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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지만

 

요즘 새로 습관이 하나 생겼다. 집을 나설 때 무의식적으로 마스크를 챙긴다는 점이다. 마스크 없이 집을 나서면 스마트폰을 집에 두고 외출한 것처럼 찜찜하고 불안했다. 우리는 이 습관에 더 강력하게 길들여지기 위해 자석고리를 철문에 붙여놓고 마스크를 걸어두기 시작했다. 외출할 때 깜빡할래야 깜빡할 수 없게 만들어놓았다.

 

이런 삶이 몇 개월은 귀찮고 답답했는데 지금은 당연한 일이 되었다. 그 당연함 속에 불편함도 녹아 있었다. 마스크 쓰게 되면서 얼굴의 반이 가려져서 상대를 단숨에 알아보는 일은 둔해졌다. 유심히 쳐다보지 않으면 누구인지 도통 알 수 없을 지경이 되었다. 50년 넘는 세월을 살면서 이런 시절은 한 번도 없었으니 지금의 시간들은 낯선 경험이 될 터였다.

 

지난 늦가을 잠깐 동안 대면 수업이 2주 정도 허용된 적이 있었다. 그래도 마스크를 쓰고 학교 강의를 가야했고 강의실에서도 마스크를 쓰고 수업해 줄 것을 권유받았다. 한번은 강의실이 있는 6층까지 올라가야 하는데 수강생이 같은 엘리베이터에 탔음에도 서로 누구인지 알아보지 못했다. 강의실에 들어가셔야 나는 강사고 그는 수강생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두 주 대면 강의를 했는데 몇몇이 비대면이 수업이 더 편했다는 말을 했다. 학교 오가는 시간을 낭비하지 않아도 되고 집에서 편한 복장으로 수업을 받아도 되니 그런 말을 할 법했다. 나부터도 집에서 화상 강의하는 게 편했다. 강의하는 학교까지 왕복 3시간은 소비를 해야 하는데 그 시간 온전히 원고 작업하는 데에 쓸 수 있어 좋았고 윗옷은 나름대로 차려입지만 아래 옷은 츄리닝을 입어도 화면에 나타나지 않으니 강의하는 차림새가 편할 수밖에 없지 않았겠는가.

 

나뿐만 아니라 예술고등학교에 강의를 나가는 아내도 비대면 수업을 하게 되었고 학교에 나가 수업을 받아야 하는 아들도 비대면 수업을 받게 되면서 우리 셋은 예전보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시간 마주하게 되었다. 우리 부부는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고 아들이 학원엘 다닌 적이 없어 다른 가정에 비해 아이와 이야기하는 시간이 많았는데도 그 시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시간 부딪치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별별 이야기를 다 나누게 되었다. 어느 날 아들이 밥상머리에서 그런 말을 꺼냈다.

 

“아빠, AI가 보편화되면 직업들이 많이 사라진대. 그런데 유망 직종 4위에 작가였어.”

크게 실감나지 않는 이야기였는데 기사를 살펴보니 아들의 말은 사실이었다. 미래엔 크게 AI에게 명령을 내리는 직업과 AI로부터 지시를 받는 직업으로 나누어지는데 유일하게 AI가 할 수 없는 일이 창의성을 필요로 하는 일이라 작가 혹은 작가적 직업이 중요하고 비전이 있는 직업이 된다는 말이었다. 가장 반항기가 심하다는 중학교 2학년에 접어드는 아들과 우린 많은 말을 나누게 되었다. 그래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밖으로 나가 서로 만나 이야기 나누고 정도 쌓고 술잔도 기울이는 시절이 오기를 애타게 기다릴 거라 본다. 집에서 뭔가를 하는 건 편하지만 이 편함 속엔 사람이 빠져 있다는 생각이 든다. 많은 게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없지만 이 역병은 사람 사이의 정만은 더 돈독하게 만들어주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아들과 더 돈독해진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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