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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후쿠자와 유키치와 변화하는 동아시아 질서

 

지난 40여 년간 일본의 최고액권 지폐인 일만엔권의 초상 인물은 후쿠자와 유키치였다. 일본의 봉건질서를 타파하고 서양문명의 도입을 선도한 후쿠자와 유키치를 일본인들은 지금도 근대화의 아버지로 숭앙한다.

 

‘하늘은 사람 위의 사람을 만들지 않았고, 사람 아래의 사람을 만들지 않았다’

 

그의 저술 '학문의 권장'의 첫 문장이다. 후쿠자와 유키치는 1870년대에 발표한 이 책이 22만 부가 팔렸다고 주장했다. 인쇄술이 발전하지 않았던 그 시대에 '학문의 권장'이 실제 그만큼 팔렸는지 확인할 방법은 없지만, 일본 사회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 것은 분명하다.

 

주군을 위해 목숨을 바치며 할복자살도 마다하지 않는 사무라이 문화를 향해 통렬한 비판의 포문을 연 것도 그였다. 정부가 국민에게 베푸는 시혜는 정부가 해야 할 당연한 책임이므로 국민이 고마워하며 복종해야 할 이유가 없다고 일격을 가한 것도 그였다.

 

후쿠자와 유키치는 우리나라와도 인연이 깊다.

‘조선을 평하자면 문자를 아는 야만국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조선의 개혁 방법을 논하면서 일본의 선례를 표준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우리가 무력을 보여주며 그들의 개화와 진보를 독촉했는데도 따르지 않으면 다음에는 채찍을 동원해 협박교육주의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고 믿는다.’

 

후쿠자와 유키치가 자신과 각별했던 김옥균이 갑신정변에 실패하고 암살당한 다음 한 말이었다. 그 뒤로도 그는 우리나라를 ‘부패한 유생의 소굴’로 매도하고 우리 국민은 ‘문명의 기본적인 관념’을 모른다고 깔봤다. 그래서 ‘조선의 사절단이 중국인들과 함께 미국에 가는 것은 거지가 천민의 손을 잡고 가는 것’과 같다고 조소하며 조선이 ‘빨리 멸망하는 것이 하늘의 뜻에 부합’한다는 주장까지 했다.

 

후쿠자와 유키치가 이토록 오만하게 우리나라와 중국을 싸잡아 조롱한 것은 서구의 근대문명에 무지한 두 나라를 일본이 마침내 추월할 수 있게 되었다는 자신감에서 비롯된 것이다. 서구의 근대정신과 민주제도, 기술문화를 선점한 일본이 아시아의 일부로서가 아니라 서구의 일부가 되어 조선과 중국을 가르치고 지배해야 한다는 일본 제국주의의 논리적 기원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그러면 후쿠자와 유키치가 옹호하고, 일본이 선점했다고 자신했던 서구적 민주주의의 가치와 제도, 시민 정신이 가장 앞선 나라는 한중일 세 나라 중에 과연 어느 나라일까. 단 한번도 정권교체를 이루지 못하고 아직도 전범의 위패를 모신 신사에 국가의 지도자들이 참배하는, 시민이 단 한 번도 승리를 거둬본 경험이 없는 나라에서 세계를 사로잡는 BTS와 같은 자유롭고 거침없는 상상력이 출현할 수 있을까. 팩스가 여전히 주요한 통신수단인 일본의 기술문화는 얼마나 더 아시아 바깥에 있다는 자신감을 유지할 수 있을까.

 

일찍이 세계를 제패했던 한 인물은 단언했다. 성을 쌓는 자 반드시 망할 것이며, 길을 여는 자 반드시 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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