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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시론] 우리가 바라는 사회

  • 신율
  • 등록 2020.09.10 05:53:04
  • 13면

 

얼마 전 ‘진인 조은산의 시무7조’라는 ‘상소문’이 청와대 청원게시판에 올라와 화제가 된 바 있다. 그 이후 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영남 만인소’라는 글 역시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았다. 이런 글들의 내용에 대한 찬반은 각자 다를 수 있지만, 중요한 것은 이런 글들에 대한 주목도가 매우 높다는 점이다.

 

현 정권 담당자들은 자신들이 민주화 세력임을 자부하고 있다. 이 부분은 누구나 인정을 해야 할 것이다. 혹독한 군사독재시절, 이들 중 상당수는 자신들의 안위를 포기하고 군사정권 타도를 위해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던졌기 때문이다. 그 시절에 젊음을 보낸 사람들이라면, 그런 행위가 얼마나 어려운 행동인지 잘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군사 정권이 사라지기까지, 온 국민들은 이들의 덕을 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과거에 그런 공(功)이 있다고 하더라도, 과거의 공(功)이 현재의 행위를 합리화 시킬 수 없음은 자명하다. 이는 정치적 정통성이 끊임없이 검증을 받아야 한다는 이치와 일맥상통한다. 즉, 선거에 의해 집권한 정통성 있는 정권이라도, 다음 번 다른 선거에서 정통성에 대해 검증을 받지 않으면, 집권 당시의 정통성은 사라진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 집권 과정에서 법적 정통성을 확보했더라도, 그 이후 정통성의 검증 과정을 거부한다면 이는 독재 정권이나 다름없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에서는 대통령 임기 중반에 하원의원 선거를 치러서, 국민들로부터 정권에 대한 중간 평가를 받도록 하는 것이다. 이런 정통성의 특징과 마찬가지로, 과거 대한민국 민주화에 혁혁한 공이 있더라도, 그 공이 있으니 현재 우리가 하는 일은 모두 선하고 올바른 일이라고 주장할 근거는 없는 것이다.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지금 ‘상소문’이 줄을 잇는 현실이 보여주는 우리 사회의 자화상을 설명하기 위함이다.

 

과거 조선시대와 같은 봉건 사회에서는 탈춤과 같은 풍자가 인기를 끌었다. 당시에는 기득권 계급이었던 양반 계급을 비판하고 싶어도, 서슬 퍼런 정치 사회적 기득권 세력의 힘에 짓눌려 제대로 목소리를 낼 수 없었기 때문에, 탈춤과 같은 풍자가 유행했던 것이다. 70년대와 80년대에 20대를 보냈던 지금의 5060세대들은, 군사정권 당시 대학가에서 저항의 한 형태로 존재했던 탈춤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당시는 탈춤반에 소속됐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저항세력으로 취급받던 시절이었다. 이런 과거의 역사와 기억을 종합해보면, 풍자가 유행한다는 사실은, 그 사회가 건강하지 못함을 의미한다는 것을 금방 알아차릴 수 있다. 언로가 막혀있거나, 비판에 대한 관용도가 낮은 사회에서 나타나는 전형적인 현상이 바로 풍자라는 말이다.

 

그런데 소위 민주화 세력이 권력을 잡고 있는 작금의 현실에서 상소문 형식의 풍자가 유행하고 있는 것을 보면, 분명 역사의 아이러니라는 생각이 든다. 이런 현실이 의미하고 있는 바는, 과거 민주화 운동을 했던 세력이 현재 정권을 잡고 있지만, 그렇다고 지금이 민주주의의 전성시대라고 말 할 수는 없을 것이라는 점이다. 현 정권에 대해 비판을 하면, 이른바 친문 세력들이 좌표를 찍고 총 공세를 벌여, 결국 비판한 사람이 두 손을 들게 만드는 현실은 결코 민주적이라고 할 수 없다. 과거 군사독재 시절에는 공권력이 언로를 막았다면, 지금은 이른바 팬덤이 언로를 막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결코 정치판의 ‘양념’이라고 말할 수 없다. 한쪽에 대해서는 칭찬과 찬양만 가능하고, 다른 쪽에 대해서는 비난과 비판만이 가능한 사회는 민주주의가 아닌 또 다른 형태의 권위주의 정치체제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한 가지 지적하고자하는 점은, 정치는 선과 악을 나누는 과정이 아니라, 철저한 권력적 현상이라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권력에 대해서는 끊임없는 견제와 비판이 있어야만 권력의 전횡을 막을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추구하는 사회는, 상대를 악으로 규정하지 않는 사회일 수밖에 없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바라는 사회는 권력에 대한 비판이 허용돼 더 이상 풍자가 존재할 필요가 없는 사회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바라는 사회는, 더 이상 과거의 공(功)을 가지고, 스스로를 미화하지도, 과대평가하지도 않는 사회다. 과거 지향적 권력은 언제나 위험한 상황을 연출했음을 보여주는 것이 인간의 역사다. 우리가 아직도 이런 희망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슬프다. 이런 희망은 과거 우리가 꿨던 꿈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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