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7 (토)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오동진칼럼] 자, 어떤가? 이제 슬슬 소름이 돋는가?

 

 

 

방송을 보면서 아나운서들이 제일 짜증이 날 때는 장본인과 주인공을 구분하지 못하고 마구 섞어 쓰거나 아예 장본인이라는 표현밖에 모르는 것 같을 때이다. 장본인은 여러 (나쁜) 일을 일으킨 바로 그 사람이다. 주인공은 여러 (좋은) 일을 만들어 낸 바로 그 사람을 말한다. 그러니까 ‘네가 이 모든 일을 그르친 그 장본인이냐’가 맞는 말이고, ‘바로 이 분이 이번 대형 화재에서 어린 아이들을 구한 그 주인공 영웅이십니다’가 맞는 표현이다. 그런데 국영/공영 아나운서조차 이걸 구분 못하고 ‘이번에 올림픽 경기를 승리로 이끈 장본인이다’식의 표현을 쓴다. 한심한 일이다.

 

그렇다면 우크라이나 선수단을 소개할 때 체르노빌 원전 사진을 내보내고 아이티 선수단을 소개할 때 대통령이 암살된 얘기를 하는 등의 행태는 위와 같은 무식의 소치인가. 그 지경을 넘어선 것이라는 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무엇보다 정치적 올바름에 문제가 있다. ‘라떼에는’ 어릴 때부터 어머니와 아버지가, 혹은 선생님이 항상 말씀하셨다. ‘걔가 그래도 애는 착해. 그러니까 너무 싫어하지 마. 사람들 앞에서 너무 뭐라 그러고 그러면 안된다 알았지?’등등의 말씀이셨다. 사람의 좋은 면을 먼저 봐야 한다는 얘기들이다. 긍정적인 면을 부각해 주라는 것이고 그것이 인간적인 것이라는 가르침이셨다.

 

우크라이나를 생각하면 설령 체르노빌이 떠오르더라도 방송 같은 데에서 시청자들에게 무엇을 보여 줄 때는 우크라이나의 번성한 수도 키예프의 이미지를 찾든지, 우크라이나 특유의 드넓은 해바라기 밭을 보여줬어야 옳았다. 할리우드 배우 리브 슈라이버가 연출을 한 '우크라이나에서 온 편지' 같은 영화에 그런 이미지가 나온다. 그런데 머릿속에 그런 의미의 우선순위가 아예 없다. 우크라이나 해바라기 전원 같은 건 꿈에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푸틴이 우크라이나를 절대로,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 이유가 자신들 제정(帝政)의 역사 속 선조들이 대부분 우크라이나에서 왔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에 있던 류리크 공국은 12세기 모스크바대 공국의 뿌리였다. 러시아의 마지막 왕조 로마노프 가문도 우크라이나 출신이다. 그래서 ‘푸틴=러시아’는 정서적으로 우크라이나를 포기하지 못한다. 이는 결과적으로 과거의 우크라이나가 매우 번성한 대국이었음을 보여준다.

 

하긴, 그런 거 ‘따위’ 전혀 몰라도 된다. 다만 요즘 젊은 세대들이 가장 좋아한다는 영화 ‘어벤저스' 시리즈의 캐릭터 ‘블랙 위도우’의 여주인공 이름이 나타샤 로마노프라는 것만이라도 생각했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거기서 살짝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지적 호기심’이 일었다면 저런 ‘방송 사고’까지는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나타샤 로마노프=블랙 위도우’도 결국 우크라이나 출신이니까.

 

다 교육의 탓이다. 공교육이 잘못된 탓이다. 그저 사지선다(四枝選多)의 답만 고르게 하고 점수를 1점이라도 남보다 더 따게 하는 것만 옳다, 옳다 한 기성세대, 부모, 선생의 탓이다. 그러니 조국의 딸 조민이 바로 옆자리에 앉아 있었음에도 경쟁심리와 보복심리로 그녀를 본 적이 없다고 거짓 증언하게 한 것이다. 증언을 한 아이가 그런 잘못을 저지른 데에는 그 젊은이 자체의 문제보다는 그를 그렇게 만든 사회 분위기에서 연원을 찾아야 한다. 결국 사회 교육의 시스템에 심각한 왜곡이 진행돼 왔기 때문이다.

 

유력 일간지 신문기자라고 하는 인간들이 사흘을 4흘이라고 쓰고 인도계 이민 2세를 인도계 2민 2세라고 쓰는 것을 더 이상 ‘귀여운’ 실수로 간주해 주면 안 된다. 속된 말로 싸대기를 처맞아도, 할 말이 없어야 한다. 무엇보다 해당 기자를 손가락질하기보다는 해당 기자의 관리를 맡고 있는 데스크들, 부서 장들을 데려다 곤장을 쳐야 한다. 세상에… 신문사에 데스킹 시스템, 게이트 키핑 시스템이 전혀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데스크들은 뭐하시고 계신 것인가?낮술 드시고 사우나에서 주무시는 거 아닌가. 그러니 ‘우크라이나=체르노빌 사진’이 나가고 그러는 것이 아닌가.

 

교육의 시스템을 복원해야 한다. 아이들에게는 짧고 단순하고 명료한 답을 주되 그 답이라고 하는 게 상황에 따라서, 시대에 따라서 변할 수 있고 진리는 늘 다양한 얼굴을 가지고 있음을 스스로 깨닫게 만들어야 한다. 그 단계적인 의식의 발전 방안에 대해 사회는, 학교는, 가정은, 자체적인 교육 커리큘럼을 갖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선생들 스스로, 혹은 부모들 스스로, 답을 딱 하나만 갖고 산다. 오로지 이 사회에서 남을 밟고 일어서야 한다는 답. 그 밑에서 아이들이 올바로 성장할 수가 없다. 일베들이 양산될 수밖에 없다.

 

부모와 선생이 유식해져야 한다. 세상의 답과 진리가 늘 상대적이고 진실의 X파일은 저 산너머에 있다는 것을 체득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잘못 키워진 아이들이 아시아 사람이라는 이유로 지하철 안에서 얼굴에 침을 뱉고 낄낄대게 된다. 잘못 키워진 애들이 룸펜 프롤레타리아들과 휩쓸려 다니며 폭력을 일삼는다. 잘못 키워진 아이들이 유겐트가 돼서 나치 친위대가 된다. 그런 아이들이 맹목적으로 히틀러를 숭배하고 그의 악행을 돕는다. 그런 아이들 때문에 세상의 파시즘이 부활한다. 자 어떤가, 이제 슬슬 소름이 돋는가? 당신은, 그리고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COVER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