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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실패와 성장, 화려함에 감춰진 아픔…김대중 인천시의원 “인생이 그렇더라”

운동권 대학생에서 사업가·정치인으로, 화려해 보이지만 실패의 연속
정치인 김대중은 주거환경 개선 노력, 인간 김대중은 잘못된 역사 바로잡기 매진

 

용적률 개념도 모르던 행정학과 출신 사업가는 훗날 내로라하는 도시재생 분야 전문가가 된다. 다양한 분야에서 성과를 낸 건 끊임없는 도전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그의 새로운 도전은 정치다. 

 

김대중 시의원(국힘, 미추홀2)은 출마 전부터 인천 정‧재계에서 알려진 인물이다.

 

인하대 86학번으로 학내 NL(민족해방)계열 학생운동을 주도했고, 졸업한 뒤에도 인천청년포럼을 조직해 활동했다. 사업가로도 활동한 그는 한국게임산업연합회 부회장 등을 맡기도 했다.

 

그의 첫 공직은 30살 되던 1996년, 초선의 이윤성 전 국회의원 보좌관을 맡으면서다.

 

김 의원은 “직접정치에 뜻이 있어 스스로에게 엄격했고 열심히 일했다”며 “그땐 민원을 해결하고 조직을 꾸리려면 돈이 필요했다. 월급 240만 원에서 집에 가져다 준 건 40만 원뿐이었다”고 말했다.

 

이윤성 의원실은 3년만에 나와야 했다. 의원과 오해가 있었는데 그게 빌미였다.

 

이후 웨딩숍, 이삿짐 프렌차이즈, 여론조사 회사를 차려 성과를 냈다. 특히 친구와 함께 차린 이삿짐 프렌차이즈는 벤처기업으로 등록해 2주만에 70곳 넘는 가맹점을 모집했다.

 

모든 일이 성공적이었지만 사업이 궤도에 들자 동업자들과 이견이 생겼고, 그가 회사를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만나게 된 게 ‘가이블’이라는 게임 회사다. 3D게임과 그래픽엔진을 개발하는 회산데, 인하대 후배들이 창업에 도움을 달라며 찾아와 시작하게 됐다.

 

인하대 창업보육센터 8평짜리 사무실에서 시작한 가이블은 김 의원이 대표를 맡은 뒤 3개월만에 투자를 받았다.

 

투자가 이뤄지자 회사를 후배들에게 넘긴 김 의원은 게임산업연합회 부회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당시 임동근 연합회장이 게임 클러스터 조성을 제안했고, 업계 10대 기업이 모여 사업을 추진한다.

 

주도적 역할을 맡았던 김 의원은 당시 안상수 인천시장을 찾아가 송도5‧7공구에 15만 평을 요구했다. 안 전 시장도 땅 1만 2000평과 용적률 상향을 약속했으나, 사업은 성사되지 않았다.

 

김 의원은 “당시엔 용적률 개념도 몰랐다.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다고만 생각했다”며 “이후 송도테마파크 땅(옛 대우자판)에 사업을 추진했는데, 이동호 당시 대우자판 사장에게 이용만 당하고 버려졌다”고 말했다.

 

게임 클러스터 조성 사업은 그가 부동산 개발에 눈을 뜨게 해준 계기였다.

 

이후에도 송도테마파크 땅 개발에 매달렸다. 투자를 받고 돈을 빌려가면서 10년을 버텼지만 2015년 부영그룹이 땅을 사 가는 걸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화려한 것 같은 삶이지만 돌아보면 실패의 연속이었다.

 

일에서 성과를 낸 뒤엔 구성원들과의 불화로 조직에서 내쳐지는 일이 반복됐고, 대규모 사업을 추진하다 실패해 수백억 원의 투자금을 날리고 빚을 졌다.

 

김 의원은 “내가 잘났다고 성공하는 게 아니라는 걸 실패를 통해 배웠다. 인생이 그렇더라”며 “함께하는 사람, 지지자가 있어야 한다. 앞으로는 그걸 하려 한다”고 말했다.

 

시의원으로서 그의 첫 번째 목표는 원도심 주거환경 개선을 위한 도시재생이다.

 

그리고 인간 김대중으로서의 목표는 잘못 알려진 역사를 바로잡는 일이다.

 

그는 “일제시대 식민사관 영향으로 잘못된 역사가 전해진 것들이 너무 많다”며 “잘못된 역사적 사실을 시민들에게 알리는 일을 하고 싶다. 내 마지막 소명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 경기신문 / 인천 = 최태용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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