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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지청천의 요코하마 맹약과 약속

 

 

앞으로의 일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다른 사람과 미리 정하여 두는 일을 약속이라고 한다. 앞으로의 일이 어떻게 될지, 크든 작든 대부분의 일은 이미 약속에 따라 정해져 있는 셈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을 스스로 부끄러워하지도 않는다. 약속을 저버리는 걸 대수롭지 않게 여기니 세상이 어지러워지고 사람 관계가 험악해진다.

 

사람이나 조직체 사이에 서로 지켜야 할 의무를 글로 명시하여 법률로 책임을 지도록 한 계약은 지켜야 하고 그렇지 아니한 약속은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이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 만연했다.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다.

 

약속은 인격을 담보로 하는 것이고 계약은 법률적 강제를 담보로 한 것이다. 계약을 지키지 않으면 법률적 책임만 지면 되지만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인격의 훼손을 감당해야만 하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법률적 책임보다 인격을 점점 너무나 가볍게 여기는 것 같다. 이 심각성을 주목하는 사람도 드물다. 약속을 가볍게 저버리는 사람은 무엇보다 자신의 인격을 깃털처럼 가볍게 여기는 사람이다. 사람으로서의 자존감을 가진 사람은 약속을 두렵게 여기고, 어려워도 약속을 지킨다.

 

한국사회가 기억해야 할 약속의 아이콘이 지청천과 요코하마 맹약이다.

 

지청천이 교동소학교와 배재학당을 거쳐 대한제국 육군무관학교에 입학한 것은 1907년이었다. 그해, 이미 대한제국의 실권을 장악한 일본은 대한제국의 군대를 해산하고 육군무관학교를 폐교했다. 무관학교에 재학 중이던 사관생도들에게는 일본 육사 예비학교에 편입하거나 자퇴를 선택하게 했다.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굴로 들어가야 한다는 각오를 한 생도들은 대한제국의 국비 유학생으로 일본에 갔다.

 

지청천과 그의 동기들은 일본 육사에서 나라가 망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비분강개한 그들은 요코하마에 모여 전원 자퇴하고 고국으로 돌아가자고 했다. 그때 누군가 이왕에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했으니 학업을 마치고 소위로 임관해 전투 실무를 익힌 다음, 중위로 임관하는 날 일제히 탈영하여 독립군을 일으키자고 제안했다. 그것이 요코하마 맹약이었고, 그 맹약을 제안한 이가 지청천이었다.

 

10년 뒤, 대한제국의 국비로 일본유학을 갔던 28명의 일본 육사 졸업생 가운데 요코하마 맹약을 이행한 것은 단 한 사람이었다. 지청천만 그 맹약대로 일본군 10사단을 탈영해 서간도의 신흥무관학교 교관으로 갔고, 서로군정서 사령관이 되어 홍범도와 함께 항일독립 전선에 섰다.

 

지청천에게 요코하마 맹약을 지키라고 강요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그는 그 약속을 지켰다. 자기 인격을 가볍게 여기지 않는 자존감을 지닌 인간의 선택이었다. 약속을 아무렇지 않게 저버리며 자기의 인격을 너무나 저렴하게 처분하는 사람이 늘어만 가는 시대, 지청천을 다시 생각해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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