닻 /함민복 파도가 없는 날 배는 닻의 존재를 잊기도 하지만 배가 흔들릴수록 깊이 박히는 닻 배가 흔들릴수록 꽉 잡아주는 닻밥 상처의 힘 상처의 사랑 물 위에서 사는 뱃사람의 닻 저 작은 마을 저 작은 집 - 함민복 시집 ‘말랑말랑한 힘’ 우리는 삶이 편할 때 지난 일을 잊는다. 힘들었던 날들 속에 나를 잡아주고 견인해주던 사람들, 그들을 잊는다. 하지만 우리는 그 고마움을 잊고 살아갈 수가 없다. 네가 있어 내가 있고 내가 있어 네가 있는, 그것이 바로 한 그물처럼 우리를 엮어주고 이어주는 힘이다. 망망대해에 생계를 걸고 있는 뱃사람들은 모든 것을 닻에 의지한다. 언제 들이닥쳐 모든 것을 빼앗아갈지 모르는 풍랑, 그 거센 파도와 싸우며 상처를 다스리고 다시 서는 사람들은 서로가 배가 흔들릴수록 깊이 박히는 닻이며 서로를 꽉 잡아주는 닻밥이다. 그 까닭에 어촌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작은 마을이 작은 집들이 유난히 정겨워 보이는 것이다. /서정임 시인
고등학교에 단 17일 출석하고도 당당히 졸업장을 받았다. 그러면서 ‘잠 자느라 학교에 안 왔다. 나는 갈 대학이 이미 정해져 있다’고 공공연하게 친구들에게 말했다고 한다. 대학입학시험에서도 엉뚱한 수험생에게 실기에서 낙제점을 주어 떨어뜨리고, 정씨에 대해서는 최고점을 주어 턱걸이로 합격시켰다. 대학에 다니면서도 출석하거나 시험을 보지 않았는데 출석을 인정하고, 학점을 부여했다. 누가 보아도 우연의 일치가 아닌 조직적인 입시비리이자 특정인에 대한 특혜였다. 정씨가 다닌 청담고와 이화여자대학교에 대한 감사에서 이같은 사실이 드러났다. 엊그제 수능시험을 본 60만 명의 수험생과 그 부모들에게 이루 말할 수 없는 허탈감을 주었다. 오죽하면 일부 수험생들이 수능시험이 끝나자마자 촛불시위 현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는지 그 심정을 헤아릴 만하다. 국정농단도 모자라 최순실 모녀는 교육계도 농락했다. 거기에 놀아난 학교들도 큰 문제였다. 지금이 어느 때인데 이같은 학사비리가 가능했었는지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다. 비선실세의 딸 한 명에게 몰아준 특혜가 130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이화여대를 한순간에 추락시키고 말았다. 교수와 학생들이 들고 일어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게 나
‘5% 지지율’의 대통령이 고집을 부리면서 국민들을 절망이 깊어지고 있다. 연일 전국에서 ‘퇴진’시위가 벌어져 시국이 어수선한데 이제는 고병원성 AI(조류 인플루엔자)까지 창궐할 조짐이 보인다. 최근 충남 천안과 전북 익산에서 올 겨울 첫 고병원성 AI(조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검출된 데 이어 충북 음성군과 전남 해남군에서도 의심신고가 들어와 방역에 비상이 걸렸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 11일 충남 천안시 봉강천에 채취한 야생조류 분변과, 16일 전북 익산시 만경강의 야생조류에서 최종적으로 ‘H5N6형 고병원성 AI 바이러스’가 검출됐다고 발표했다. 뿐만 아니다. 충북 음성군 맹동면 육용오리 사육농가에서 지난 16일 오전 10시30분쯤 1만500마리 오리 중 250마리가 집단 폐사, 의심신고가 접수됐다. 또 전남 해남의 산란계 농장에서 닭 4만여 마리 중 2천여 마리가 폐사했다고 방역당국에 신고했다. 검사결과가 나와 봐야 알겠지만 전례를 보면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 이에 따라 농림축산식품부는 다른 지역의 가금류 농장 유입을 막기 위해 방역을 실시하고 있다. 조류인플루엔자 방역실시요령에 따라 검출된 지점을 기준으로 반경 10㎞ 이내 지역을 ‘야생조류 예찰지
