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한 차례 어떤 난장을 치려는지 창문에 걸린 블라인드 줄 끈이 연신 난타 중이다. 텔레비전 화면에서는 제 19호 태풍 솔릭의 경로를 예고하면서 위력이 상당할 이번 태풍에 대한 철저한 대비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해마다 한 번쯤은 찾아오는, 대기의 흐름이 한 곳에 쏠리면서 강력한 힘의 기둥을 세우고 갖가지 피해 또는 영향력을 행사하는 무소불위의 태풍. 그런 태풍은 자연에서뿐만 아니라 인생에서도 여러 가지 꼴로 찾아오게 마련이다. 느닷없이 휘몰아치며 삶의 뿌리까지 흔들어놓는 갖가지 사건 사고 또한 인생의 태풍이 아닐까 싶다. 가족친지들 다 모여 화기애애하게 파티를 즐겼던 지난 어머니 칠순잔칫날. 그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돌아오는 경부선 고속도로에서 잠시잠깐의 실수로 내 자동차는 굉음을 울리며 곤두박질쳤다. 만신창이가 된 자동차 안에서 쉼 없이 울리는 비상벨 소리, 출동경찰의 끊임없는 질문, 여전히 질주하며 스치는 자동차들, 연거푸 들이닥친 견인차끼리의 경쟁, 넋을 잃고 널브러진 가족들. 아비규환이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고 없이 들이닥친 내 인생 중반의 태풍은 자동차를 폐차하고 몇 달간 후유증 치료를 하며 흐트러진…
4세 아이가 어린이집 통학버스에 갇혀 7시간이나 방치됐다가 숨진 이튿날에는 보육교사가 11개월짜리 아이를 몸으로 짓눌러 질식사시켰다. 지난달의 일이었다. “과거에도 비슷한 사례가 발생해 CCTV를 공개하는 등 나름대로 대책을 마련했는데 이런 대책이 소용없을 정도로 되풀이되고 있다.” “완전히 해결할 대책을 세워 보고하라”는 지시가 있었지만 아니 할 말로 현장의 관점이 여전하다면 학부모들은 위험지역에 무방비로 아이들을 내놓는 꼴이 된다. 그걸 보여주듯 그새 또 식사 시간에 아이들을 학대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집단지도에서 아이들을 바라보는 눈은 두 가지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전체적으로 바라보며 보살피고 가르치는 관점이 있다면 어느 한 아이도 전체와 똑같은 비중으로 소중하다는 관점이 있다. 전체적으로 바라보는 교육은 겉으로는 당연한 것 같지만 사실은 가장 쉽고도 졸렬하고 유치하다. 수준이 낮고 세련되지 못한 교육이다. 우리는 이 관점에 너무 익숙해서 탈피하기가 어렵게 되었고 심지어 가장 좋은 방법으로 착각하기도 한다. 아이들을 전체적으로 바라보게 되면 곧 뒤떨어지는 아이가 보이기 마련이고 그들이 성가신 존재가 된다.…
삶은 감자 세 알 /정진규 사무실 건물 환경원 아줌마가 옥상에 감자를 심어 길렀다고 오늘 캤다고 뜨끈뜨끈한 주먹만 한 감자 세 알씩을 사무실마다 돌리며 귀한 거니 잡수어보시라고 했다 세 알을 맛있게 다 먹었다 먹는 일이 제일로 귀하다는 걸 몸으로 알았다 점심을 먹으러 식당에 가지 않아도 되었다 귀하다는 말! 진종일 내가 귀했다 - 정진규(1939~2017) 시인의 시집 ‘공기는 내 사랑’ 중에서 귀한 감자를 본다. 감자 세 알을 맛있게 먹는 귀한 몸을 알게 된다. 옥상에 심었다면 수확이 많지도 않았을 감자를 이웃에게 돌리는 아줌마의 귀한 마음도 읽는다. 오늘은 무능과 무지와 부덕을 탓하며 내가 함부로 다루고 상하게 했던 귀한 내 몸과 마음을 보듬어주기로 한다. 작은 소리로 내가 귀한 내 이름도 한번 불러주기로 한다. /김명철 시인…
자영업자들이 결국 거리로 나섰다. 지난 20일 서울세종대로에서 최저임금 인상 철회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24일까지 5일간 광화문사거리 부근에서 천막농성을 갖는다. 한 일간지가 국내 1위 카드사인 신한카드에 의뢰해 올해까지 지난 10년간 가맹점 200만 곳의 상반기 중 창·폐업 현황을 조사한 결과 올해 상반기 중 20만 곳이 폐업했다고 한다. 2009년 기준으로 글로벌 금융 위기 직후 폐업한 16만4천곳보다 3만6천곳(22%)이나 늘어 역대 최대다. 그런데도 정부와 여당은 참으라고 한다. 경제가 최악의 상황임을 보여주는 지표는 또 있다. 국세통계연보에 따르면 지난해에 폐업 신고를 한 개인 및 법인사업자는 90만8천76명이다. 이러한 상태로는 올해 폐업하는 사업자가 100만명을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이것도 역대 최대기록이 된다. 거의 대부분이 음식점과 주점, 카페, 치킨집, 소매점 등을 운영하는 소상공인들이다. 이들이 거리로 뛰쳐나오고 있는 이유다. 최저임금이 인상여파로 신규 고용을 줄였는데도 견디지 못해 폐업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은행 대출도 자꾸 늘어 우리나라 전체 경제에도 큰 위협으로 다가온다. 사정이 이런데도 정부와 여당은 딴소리다.…
