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돼! 우리 애들 하나라도 건드리면 다 죽여버릴 거야!" 길을 막아선 데모대 앞쪽으로부터 여성의 새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 차의 다섯 칸쯤 앞에 있던 승합차 운전자가 클랙슨을 신경질적으로 서너 번 울리면서 운전석 차창 밖으로 투실투실한 주먹을 내밀어 팔뚝질을 해대더니 이내 포기했는지 잠잠해졌다. 길은 금세 열릴 것 같지 않았다. “와! 저년 봐라! 홀딱 벗었네? 완전히 미친년 아냐? 개새끼들하고만 살더니 아주 개가 돼버린 모양이네! 물러가라, 이 개 같은 년아!” 데모대 안에서 누군가 걸걸한 목소리로 외치듯 욕설을 퍼대는 사이에 킥킥거리는 여자들의 웃음소리가 뒤섞였다. ‘냄새나서 못 살겠다, 똥개들을 몰아내자’ ‘주택가 한복판에 개 농장이 웬 말이냐?’ 이면으로 보이는 플래카드 글씨가 심하게 흔들렸다. 나는 핸들을 꺾어 오른쪽 나지막한 보도블록 위로 개구리 주차를 마치고 운전석에서 내렸다. 데모대는 어림하여 이백여 명쯤으로 헤아려졌다. 어디론가 전화를 거는 두 명의 정복 경찰관들이 보였다. 여성들이 대다수인 사람들을 우회하는 동안 앞쪽에서 여러 마리의 개들이 왈왈 짖어대는 소리가 산발적으로 들려왔다. 어수선한 군중 앞쪽에는 뜻밖에도 꽃무늬 비키니 차림의
코로나19쇼크(C쇼크)가 몰고 온 하늘길 봉쇄 현상으로 날개가 꺾인 항공업계의 위기가 심각하다. 지난 5월 기준 국제선 여객 실적이 작년 같은 기간보다 98.2% 줄었다니 거의 폭망 수준이다, 그런 가운데 부도 직전에 몰린 이스타항공을 둘러싼 물의의 파장이 확대되면서 창업자인 민주당 이상직 의원의 책임논란도 잦아들지 않고 있다. 정부·여당은 생계를 위협받고 있는 이스타항공 노동자들의 살길을 어떻게든 열어줘야 한다. 제주항공이 지난 1일 이스타항공에 보낸 ‘10일(10영업일) 이내에 선결 조건을 다 이행하지 않으면 계약을 해지하겠다’는 취지의 공문에 대해 업계에서는 계약파기 수순이라는 해석이 우세하다. 제주항공의 요구에 따라 이스타항공이 기한 내에 해결해야 하는 금액이 800억∼1천억 원 규모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돈줄이 막힌 이스타항공으로서는 사실상 이행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제주항공과 이스타항공의 인수·합병(M&A)이 셧다운과 구조조정 책임을 둘러싼 진실 공방을 넘어 폭로전 양상으로 번지고 있는 판이다. 이스타항공 문제는 이미 정치권으로 논란이 번져 있다. 제주항공이 이스타항공에 주식매매계약(SPA)을 해지할 수 있다는 최후통첩을 보낸 것은 이상
“엄마 사랑해. 그 사람들 죄를 밝혀줘” 지난달 26일 극단적인 선택을 한 철인3종경기 국가대표 출신 고(故) 최숙현 선수가 어머니에게 보낸 문자다. 22살 청춘의 푸릇푸릇한 감성 대신 두려움과 고통이 전해진다. 최 선수는 경주시청 시절 가혹 행위를 호소하다가 세상을 등졌다. 숨지기 하루 전까지 최선수 가족은 국가인권위원회에 차별 진정을 제기했다. 마지막 순간까지 소속팀의 가해 사실을 알리려고 노력한 것이다. 선수들에 대한 가혹행위는 체육계의 고질적 병폐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청원인에 따르면 최 선수는 식사 자리에서 콜라를 시켰다는 이유로 20만원어치 빵을 먹도록 강요당했고 체중 감량을 이유로 3일씩 굶는 가혹 행위를 당하기기도 했으며 슬리퍼로 뺨을 맞기도 했다고 한다. 국군체육부대(상무)내에서도 선임병들이 후임병들을 상대로 가혹행위를 하고 있다. 본보가 단독으로 연속보도 중인 기사를 종합하면 최근 상무 육상팀에서 지난해 입대한 선임병들이 올해 입대한 후임병들에게 얼차려를 주는가 하면 선임병이 후임병의 속옷 차림 사진을 휴대전화로 촬영하고 유포까지 했다고 한다. 국민들의 분노가 들끓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도 최윤희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에게 전반적인 스포
