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서울의 봄'이 대흥행이다. 이 영화에서 배우 정해인은 짧은 배역에도 강한 인상을 남겼다. 정해인이 연기한 특전사 소령 오진호의 실제 인물은 김오랑 소령이다. 경남 김해 출신인 김오랑 소령은 가난한 집안 사정으로 중학교를 한 해 늦게 졸업했지만, 김해농고를 수석으로 졸업했다. 당시 수재들이 모이던 부산대 공대에 합격하고도 학비가 없어 들어가지 못했다. 학비가 무료인 육사를 졸업하고 소위로 임관해 제2보병사단 수색대 소대장으로 근무한 그는 맹호부대 소속으로 베트남전에 참전했다. 귀국 후 육군 특수전사령부 제3공수특전여단 중대장을 시작으로 특전사령부 작전장교와 정보장교를 지냈다. 군의 엘리트 코스인 육군대학을 졸업하고 제5공수특전여단 중대장을 거쳐 1979년 정병주 특전사령관의 비서실장으로 발탁되었다. 1979년 12월 13일 00시15분, 전두환을 수괴로 한 반란군에 가담한 제3공수특전여단 최세창 준장 일당이 급습한 특수전사령관실을 끝까지 지킨 군인이 김오랑 소령이었다. 정병주 특전사사령관을 지키던 다른 장교들은 반란군의 회유와 협박에 모두 넘어갔지만 김오랑 소령은 반란 가담을 거부하고 자신의 사령관을 사수했다. 가진 무기라고는 권총 1정에 불과했던 그는
오늘은 옛날 세금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우리가 태어나기 전에도 국가라는 조직은 있었고 이를 유지하기 위한 재원으로서 세금은 어떤 형태로든 존재했을 것이다. 먼저 서양에서의 세금의 역사는 고대 문명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대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로마 제국의 세금에 대한 문헌들이 더러 남아있고, 그 중에서 로마 제국은 광대한 영토와 방대한 인구를 다루기 위해 세금 제도의 정비와 유지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로마제국의 세금 이야기는 성경에 기록된 예수님 말씀에 세리가 등장할 정도로 잘 알려져 있기도 하다. 이후 중세에 들어서는 유럽 역사의 암흑기라 불리는 만큼 세금과 관련해서도 뚜렷한 체계나 제도에 의하지 않고 봉건 영주의 의지와 필요에 따라 그때 그때 다른 모습으로 운영되었다. 당시 영주와 국왕들의 세금 착취와 이에 맞서는 민중들의 이야기를 다룬 것이 ‘로빈훗의 모험’이다. 이후 근대 국민국가의 등장과 함께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체계적인 조세 제도가 형성되는데, 당시에는 국가 간 전쟁, 식민지 확장 및 국가 경제의 발전을 위한 재원 조달 목적으로 고안된 것이었다. 자 그러면 옛날 이 땅에 살았던 우리 선조들에게는 세금이 어떤 모습이었을까? 국사 실력이
우연찮은 기회에 지난 3~4/4분기 동안 전라북도 8개군 6개 도시를 다닌 적이 있다. 작은 극장을 순회했다. 8개 군이라 하면 부안 고창 순창 임실 장수 진안 무주 완주군을 말하고 6개 도시라면 전주 군산 익산 김제 정읍 남원시를 말한다. 전라북도는 다른 지차체에 비해 면적이 그다지 큰 편은 아니다. 대체로 전주에 머물며 하루 일정으로 동쪽 지역의 군을 다니고 또 다른 하루 일정으로 서쪽 지역 군을 다니곤 해도 됐을 정도다. 그렇게 다니면서 뛰어난 지역 풍광(마니산 같은)이나 지역 발전의 모티프(임실 치즈 같은)때문에 감동을 받기도 했지만 거의 대부분은 충격을 받았다. 인구 때문이었다. 8개군의 평균 인구는 대체로 2만명 안팎. 거의 절멸 수준이었다. 특히 젊은 층 인구는 거의 씨가 말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전북 도와 각 군, 시가 의지를 가지고 40석~60석 수준의 지역 극장을 만들어 영화 문화의 확장을 꾀하려 노력하는 모습이 눈에 보였음에도 불행하게도 그 선의의 역할이 거의 실현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 역력해 보였다. 유일하게 극장 문화가 극장 문화답게 유지되는 곳이 무주 군으로 보였는데 그건 순전히 이곳의 무주산골영화제가 자리를 잡았기 때문
