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가슴에는 강렬한 시가 있다. 이름난 시인의 시도 아니고 레토릭이 멋진 것도 아니다. 그 시는 아주 평범한 한 사람이 어머니에 대한 애틋함을 담은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다. 지인과 그의 어머님을 모신 추모공원에 다녀왔다. 작은 유리문 너머 하얀 단지에 적힌 글이 내 눈에 크게 들어왔다. ‘그곳에서는 발을 편히 피고 쉬시라.’ 하얀 단지에는 어머니를 향한 자식의 애틋한 마음이 고스란히 시가 되어 박혀있었다. 그 시를 읽으면서 얼굴을 직접 뵌 적이 없지만 ‘참 좋은 어머니였구나!’에 생각이 미쳤다.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지냈던 분처럼 느껴졌고 한 쪽 마음이 아려왔다. 이 글을 쓴 사람은 누구인지 지인에게 물어보니 뜻밖에도 본인 글이라 했다. 이 사람은 평소에 감정을 표현하는 것을 어려워하는 마치 로봇같은 사람이다. 이 사람이 시를 쓸 수 있다고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런 아주 평범한 사람이 이렇게 멋진 시를 쓰다니 놀라웠다. 플라톤이 말했던가? 사랑하면 누구나 시인이 된다고..사랑하는 어머니를 보내며 써내려간 극히 개인적인 추모의 글은 눈이 부시게 아름다운 ‘마지막 편지’가 됐다. 나는 팝가수 중 아델을 좋아한다. 자신의 사랑 경험을 노래로 만드
20년 전만 하더라도 비디오를 틀면 “옛날 어린이들은 호환, 마마, 전쟁 등이 가장 무서운 재앙이었으나…”라는 말이 흘러나왔다. 마마는 천연두의 다른 이름이다. 두창 바이러스에 의해 유발되는 감염성 질병인 천연두를 앓으면 열에 서넛이 죽었고, 살아남아도 얼굴은 곰보가 되었다. 포천은 한국 최초로 천연두를 치료했던 고장이다. 포천 영평초등학교 교정에 이를 기념하는 비가 서 있다. 일찍이 북경을 방문해 중국의 선진문물을 목격한 박제가(1750~1805)는 <북학의>(1778)를 지어 조선을 부강하게 하는 개혁 방안을 제시했다. 정조의 특채로 규장각 검서관으로 일하던 박제가는 1786년 정월, ‘병오소회’를 국왕에게 올렸다. 이때 박제가는 서양 선교사들을 조선에 초빙하고 이용감을 설치하자고 주장했다. “국가에서 관상감 한 부서를 운영하는 비용을 들여서 그 사람들을 초빙하여 머물게 하고, 나라의 인재들로 하여금 천문과 천체의 운행, 악기나 천문관측 기구의 제도, 농잠, 의약, 기후의 이치 및 벽돌을 만들어 궁궐과 성곽과 다리를 짓는 방법, 구리나 옥을 채굴하고 유리를 구워내는 방법, 화포를
인류 역사와 운명을 같이 해온 것 중 가장 오래된 것은 무엇 일까? 아마 ‘신의 존재’에 대한 믿음일 것이다. 원시시대부터 인간은 천재지변 등 자연현상에서 신의 존재를 느끼고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람들은 고대부터 신이 사는 성스런 공간과 인간이 사는 세속의 공간을 구분해놓고 살았다. 그리고 신에게 의지하며 나약한 인간의 한계를 넘게 해달라고 기원했다. 성스러운 공간에 대한 관념은 현대에서도 계속 이어져 교회와 성당 등 종교시설로 남겨져 있고 개념상 과거의 신전처럼 성역화 되어 있다. 지금도 그곳에서 사람들은 기적을 간구(干求)하며 끊임없이 신에게 기도하고 예배와 미사를 드린다. 그중 기독교의 신앙은 기적과 매우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기적을 믿지 않으면 기독교가 성립되지 않아서다. 모세의 기적과 바울의 기적 등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천주교는 좀 다르다. 특히 교황청이 있는 바티칸에서는 기적 현상을 엄격하게 다룬다. 세계 각국에서 특이 현상을 기적으로 인정해달라는 신청이 모여들지만 공식적인 기적으로 간주하는 것은 일부에 불과하다. 기적 인정 심사도 신학자와 법률가, 역사학자, 의학자 등 각계각층의 전문가들이 모여 엄격하게 진행한