매년 11월19일은 아동복지법으로 제정된 아동학대예방의 날이다. 이날부터 일주일 동안은 ‘아동학대 예방 주간’으로 정하고, 모든 국민에게 학대의 심각성과 아이들의 고통을 세상에 알리고자 하는 기간이다. 어른들은 학대를 예방하기 위해 관심을 가져야 하고, 부모들은 올바른 자녀 훈육방법을 다시 생각하자는 의미를 가진다. 이번 아동학대예방주간에는 우리사회에서 어떤 부분이 미흡해서 아이를 놓치게 되었는지 반성을 하는 시간을 가진다. 맨발로 탈출한 11세 소녀부터 말을 듣지 않는다며 맞아서 사망한 아이, 나쁜 습관을 고쳐야 한다며 매를 맞고 햄버거를 먹다가 사망한 아이 등 학대로 세상을 떠난 아이들에게 안타까움과 미안함을 전한다.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아동학대는 옆집 아저씨나 수상한 타인에게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지난 아동학대 개입 통계를 살펴보면 80% 이상이 부모에게서 일어나는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그 중에 30% 이상의 이유가 양육방법을 잘 몰라서 아이들을 훈육한다며 때리다가 벌어지는 것이다. 이런 사건들이 벌어질 때마다 많은 부모들은 훈육과 학대의 기준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럼 학대와 훈육은 어떻게 구분될 수 있을지 알아보자
새벽 이불 속이 따스하다. 창문으로 얼비치는 하늘을 더듬다 말고 핸드폰이 궁금해졌다. ‘오늘 담임선생님은 누굴까? 농띠그룹 회장직을 맡고 있다는 그 선배님일까? 아니면 내 친구 금와, 그도 아니면 예쁜 수영후배?’ 여기까지 생각하다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핸드폰을 열었다. 아, 오늘의 담임은 17회 선배님. 오늘 공부(숙제)의 주제는 주변 사람들에게 하는 칭찬릴레이. 이미 수업은 날개를 달기 시작했다. 솔선수범 궂은 일 마다않는 후배도 칭찬하고, 치매환자 시모님 병간호에도 환한 미소 잃지 않는 큰 언니, 언제나 푸짐한 너스레로 웃음을 선물해준다는 친구까지. 각자 제출하는 숙제로 봇물 터지듯 흘러넘치는 칭찬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했던가, 나에게 하는 칭찬이 아닌데도 마치 내가 듣는 칭찬인 듯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그렇게 출근 준비를 하고 틈틈이 날개달린 칭찬을 확인하며 히죽히죽 웃기도 하고 울컥, 감동받기도 하다 저녁을 맞으면 담임선생님이 알아서 종례를 해 주시는 모이소 학교. 얼마 전 내가 같은 중학교를 졸업했다는 이유로 입학하게 된 참, 희한한 학교다. 시골 중학교 서울 총 동문들의 밴드 학교. 학생들은 연세 드신 선배부터 파릇파
대통령과 측근의 국정농단 사태가 온 국민을 충격에 빠트리고 있다. 100만이라는 국민이 일상을 내려놓고 거리에 나와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무능하고 부도덕한 권력을 향해 저마다의 구호들을 쏟아내고 있다. 그 중에서도 빈번하게 눈의 띄는 것이 ‘이것도 나라냐’라는 탄식 섞인 구호이다. 최근의 사태를 보며, 국가란, 민주주의란 무엇인가에 대해 다시금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보게 된다. 우리가 진보와 보수를 논하고 있을 때, 정작 대한민국은 기본적인 국가 시스템도, 가장 근본적인 민주주의 질서도 이루어지지 못한 나라임을 직시하게 되었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에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며,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명시되어 있다. 국가가 특정 권력층에 의해 좌지우지 되어서는 안되며, 국민이 곧 국가권력임을 이 부끄러운 역사를 통해 다시 한번 깊이 새겨야 할 것이다. 복지에 있어서도 국가는 매우 중요하다. 복지는 단지 제도나 정책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국가의 민주주의적 토대와 사회적 신뢰가 뒷받침 되어야 한다. 복지를 위한 재원은 국민이 내는 세금에 의존하며, 국민이 기꺼이 세금을 내기 위해서는 그…
‘나쁜 일이나 음모가 끊임없이 행해지고 있는 악의 근거지’라는 뜻의 복마전(伏魔殿) 하면 20세기 마지막 무법지라 불렸던 홍콩의 구룡성채(九龍城寨)가 자주 등장한다. 구룡채 성(城)으로 부르기도 했던 이곳은 청나라 관청이 있던 곳이다. 그래서 아편전쟁 이후 영국이 홍콩을 지배하게 됐으나 이곳만은 중국 관할지역으로 남아 있었다. 면적은 불과 0.03㎢이었지만 홍콩 내 형식상 중국 영토였고 지역의 특수성 때문에 양국 모두의 주권이 미치지 못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중국 내전이 일자 많은 난민들이 홍콩으로 밀려왔고, 사실상의 주권 공백지대인 이곳으로 유입됐다. 그리고 30여년 만에 길이 210m, 폭 120m, 8천여 평 구역 안에 5만여 명이 사는 세계 최고의 인구밀집지역이 됐다. 구역 내 건물들은 15층 높이의 소규모 아파트가 한 데 뭉쳐있는, 마치 거대한 콘크리트 덩어리 모양으로 형성됐다. 미로 같은 그 안에서는 매일 매일 살인, 매춘, 마약, 도박 등 세상의 모든 범죄가 끊이질 않았다. 대낮에도 어두침침해 마치 악마가 튀어나올 것 같다 해서 마계(魔界)라고도 불렀다. 구룡성채는 1993년 철거됐고, 지금은 공원이 들어서 있다. 영국에서는 실낙원에 나오는…