언론은 내년 총선 얘기로 뜨겁다. 그런데 나의 관심은 언론에서 전혀 다뤄지지 않는 선거에 더 관심이 크다. 바로 이장 선거다. 올해로 임기가 끝나는 이장이 있는 마을에서 요즘 선거가 한창이다. 다양한 복지행정 수요 등을 파악하고 행정 서비스를 원활히 민생의 현장에 전달하기 위해서 이장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나는 마을의 발전을 지원하는 일을 하면서 마을 이장이 누구냐가 마을 발전에 엄청난 차이를 만든다는 사실을 경험하고 있다. 마을 발전을 잘 이끌던 이장이 바뀐 후 마을이 침체하는 예도 봤고 그 반대의 경우도 봤다. 지금까지 살아왔던 방식대로 살면서 마을이 소멸하고 있는데도 여전히 살아왔던 방식대로 살아가고자 하는 이장을 보면서 많이 개탄스러워하기도 했다. 이장은 촌 기초지자체의 말단 직책이다. 때문에 중앙정부에서 아무리 좋은 정책을 만들어도 이장이 움직이질 않으면 그 정책은 주민들에게 전달되기 힘들다. 이토록 중요한 이장은 주로 누가 될까? 일단 이장 일 할 시간이 있어야 한다. 시시때때로 행정 일을 봐야 하고 주민의 민원에 응해야 하기때문에 언제든 부르면 달려갈 수 있는 주민이어야 한다. 그러니 고정된 시간에 일을 해야 하는 사람은 맡기 어렵고 주로 마
산길은 사람의 발에 밟힌 낙엽이 으깨져 흙이 되어가고 있었다. 모든 생명은 왔던 그 길이나 그곳으로 가는 것인가! 내 나이 적지 않은데 나의 갈 곳은 어디며 언제쯤일까. 12월의 가슴은 무겁고 축축하다. 청주에 사는 수필가에게서 수필집을 보내왔다. 꽤 오랜 인연 속에 한 번도 인사를 거르지 않은 작가다. 그와의 인연은 J신문사 신춘문예 심사를 내가 맡았을 때 그의 작품이 당선작으로 뽑힌 결과로써 시작되었다. 그런 그가 내게 금년을 마무리하는 결실의 의미로 보낸 선물 같았다. 존경했던 고하 선생님은 얼마 전 고인이 되었다. 생전의 선생님은 누가 책을 보내오면 꼭 편지나 우편엽서로 ‘잘 받았다’는 인사를 대신했다. 10여 년 전만 해도 연말연시의 인사나 덕담을 편지로 주고받았다. 그런데 지금은 휴대폰 문자 때문에 우체국에서도 경조카드 자체를 없앴다. 을유문화사에서 낸 『동국세시기』 12월을 보면, 종묘와 사직에 제사를 지냈다고 되어 있다. 그리고 그믐날 밤(除夕)에는 2품 이상의 벼슬아치들이 대궐에 들어가 묵은해 문안을 드렸다고 적혀 있다. 사춘기를 벗어난 성인으로서 나이 들어가는 것을 좋아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이 드는 것을 체감하는 것은 슬픈 일이다. 이
킬러(killer)는 살인을 하는 사람이란 뜻이다. 의미가 무시무시해 가급적 쓰지 말아야 할 용어다. 자라나는 청소년들 대상 분야에서는 더욱 그렇다. 수능에서 정답률이 극히 낮은 문항을 ‘킬러 문항’이라고 언론이 써왔다. 대통령이 ‘킬러 문항’을 강도 높게 비판하면서 유명세를 치뤘다. 지난 6월 15일 이주호 교육부 장관의 보고를 받던 윤 대통령이 수능의 어려운 문제를 지칭해 “아주 불공정하고 부당하다”고 했다. “교육 당국과 사교육 사업이 카르텔이냐”고도 했다. 특유의 과한 용어가 언론을 통해 보도됐다. 교육부 대책이 이어졌다. 이 장관은 “올해 수능부터 킬러 문항을 철저히 배제하겠다”고 약속했다. 언론은 수능 관련 이슈를 연일 대서특필했다. 교육부 대입 담당 국장이 경질되고, 교육부와 총리실은 수능 출제를 담당하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 감사에 착수했다. 평가원장은 나흘만에 사임했다. 5개월이 지난 11월 16일, 2024학년도 수능이 치러졌다. 언론은 시험난이도를 ‘킬러 문항은 없었지만, 국·영·수 다 어려웠다’는 기조로 보도했다. 정문성 출제위원장은 “교육부의 사교육 경감대책에 따라 소위 ‘킬러 문항’을 배제했고, 공교육에서 다루는 내용만으로 변별력을 확보
영화 ‘서울의 봄’이 흥행이다. 1979년 12월 12일 전두환과 하나회가 군사쿠테타를 일으켰던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이다. 박정희 사망 후 전두환 신군부가 정권을 잡아 그들만의 봄을 누린 참혹한 계절이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영화 속 대사는 “세상은 쉽게 바꾸지 않는다”였다. 영화가 관객에게 말하고 싶은 강력한 메시지라고 본다. 현실로 돌아와서 보면 세상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민초들은 아등바등 좀 더 나아진 세상으로 바꿔보려고 애를 쓰지만 수포로 돌아가거나 제자리 걸음일 때가 많다. 왜 그럴까? 선거시즌이 되면 여의도 정치권은 개혁을 한다, 혁신을 한다는 명분으로 혁신위원회, 비대위원회를 만들지만, 혁신이나 개혁과는 거리가 먼 용두사미로 끝나버리기 일쑤다. 