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한국의 정치는 실종의 계절이다. 정치는 문란하고 민심은 흉흉하다는 표현도 과하지 않다. 조국의 장관직 용퇴는 시기 적절했다고 보며 그런한 의미에서 그의 결단과 그의 눈물이 한국 정치 발전에 기여했으리라 본다. 이젠 그의 사퇴를 계기로 국론 분열과 정치 실종 사태가 회복되고 대화와 타협으로 상생의 정치 환경을 기대해 볼 뿐이지만, 갈 길은 멀 뿐이다. 산적한 정치적 현안들이며 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법과 검경수사권 조정안 등 검찰 개혁법안을 처리해야하는 각 정파와 여야의 대립과 갈등은 더욱 첨예할 것이 분명하다. 충분히 조율하고 타협해 국론분열이 더 이상 없기를 바라며 화합과 상생의 정치를 주문해 본다. 정치는 협치와 합의를 도출하고 양보할 것은 양보해야 함에도 현재의 여야는 그러한 상생과 화쟁과는 거리가 먼 대립과 분열의 정치로 세상을 두 쪽 내고야 말았다. 더욱이 군부가 물러가고 민간인이 통치하는 문민정부의 서막이 올랐지만 IMF 외환위기를 맞이 했고 실업은 증가해 가족이 해체되고 사회적으로 고립된 사람들이 늘어나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요동치는 차별화된 세상 속에서 인터넷 시대가 열려, 젊은 세대가 여론을 주도 하
취임 일성으로 ‘되돌릴 수 없는 검찰개혁’을 약속한 조국 법무부장관은 35일 만에 ‘검찰개혁을 위한 불쏘시개 역할은 여기까지’라며 사퇴했다. 조장관은 취임 당일 ‘검찰개혁 추진지원단’을 꾸렸고, 지난 달 30일에는 제2기 법무·검찰개혁위원회를 구성했다. 개혁위는 검찰의 직접수사를 축소하고 형사·공판부를 확대하는 권고안을 냈고, 형사부 검사파견을 최소화하고, 검찰에 대한 법무부의 감찰권을 강화하는 방안도 권고했다. 조장관은 지난 8일에도 개혁위와 대검찰청의 개혁방안을 검토해 직접수사 축소, 수사관행 개혁, 검찰에 대한 감찰확대 등을 발표했다. 사의를 표명한 14일에도 검찰 특수부 축소·폐지를 골자로 한 개혁방안을 직접 발표했다. 이 과정에서 검찰도 자체 개혁안을 발표했다. 서울중앙지검 등 3개를 제외한 나머지 검찰청의 특수부를 폐지하고, 공개소환·포토라인·피의사실공표·심야조사 등 수사관행을 개선하고, 외부 파견검사 전원복귀와 검사장 전용차량 이용중단 등이 포함됐다. 법무부와 검찰 간에 조율된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검찰개혁…
산지山地 /백석 갈부던 같은 藥水약수터의 산거리 여인숙이 다래나무지팽이와 같이 많다 시냇물이 버러지 소리를 하며 흐르고 대낮이라도 산옆에서는 승냥이가 개울물 흐르듯 운다 소와 말은 도로 산으로 돌아갔다. 염소만이 아직 된비가 오면 산개울에 놓인 다리를 건너, 인가 근처로 뛰여온다 벼랑탁의 어두운 그늘에 아츰이면 부헝이가 무거웁게 날러가 버린다 낮이 되면 더 무거웁게 날러가 버린다 산너머 십오리서 나무뒝치 차고 싸리신 신고 산비에 촉촉이 젖어서 약물을 받으로 오는 산아이도 있다. 아비가 앓는가부다 다래 먹고 앓는가부다 아랫마을에서는 애기무당이 작두를 타며 굿을 하는 때가 많다 이 시는 ‘조광’지 창간호에 발표한 작품으로, 백석시인이 삼방시를 개작한 작품이다. 우리가 살다보면 저마다 우환이 있는데, 이 시에서는 우환을 버리기 위한 속신의 어떤 행위를 통해 염원을 한다. 단정하고 응축미가 돋보인 이 시는 인간의 체취가 물씬 묻어나는 진술이다. 산지는 온통 산으로 둘러 농사를 짓는 들과 논이 거의 없는 산촌을 말한다. 이 시를 통해 백석 시인이 구체적인 생활현실과 삶을 바쁘게 쫓아가는 자신의 시적인 경향을 읽을 수 있으며, 사람들의 무거운 삶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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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시와 시의회가 경기동부보훈지청과 함께 1919년 용인 3·21 만세운동에 참가했던 독립운동가들을 발굴, 국가에 포상을 신청했다. 