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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 주검에게 묻다

 

나는 자주 주검을 마주한다. 요즘 나의 직업은 장의사다. 영구차에서 내리는 유족들을 내가 제일 먼저 맞이한다. 그들은 모두 피곤에 찌든 표정으로 온다. 삼일간의 장례와 마지막 화장터에서의 이별이 유족들을 탈진하게 만들었다. 무표정한 얼굴에는 슬퍼할 기력마저도 남아있지 않다. 영정사진과 위폐와 유골함이 앞장서고 유족들은 추적추적 내리는 비처럼 늘어져서 뒤를 따른다.

 

나는 영정사진 속 고인을 가름한다. 수목장에서 내가 파는 땅은 지름 30센티, 깊이 50센티 정도이다. 먼저 삽으로 뗏장을 둥그렇게 떼어낸다. 뾰족한 모종삽으로 황토 사이에 끼어있는 돌을 골라낸다. 무덤은 좁고 깊다. 반듯하다. 무덤에 한지를 깔고 고운 모래를 부어 주검을 맞이할 준비를 마친다.

 

화장터에서 나온 골분은 따뜻하다. 영정사진 속 고인만큼 골분의 무게는 다르다. 어떤 주검은 반근 정도의 무게도 안 되게 가볍고 양이 적다. 그러나 어떤 주검은 뼛가루로 남았지만 무겁다. 대체로 한지에 싼 골분을 부을 때 유족들이 오열한다. 그러나 그 곡성은 길게 가지 않는다. 가끔 남편을 보낸 아내가 울고, 가끔 엄마를 보낸 딸이 구슬피 울 뿐이다. 울 힘도 없는 듯하다.

 

나는 골분을 고운 모래와 잘 섞는다. 묘하게 그때 나는 영정사진 속 고인과 마주한다. 어떤 뼛가루는 하얗고 곱다. 어떤 뼛가루는 거칠고 거무튀튀한 기운이 감돈다. 뼛가루는 영정사진 속 고인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나는 면장갑 낀 손을 통해 영정사진 속 고인을 느낀다. 내가 고인에게 바치는 마지막 예의는 뼛가루와 모래를 잘 섞고 꾹꾹 눌러 무덤을 만들고 그 위에 뗏장을 얹고 잘 마무리 하는 것이다. 손가락 사이로 고인의 뼛가루가 느껴진다.

 

공자는 어려서부터 제사놀이를 하며 놀았다고 한다. 나도 그런 면에서 공자와 닮은 점이 있는 모양이다. 고인을 마지막으로 보내드리는 일이 싫지는 않다. 하지만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면 나는 거의 파김치가 된다. 탄광을 나온 광부가 목에 낀 석탄가루를 삼겹살과 소주로 씻어내듯이 나도 매일 고인의 골분이 쌓인 육신을 술로 씻어낸다. 몸에 뭔가 모를 끈끈한 것이 묻어 있는 것 같아 매일 샤워를 한다. 마지막 의식을 마감하듯 ‘박박’ 몸을 닦는다.

 

할머니의 장례였다. 고인의 골분을 땅에 부을 때도 유족들은 울지 않았다. 상주가 먼저 성토(무덤에 흙을 쌓음)할 때도 아무도 울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대여섯 살 정도 돼 보이는 손녀가 나와서 성토하면서 울기 시작했다. 손녀의 울음은 높고 구슬펐다. 눈에서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울음은 쉬 그치지 않았다. “할머니!” “할머니!” 그렇게 손녀가 할머니를 배웅했다. 그걸 지켜보던 나도 울컥하여 눈물이 났다. 나는 그 손녀가 고마웠다.

 

오늘은 황사와 송홧가루가 뒤섞인 모래폭풍이 몰려왔다. 다행히 오후에 누런 하늘을 뚫고 햇살이 내려왔다. 할머니의 식구들이 꽃을 들고 자주 참배를 왔다. 무덤 앞에 돗자리를 깔고 앉아 몇 시간이고 놀다가 간다. 오늘은 유난히도 그 손녀의 웃음소리가 하늘로 퍼진다. 까치에게 쫒기는 까마귀가 앉던 그 소나무를 거쳐, ‘여기가 공동묘지인데 저렇게 웃어도 되나?’ 싶을 정도로 손녀의 웃음소리는 맑고 높다. 사람들의 표정도 밝다. 나는 오늘도 퇴근길 선술집에 들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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