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竹)
/이명기
뒤란 대숲에 비가 온다
날카로운 끝을 세워
비를 듣는 시간
마디마다
골수骨髓에
우수가 고인다
바람이 인다
바람이 부는 쪽으로
소리를 쫓아
푸른 등뼈가 휜다
기억할 것이다
전생도 내생도 풍장일 터
언젠가 한번은
텅 빈 몸으로
이 바람을 기억할 것이다
시인은 대숲을 바라보고 있다. 이 바라보는 대숲은 한없이 푸르고 청명하다. 비도 내리고 있어 대숲을 감싼 대기는 더욱 투명하다. 얼굴에 닿는 공기는 ‘날카로운 끝’이라 해도 무방할 정도로 서늘하다. 비바람이 죽(竹)을 감싸고 휘돌아 갈 때마다 이파리들은 서로 몸을 비비며 서걱거리는데, 마치 한꺼번에 펼쳐진 은하의 장엄한 휘장 같기도 하며 낮과 밤이 사라져 오히려 더 투명한 극지방 같기도 하다. 이파리들이 서걱거리며 서로의 몸에 스며드는, 이 아득한 갈망의 한 복판에서 시인이 바라보는 대숲은 불가사의한 매혹의 결정체가 아닐까.
/박성현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