, 사회적 거리두기로 사무실이나 집에서 음식을 시키는 경우가 일상화됐다. 그러다보니 스마트폰을 이용한 ‘배달앱’ 주문이 점차 대세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음식점이나 상가들은 코로나 공황속에 배달앱이 그나마 희망의 끈이라 할 수 있다. 문제는 배달앱 수수료다. 가게 주인들은 배달앱 등록료와 광고료, 배달료 등으로 보통 3~15%의 높은 수수료를 내야한다. 매출도 줄었는데 배달앱 수수료까지 부담해야 한다. 코로나사태 이전 같으면 음식점은 주문을 직접 받은 뒤 배달 수수료만 내면 된다. 굳이 말한다면 음식점이 ‘갑’이고 배달은 ‘을’이다. 그러나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음식주문과 배달이 공인중개사처럼 배달앱(플랫폼)을 통해서 이뤄진다. ‘갑’이 배달앱이고 식당 주인은 하청을 받는 ‘을’의 위치로 바뀐다. 음식점의 가격이나 맛도 중요하지만 배달앱이라는 플랫폼에 이름을 올리고, 그것도 노출(광고)이 잘되느냐 하는 것이 더 중요해졌다. 그러니 배달앱이 갑이 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이것이 끝이 아니다. 4차 산업혁명이 고도화되면 궁극적으로 어
불경의 핵심 경전 중 하나인 금강경은 초기 대승 경전의 대표적 경전으로 공 사상(空 思想)의 창고라고 할 만큼 불교사상의 근본 사조를 이루고 있다. 금강경의 한역본(漢譯本)은 여러 종류가 있으나 대표적인 금강경으로는 구마라습(鳩摩羅什)이 서기 402년에 산스크리트어의 경전을 번역한 ‘금강바라밀다경(金剛般若波羅密經)’이 있다. 이는 금강경 중에 가장 먼저 번역되어 나온 경전이기도 하지만, 구마라습의 번역문장이 매우 유려하기 때문에 많이 독송 되어 왔다. 금강경은 부처님과 제자 수보리(須菩提)의 문답형식으로 되어 있으며 부처님은 수보리를 통하여 사물의 실상을 바르게 알고 집착을 끊으라고 설법하셨는데 이 말은 중생으로 하여금 삶에 대한 의욕을 상실하도록 한 것이 아니라, 집착이라는 굴레를 벗어나 더 자유롭게 살아가라는 적극적인 삶의 방향을 제시한 가르침이다. “여시아문(如是我聞: 내가 이와같이 들었다)”으로 시작하여 수보리는 부처님께 “세존이시여, 최고의 진리를 배우고 닦으려는 마음을 낸 선남선녀는 마음 자세가 어떠해야 하며, 뜻대로 되지 않을 때는 어떻게 마음을 다스려야 합니까”라고 질문한다. 이렇게 주요한 가르침은 수보리의 질문과 부처님의 대답으로 엮어지고 있
승진하면 대부분 부서를 이동하여 새로운 마음으로 일을 하게 되고 승진은 아니지만 발전적인 자리바꿈도 당사자에게는 큰 기쁨이기에 동료들이 새로온 직원을 포함하는 송·환영회를 연다. 식사하기 전에 기념품 전달을 하기도 하는데 꽃다발을 주고 Y-셔츠, 벨트, 지갑, 상품권을 전달한다. 현직에 있을 때, 부서직원이 부서를 떠나면 복사지 6장을 연결해 붙인 장문의 소개글을 지루할 정도로 읽었고, 그 두루마리가 나중에는 술잔을 올리는 쟁반이 되기도 했다. 송별회는 함께 근무한 정을 담아 그간의 노고를 자화자찬하는 기회가 되기도 하고 새로운 부서에 가게되는 기대감을 마음껏 발산하는 모임이기도 했다. 아마도 기념품은 막내 후배가 챙겨서 다음날 새로운 부서로 이동할 때 이른바 후행 단원들이 함께 들고 가서 다시한번 전했던 기억도 있다. 이처럼 부서를 이동하는 이에게 함께한 마음을 담아주는 기념품에 대한 파격적인 아이디어를 냈다. 물론 1급 공무원 상사이니 이런저런 고민을 한 바 있다. 그래도 도에서 근무하다가 중앙으로 영전하는 분이니 의미있는 기념품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특히 함께 매주 간부회의를 열고 도정을 함께 고민하고 검토했던 국장들의 주머니돈을 모아서 기념품을…