법을 다루는 사람들이 술을 좋아해서 그렇지는 않을 텐데 우리나라의 법은 술에 취해 저지른 범죄에 지나치게 관대하다. 조두순은 2008년 12월 안산시에서 8세 여아를 강간, 상해하는 천인공노할 범죄를 저지름으로써 한 사람의 일생을 망가트렸고 그 가정을 절망의 나락으로 밀어 넣었다. 사회에도 큰 충격을 줬다. 검찰은 무기징역을 구형했다. 그런데 재판부의 최종판결은 12년 형이었다. 만취에 따른 심신장애 상태를 인정하는 주취경감을 적용한 것이다. 쉽게 말하자면 이 끔찍한 사건이 ‘술 마시고 친 사고’라는 것이다. 그리고 흉악범인 조두순은 오는 2020년 12월 3일 출소를 앞두고 있다. 이에 청와대 게시판에는 ‘조두순 출소반대’ 청원 참여자 60만명을 넘었다. 그러나 이미 처벌받은 죄목에 대해서는 다시 죄를 물을 수 없는 ‘일사부재리’ 원칙으로 인해 재심이 불가능하다. 청와대 게시판엔 음주 범죄 감형을 없애 달라는 청원이 지금도 계속 올라오고 있다. 이런 와중에도 음주자들의 주취 폭행 등 범죄는 끊이지 않고 일어나고 있다. 응급실에선 술에 취한 환자가 의료진을 폭행하고 난동을 부렸다. 망치로 의료진을 위협하거나, 시너를 뿌리니 후 불을 지르고, 철로 된 트레이로
영국의 경제학자 콜린 클라크(Colin Grant Clark)는 경제진보의 제조건(The Conditions of Economic Progress, 1940)에서 각국 통계에 대한 국제 비교분석을 통해 산업구조를 제1차 산업, 제2차 산업, 제3차 산업으로 분류하고, 한 나라의 경제가 발달할수록 제1차 산업의 비중은 작아지고 2차, 3차 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커진다는 사실을 밝혀내었다. 제조업은 다양한 원료들을 가공하여 생활에 필요한 물건을 생산하는 산업으로서, 굴뚝이 있는 공장에서 산업 활동을 수행하기 때문에 굴뚝 산업이라고 하고 산업 분류에서는 2차 산업에 해당된다. 우리나라의 제조업 비중이 국내총생산(GDP) 대비 29% 정도라고 한다. 미국(12%), 일본(20%), 독일(22%) 보다 상당히 높은 수준인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속에서도 한국경제가 상대적으로 잘 버텼던 이유를 탄탄한 제조업을 기반으로 한 경제시스템에서 찾는 이들이 많다. 당시 한국은 서브프라임 사태로 촉발된 금융위기를 비교적 수월하게 극복할 수 있었는데, 그 비결은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조선, 반도체, 석유화학, 전자 등 국내 주력 제조업종들이 일시적 금융 충격에 흔들리지 않
동물과 구별되는 인간만의 특징 중 하나가 두발로 걷기다. ‘호모 에렉투스’ 즉 직립보행 하는 인간이 처음 나타난 게 150만년전이라 하니 제대로 된 걷기의 역사도 그만큼 오래됐다. 인류학자들은 직립보행하면서 두뇌 용량은 커졌고 자유로워진 두 손으로 문명도 창조 할수 있었다고 말한다. 근세 유럽 지식인들은 걷기를 특권처럼 예찬했다. 특히 니체는 “모든 생각은 걷는 자의 발끝에서 나온다”고 하며 찬양했다. 미국의 사상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다음과 같은 예찬은 더욱 빛난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걷기에 필요한 여가와 자유와 독립은 돈으로 살 수 없다. 걷는 자가 되려면 신의 은총이 필요하고 하늘의 섭리가 필요하다. 걷는 자가 되려면 걷는 자의 피가 흐르는 집안에서 태어나야 한다.” 걷기는 건강에도 더 없이 좋은 명약이다. 몸에 무리가 가지 않는 최선의 운동으로 두뇌 발달과 관계가 있다는 주장도 있듯 걷다 보면 몸뿐만 아니라 마음이 맑아지고 생각도 깊어지기 때문이다. 걷기가 사랑 받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 일 게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짬 날 때마다 혹은 오랜 기간 계획을 세워 먼 길을 떠나며 행복해 한다. 그렇다면 걷기의 속도는 얼마나 될까? 나이 건강 취
