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종(芒種), 태양의 그림자를 밟다
/김정수
사막 한 귀퉁이에 운동화를 심었다
봄빛 사흘 만에
발이 돋아났다
먼 길을 흘러왔는지 겹겹이 옹이가 박혀 있었다
땅속에서 바람이 불어오자 한쪽으로 내력을 드러낸 운동화 바닥에서
붉은 발톱과 잔뿌리가 흘러나왔다
간신히 모래언덕을 넘은 낯선 발자국이
길을 물었다
태양의 이마를 찢고
입이 솟아났다
-김정수 시집 ‘하늘로 가는 혀’
사막에 운동화를 심었더니 발이 돋아났고 최후에 입이 솟아났단다. 무엇인가가 탄생한다면 먼저 뿌리나 입부터 생겨야 하는 것이 아닌가. 입이나 뿌리로 양분을 흡수하여야 그 다음에 몸이 만들어지지 않겠는가. 그런데 운동화를 심었더니 발이 제일 먼저 돋아났단다. 그리고 이미 그 발은 사막을 건너느라 발톱은 붉어져 있고 옹이까지 박혀있는 내력을 지니고 있다. 이렇게 혹독해진 발로 다시 태어나 사막의 길을 가야만 하는 사람들이 있다. 아니 어쩌면 우리 모두가 그렇다. ‘간신히’라도 모래언덕 같은 길을 넘어야 하는 취준생들이 그렇고 직장을 견뎌내야 하는 중년들이 그렇고 가족들을 부양해야 하는 이 시대의 가장들이 그렇다. 이 길의 의미를 묻는다면 나는 무엇이라 답해야 할까. 나를 고갈시키는 태양의 이마를 찢고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을까. /김명철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