소매와 손목 /최연수 소매를 걷어붙인 손이 소매 없는 생닭을 탁 탁 쳐준다 소매 올린 시간만이 유일한 힘, 어느새 손목은 옷 속에 숨고 시간을 떨이한 밋밋한 무늬 속엔 뻐근한 팔목이 있다 화사한 소매가 감춘 손은 칼 같다 손목을 쓰지 않는 손은 언제 휘두를지 모를 권력 소매 밖으로 자라는 거대한 손을 가리기위해 옷은 화려해지고 손목단추마저 채운다 칼자루는 칼의 손목, 작업과 상처 사이에 아슬한 각도가 있다 불빛 소매가 내려지면 소매를 내린 칼이 도마를 문 채 잠든다 아침이 다시 시원스럽게 팔을 걷어붙이면 손목 드러난 손이 소매 올린 칼의 손목을 잡는다 힘은 손목에서 나오지만, 소매 올린 손은 권력이 없다 힘은 손목에서 나온다. 손목에 힘을 줄수록 쉽게 물체를 자르거나 부술 수 있다. 그러나 살면서 힘만으로 되지 않는 것을 실감한다. 손목 한번 쓰지 않고 그 위력을 발휘하는 권력. 권력에 맛을 들일수록 노동과는 멀어진다. 밋밋한 소매와 화려한 소매, 팔을 걷어 부친 손목과 소매로 가린 손목의 역할은 확실히 구분된다. 우리는 입으로 노동의 가치를 말하면서도 권력을 동경하니, 삶은 늘 이율배반이다. /박병두 문학평론가
최근 몇 년들어 우리나라에서도 도시 활성화를 위해 문화예술을 결합한 도시재생에 대한 활달한 시도가 지속되고 있다. 또한 해외의 성공사례를 통해 어떻게 도시를 활성화시키고, 도시재생을 통해 창조도시로서 발전시켜나갈 것인가에 대해 연구들이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전통문화와 현대문화의 조화 속에 도시를 성장시켰던 유럽 등 문화선진국 경우와는 다르게 우리나라는 개발도상국으로서 경제발전을 최우선시하였기 때문에 문화예술을 통한 도시재생에는 관심이 지금까지 관심 밖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젠 도시의 선진화를 위해 문화예술의 힘이 중요하게 대두되게 되었다. 지역민들의 문화욕구가 급속히 늘어나면서 국가에선 사회의 균형발전과 더불어 지방자치단체에선 지역도시의 경쟁력 확보 차원에서, 그리고 활기찬 지역사회를 만들기 위해 문화예술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다. ‘창조도시론’의 저자인 런던대학교 리처드 플로리다교수의 ‘거주지와 행복에 관한 조사’에 의하면 선진화 도시는 다음과 같은 정의로 그 균형발전을 살피고 있다. 우선 치안과 경제적인 안정, 공공 서비스가 원활함, 도시 지도자의 자질과 실행력, 도시의 유연성과 개방성, 경관, 쾌적성
간디는 ‘폭력은 더 큰 폭력을 불러온다’는 신념을 설파하며 평생 비폭력 저항운동을 펼쳐왔다. ‘이같은 간디의 위대한 여정은 결국 인도 독립으로 이어졌다. 마하트마, 즉 ‘위대한 영혼’이라는 이름답게 간디는 훗날 이렇게 말했다. “진리는 신이다. 신을 발견하는 길은 비폭력이다. 분노와 두려움과 거짓을 버려야 한다. 정신이 정화되면 당신은 힘을 갖게 된다. 그것은 당신 자신의 힘이 아니다. 그것은 진리의 힘이다.” 간디의 영향을 받은 티베트의 달라이 라마도 비폭력 상징 중 한사람이다. 줄곧 중국을 상대로 비폭력 독립운동을 전개해온 그는 1989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독재에서 민주주의로’라는 책을 쓴 미국의 비폭력 직접행동 연구자 진 샤프 박사도 빼 놓을수 없는 유명 비폭력 운동가다. 그는 미국 보스턴 외곽의 낡은 집에서 개 한 마리와 난을 키우며 조용히 혼자 살고 있는 80대 후반 노인이다. 하지만 세계적으론 비폭력 시민혁명의 이론적 토대를 제공한 주인공 이어서다. 수 십년 동안 비폭력 운동을 통해 지구상에서 독재를 종식시키는 방법을 연구해온 그는 이 책에서 ‘198가지의 비폭력 운동’ 방법까지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버마 민주화 운동 그룹의 요청으로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