사람들이 무심코 하는 말 중에 흔히 쓰는 말이 ‘죽겠다’는 소리다. 아프면 아파서 죽겠다, 좋으면 좋아서 죽겠다. 웃기면 웃겨서 죽겠다, 심심하면 심심해서 죽겠다. 배부르면 배 터져서 죽겠다, 성질나면 화가 나서 죽겠다. 일이 뜻대로 안 되면 ‘그냥 콱 죽어버리겠다.’ 이래도 죽겠다, 저래도 죽겠다고 한다. 그러다가 정말 스스로 죽는 사람도 있다. 세상천지 만물 중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 존재는 사람밖에 없다고 한다. 지인 중에 한 무명작가가 있었다. 그는 평생 글을 써서 발표했지만 이렇다 할 작품 하나 남기지 못했다. 남들 다 타는 문학상 하나도 받지 못한 지질히도 문(文)복이 없을뿐더러 가난하기도 이를 데 없었다. 그는 결국 죽기로 작정을 했다. 한데, 막상 죽으려니 죽을 방도가 생각나지 않았다. 그래서 평소 잘 알고 지내던 어느 시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자네도 알다시피 나는 살만한 가치가 없는 존재여. 그래서 그만 죽기로 작정을 했네.” 전화를 받은 시인이 흔쾌히 응답했다. “그 참 좋은 생각이네. 솔직히 자네 같은 어벙이 무명작가는 죽는 게 나아. 어디서 어떻게 죽기로 했나?” “그냥 한강 다리에서 뛰어내리기로 했네.” “이 겨울에? 얼음이 얼어 제대
2008년에 숭례문 방화사건으로 5시간 만에 석축을 제외한 대부분이 소실됐다. 소방당국은 정확한 발화지점을 못 찾고 초기진압에 실패했다. 한옥은 목재를 끼워 맞춰 짓는 방식이라 초동에 해체했다면 원상복구가 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나 소방당국과 문화재청은 업무 분장만 따지다가 골든타임을 놓쳤다. 당시 문화재청장은 “파괴돼도 좋으니 진화하라”고 했다지만, 실측도면이 소방당국에 전해진 것은 화재발생 2시간 후였다. 모든 재난은 초동대처가 중요하다. 신속하고 정확한 대처를 위해서는 현장과 전문가에게 맡겨야 한다. 코로나19 사태도 마찬가지다. 중국의 위기관리능력을 시험하더니, 일본을 곤궁에 빠뜨리고, 이제 우리나라를 국제뉴스의 중심에 올려놓았다. 이란과 이탈리아에서도 확산을 거듭하고 있어 사태의 끝이 안 보인다. 백신과 치료제가 없고, 전파력이나 치사율을 알 수 없어 사람들의 공포심이 극에 달하고 있다. 하지만 이제까지 각국의 대처방식을 보면 그 정부의 성격을 읽어낼 수 있다. 한중일 세 나라 모두 정치논리로 초동대처에 실패 한중일 삼국은 모두 초동대처에 실패했다. 중국은 국가적 정치행사인 양회(전국인민대표대회,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를 앞두고 있어 사태의 축소에 급급
걷는다 /박영식 다리 힘 남았을 때 더 많이 걷고 싶다 가능한 씩씩하게 뱃살도 줄이면서 다시는 못 일어날 때 미련 후회 없게끔 어설픈 직립으로 첫 발을 뗐던 그날 어머닌 손뼉 치고 기쁨도 크셨겠지 가다가 넘어졌을 땐 일어나라 하셨을 요즘에 차 없다고 빈정대는 이 있지만 부르면 냅다 오는 친절한 콜 있겠다 걱정도 팔자라더니 공염불을 하시나 걸으면 작은 것도 잘 보여 참 정겹다 어깨 툭 치는 순간 돌아보면 어 친구야 반갑다 낮술도 한잔 못할 것도 없잖니 ■ 박영식 198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조 당선. 《시조문학》 2회 추천 완료, 김상옥시조문학상, 한국시조시인협회상, 한국시조문학상, 성파시조문학상 외 다수 수상. 저서로는 『백자를 곁에 두고』, 『굽다리접시』, 『자전거를 타고서』, 『가난 속의 맑은 서정』, 외 다수가 있고, 한국시조시인협회 이사, 울산시조시인협회 회장 역임. 서재 「푸른문학공간」
‘가족’ 우리 사회를 지탱해 온 기초 집단이다. 고대로부터 이어지면서 형태가 시대에 따라 변하긴 했지만 부부와 그들의 자녀로 구성된다는 정의는 변함없다. 하지만 언제 부턴가 가족의 의미가 급격하게 달라졌다. 1인가구가 크게 늘어나면서다. 통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 1인가구의 비율은 2000년 15.5%에 불과했지만 2018년에는 29.2%로, 20년도 채 되지 않아 13.7%p 가까이 증가했다. 특히 2019년 1인가구의 수는 600만 명에 육박하며 증가 추세를 보였다. 이는 전체 가구 중 30%에 달하는 수준이다. 