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건 다 그놈의 퍼센티지(%) 때문이다. 시청률, 청취율, 지지율, 취업률, 자퇴율, 퇴사율, 할당률, 가입률, 방어율 등등 그저 ‘율율율’하는 세상 탓이다. 모든 걸 다 정량평가로만 하기 때문이다. 한국사회에서 정성평가는 사라진지 오래됐는데 특히 교육분야가 그렇게 됐으며 그건 대략 이명박 대통령 시절부터 시작된 것이다. 오렌지가 아니라 ‘어륀지’라며 영어 발음 교육을 강조하는 교육부 장관 기자회견 때부터 수상한 분위기가 감지됐었다. 정량평가(定量平價)는 양을 중심으로 한다. 무조건 실적 위주다. 이에 비해 정성평가(定性平價)는 내용과 가치를 중시하는 평가다. 모든 게 다 정성적이어서도 안되지만 모든 게 다 정량적이어서도 안 된다. 특히 정량평가로만 기울어 있는 사회에서는 결과에 대해 그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일이 벌어진다. 모든 걸 다 수치 탓으로 돌리기 때문이다. 정주리 감독의 의미 있고 인상적인 작품 ‘다음 소희’는 바로 그렇게 정량평가화된 사회가 자행하는, 그 안에서 기생하는 무한대의 관료주의가 빚어내는 비극과 참사에 대한 이야기를 그린다. 영화는 다소 무거운 주제임에도 한치의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긴장을 이어 나가게 한다. 사회적 리얼리즘 계열
[ 경기신문 = 이성훈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