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구역 통합 논의가 급물살을 타게 됐다. 행정안전부가 10일 경기도내 통합대상 지역 3개권역 9개 시를 공식 발표함으로써 통합 절차가 사실상 시작됐고 통합 대상 작업이 순조롭게 진행될 경우 내년 7월1일 인구 100만명을 넘는 초대형 기초자치단체가 탄생하게 된다.
그러나 정부 주도의 행정구역 통합 작업이 순조롭게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벌써부터 행정구역 통합을 위한 여론조사 결과를 둘러싸고 찬성률이 50% 이하인 성남(49.3%)이 통합 대상지역으로 선정된 점 등 기준이 모호하고 조사 결과에 신뢰성이 떨어진다는 공정성 논란이 일고 있고 정부의 일방적인 밀어붙이기 형태로 진행되고 있는데 따른 반발도 만만찮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들 지방자치단체에서는 향후 해당 지방의회의 의견 수렴이나 주민투표 등의 절차를 거쳐야 해 이 과정에서 일부 행정구역 통합이 무산되는 것은 물론 중앙정부와 지자체 또는 지자체간의 갈등이 초래될 가능성도 적지 않다.
▲여론조사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이날 성명을 통해 “극히 일부 주민에게 찬반을 묻는 여론조사는 질문 방식과 조사 대상에 따라 그 결과가 달라진다”며 “이번 조사는 법적 근거도 없을뿐더러 불공정하게 진행됐다”고 지적했다.
행안부는 애초 주민의견 조사에서 찬성률이 50%를 넘는 지역에만 통합을 추진한다고 밝혔으나 무응답 비율을 감안해 50% 이하인 지역도 찬성률이 반대율보다 높으면 통합을 진행하기로 방침을 바꿨다.
특히 찬성률 기준 변경으로 성남·하남·광주가 통합 대상지역으로 포함된 셈이다.
이와 관련, ‘지방자치수호를 위한 관제졸속통합 저지 시민대책위’(위원장 조상정 이덕수)는 “의견조사에서 ‘모름’과 ‘무응답’ 의견을 더할 경우 성남시민의 찬성 응답은 전체의 49.3%로 50% 미만”이라며 “그러나 이를 빼고 찬성과 반대 의견만을 100% 비율로 계산해 조사 결과를 조작했다”고 주장했다.
반면 행안부는 “찬성률이 50%에 미치지 못하는 지역도 반대율보다 높으면 기회를 주는 것이 합당하다”는 판단이다.
행안부는 또 여론조사 신뢰성을 높이기 위해 조사 대상자를 성과 연령, 지역(기초의원 선거구)별로 할당했고 특히 표본 크기를 정확성과 경제성을 고려해 최적의 인원인 1천명 내외로 정했다고 설명했다.
표본 수가 커질수록 ‘표본오차’가 줄어들지만 각종 ‘비표본오차’의 발생 가능성이 커지게 돼 표본 수가 클수록 정확한 조사라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달곤 행안부 장관은 “통합을 5개 한다고 상을 받고 2개 한다고 벌을 받고 하는 것은 아니다”며 “여론조사 결과는 해당 지역 지방의회에서 토론하는 데 필요한 참고 자료”라고 말했다.
▲주민투표 우선순위에도 정부와 이견
경기도는 통합대상 지역으로 수원·화성·오산 등 3개 지역이 포함된 것과 관련, “주민투표를 해야 한다”며 행안부의 통합 절차에 재차 제동을 걸었다.
김문수 지사는 성명서를 통해 “시·군 통합은 지방자치의 주체이자 직접적인 이해 당사자인 해당 지역의 주민이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며 “반드시 주민투표를 실시해 결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해당 지방의회에서 찬성 의결을 하면 곧바로 통합을 확정하고, 지방의회 반대 시 주민투표를 한다는 행안부 방침과 배치되는 것이다.
수원, 오산과 통합이 추진되는 화성시의 최영근 시장도 “극단적으로 말하면 결혼하기 싫은데 결혼하라는 것과 같다”며 “조사대상 선정기준, 지역편차 등 여론조사 신뢰도에 의문이 생긴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화성시는 찬성률이 56.3%, 반대율이 43.7%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이 장관은 “행정구역 통합은 철저하게 주민 의사에 기초해 지방의회 의결이나 주민투표를 거쳐 결정되고 최종적으로 국회가 의결하는 사안”이라며 “행안부가 주도하는 것은 아니다”고 해명했다.
이에 따라 향후 지방의회의 의결이나 주민투표 등 과정에서 일부 지역의 경우 행정구역 자율 통합에 진통을 겪는 것은 물론 여론조사 결과와 달리 자칫 통합이 무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태다.
▲ 열쇠 쥔 시의회, 지역마다 오락가락
의견 청취를 통해 통합 절차를 좌우하게 될 시의회 의원들은 공이 의회로 넘어온 것을 부담스러워 하는 눈치가 역력하다.
경기도내 3곳의 지자체마다 확연한 온도차를 보였다.
성남·광주·하남시만이 이번 결과에 공통된 지지를 보냈지만 주민투표로 해야한다는 기본입장을 보이고 있다.
의원 5명에 불과한 하남시의회 김병대 의장(한)은 “이렇게 큰 사안을 의원 5명이 결정하기엔 부담이 너무 크고 충분한 의견 수렴이 어렵다고 본다”며 “주민들의 여론을 수렴하기 위해 노력하겠지만 최종 결정은 주민투표로 하는 게 옳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광주시의회 이상택 의장(한)도 “통합과 같은 중요한 사안을 의회 의결로 가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게 의원들의 대체적인 생각”이라고 했다.
수원·화성·오산시는 수원시만이 시와 의회가 찬성 의견을 냈을 뿐 화성·오산시는 반발했다. 화성·오산시만의 통합을 주장해 온 오산시는 ‘수원 흡수론’에 따른 변방 전락을, 화성시는 정부가 억지로 통합을 추진한다며 반발했다.
안양·군포·의왕시 역시 규모가 큰 ‘안양시’에 대한 군포·의왕시의 견제가 심했다. 안양시의회만이 이번 결과에 지지를 보냈고 군포·의왕시의회 의원들은 반대 의견이 우세했다. 이동수 의왕시의회 의장은 “행정안전부의 일정을 따르겠지만 통합에 반대하는 의원이 많다”고 전했다.
▲행정구역 통합 과연 효율적인가
행안부 의도대로 통합이 마무리될 경우 초대형 자치단체가 나타난다.
수원·화성·오산의 경우 면적 852㎢에 인구 175만명, 성남·광주·하남의 경우 면적 665㎢에 인구 132만명으로 통합이 성사되면 서울시 면적(605㎢)보다 넓고 광역시인 울산(112만명)·광주(143만명)·대전(149만명)을 능가하는 거대도시가 탄생한다.
정부는 행정구역 통합 추진이 행정의 효율성을 위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인구 100만명의 기초단체가 주민밀착 행정을 펼치기에는 무리라고 보고 있다.
국내에서도 전남 여천시·여천군·여수시가 1998년 통합됐지만 실제 주민들의 편익이나 지방 행정 효율성도 예상했던 것만큼 나타나지 않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3개 지역이 통합된 뒤 생활권 확대로 인한 행정 불일치와 한곳에 집중화된 혐오시설로 인한 민원발생, 행정구역 확대로 늘어난 세금부담, 계층간 갈등 등이 심화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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