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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n쉼]치자꽃 향기는 바람에 날려도

 

 

 

 

 

자식이 6명인데도 엄마는 계절마다 꽃을 피워냈다.

단독주택 조그만 베란다에 알로에를 심어 여린 잎을 잘라 냉장고에 넣었다가, 여름철 학교 갔다 돌아오면 빨갛게 익은 얼굴에 문지르게 했다. 나중에 그게 미백효과가 있는 영양제가 될 수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그후 10년이 지나서 알로에 화장품으로 나와서 알았다.

창가에 놓은 치자꽃이 짙은 향기를 품어낼때는 여름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조그만 화단 한쪽에서 퇴비를 만들어 모란꽃과 담장에 넝쿨장미가 순서대로 피어 날때는 학교 가는 발걸음을 멈추고 하염없이 감상하였다. 화단 끝에는 대파와 조그만 채소를 심어 싱싱하게 겉절이로 요리해 식탁에 올리는 엄마는 요술쟁이 같았다.

옥상에는 온갖 화분과 통에 고추를 심어 김장할 수 있을 정도였다. 어쩌다 가을철에 옥상에 펼쳐 놓은 붉은 고추를 보면 엄마의 부지런함에 말문이 막혔다.

허리 아프다고 그만하라고, 사먹는게 더 싸다고 말하는 자식들을 바라보며 괜찮다고 웃던 엄마의 얼굴이 기억 난다. 그것이 엄마가 인생을 살아가는 위로라는 것을 이제 엄마 나이가 된 딸은 코로나19 때문에 집에 있으면서 알게 되었다. 너무나 바빠서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았던 모든 것들이 이제 보이고 들린다.

집을 처음 장만한 딸을 위해 제일 먼저 치자꽃 화분을 마련했다. 행궁재에 비어 있는 화분을 가져와 딸과 함께 공기 정화식물들을 심고, 상추와 토마토 그리고 고추를 심은 베란다 화분 텃밭을 만들었다.

‘비로소 친정에 와 머리를 풀고 누웠다’라는 글귀가 마음속에서 맴돌며 이해가 되었다.

고단하고 힘든 청춘들을 바라보며 조금이라도 힘이 되어 주고 싶었던 부모의 마음이 이런 것이었을까. 이제야 비로소 인생과 화해하는 느낌이 드는 것은 무엇일까.

그리고 89세인 노모는 지금도 자식을 위해 무언가를 가르쳐 주신다. 엄마 살아 생전에 못배운 치마저고리와 두루마기 만든 법을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그렇게 찾았던 진짜 선생님이 곁에 있는 것을 이제야 알았다.

엄마가 쉬는 것을 한번도 본적이 없었다. 항상 부지런히 무엇인가를 만들어 자식들을 놀라게 했다. 아직도 총기가 총총한 엄마는 지금도 작업하는 딸 옆에서 무엇인가를 해주고 도와 주시려고 한다. 언제나 바쁘다는 이유로 보통의 딸처럼 함께 하지 못했는데도 35년의 세월을 건너뛰어 옆에 있는 엄마가 편하고 좋다. 모녀 3대가 각자의 방법으로 서로 교감을 느끼는 시간을 가지며 노모는 행복해 한다. 먼훗날 나의 딸도 나와 이런 시간을 갖을 수 있을까, 기대가 된다.

아침에 일어나 거실에 활짝 핀 치자꽃 향기를 맡으며 커피한잔을 내려 베란다 작은 의자에 앉아 하늘 멀리 지나가는 비행기를 바라보며 앞으로 다가올 세상에 대한 새로운 용기를 갖자고 스스로에게 격려한다.

코로나19 이후 변할 세상에 대해 모두들 정확한 의견을 내놓고 있지 못하는 상황속에서 막연한 두려움마저 느껴지는 것은 모두에게 해당된다. 멀리 아프리카에서도 영국과 프랑스에서도 걱정은 가득이다. 그래도 한국에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래도 그 옛날 엄마의 엄마 세대가 그랬던 것처럼 세상은 변해도 삶은 여전히 흘러갈 테니까.

딸의 집 가까이에 있는 공원의 장미 정원을 걸으며 마음속으로 무수히 기도 한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장미가 피어나는 과정을 한 달 가까이 지켜 보며 아름답게 펼쳐진 꽃의 향연속에서 그림으로 표현하고 싶다는 충동을 느낀다. 특히 태양빛이 비치는 꽃잎의 겹침은 예술가의 마음에 설레임을 선물처럼 안겨 준다.

이 또한 코로나19가 준 삶의 관조로 봐야 할까. 일상의 멈춤이 때로는 새로운 일상을 만들 수 있는 계기가 된다는 사실을 배우며 인생은 참 어렵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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