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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대한민국 판사의 흑역사와 특권문화

 

 

 

대한민국의 헌법은 만인의 평등을 원칙으로 하고 있고, 누구도 특권을 누리지 못하게 규정하고 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예외적으로 인정하는 특권이 있다. 헌법이 명시한 평등의 원칙과 모순된 특권을 인정하는 이유는 그 특권이 한 개인의 이익이 아니라 국민의 이익과 국제적 이익을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하기 때문이다.

 

민주국가에서 주어진 법률적 특권은 특정 개인이나 집단의 이익을 위해서 사용되어서 안 된다. 하물며 개인의 이익을 위해서 법률에 주어지지도 않은 특권을 누리는 것은 용인될 수 없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는 법률에 명시되지 않은 특권을 누리는 여러 ‘특권층’이 있다.

 

법조계는 법률에 명시된 특권과 명시되지 않은 특권을 모두 누리는 대표적인 특권층의 하나다. 변호사는 변호사법에 의해 법률적 대리행위를 할 수 있는 배타적 특권을 누리고, 검사는 죄를 물을지 말지를 판단하는 독점적 기소권리를 지니며, 판사는 죄의 유무와 경중에 대한 결정권을 가진다. 사회적 존경과 경제적 보상을 누리고 정년이 없는 자격증도 주어진다. 이런 이중의 특권은 그들이 진실과 정의라는 공익을 위해서 공평무사하게 일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최근 들어 우리 국민은 검찰과 변호사들의 민낯을 여과 없이 지켜보았다. 선택적 정의와 법의 집행, 사회적 갈등을 조장하는 것에 앞장서며 입신 영달을 위해 안달하는 사람들에게 특권을 주어야 한다고 동의할 국민이 몇이나 될까. 더구나 사법 영역의 보루라고 생각했던 판사들이 저지른 사법농단에 대한 국민의 실망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러면서도 자기성찰을 조금도 보여주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저것이 과연 대한민국 판사들의 진면목인가, 놀라면서 대한민국 판사들의 흑역사를 되돌아보게 된다.

 

우리가 잘 아는 을사오적은 모두 판사 출신이었다. 대한제국의 내부대신 이지용과 군부대신 이근택은 평리원 재판장 출신이었다. 외부대신 박제순과 농상공부대신 권중현은 평리원 재판장 서리 출신이었다. 나라를 팔아먹은 다섯 명의 역적 중에 두 명이 지금으로 치면 대법원장이었고, 두 명은 대법원장 서리였다. 그것뿐이었을까. 학부대신 이완용도 평안남도 재판소 재판관 출신이었다. 대한민국 판사들의 슬픈 흑역사가 아닐 수 없다.

 

그렇지만, 다섯 명의 판사들이 나라를 팔아먹을 때 민족의 공익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 판사도 있었다.

 

평리원 재판장 서리까지 지낸 허위는 일본이 고종을 쫓아내고 행정, 사법권을 빼앗고 군대마저 해산시키자 분연히 의병항쟁에 나섰다. 한양 진공 작전을 펼쳤던 허위는 일본헌병에 체포되어 자신이 재판장이었던 법원의 피고인석에서 사형선고를 받았다.

 

시신을 수습하러 올 사람조차 없었던 허위의 시신을 수습하고 장례를 치른 것은 그의 제자 박상진이었다. 형장에서 장엄하게 최후를 마친 허위의 장례를 홀로 치르고 고향 울산을 떠나 스승의 묘소 옆에 움막을 짓고 1년을 지킨 박상진은 우리나라 최초의 판사시험에 합격했지만 판사임용을 거부했다. 일제의 식민지가 된 나라에서 판사가 되기를 거부하고 대한광복회 총사령으로 활약한 박상진은 그의 스승이 그랬던 것처럼 대구법원 피고인석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허위와 박상진은 그들이 당대에 가졌던 특권을 어떻게 사용해야 존경받는 아름다운 특권문화가 되는지를 아는 드문 판사들이었다. 그런 판사들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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