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 사투리다. ‘쌩’은 ‘생’의 된 발음으로 날것을 뜻한다. 익히지 않은 본연의 것. 가공하지 않은 본래의 것을 강조하고 싶을 때 첫머리에 붙여 썼다. 이를테면, 쌩고구마, 쌩밤, 쌩고기 하는 식이다. ‘가리’는 ‘가루’를 뜻한다. 사투리 그대로 옮겨 쓰면, 밀가리, 쌀가리, 보릿가리, 미숫가리가 된다. 한참동안 잊고 살았던 전라도 사투리를 다시 들은 건 땅끝 해남에서였다. 세 계절을 백련재 문학의 집에서 보냈는데, 함께 살았던 작가들이 전라도 사투리의 달인이었다. 백련재에서의 하루는 “밥은 묵었소?”로 시작해서 “밸일 없지라?”로 끝났다. 소설 쓰는 이 선생은 완도가 고향이었고, 시 쓰는 박 선생은 광주가 고향이었다. 나 역시 장흥 태생이라 전라도 사투리에는 이골이 났는데, 셋이 모이면 쏟아지는 사투리로 푸지고 질펀했다. 그때, 들었던 말이 쌩가리였다. 이 선생의 입에서 나왔는지 박 선생의 말끝에 묻어나왔는지 기억은 없다. 처음 듣는 순간, ‘아, 이런 사투리가 있었지?’ 하고는 박수를 치며 웃었다. 돌아가신 외할머니를 다시 만난 것 같은 반가움이랄까. 기억을 더듬어 올라가면 쌩가리에 얽힌 추억이 많다. 그중 하나가 전지분유다. 학교 들어가기 전이었으니
나이 들어도 젊어질 수 있는 역노화 시대가 우리 곁에 와 있다고 한다. 아주대 의대 연구팀은 최근 노인 장기조직에 ‘중간노화세포’라는 새로운 개념의 세포가 존재한다는 것을 발견하였고, 여기에 적절한 자극을 주면 다시 젊은 세포와 비슷한 기능으로 회복할 수 있음을 규명하였다. 중간노화세포의 기능회복으로 항노화 치료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열었다고 하며, 그 내용은 2023년 11월 국제학술지 Nature Communications 온라인 판에 발표되었다. 노화는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 질병의 일종이며, 그래서 치료될 수 있다는 주장은 하버드 의대 유전학 교수이자 노화와 장수 분야 권위자인 데이비드 싱클레어 박사가 자신의 25년 연구를 집대성한 저작에서 펼친 핵심 내용이다. 그 책이 2019년에 출간되자 도처에서 찬사가 쏟아졌다. 우리나라에는 그 다음해 '노화의 종말'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본이 나왔고, 그 책에 소개된 소식, 간헐적 단식을 하는 사람이 유행처럼 번졌다. 생명 연장을 주제로 한 대부분의 연구와 저작은 의사, 과학자들에 의해 주도되어 왔다. 그런데 투자전문가가 이 분야의 책을 내어 또 다른 주목을 받았으니, 2021년에 출간된 세르게이 영의 「역노화」가…
지난 2019년 선거법이 개정됐다. 주요 골자는 유권자 연령의 하향 조정이었다. 기존 19세에서 18세로 선거권 확대. 한국 정치인들은 “서구 선진국에서는 16, 17세부터 선거권이 있는데 한국은 그렇지 않다.”라며 하향조정을 적극 추진했다. 그러나 정치권에 묻고 싶다. 진정 무엇을 위한 하향 조정인가? 그냥 선진국 따라 하긴가? 아니면 대의제 민주주의를 확대하기 위한 수단인가? 만약 후자였다면 젊은 유권자를 위한 상품 출시에 힘써야 한다. 젊은이들을 선거판에 불러놓기만 하고 그들이 고를 상품이 없다면 이는 상도덕에 크게 어긋난다. 오는 4.10 총선의 메뉴를 보면 알 수 있다. 후보들은 도시화, 경제개발만 하겠다고 야단들이다. 너도나도 철도 지하화, 공항이전, 서울편입, GTX 연장 및 건설, 녹지대 개발, 아파트(재)건축 등을 약속한다. 70년대 개발도상국 시절의 공약과 별반 다를 게 없다. 이런 종류의 공약은 기성세대에게는 먹힐지 모르지만 젊은 세대에게는 통하기 어렵다. 청년들에게 더 이상 투표는 의무가 아니다. 그들은 살 상품이 없으면 투표장에 나갈 필요성을 못 느끼게 된다. 이런 논리를 고려하지 않은 채 노년층은 투표장에 나가는 데 왜 젊은 층 너희
