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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진 칼럼] 쏘리 위 미스드 유

 

영화계의 중진으로 비교적 큰 영화사의 임원까지 지냈던 R씨는 요즘 주말에 택배 일을 한다. 은퇴 나이를 훌쩍 넘겨 영화 일을 그만 둔 지는 꽤 됐지만 노후를 위해 돈을 모아 두지를 못했던 것이 문제였다. 그럴 여유가 전혀 없었다. 현재 매달 나오는 국민연금은 턱도 없는 얘기이다. 소일 거리라도 하며 주변 사람, 경조사 비용이라도 보탤 겸 하는 심정으로 그는 얼마 전부터 K 배달 업체 엡을 깔고 주문을 받기 시작했다. “잘 연결되면 주말 하루에 10만 원 정도 벌 수 있다”고 그는 말했다.

 

영화 배급 전문가인 A씨는 요즘 풀 타임 택배 노동으로 생계를 이어 간다. 영화계에서는 그가 일 할 공간은 이제 거의 없다. 그는 배급 마케팅 베테랑이다. 그의 오랜 영화산업의 경험과 지식은 외면 받고 있다.  A씨는 야구 모자를 쓰고 다닌다. “나는 괜찮은데, 혹시 영화 쪽 아는 사람을 만나면 상대가 민망해 할 것 같아서”라고 그는 말했다. 이런 사례는 무수하게 많다. 영화 현장 미술 스태프로 일했던 M씨도 요즘 편의점 심야 알바로 생계비를 번다. “일이 전혀 들어 오지 않는다”며 그는 한숨을 쉰다. 나이가 젊은 축에 속하는 사람들은 대리 운전을 뛴다. 유명 영화에 나왔던 조단역 배우들은 “어차피 얼굴도 못 알아 본다”며 자조 섞인 웃음을 띈다.

 

홍준표 대구 시장은 연예계가 좌파 일색인데 지난 총선 유세를 도왔던 일부 연예인들에게 고맙다며 감사를 표했다. 연예계, 특히 영화계가 좌파인 이유, 반 정부적인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홍준표 시장은 지나가는 얘기처럼 했지만 누구에게는 곱게 들리지 않는다. 보편적 복지 운운하면 지금의 집권당이나 강남 3구, 송파 사람들은, 당장 빨갱이 운운하지만 영화 일 같은 프리랜서 노동의 상황은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것이 사실이다. 대부분의 영화 노동자들은 비정규직이다. 물론 끈덕지게 영화 한편을 개발하고 그게 요행으로 흥행에 성공해 큰 돈을 벌 수 도 있다. 그러나 다 알다시피 백 만분의 일, 천 만분의 일 확률이다. 평소 제대로 된 월급이나 자녀 학비를 벌어서 가정에 가져다 주지 못하는 사람이 태반이다. 영화와 정치는 비슷한 구석이 있어서 주변에 세가지 요건이 있어야 하는데 영화나 정치를 하려면 내가 돈이 있거나, 집안에 돈이 있거나, 친구가 돈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 자본주의에서 흙수저 출신, 배경이 없는 사람은 영화를 하면 안된다. 기본 생계비를 보장받지 못한다. 한국영화인복지재단이라는 단체가 존재하지만 주 업무는 장학사업이다. 대체로 원로 영화인들에게 수혜가 돌아 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러 의미에서 김종대 전 정의당 의원이 말한 것처럼 이제 한국의 노동운동은 비정규 노동자, 프리랜서 노동자, 일용직 노동자 중심으로 재편돼야 한다. 영화계가 극명하게 보여주는 대목이다.

 

영국 사회주의자 영화감독 켄 로치의 영화 중에는 ‘미안해요, 리키’라는 작품이 있다. 원제는 ‘Sorry We Missed You’이다. 의역하면 ‘문 앞에 물건 놓고 갑니다.’이다. 택배 일을 시작한, 리키라는 이름의 중년 실직 노동자 남자의 얘기이다. 그의 고된 일상을 종종 어린 딸이 동행한다. 그 어린 손으로 초인종을 눌러도 대답이 없는 집 앞에 ‘부재중 배송’이란 의미의 글을 쓰는 아이의 모습이 자꾸 떠올려진다. 대통령은 국무회의 모두 발언을 하기 전에 이런 장면을 떠올렸을까. 그런 ‘깜량’이라도 되는 사람인가. '나오느니 한숨이로소이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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