독일의 사회심리학자 에리히 프롬이 사랑은 기술이라고 했던가. 남녀가 만나자마자 미친 듯이 빠져드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그들이 만나기 전에 서로가 얼마나 외로웠는가를 반증하는 것이다. 화가가 되려면 그림 그리는 기술을 연마해야 하듯이, 건강한 사랑을 하려면 기술을 연마하듯 스스로를 훈련해야 한다. 그의 사랑에 대한 해석과 통찰은 청년시절의 나에게 큰 감명을 주었다. 감사야 말로 훈련이다. 우리는 진정한 감사의 전문가가 될 필요가 있다. 감사의 비밀을 깨닫고, 감사의 능력을 체득해야 한다. 우리 온몸의 세포에 감사가 스며들도록 훈련해서 감사체질로 만들어야 한다. 감사내공을 소유해야 한다. 감사는 마음근육을 단련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고, 행복을 담보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믿었던 사람의 배신으로 일이 틀어져, 원한과 분노, 증오의 감정을 주체할 수 없을 때, 그리고 그 악감정들을 떨쳐내는 게 옳다고 생각될 때 어떻게 해야 할까? 악감정은 몸과 마음의 건강을 해칠 게 분명하다. 이럴 때 자신의 감정을 거슬러 억지로 ‘감사합니다’를 속으로, 그것도 지속적으로 외쳐보자. 감사하기는 분노와 증오로부터 심신의 건강을 지키는 방패임을 알게 될 것이다.감사는 한 사람의 영
종소리가 들리면 개가 침을 흘린다. 러시아의 심리학자 이반 파블로프(Ivan Pavlov)의 실험으로 잘 알려져 있는 조건반사에 관한 이야기이다. 개에게 먹이를 줄 때 종을 치는 패턴을 계속하자, 어느 순간 개는 종소리가 들리면 먹이의 유무와 상관없이 침을 흘리고 있었다는 것이다. 소리를 통한 자극이 주는 조건반사가 만들어낸 생리적 습관이었다. 소리 그리고 음악이 행동을 부른다. 나의 경우를 예를 들면 록밴드 페이스 노 모어(Faith No More)의 ‘이지(Easy)’라는 곡을 들으면, 산과 바다로 캠핑이나 서핑을 떠나고 싶어진다. 일요일의 아침처럼 여유 있게 맞이하게 되는 이 곡의 가사처럼, 그 어떤 부정적인 생각도 하지 않은 채 느긋하게 휴식을 취하고 있는 모습이 그려지기 때문이다. 원곡은 라이오넬 리치(Lionel Richie)가 솔로로 활동하기 전 리드 보컬로 몸담았던 소울밴드 코모도스(Commodores)의 곡으로 평온하고 담담하게 이별의 순간을 이야기하는데, 격앙되지 않게 이별을 고하는 모습이 오히려 치열한 현실과 달콤한 휴식과의 간극을 부드럽고 느슨하게 넘어가게 만드는 힘이 있어, 여행의 출발 전후로도 자주 듣는 음악이다. 구구절절한 가사 속
영화 82년생 김지영이 개봉해서 한창 SNS에서 이슈가 될 때였다. 페이스북에서 한 대학선배가 영화를 본 소감을 써 놓았는데 김지영의 병이 너무 맥락이 없이 구조와 환경 때문이라고 해석해 버리면서 해결방식에도 스스로 자각이 사라졌다고 하였다. 자주 들어가지 않는 페북이지만 그날따라 그 글이 눈에 들어와 댓글까지 보게 되었다. 페미탈출은 지능순이라는 등 중동지역 여자들에게 이 영화를 보여주면 한국여자들은 호강에 겹다고 분노할거라고 하는 글들이 있었다. 그것들을 보는 순간 불쾌감이 확 올라왔다. 그 글이 만약 모르는 사람이 쓴 글이라면 신경쓰지 않았을 텐데 이 선배는 대학교 때부터 20년동안 사회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과 공론의 장에서 뚜렷한 의견개진을 하며 박학함을 드러내었던 한때 우러르는 눈길로 바라봤던 분이었다. 그래서 이 선배가 이렇게 이야기하는거면 영화가 표현하는 수준을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해야겠다 싶었다. 선배를 비롯해 이런저런 페북의 남성들의 댓글들을 보면서 영화가 좀 엉성하게 만들어졌겠거니 생각했다. 선배 정도의 지성은 정말 여성들의 현실을 제대로 보여주면 사회가 나아지기를 바라는 분들은 당연히 공감을 할 거라고 하는 기대치가 있었다. 영화는 이런저