4월 총선을 앞두고 전화 여론조사가 늘었다. 모르는 번호면 여론조사겠거니 받지 않거나 수신 거부를 했는데 얼마 후 또다시 전화가 걸려 온다. 혹시나 해서 전화를 받으면 어김없이 여론조사 녹음 소리다. 바빠서 못 하는 것도 있지만 여론조사 결과를 신뢰하지 않아 일부러 피한다는 사람들이 많다. 설문에 응답하는 사람의 경우 어떤 질문에든 답할 준비된 상태일 확률이 높은데, 그래서 정당이나 후보 이름만 들어도 어떻게 선택할지 결정의 시간을 크게 들일 필요가 없으니 응답을 수월하게 느낀다. 반대의 경우라면 질문의 내용과 선택해야 할 내용만 들어도 선택결정 어려움 앞에서 피로를 직감한다. 자연스레 응답을 피한다. 정치 관여도가 높은 응답자 확보가 많은 조사라면 모집단 전체 표심과는 다른 분포를 보일 수 있다는 의미다. 흔히 중도층이나 무당층으로 불리는 스윙보트가 여론조사에 얼마나 참여하느냐가 조사의 신뢰를 좌우한다고 보는 까닭이다. 여론조사 결과를 신뢰하기는 어려우나 현실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후보 공천부터 정부 정책까지 결정의 근거로 삼는 게 여론조사인 경우가 많아서다. ‘여론조사 결과가 곧 여론’인 현실은 선거철만 되면 여론조사기관이 성황을 이
세상에서 인간이 만든 것은 모두가 질문의 산물(결과물)이다.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을 창조하려면 반드시 질문이 선행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질문은 호기심과 궁금증에서 비롯된다. 그러기에 교사가 자신의 역할에 충실 하려면 반드시 학생들에게 궁금증과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게 해주어야 한다. 그런데 대체로 교사는 교육 현장에서 교과서에 있는 지식을 학생들에게 전달하는 것이 보편적이다. 그리고 수업 막바지에 “오늘 배운 내용(교육과정) 가운데 이해가 잘 안되면 질문하라”고 한다. 이런 질문을 할 때 교사는 답을 가지고 질문한다. 당연히 교사는 자기가 가르친 내용이 정답이라고 믿는다. 무엇보다 교사가 정답이라고 단정한 지식은 이미 특정 분야에서 전문 학자들이 오랜 기간 탐구하고, 경험한 결과의 지식이다. 문제는 결과의 지식으로는 학생들의 창의성 함양에 별로 도움이 안 된다는 사실이다. 교사가 원하는 것은 자신이 가르친 내용을 학생들은 암기해 두었다가 그대로 표현하는 것이다. 좀 거칠게 말하면 자신이 가르친 지식을 학생들이 그대로 먹었다가 그대로 뱉어내는 것이다. 교사가 정답을 가지고 질문하면 학생들의 지적변화에도 전혀 도움을 줄 수 없다. 그래서 이런 유형의 질문은 결코
미국 군복을 입은 한 젊은 남자가 어디론가 걸어가고 있다. 그는 카메라를 바라보며 말했다. “내 이름은 애런 부쉬넬이다. 나는 미합중국 공군 현역 군인이고 더 이상 제노사이드에 가담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부터 극단적인 시위를 할 것이다. 하지만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식민지배자들의 손에 당하고 있는 것에 비하면 전혀 극단적인 것이라고 할 수 없다.” 그는 곧이어 카메라를 땅에 내려놓고 텀블러에 담아 온 휘발유를 온몸에 뿌린 후 불을 붙였다. 25살 애런 부쉬넬은 그렇게 2월 25일 워싱턴 DC에 있는 이스라엘 대사관 앞에서 분신자살했다. 산화해 쓰러질 때까지 그가 수차례 외친 구호는 “팔레스타인을 해방하라!” 였다. 반이스라엘 저항운동을 하다 숨진 미국인은 애런 부쉬넬이 처음이 아니다. 2003년 3월에는 레이첼 코리가 팔레스타인 민간인들의 가옥을 철거하려는 이스라엘에 맞서 시위를 하다 62톤 불도저에 깔려 죽은 사건이 있었다. 레이첼은 본인의 소속 단체였던 ‘국제연대운동’의 형광색 점퍼를 입고 자신이 몇 차례 묵은 적 있는 나스랄라 박사(팔레스타인 민간인)의 집으로 돌진해 오는 거대한 불도저 앞을 맨몸으로 막아섰다. 나서지 말라는 걱정스러운 말에도 아랑곳하지…
한류가 아시아를 포함한 전 세계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세계인들이 한류의 매력에 빠져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신바람과 흥(興)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의 문화가 다양한 콘텐츠로 가득한 SNS 플랫폼을 통해 전 세계적으로 파급됐다. 인터넷을 통해 K-POP이 전 세계적인 유행이 됐다. 콘텐츠의 내용도 다양해져 K-POP, K-드라마, K-영화는 물론 K-푸드, 한복, 한옥, 한글뿐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외국인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세계 각국의 청소년들은 한류를 체험하려고 한글을 배우며 한국에 오고 싶어 한다. 이는 한류가 세계인들에게 그만큼 관심을 끈다는 표징이다. 예를 들면 2012년에 엄청난 흥행을 기록한 가수 싸이(PSY)의 ’강남스타일‘ 뮤직비디오는 재미있고 따라 하기 쉬워 세계적 유행을 낳았다. 또 BTS(방탄소년단)는 ’다이나마이트(Dynamite)‘에서 “내 안의 불꽃들로 이 밤을 찬란히 밝히는 걸 지켜 봐” 라고 노래부른다. 이것은 코로나 팬데믹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는 지구촌 사람들에게 큰 위로가 되었다. 이처럼 중독성 있는 멜로디와 사운드로 구성된 노래는 빠르게 귀에 착착 들어온다. 다양한 문화적 요소를 포함한 매력적인 이미지, 패선