처인구 원삼면 일대 서훈을 받지 못했던 독립운동가 20명이 대상이다. 100년 만이다. 원혼(寃魂)의 한이 조금이나마 풀리기를 간절히 바란다. 늦었지만, 그래서 죄송하지만 정말 잘된 일이다. 지자체와 지방의회가 국가기관과 함께 독립유공자에 대한 포상을 신청한 것이 처음이라고 알려졌다. 그래서 마냥 기뻐하기에 저어된다. 해방이후 정부들이 독립운동가들을 외면했던 건 아닌가 의심되기 때문이다. 이번 포상 신청 계기는 시가 지난 8월 보훈지청과 원삼면 주민센터 문서고에서 수형인 명부를 찾아내면서다. ‘3·1 만세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의 하나다. 명부에는 당시 일제의 악랄함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일제는 독립운동가 20명에게 태형(笞刑) 90대를 가했다. 인면수심(人面獸心)이 벌인 주객전도(主客顚倒) 행위다. 일제는 이름과 생년월일, 주소, 출생지, 판결연도일 등을 상세하게 기록했다. 또 죄목과 형의 명칭을 남겼다. 아이러니하게 독립유공자 포상을 신청하는데 결정적인 증거자료가 됐다. 독립운동가 20명은 ▲
지난 2016년부터 인천에서 발생한 성폭력범죄 재범률은 4.6%였는데 3년 만에 6.2%로 늘어났다. 같은 기간 가정폭력범죄 재범률은 2%에서 13.2%로 상승했다. 무려 6배나 상승한 것이다. 이는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김한정 의원(더불어민주당, 남양주을)이 인천지방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나타난 것이다. 자료에 따르면 지난 5년간 인천시에서 발생한 성폭력범죄는 1만314건, 가정폭력신고는 8만9천85건이나 됐다. 그런데 가정폭력의 경우 범죄 신고 건수는 9만 건에 달하는데 정작 검거건수는 1만2천390건에 불과하다고 한다.(본보 16일자 4면) 왜 그럴까? 경찰이 가정폭력을 가족 내에서 발생한 문제라며 소극적으로 대처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재발의 악순환을 막기 위해서는 전문상담 기관의 상담과 심한 경우 보호조치까지 필요하지만 가정폭력 재발 우려 802가정 중 전문상담기관의 상담에 동의한 가정은 421가정 밖에 되지 않았다. 김한정 의원의 지적처럼 가정폭력범죄 재범률이 계속 증가한다는 것은 바람직한 사회현상이 아니다. 이는 인천시 만의 문제가 아니다. 2018년 여성 긴급전화(1366) 상담이용 건수는 2017년보다 21.9% 증가한 총 3
사람들은 저마다 타고난 성격과 재능을 가지고 세상과 마주한다. 문학촌에서 머무는 작가들과 어느 날 교외로 나섰다. 식당을 찾는 길이었다. 비는 내리고 야심한 시골길을 한 시간 가량을 돌다가 발견한 불빛을 따라 찾은 인가에는 부부가 때늦은 저녁식사를 고즈넉이 하고 있었다. 낯선 사내 세 사람을 친절하고 다정하게 맞아줬다. 식탁주변으로 둘러진 영화포스터가 눈에 들어왔다. 영화 영사기 기사 김운석 선생을 그렇게 만났다. 영사기 40대와 렌즈, 수 만장의 포스터며, 세월을 넘긴 16미리, 36미리, 100미리 필림들이 질서정연하게 가득 쌓여있었다. 감탄이 절로 났다. 그의 영화인생을 들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사람들은 역경과 좌절, 그리고 갈등과 대립으로 힘겨운 시련을 누구나 한번쯤 겪는다. 실제로 45년 영화인생으로 적지 않은 파고를 겪으면서 영화의 시대를 살았다. 정미소를 하시던 부친의 퍼주는 인심에 결국 가세가 흔들려 중학교도 마치지 못하고, 가설극장 영사기보조 시다를 시작으로 오늘에 이르렀다. 지금은 아들내외까지도 크고 작은 한국영화제에서 영사기를 틀어주는 가업을 이었다. 분신처럼 영사기를 지니고 살아온 추억은 인생역정의 드라마요 소설이었다. 필림 영사기와…
