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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 시조 한 수의 맛

 

내 정서적 토양은 농가의 생활풍경에 뿌리가 닿아 있다. 평화롭고 온화했던 마을에서 아버지 쟁기질하고 어머니는 작곡가가 오선지 위에 음계를 내리듯 씨앗을 심으셨다. 형은 퇴비를 넣고 나는 고무래로 덮으며 스스로의 밥벌이를 하면서 성장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 그곳이 나의 유토피아이며 그곳을 나는 지상천국으로 생각한다. 그곳에 가야 내 부모를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금년에는 ‘흰 소’의 해라고 한다. 어느 수필인은 흰 소의 사진을 스마트폰으로 보내왔고 운경 화백은 토종소가 힘차게 달리고 있는 그림을 그려 보내주었다. 우리 집에는 소띠 해에 태어난 가족이 두 명 있다. 그래서 이 소띠 해에 소 꿈을 타고 온 아들이 자신의 삶을 찾아가는 길에서 성취감과 즐거움이 가슴 속으로 묵직하기를 기도한다.

 

소는 정철의 고시조에 잘 드러나 있다.

 

재 너머 성권농 집의 술 익는단 말 어제 듣고

누운 소 발로 박차 언치(안장밑헝겁) 놓아 지즐 타고

아희야 네 권농 계지냐 정좌수(鄭座首)왔다 하여라.

 

송강께서 술친구를 찾아가는 풍류가 이 얼마나 멋있는가. 친구 집에 먹음직한 가용주가 있다는 말을 전해 듣고 한가로이 누워 있는 소 발길로 차서 일으켜 세워 언치 놓아 눌러 타고 끄덕끄덕 나서는 모습을 상상해 볼수록 운치가 있지 않은가.

 

이런 분에게는 또한 ‘짚방석 내지마라 낙엽엔들 못 앉으랴/ 솔불 혀(켜)지 마라 어제 진 달 돋아온다/ 아희야 탁주산채일망정 없다 말고 내여라’ 라는 한석봉의 시조에 어울리는 겸손과 소박함이 묻어나 눈물 나게 고맙다. 지금 세상에서는 누가 자동차 시동 걸어서 친구 집에 찾아가 있는 술 내놓으라고 하겠으며 그렇게 한가한 세상도 아니잖은가. 요즈음 시대는 달나라에 가서 라면 먹고 돌아오는 과학 제일주의 시대요. 코로나19 이전에도 지구환경이 사람 살 데가 못 된다고 다른 별나라에 가기 위해 자본과 기술이 손잡고 안간 힘을 쏟고 있는 신자본주의시대가 아니었던가.

 

지구를 무한 착취해온 부모세대. 부모의 자본과 신분을 대물림해주기 위해 사교육에만 관심을 키워온 앞 세대. 자본과 권력을 손에 쥐면 주인이 누구인지 겸손이 어떤 삶인지를 상상도 못해보고 사는 고시 패스 수재들이 많았다. 이제 생각 좀 하면서 살도록 뿔 달린 바이러스 질병이 세상을 뒤흔드는 것 아닌지, 마스크를 쓰고 벗으며 성찰해볼 수는 없을까? 안타깝기만 하다.

 

‘짚방석 내지 마라 낙엽엔들 못 앉으랴’ 이렇듯 멋스러운 정신의 조상들 그리고 남의 눈에 눈물 나게 하면 네 눈에 피눈물 난다고 가르쳐온 어머니, 그 진리를 믿고 사는 이 땅의 힘든 세대들을 위해 코로나 세상이 속히 종결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하여 자기 몸 던져 일하는 젊은이들이 소주라도 한 병씩 마시고 노래방으로 가서 시조 대신 본인의 애창곡(십팔번)이라도 마음껏 불러보는 그날이 속히 오길 비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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