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03 (금)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생활에세이] 탁월해 질 때까지……

 

우리 집 냉장고 문짝에 그런 문구가 붙어 있다.

 

‘탁월해 질 때까지 끝없이 연습하세요.’

 

이 문구를 가져다 붙인 사람은 지금 중학교 2학년이 되는 아들이다. 아들이 초등학교 5학년 가을 무렵이었다. 학교 과제 표어로 여러 장을 만든 것인데 다른 표어들은 소리없이 사라졌고 이 표어만 살아남아 냉장고에 붙어 있다. 이 고리타분한 말이 우리 집 냉장고에 붙은 뒤로 변화가 생겼다.

 

아들의 꿈은 축구선수가 되는 것이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에도 막연하게 축구선수 되겠다고 해서 축구클럽에 다녔다. 일주일에 두 번이나 세 번 정도. 그랬는데 저 탁월한 격문이 우리 집 냉장고에 붙은 뒤로 아들의 행동이 달라졌다. 일주일에 두 차례나 세 차례 가던 훈련을 매일 가는 걸로 바꾸었다. 나나 아내가 강요한 것도 아닌데 그리하겠다 해서 그리 하라고 했다. 다른 학원을 일체 다니지 않는 데다가 몸 쓰는 일이라 오히려 아들에게 좋은 영향을 미칠 거라 생각했다.

 

돌이켜보면 나는 초등학교 시절 동네 아이들과 뭘 하고 놀지, 맛있는 걸 뭘 먹을 지에만 신경이 곤두서있었다. 딱히 정한 꿈도 없었다.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산과 들, 강으로 놀러 다녔고 주머니에 용돈이 생기면 만화방에 가는 정도의 유년시절을 보냈다. 그런데 아들은 막연하게 축구선수가 되겠다고 말하더니 초등학교 5학년때 부터는 꿈을 구체화시켰다. 텔레비전도 축구경기만 보고, 유투브도 축구관련 소식만 들었다. 게임도 축구 게임만 하는 마니아가 되었다.

 

그래도 아이들은 결정한 것들을 수시로 바뀌는 선한 변덕을 가지고 있어서 꿈도 곧 바뀔 거라 여겼다. 우리 아들 역시 어느 시점에서나 혹은 새로운 뭔가를 경험하거나 접하면서 자연스럽게 다른 꿈들을 정립하게 될 거라 생각했다. 사실 축구선수되는 게 싶지 않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아들만큼은 우리 부부처럼 예체능계열에서 벗어나 보다 안정적인 미래를 가꾸어 나가기를 바랐다.

그리고 그렇게 될 거라 믿었다. 그런데 우리 부부의 예상은 빗나갔다. 매일 하루에 2시간씩 훈련을 다녀온 뒤, 똑같이 훈련해서는 남들을 뛰어넘을 수 없다는 꼰대스러운 말을 하더니 집에 와서 1시간씩 개인 훈련을 더 하겠다고 공언했다.

 

얼마나 가겠냐 싶어서 그것도 그리하라고 했다. 한 두달 그러다 지칠 거라 생각했는데 초등학교 5학년 가을부터 중2가 되어가는 지금까지 그렇게 매일 훈련을 하고 있다. 축구클럽의 훈련이 없는 날은 나를 끌고 나가 훈련을 했다. 365일 중에 훈련을 하지 않는 날은 추석과 구정 때 뿐이었다. 석가탄신일에도 크리스마스에도 아들은 공을 들고 운동장으로 나갔다. 비나 눈이 오면 다리 밑으로 나를 데려갔다. 그야말로 냉장고에 붙어 있는 격문대로 탁월해지기 위해 연습하고 연습 중이다.

 

지칠 법도 한데 하루도 거르지 않고 탁월해지려고 노력하는 아들에게 응원을 보낸다. 아들이 축구 선수가 되든 되지 못하든 그게 중요하지 않았다. 자신이 꿈꾸고 있는 뭔가를 위해 미친 듯이 노력해 봤다는 그 과정과 경험이 중요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아들은 내게 질문 하나를 던져주었다. 혹시 타성에 젖어 나는 이미 탁월하니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니냐고. ‘나 때는 말이야’라는 말을 읊어대며 꼰대가 되어가 고 있는 건 아닌지.

 









COVER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