3주 앞으로 다가온 한가위 명절 귀성풍속과 개천절 집회 문제를 놓고 여론이 분분하다. 국무총리와 여당 대표가 잇달아 나서서 온라인 성묘와 이동자제를 권고하고 나섰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은 피할 수 없는 과제다. 이 역병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면 세계는 미래가 보장되지 않는다. 개천절 집회를 벼르고 있는 분들은 대중집회가 아닌 다른 의사표출 방법을 찾아내는 게 맞다. 추석 명절도 ‘비접촉’의 지혜를 발휘해야 마땅할 것이다. 코로나19 재확산 방지를 위해 모두가 노심초사하는 가운데 일부 보수우익 단체들이 다음 달 3일 개천절에 서울 도심 대규모 집회 개최를 신고한 것으로 알려져 걱정거리다. 경찰에 따르면 개천절에 서울 도심에서 집회를 열겠다고 신고한 단체는 7곳으로 4만 명 이상의 참석이 예상된다. 굳이 도심 대중집회를 열겠다고 고집하는 사람들의 열정을 인정한다 해도 이건 아니다. 목적을 달성하기는커녕 더 큰 ‘감염’ 책임논란만 키울 따름인데, 참으로 안타깝다. 지난 8·15 광화문 집회는 성공한 시위가 아니었다. 코로나19라는 재앙의 특수성을 외면한 집회강행 결과, 광화문의 목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고 맹비난만 사지 않았나. 현 상황에서
여름 한가운데를 달리던 무더운 날씨가 백로를 앞두고 선선해졌다. 긴 장마와 태풍의 습하던 날씨도 이젠 상쾌해질 때가 왔다. 어느새 9월이다. 그러고 보니 한여름 나무에서 요란하게 울어대던 매미 울음소리가 많이 잦아들었다. 입추가 지나고 한동안 매미는 더 정열적으로 울어댄다. 빨리 짝을 만나 이승에서의 사랑을 나누고 떠나야 하기 때문이다. 녹음이 짙은 나무에는 여기저기 매미 껍질이 붙어있다. 꿈꾸던 우화를 마친 매미의 남은 흔적이다. 우화를 마친 매미의 빈 껍질을 보며 매미의 일생 중 한 과정이겠지만, 내 삶의 흔적도 이렇게 한 부분으로 남겨질 것이라는 생각에 잠시 젖어본다. 며칠 전 우리 집 아파트 창문 방충망에 매미가 날아왔다. 방충망에 붙어서 꼼짝을 하지 않는다. 어떻게 30층 높은 아파트에까지 날아왔을까? 호기심이 들어 이리저리 살피며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는 매미 울음소리를 기다렸다. 그런데 이 매미는 암컷인 벙어리 매미인 듯 울지 않았다. 하루 반나절을 우리 집 창문에 붙어있다가 어느결에 날아가 버렸다. 어제는 사마귀 한 마리가 창문 방충망에 거꾸로 매달려 있었다. 이 높은 곳까지 어떻게 날아왔나 신기해서 자꾸만 들여다보았다. 그 사마귀도 하루 지나
2005년 8년만에 국내 개인전을 하면서 작가노트에 이렇게 썼다. “黑-black project는 35cm☓50cm의 비단에 신라시대 서수형 토기의 용의 모습을 인간으로 상징하는 의미를 부여해 실크 프린팅하여 그 형태가 사라질때까지 흑색 염색물감으로 수천번의 붓칠로 그렸다. 8년동안 일년에 한번 수원화성에 설치미술을 하는 것을 빼고는 거의 매일 그림을 그리며 살아온 세월이고 지역의 한계를 넘어 세계를 향한 꿈을 키워 온 세월이다. 깊이 있는 사고를 섬세한 감수성과 정확하고 세련된 언어로 그림을 풀고자 했던 그간의 노력들은 그리는 것이 주는 순수한 기쁨과 성취감을 얻었다. 또한 어떠한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나만의 일관된 인생관과 세계관을 갖추게 해주고, 이는 예술관으로 확립되었다. 타협하지 않은 나만의 그림언어로 획득한 자유는 어느 공간에 있든지 세상을 파악하고, 견디고, 인간과 삶을 사랑하게 만든 나의 가장 큰 힘이 되어준 작품이다.” 1998년 경기문화재단 설립 최초로 한국흑색 논문을 쓰는 것을 지원을 받아 일본 쿄토로 향했다. 1997년부터 한국전통 흑색을 염색물감을 혼합하여 그림을 그리면서 한국전통 흑색과 색명 발굴과 그 색을 고서에 의거 하여 재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