남들이 모두 일하는 평일 오후, A는 또다시 노트북을 펼친다. 화면을 노려본다. 눈앞에 놓인 것을 희대의 난제처럼 느끼고 있다. 하얀 배경에 커서만이 깜빡거린다. 쉬이 글이 써지지 않는다. 자기소개서. 자신을 소개하는 글. 700자 내지 1000자를 기준으로 본인을 소개하는 것이다. 막막하다. 물론 파훼법은 있다. 목적을 생각하는 것이다. 날 먹여주고 재워줄 대감집에 머슴으로 들어가기 위해 쓰는 글인지, 남들이 인정하는 학당에 어울리는 차세대 인재임을 증명하는 글인지, 준비된 전문가로서 자신의 능력을 어필하는 글인지 등. 나의 특정적인 면을 궁금해하는 상대에게 맞춰 나를 드러내면 된다. 하지만 목적을 안다고 해도 이내 곧 벽에 부딪힌다. 마음의 벽이다. 이게 정말 ‘나’가 맞나? 하는 의심의 벽이거나 목적을 너무나 잘 이해한 탓에 과도하게 멋있어진 글 속의 내가 어색하고 부끄러워지는 양심의 벽이다. 결국 한차례 글을 지우고, 다시 쓴다. 있는 그대로. 어쩐지 아까보다 글이 술술 써진다. 이번의 자기소개는 여러모로 적절해 보인다. 그렇게 글을 완성하고 다시 읽어보면 좌절할 수밖에 없다. 글 속의 인간이 허접하고 쓸모없어서. 갑자기 화가 난다. 이 방식은 너무…
격렬한 역사의 과정을 겪은 나라일수록 문화예술 작품들이 뛰어난 건 각 개개인들의 에피소드가 차고 넘칠 만큼 풍부하기 때문이다. 근데 여기서 정작 중요한 것은 그런 게 아니다. 어두운 역사를 겪은 사람들에겐 선악의 구분 선이 다소 얇을 수밖에 없다. 살기 위해 배신도 했고 한때 지나친 욕망과 오만으로 과도한 실수를 저지르기도 했기 때문이다. 정치는 자기 눈 앞의 들보는 보지 못하고 남 탓, 비난을 하기에 정신이 없지만 예술, 특히 영화는 적어도 자기 반성 없는 비판은 하지 않는다. 영화가 종종 매우 중층적인 주제의식으로 선악이 모호한 결론을 내는 이유이다. 세상의 진실은 절대적일 수 없고 상대적이라는 진리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거기에 덧붙여 세상에서 유일한 진리는 변하지 않는 진리란 없다는 것이다라는 명제조차 깨닫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는 그렇지 못하다. 자신 아들에게 학교폭력의 전력이 있음에도 모든 자식은 그 부모의 거울이라며 특정 개인을 향한 발언을 서슴지 않는다. 근데 그 정도는 귀여운 수준이다. 자신의 자녀 역시 유학을 보내기 위해 이런저런 스펙 쌓기를 막대한 돈을 들여 ‘인공적으로’ 만들어 냈다는 의혹이 큰 상황임에도 오히려 특정 집안의 교육 방식을…
상속세를 부과하기 위해 상속 재산의 가액은 상속개시일 현재의 시가를 기준으로 평가를 하는 것이 원칙이다. 하지만 부동산과 같이 거래가 빈번하지 않은 자산의 시가는 실제 거래가 있기 전까지는 파악할 수가 없다. 여기서 시가란 상속개시일 전후 6월 이내의 기간(평가기간) 중 확인된 매매가액이나 경매가액, 감정가액 등을 말하는데, 많은 경우 이러한 시가가 없거나 파악하기가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대안으로 세법에서는 여러가지 방안들을 제시하고 있는데 이를 보충적 평가방법이라고 한다. 주요 보충적 평가 방법으로 주택은 단독 주택의 경우 개별 단독주택가격을, 아파트와 같은 공동 주택은 공동주택 공시가격을, 그리고 토지의 경우에는 개별공시지가가 있다. 그러나 정부가 매년 고시하는 이러한 공시가격은 일반적으로 실제 시가보다 낮게 형성되므로 그만큼 저평가되어 이 금액을 기준으로 상속자산을 평가하면 대체로 시세로 평가하는 것 보다 상속세를 적게 내게 된다. 하지만 상속받은 부동산을 양도 6개월 안에 매도하게 되면 그 매매가액으로 재산을 평가하게 되므로 상속세가 많아질 수 있다. 또한 상속받은 부동산을 담보로 하여 대출을 받는 것에도 유의해야 한다. 담보대출을 할 경우 통상 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