시편1편 말씀에 ‘복받을 사람은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가?’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저자인 다윗은 자신이 하나님의 은혜로 복을 받았으며 복을 모든 사람들에게 받으라고 권면하고 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나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악인들은 그렇지 아니함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그러므로 악인들은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들이 의인들의 모임에 들지 못하리로다. 무릇 의인들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 (시편1편 1-6절) 시편기자가 강조하는 복의 개념은 무엇일까? 첫째,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않는 자’다. 여기서 악인은 마귀가 주는 생각으로 나아가며 불의를 실행하는 사람을 의미하고 있다. 자신에게 득이 되는 일이면 서슴치 않고 탐욕과 아집과 교만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고 불행에 길을 자처하는 사람을 말…
낮은 자의 경전 /신혜정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 흐름의 끝이 어딘 줄 모르고 속도를 탓했던가요 바람이 불 때마다 바람의 자국이 남았습니다 자국을 없애는 일이 그저 쉬운 일이라면 계속 기꺼이 흘러갔을까요 고이면 안 되는 일이 숙명이었듯 잠깐 머문 당신이 남긴 자국, 아무도 모르게 감추는 나는 흘러가는 구름이고, 눈이고, 우박이고, 서리고, 이슬이고…… 대지를 덥히는 태양입니다 내가 아들을 낳고, 아들의 아들의 아들의 아들이 아들을 낳고…… 아들의 아들의 아들의 아들의 아들들이 태어날 때마다, 나는 낮아졌습니다 그것은 내가 남긴 자국을 하나씩 지우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세월이 흘렀습니다 강이 깊었습니다 - ‘여전히 음악처럼 흐르는’(2018) 수록 ‘낮은 자의 경전’이란 제목은 이 시집 전체를 관통하며 반복되는 핵심 이미지다. 통상 ‘경전’이란 공동체의 사유와 무의식, 윤리가 집중된 문장의 더미지만, 여기서의 ‘경전’은 시인이 세계를 바라보는 방향과 높이, 감각적 무게와 밀도를 압축한다. 그는 ‘물-이
경기도가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해 지역 화폐 발행 지원에 적극 나선다. 지역 화폐의 발행권자는 도내 31개 시장·군수지만 각 시·군 별로 종이상품권 카드상품권 모바일상품권 등 원하는 형태를 선택하면 소요되는 예산을 보조하겠다는 것이다. 지역화폐는 지역내에서 일정 규모의 사람들이 모여 서로 필요로 하는 물품이나 서비스를 교환함으로써 돈이 없더라도 어느 정도 필요한 소비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이다. 민선 7기 지방선거에서 많은 후보자들이 내건 공약으로 성남시에서는 성공을 거둔 것으로 평가됐고, 시흥시는 지난 4월 지역화폐에 관한 조례안을 통과시킨 바 있다. 경기도가 추산하고 있는 지역화폐 발행 규모는 2019년부터 2022년까지 4년간 총 1조5천905억 원이며 이를 위한 도의 예산 지원액은 4년간 모두 290억원이다. 1조5천905억원 중에서 7천53억원은 일반 상품권으로, 8천852억 원은 청년배당, 산후조리비 등 민선7기 주요 정책 사업용으로 발행되는데, 청년배당은 연 1천790억원, 산후조리비는 연 423억원을 지역화폐로 지급한다는 계획이다. 지역 화폐가 성공을 거둔다면 지역경제 활성화, 일자리 창출, 소상공인 매출 증대 등의 여러가지 실질적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