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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진칼럼] 노회찬이 그리운 이유

 

현재의 한국정치 사회구조, 조금 좁혀서 정치상황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1970년대~1990년대의 미국 민주당의 흐름을 복기하면 조금 도움이 된다. 그 학습을 위해 출판사 모던 아카이브가 출간한 카툰 북 《버니》를 참조했음을 미리 밝힌다.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하야하기 전 닉슨은 월남전의 여파로 재선이 불투명한 상태였다. 때문에 1972년 그가 재선에 성공한 것은 꽤나 놀랄 만한 일이었는데, 그건 베트남전을 비롯해서 중남미에서 연이어 일어난 좌파 혁명의 성공과 그 분위기로 인해 미국 사회가 오히려 보수화된 결과이기도 했다. 미 국내에서의 지난(至難)  했던 반전 시위가 피로감을 가져온 것도 일부 사실이다.

 

이때부터 미국 민주당은 급격하게 우클릭한다. 민주당 내 우파 그룹은 처음엔 DNC (Democratic National Committee : 민주당 전국위원회)라는 이름으로 이후엔 CDM(Coalition for a Democratic Majority : 민주적 다수를 위한 연합), 혹은 DLC(Democratic Leadership Council : 민주당 지도자회의)라는 이름으로 민주당을 끊임없이, 그리고 줄곧, 우경화된 상태로 밀어 넣는 역할을 한다. 이들의 한결같은 논조는 이것이었다.

 

“여론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

“중도파를 끌어들이고 계속해서 중앙으로 외연을 확장해야 한다”

 

어디서 많이 들은 소리이고 우리에게서 툭하면 나오는 소리이다.

어쨌든 이들로 인해, 루스벨트 이후 줄곧 가난한 이들을 위한 큰 정부 정책을 추진했던 민주당은 결국 ‘무늬만 민주당(DINO : Democratic in Name Only)’으로 전락했다. 레이건 시절, 민주당 당내에는 ‘레이건 민주당원’이라고 명명되는 인물들이 판을 쳤을 정도다. 사람들은 그런 민주당을 가짜 보수라고 봤고 가짜 보수에 표를 주느니 진짜 보수를 뽑겠다며 공화당에 표를 몰아주는 기 현상이 벌어졌다. 어리석지만 화나고 욱하는 마음에 찍은 결과이기도 하다. 월터 먼데일, 마이클 듀카키스 등 민주당 후보들이 잇따라 선거에서 진 이유다.

 

가장 큰 문제는 미국 정치권 내에 일종의 고질병을 만들어 냈는데 정책 대결의 스펙트럼이 중도우파에서 우파의 범주로만 극히 좁아졌다는 것이다. 민주당이 오랜 기간 우편향화한 결과다. 빌 클린튼이 됐든 버락 오바마가 됐든 미국의 양극화 사회의 깊은 골을 극복하지 못했던 건 그 때문이다. 우와 우만의 싸움으로는 정치는 사회의 올바른 균형자가 되지 못한다.

 

미국의 현대 정치사를 반면교사로 삼는다면(미국의 정치와 한국의 정치는 그 사이즈와 콘텐츠가 다르다는 지적을 예상한다 해도) 지금의 우리 역시 중도우파와 우파 간의 선거구도에 함몰되는 우를 범해서는 안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현대사회의 최대 이슈인 양극화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다. 지긋지긋한 부동산 논란은 영영 잠재울 수가 없게 된다. 누군가 핏대를 올려 토지공개념을 밀고 나 갈 때가 돼도 한참 지난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민주당을 비롯한 이른바 개혁정당은 중도로 외연을 확장한다는 둥의 ‘헛소리’보다는 자신들의 정치적 정체성을 더욱더 확실하게 밀고 나가는 것이 옳다. 앞으로의 대선후보 중에 한 명이라도 확실하게 좌 클릭된 인물이 나와야 하는 이유다.

 

대선 과정에서 후보들로 하여금 양극화 해소/토지공개념/차별금지/환경/성평 등 같은 진보적 어젠다를 전면에 내세우게 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일명 샤이 좌파들과 냉소적인 지식인들을 광장으로 모으게 해야 한다. 아르헨티나의 페론처럼 대중의 인기에 영합하는 포퓰리스트가 아니라 대중의 요구와 바람을 대변하려는 진정한 포퓰리스트를 밀어야 한다. 지난 미 대선 당시 민주당 후보로 나왔던 엘리자베스 워렌이나 버니 샌더스 같은 인물이 대표적이다. 우리에게 노회찬이 살아 있었다면 한국의 버니 샌더스가 됐을 것이다. 정작 필요한 사람들을 많이 잃었다. 그게 참 아쉽다. 불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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