6·25전쟁 70주년을 즈음한 한반도 정세는 동족상잔의 전쟁 상흔을 지우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주고 있다. 북한은 비록 대남군사행동계획을 보류한다고 했지만 탈북민단체의 대북전단 살포를 이유로 대남관계를 대적관계로 전환하고 배신자인 ‘남조선 당국자’하고는 마주 앉지도 나눌 얘기도 없다고 하면서 한반도 정세를 긴장시키고 있다. 우리는 대북전단 살포 금지문제를 두고 여야간 그리고 보수와 진보단체간 입장 차이를 보이는 가운데 문재인 대통령은 6·25전쟁 기념사를 통해 남북간 체제 경쟁은 끝났으며, 우리 체제를 북한에게 강요하지 않고 사이좋은 이웃으로 평화롭게 살기를 바란다는 메시지를 북한에 공개적으로 보냈다. 북한은 아직도 6·25전쟁을 ‘면밀한 타산과 구체적인 준비밑에 미군이 1950년 6월 25일 4시에 괴뢰군을 부추겨 조선전쟁을 도발하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전 세계가 알고 있는 소련의 지원하에 북한군 남침도발에 따른 6·25전쟁 사실을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 정권에게 6·25전쟁은 최초에는 북한식 통일이라는 희망이었지만 유엔군 참전으로 압록강과 두만강으로까지 밀리면서 소멸 위기에 처하기도 한 아픈 역사적 경험이다. 특히 1945년 8월 일본 히로시마
하반기 인사가 마무리된 듯하다. 경기도 인사에서 2급 공무원 4명이 자리를 이동하고 3급 국장급은 13명이 하마(下馬)했다. 조선 태종13년(1413년) 2월 처음으로 예조에서 건의하여 왕의 허가를 받아 나무로 만든 표목을 세웠다. 표목 전면에는 “대소 관리로서 이곳을 지나가는 자는 모두 말에서 내리라(大小官吏過此者皆下馬)”고 쓰여 있다. 왕이나 장군, 고관, 성현들의 출생지나 무덤 앞에 세웠다. 말에서 내려 걸어가는 것이 이들에 대한 존경심의 표시이자 예에 합당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대에 와서는 하마평이라 해서 고위공직자가 정년이나 명퇴로 물러난 자리에 어느 간부가 배치되는가에 대한 이른바 ‘복도통신’ 이야기를 의미한다. 최근의 하마평에 얼마나 정확하게 맞는가는 모르겠으나 고위 간부급 인사가 마무리 되었다. 부단체장에서 실국장으로 오고 국장, 과장이 부단체장으로 영진, 영전했다. 영진은 급이 올라가는 승진이요, 영전은 좋은 자리, 원하는 부서로 이동한 것이다. 시·군청의 부단체장으로 취임하는 순간부터 해당 시·군의 직원임을 명심하기 바란다. 취임한 날부터 과거는 잊고 오로지 우리시 우리군의 코로나19를 막고 여름철 재난안전을 위해 동분서주하기 바란다. 노
사과나무를 심으며 /이경화 봄빛에는 중력이 없나보다 땅속에 끌어 올린 생명들 무거운 질고 가볍게 밀어내 얼굴 환하게 깊은 숨을 내쉰다 작년에 냉이 밭에 던져놓고 일상에 쫒겨 생각 없이 버린 계절 태양을 한 바퀴 도는 동안 밭둑 언저리 훌쩍 자란 마늘밭에 훈풍을 들고 돌아왔다 두꺼워진 삶의 흔적들이 끈적끈적하게 매달려 그리움과 아쉬움으로 남아 한풀씩 뜯어내는 맛이 시고 달다 하늘 높이 부메랑을 던진다 여생을 어떻게 보내야할지 생각의 늪은 사과나무를 심고 주렁주렁 결실이 달릴 소망에 감사하는 마음 두 손에 모아 새롭게 돋아나는 신록을 꿈꾼다 ■ 이경화 1955년 충남 안면도출생, 방통대 국문학과를 나와 한국신학 대학원을 졸업했다. 수원문학과 한국시학을 통해 문단에 나왔으며, 2017년 계간 수원문학창작지원금 선정 작품시집 ‘고목나무에 핀 새순’을 출간했다. 수원문학인상, 홍재문학상을 수상했으며, 수원문인협회 사무국장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