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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룡문]공무원과 자부심

면사무소에 다니는 형이 늘 자랑스러웠던 중학생 동생이 친구들과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페인트통을 들고 지나가는 공무원 3인과 조우(遭遇)했다. 검정과 흰색의 페인트가 묻은 옷을 입고 걸어가는 형을 발견한 동생은 끝내 외면하고 말았다. 정장을 입었거나 최소 점퍼에 새마을 모자를 쓴 형이라면 따라가서 인사하고 친구들에게 자랑했을 것이다. 집에 도착한 동생은 아버지에게 하소연했다. “형은 면사무소 7급 공무원 다닌다면서, 페인트칠 작업을 하네요.” 저녁에 집에 돌아온 아들에게 아버지가 이 사실을 말하자 설명할 길이 없다. 당시에는 산 정상에 헬기장과 관정(管井), 양수기는 중앙의 높은 기관에서 관리하고 평가를 했다. 요즘에는 업체에 용역계약을 하면 될 일이지만 당시에는 시골 산 정상까지 올라갈 용역사가 없으므로 공무원 서너명이 페인트, 붓 등 자재를 사들고 산 정상에 올라가 낙엽을 걷어내고 흰색으로 H자를 새겼다. 하늘을 나는 조종사가 헬기의 다리를 내릴 자리가 잘 보이도록 표시를 하는 것이다.


이즈음에 공무원들은 남의 집 농사를 잘도 지었다. 특히 동네 어귀의 논은 가을 논갈이, 봄날의 모내기, 피살이, 농약뿌리기와 벼베기까지 모두 공무원들이 자발적으로 대행했다. 늘 중앙의 윗분들이 점검을 오시는 코스이기 때문이다. 안보적 차원에서 통일벼를 재배했다. 양과 질의 문제가 있었다. 통일벼가 소출은 나는데 밥맛은 떨어졌다. 그래서 수매용으로 통일벼를 심고 집에서 식구에게 먹일 일반 볍씨를 창고에 숨겼다. 공무원이 찾아냈다. 2단계 못자리에서도 실갱이가 벌어졌다. 선배 경찰의 잘못을 후배 청장이 사과하듯 볍씨와 못자리 사이의 투쟁도 오늘날의 농림수산식품부부장관이 사과할 일인가 생각해 본다.


그래도 당시 공무원들에게는 자부심이 있었다. 못자리를 훼손하고 볍씨를 빼앗아가는 산업계장의 속마음을 촌로들은 이해하고 오히려 위로했다. 펜대를 내려놓고 논고랑에 들어가도 당대의 면서기들은 풀 듬뿍 먹인 흰색 Y-셔츠 컬라만은 꼿꼿하게 유지했다.


/이강석 전 남양주시부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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