나라가 시끄러운 가운데 지난달 30일 오후 6시 수원 화성행궁 유여택 안마당에서 ‘수원화성 제1회 KS 세계시낭송축제’가 열렸다. 국내 최고 시인들과 수원을 대표하는 시인들이 멀리 유럽의 루마니아, 몰도바,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를 비롯해 중국, 러시아, 베트남 등 세계 각국에서 온 시인들과 함께 한 명실공히 세계적인 시축제였다. 사단법인 시사랑문화인협의회와 수원시, 수원문화재단, 한국시인협회, IBK기업은행 등이 후원한 이번 축제에 참가한 외국 시인들은 ‘유여택’이라는 공간에 특별한 관심을 보였다. 유여택은 수원시 화성행궁에 있는 건물로 평상시에는 화성유수가 거처하다가 정조대왕 행차시에 잠시 머무르며 신하를 접견하는 곳이었다. 정조는 약 500여 편의 시를 쓴 인문군주다. 약 200여 년을 거슬러 올라가 정조의 시 정신에 화답하듯 각자 시를 낭송할 때 비록 언어는 다르지만 모두 알 수 없는 마음의 흔들림이 있었다고 했다. 앞선 기자회견에서 몰도바 공화국의 국민시인으로 추앙되는 니콜라이 다비자는 국경을 지날 때마다 여권검사를 하는 대신 시를 한편 읽어주면 좋겠다는 제안을 이미 정부당국에 한 바 있다고 말해 큰 박수
엊그제(15일) 설악산에 첫눈이 내렸다. 강원기상청에 따르면 해발 1708m의 설악산 대청·중청봉 일대에 이날 새벽부터 내리던 비가 진눈깨비로 바뀌면서 첫눈이 관측됐는데 쌓이지 않아 적설량은 기록돼지 않았다는 것. 첫눈 관측은 지난해 10월18일보다 3일 빠른 것이다. 물론 과거에 비해 이르긴 하다. 단풍도 지지 않았는데 첫눈 소식을 접하니 올해도 얼마남지 않은 것 같아 마음이 착찹하고 서늘하다. 그러나 작은 위안도 있다. 깊은 산중이 아니라 도시에도 곧 첫눈이 내리고 소식을 접한 많은 사람들이 삶 속에 묻혀 있는 추억을 꺼내 아름답고 순수했던 시절을 회상할 것이기 때문이다. 첫눈이 내리면 삶에 지친 마음도 푸근해진다. 아쉬웠던 순간, 힘들고 괴로웠던 순간보다는 행복하고 희망있던 시간이 더 생각난다. 그리고 첫눈을 보고 있노라면 팍팍하고 삭막해진 마음엔 한줄기 따스한 바람이 분다. 시인 정호승은 그런 맘을 이렇게 적었다. ‘첫눈 오는 날 만나자/ 어머니가 싸리 빗자루로 쓸어 놓은 눈길을 걸어/ 누구의 발자국 하나 찍히지 않은 순백의 골목을 지나/ 새들의 발자국 같은 흰 발자국을 남기며/ 첫눈 오는 날 만나기로 한 사람을 만나러 가자’고 했다. 이번 설악산에…
1916년 스위스 취리히의 ‘카바레 볼테르’라는 공간에서 한 남자의 기상천외한 공연이 펼쳐졌다. 휴고 발이라는 이름의 독일 출신의 젊은 예술가는 마분지로 희한한 공연의상을 만들어 걸친 후 홀로 무대에 섰다. 흡사 ‘오즈의 마법사’에 등장하는 양철 나무꾼과 같았다. 마분지를 둥글게 말아 몸과 다리, 팔을 감쌌고, 마분지 망토와 모자도 걸쳤다. 그는 이 자리에서 ‘카라바네’라는 제목의 시를 읊는다. ‘올라카 올랄라 알로고 붕 블라고 붕….’ 문방서 블로그 아트살롱 그 누구도 정확한 뜻을 알 수 없었다. 아무런 의미도 지니지 않는, 그저 소리로만 존재하는 시구였기 때문이다. 유럽의 각지에서 전쟁으로 인해 상처 입은 젊은 예술가들은 중립국 스위스라는 작은 섬을 찾아와서 놀라고 아픈 가슴을 이처럼 황당한 퍼포먼스로 표현을 했다. 오즈의 마법사에 등장하는 양철 나무꾼은 심장을 잃어버린 인물이었지만, 스위스의 젊은 예술가들은 언어를 상실해버린 이들이었다. 전쟁으로 너무나 큰 충격을 받아 실어증에 걸린 환자와도 같았다. 이곳 ‘카바레 볼테르’는 중립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