여성 1인가구는 더 늘었다. 291만 4천가구로, 전체 1인가구 중 절반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20년 전보다는 무려 128.7% 증가한 수치다. 이 가운데 ‘65세 이상’ 1인 가구가 전체의 25%가량을 차지한다. 이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42.4%가 이웃과 상당히 떨어진 곳에서 살고, 가족이 한 명도 없는 노인이 7%, 있어도 한 달 한 번도 연락을 하지 않는 경우가 24%, 이웃과도 연락하지 않는 노인이 40%나 됐다. 대부분 고독사가 상존할 수 있는 환경에서 살고 있다는 얘기다. 따라서 몇 년 전만 해도 일주일 이상 지나서 발견되는 죽음이
노벨상이 제정된 1901년부터 현재까지 유대인 수상자는 175명에 이른다. 이는 전체 수상자의 23%를 차지한다. 현재 유대인은 약 1천400만 명인데, 미국에 590만 명, 이스라엘에 530만 명이 살고 있다. 세계 인구의 0.2%에 불과하지만 노벨상 수상자에서는 그 비율이 100배 이상인 이유는 무엇일까? 그들은 수천 년 동안 나라 없이 떠돌아다녔다. 생소한 나라에서 살아남으려면 그 나라의 언어와 문화를 배워야 했고, 새로운 문화를 수용하는 과정에서 창의력이 배양됐다는 설명이 설득력이 있다. 한편 노벨상 과학 분야의 40% 가량을 미국인이 수상했는데, 그중 35%가 이민자 출신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불법 이민을 막겠다며 멕시코 국경에 거대한 장벽을 세웠지만 이는 지지자들을 결집하기 위한 정치쇼에 불과하다. 아직도 미국에는 1천 1백만 명의 불법 이민자가 있다. 트럼프 정부가 추방한 불법 이민자 수도 오바마 정부 때와 별 차이가 없다. 이민을 폭넓게 받아들이기 시작한 이래 수십 년 간 미국의 이민정책은 큰 변화가 없다. 왜냐하면 다름을 인정하는 포용력과 다양성의 문화가 미국의 힘이며 이를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미국 국가 휘장에 새겨진 표어는 라틴어로…
역사라는 물결 속에서 어떤 사건의 시작점을 찾는 것은 중요하다. 한 시작점에서 많은 사건들이 파생되어 사람들의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움직이게 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나라의 여러 역사를 가로지르는 여러 사건들의 시작점으로는 3·1운동을 꼽을 수 있다. 이 시작점으로부터 대한민국의 임시정부가 탄생하고, 동시에 일제를 상대로 한 독립전쟁의 서막이 열렸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끝내 독립을 이뤄낸 우리나라는 2020년 현재 3·1운동 101주년을 맞았다. 3·1운동은 고종황제의 죽음에 대한 의문과 일제의 무단통치에 대한 분노 등으로 전국 각지에서 여러 달에 걸쳐 일어났다. 민족대표자들은 태화관에 모여 독립선언문을 낭독했고, 학생들 역시 따로 독립선언문을 낭독했으며 여러 장소에서 그들만의 시위를 이어갔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공원, 장터 할 것 없이 모여 만세운동을 벌였는데 그 염원과 기세가 얼마나 강했는지 그 당시 선교활동을 하고 있던 선교사의 아내 윌콕스 노블은 이렇게 기록했다. “한국 전역에서 만세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만세 시위가 벌어질 때면 사람들은 전차를 세우고 모든 승객들에게 만세를 외치게 했고, 차장과 운전사도 손을 들고 만세를 외쳐야 했다
공존의 힘 /손증호 사람들 티격태격 편 나눠 다퉈도 우리네 사는 행성 어둡지만 않은 까닭 티베트 수행자들이 하늘지붕 닦은 덕분 대지와 하나 되어 온몸으로 읽은 경전 그 맑은 기운이 탁한 숨길 겹게 틔워 세상은 삐거덕대도 멈추지 않고 돌아가지. ■ 손증호 1956년 경북 청송 출생, 2002년 《시조문학》 신인상, 부산시조작품상, 전영택 문학상 등 수상. 시조집 『침 발라 쓰는 시』 『불쑥』 현대시조 100인 선집 『달빛의자』 등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