더불어민주당의 김은경 혁신위도, 국민의힘의 인요한 혁신위도 반짝하는 이벤트처럼 종료됐다. 이런 풍경이 정치권에서는 일상적일 수 있지만, 국민 입장에서는 혁신위 및 비대위 정치에 대해 회의적이고, 정치인들이 풀어야 할 문제를 회피하는 것처럼 보인다. 국민의 삶을 위해 정치문화를 잘 바꾸라는 의미로 선거를 하고, 국민은 정치인들에게 주권을 맡긴다. 그 주권을 부여받은 정치인들은 스스로 혁신하고…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빅토르 위고(Victor Hugo)를 두고 한 말처럼 들린다. 소설 ‘레미제라블(불쌍한 사람들)’은 오늘도 여전히 베스트셀러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가 우리 곁을 떠난 지는 138년이 된다. 위고가 숨을 거둔 건 1885년 5월 22일. 공화당의 아이콘이자 정의의 사도였던 그는 1802년 2월 26일 브장송에서 귀족의 아들로 태어나 정치인, 작가, 만화가로 활약하면서 평생 자유를 열렬히 수호했다. 자신의 천재성을 빈곤타파, 표현의 자유, 여성과 아동의 인권, 노예제와 사형제 폐지, 그리고 무상교육 실현을 위해 불살랐다. 이러한 투사의 죽음은 프랑스를 깊은 슬픔에 빠트렸다. 의회는 휴회를 하고 위고의 장례식을 국장으로 치르기로 결정했다. 개선문 꼭대기에는 커다란 검은 베일이 걸렸다. 그의 시신은 개선문 아래 전시 돼 일반인에게 공개됐다. 말을 탄 기병들은 VH 이니셜이 새겨진 영구대를 밤새도록 지켰다. 파리의 언론들은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열일곱 개의 신문이 5월 23일 한 판을 검은 액자로 장식했다. 위고가 직접 창간한 ‘르 앙코르’ 신문의 기자들은 장례식 날까지 상복을 입었다. 일간지 ‘질 블라스(Gil Blas)’는 위고의
정부는 2025년의 오사카 엑스포 등으로 당초 불가능했던 엑스포를 부산에 유치하겠다고 만용을 부리다 낭패를 당했다. 사우디 리야드에 119 대 29로 참패한 것이다. 사우디 득표를 2/3 이하로 단속하고 결선투표에서 뒤집을 수 있다고 호언장담하며 국고를 쏟아 붓다시피 했으나, 사우디는 72% 득표로 가볍게 승리했다. 더 한심한 것은 실패의 원인 진단도 자가당착이라는 점이다. 주로 사우디의 오일 머니 탓이 많았는데, 정부도 6천억 원 가까이 썼다. 게다가 국제박람회기구(BIE) 총회에서 공개한 홍보 영상은 수준 이하였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에서 시작해 K-Pop 스타들에 의존하는 PT는 졸작 중의 졸작이었고, 국영 KTV는 엑스포 유치를 응원한답시고 사우디를 조롱하는 내용을 방송하기도 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년 반 동안 “96개국 정상과 150여 차례 만났고, 수십 개국 정상들과 직접 전화통화도 해왔지만 민관에서 접촉하면서 느꼈던 입장에 대한 예측이 많이 빗나간 것 같다.”고 말했다. 입버릇처럼 상투적으로 문재인 정부의 책임을 언급하기도 했다. 사과라고는 했지만 정작 무얼 잘못했는지는 모르고 있는 게 분명하다. 재벌 총수들을 대동해 부산을 찾아가 보여준…
1945년 8월 15일, 일제로부터 해방된 이 날은 14일부터 치러진 조선변호사시험의 둘째날이었다. 4일간 치르는 고시 도중 상법시험을 마치자 갑자기 일본인 시험감독관들이 달아나버렸다. 사태를 파악한 수험생들은 ‘이법회(법대로하자는 뜻)’라는 단체를 결성, 시험위원회를 압박해 전원 합격증을 받아낼 수 있었다. 한해 기껏 10명 전후의 합격자를 내던 시험에서 갑자기 남쪽에서만 106명의 법조인이 쏟아져나왔다. 그래도 일본인들의 빈 자리를 메꾸기에는 모자라 법원서기 경력자들에게 특별임용자격을 부여하는 시험을 실시해 판검사로 만들었다. 이들에겐 하늘에서 영감님 자리가 굴러들어오는 해방정국이었다. 벼락출세한 이력 때문에 법조 내부에서 자격지심에 시달리던 이들 중 일부는 자신의 정통성을 입증할 돌파구로 좌익척결에 매달렸다. 선배 판검사든 항일투사든 빨갱이로 몰기만하면 자기가 올라서는 판국이었다. 일제 때 판검사를 하다 해방을 맞아 과오를 반성하고 양심적으로 일하려던 사람들은 보도연맹을 만든 오제도 같은 사상검사들의 먹이가 되었다. 빨갱이라 찍어 재판에 넘기면 판사들조차 눈치판결을 내놓아야 했던 시절, 그렇게 대한민국 법조계는 기울어진 운동장이 되어갔고 군사정권을 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