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감이란 현재 자기가 처해있는 환경의 절대적 수치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처해있는 환경과 비교하는 상대적 수치라고 한다. 그래서 행복의 수치를 ‘상대적 박탈감’이라고 했던가보다. 현재를 화려했던 과거와 비교하거나, 자기와 관계없는 사람들과 비교하며 자신을 끝없이 좌절시키는 일이야말로 인생을 불행하게 만드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하버드대학의 ‘벤저민 프리드먼’ 교수는 사람들의 행복은 자신의 생활수준을 중심으로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활수준과 다른 사람들의 생활수준을 비교해서 상대적 관계로 정해진다고 한다. 그래서 사람들이 자신의 처지를 평가하는 방식은 그들이 스스로를 누구와 비교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한다.
즉 사람들이 느끼는 박탈감은 그들이 직접 경험하는 물질적 빈곤수준과 직접적으로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빈곤지역의 작은집에서 사는 일가족들은 주변에 사는 사람들과 거의 비슷비슷한 처지에 있기 때문에 빈곤감을 거의 못 느끼다가도, 잘 사는 사람들 몇몇이 들어와 그들 주위에서 살게 되면, 그 때부터 박탈감을 느끼기 시작하여 훨씬 더 불행을 느낀다고 한다. 하바드 대학의 연구결과에 의하면, 사람들에게 첫째로 주변 사람들의 연봉이 2만5천 달러인데, 당신의 연봉이 5만 달러인 경우와, 둘째로 주변사람들의 연봉이 20만 달러인데, 당신의 연봉이 첫 번째보다 5만 달러가 더 많은 10만 달러를 준다면, 당신은 어느 경우를 선택하겠는가? 라고 물었더니, 대부분의 사람들은 첫 번째를 더 많이 택했다고 한다.
그 이유를 물었더니, 절대적인 수입과는 상관없이 비록 적은 연봉이라도 그 돈이 주변 사람들보다 더 많은 것이라면 훨씬 더 만족하기 때문이라고 했단다. 일반적으로 좋아하고 만족하다는 건 행복하다는 뜻이다. 내가 얼마를 받든 상관없이 내가 남보다 더 많이 받는다는 것이 더 행복하다는 의미다. 그런데 경제학이나 사회학에서는 사람들의 생활수준이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상대적 지위에 집착하기보다는 마음의 여유가 생겨 훨씬 더 아량과 포용력을 품게되어 대인관계에 있어서도 알력을 조화롭게 극복하려는 경향이 높아진다고 한다.
반대로 생활수준이 낮으면 자신의 경제적 위치를 남들과 자꾸 비교하게 됨으로써, 좌절감이 점점 더 확대되기 때문에 사회관계에서의 알력도 커져간다고 한다. 사회적으로 볼 때도 경제성장은 정(正)의 외부효과를 나타내고, 경제침체는 부(負)의 외부효과를 야기하기 때문에 그렇게 되면 거래비용이 증가해 경제는 침체되고 둔화된다고 한다. 왜냐하면, 분배에도 외부효과가 있는데 분배가 악화되면 빈부간의 알력이 심화되고, 상호간의 신뢰를 떨어뜨리는 결과를 가져와 거래비용이 증가하고 경제를 둔화시킨다는 것이다.
경제성장과 분배의 외부효과 중 어느 것이 더 크냐는 현실적으로 측정하기 어려우나 생활수준이 전반적으로 높아지게 되면, 상대적 지위에 대해 민감하게 비교하지 않는 사회분위기가 이루어지게 된다. 그렇다면 분배보다는 경제성장이 선결문제가 아닌가 생각된다. 생활수준의 성장으로 분배문제를 상대적으로 덜 고려하는 사회분위기가 이루어진다면, 적어도 분배의 외부효과보다는 성장의 외부효과가 더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사회가 점점 더 각박해지는 원인도 1960년대부터 90년대 중반까지 매년 8∼9%의 성장을 이어오다가 2000년대 들어서면서 경험하는 것처럼 2∼3%의 성장으로는 현재의 생활수준에 만족하지 못해 불만을 표출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현대는 누구나 정보의 생산자이며 소비자가 되는 소셜미디어 시대다. 몇일 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에는 인간의 다양한 감정 중 분노는 강한 전염성과 파급력을 갖는 것인데 최근에는 소셜미디어가 단순한 분노를 넘어 격분을 표출하는 곳으로 바뀌어 간다는 분석이다. 단순한 사적 의견이라도 쌍방향소통을 통해 군중의 호응이 늘어나면 공식적인 뉴스로 둔갑한다.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사적인 분노를 공적 이슈로 만들려는 집단 히스테리에 우리 사회가 완전히 잠식당하기 전에 성찰할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