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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갑의 難讀日記(난독일기) 장(醬)

 

 

당신은 늘 거기 있어요. 옥상 한 귀퉁이, 배불뚝이 옹기 속에 있어요. 유리로 된 창도 없지요.

앞으로도 뒤로도 열고 나올 문이 없어요. 문도 창도 없는 동그라미 속에 당신이 있어요. 저는 믿어지지 않을 때가 많아요. 그렇게 사는 것도 산다고 할 수 있을까요. 당신이 사는 옹기 속은 어떤 세상인가요. 얕기만 한 제 눈에는 보이지 않아요. 애써 부릅떠도 볼 수 없어요. 당신은 속에 있고 저는 밖에 있어요. 무릎에 턱을 고이고 쪼그려 앉으셨나요. 옹기 속 동그란 세상에도 환한 달빛이 드리우나요. 저는 모르겠어요. 뚜껑을 열어 봐도 어둠뿐이니까요.

 

당신은 늘 거기 있어요. 옥상 한 귀퉁이, 배불뚝이 옹기 속에 있어요. 메주 아홉 덩이를 넣고 소금물을 부은 날부터였지요. 맞아요. 그랬던 것 같아요. 그때나 지금이나 당신은 말이 없지만, 어둠이 두껍게 내린 밤이면 제 귀에 들려요. 당신은 동그란 옹기 속에서 앉아 울고 있어요. 당신의 울음은 밖으로 퍼지지 못하고 속으로 무너져요. 당신이 우는 밤이면 저는 다리에 힘이 풀려서 주저앉고 말아요. 참지 말아요. 속으로 울지 말아요. 익는다는 것은, 까맣게 태운 속이 다시 썩어 문드러지는 걸까요. 저는 모르겠어요. 뚜껑을 열어 봐도 아픔뿐이니까요.

 

당신은 늘 거기 있어요. 옥상 한 귀퉁이, 배불뚝이 옹기 속에 있어요. 아버지가 떠난 뒤부터였을까요. 육 남매를 기다리다 동네 입구에 쪼그려 앉은 뒤부터였을까요. 예쁘게 차려입고 보따리를 챙겼다지요. 상한 음식이 잔뜩 들어있는 보따리였어요. 새끼들 먹이려고 감춰두었던 것일까요. 맞아요. 어쩌면 그날부터였는지 몰라요. 어머니는 제 발로 옹기 속으로 걸어 들어가 뚜껑을 덮어버렸어요. 덮어버린 뚜껑은 다시는 열리지 않아요. 열 수 없어요. 세상은 뚜껑 바깥에서 살고 어머니만 홀로 뚜껑 안에서 살아요. 얼마나 더 외로워야 닫힌 세상이 열릴까요. 저는 모르겠어요. 당신께서 닫아버린 그 속을 어찌 알겠어요.

 

당신은 늘 거기 있어요. 옥상 한 귀퉁이, 배불뚝이 옹기 속에 있어요. 모자란 저는 당신을 볼 면목이 없어요. 당신처럼 참아내고 삭여낼 자신이 없어요. 끙끙 앓는 가슴으로도 품고 젖을 물릴 용기가 없어요. 오늘은 모자란 제가 세상 나들이를 했어요. 세상은 똑똑한 사람들 천지예요. 모자람을 덜어 보려 나갔다가 모자람만 확인하고 돌아왔어요. 제가 생각해도 저는 참 모자란 사람이에요. 모지리, 라고 놀려도 할 말이 없어요. 모자라야 채울 게 많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던데요. 글쎄요, 저는 잘 모르겠어요. 아무리 생각해도 모자란 건 모자란 것이니까요.

 

당신은 늘 거기 있어요. 옥상 한 귀퉁이, 배불뚝이 옹기 속에 있어요. 당신의 체온은 모자란 제 손바닥에도 고루 따뜻해요. 저는 당신의 배에 귀를 대고 숨소리를 들을 때가 좋아요. 당신의 숨소리는 낮고 아득해요. 온전히 사계절을 익어낸 것들만 뱉을 수 있는 소리지요. 저도 당신처럼 옥상 한 귀퉁이에서 익어갔으면 좋겠어요. 배불뚝이 옹기 속에서, 눈물처럼 짜고 아픔처럼 씁쓸하게 농익었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푹 익다 보면 모자란 제 가슴에도 달빛 스미는 날이 올까요. 당신은 늘 거기 있어요. 옥상 한 귀퉁이, 배불뚝이 옹기 속에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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