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국 등을 상대로 관세 부과 방침을 밝히면서 글로벌 무역전쟁이 격화하자 원·달러 환율이 출렁이고 있다. 시장 전문가들은 미국이 반도체 등 핵심 산업에까지 관세를 확대할 경우 환율이 1500원까지 급등할 수 있다는 우려를 내놓고 있다. 환율 불안이 장기화될 조짐을 보이면서 이달 말 예정된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결정에도 부담이 가중될 전망이다.
5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 종가(1462.9원) 대비 9.1원 내린 1453.3원에 거래를 시작했다. 장 초반 하락세를 보이며 1448.31원까지 떨어졌던 환율은 오후 2시 24분 기준 1448원을 기록 중이다. 이는 미국과 중국 간 관세 갈등이 다소 완화될 수 있다는 기대감이 반영된 결과로 풀이된다.
이 같은 기대감은 국내 증시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이날 코스피와 코스닥 지수는 각각 1%대 상승세를 보이며 2500선과 730선을 회복했다.
하지만 환율 변동성은 여전히 심각한 수준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1일(현지시각) 캐나다, 멕시코, 중국에 대한 관세 부과 행정명령에 서명한 이후, 각국의 대응에 따라 환율은 급변하고 있다. 전일에는 미국이 멕시코와 캐나다에 대한 관세 부과를 유예하겠다고 발표하자 1456.5원까지 하락했지만, 대(對)중국 관세가 예정대로 발효되면서 한때 1466.4원까지 치솟았다가 1462.9원에 거래를 마쳤다.
특히 중국이 즉각적으로 미국에 10~15%의 보복 관세를 발표하면서 양국 간 협상이 결렬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4일(현지시각)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24시간 내 통화할 것이라고 밝혔으나, 5일 오후 2시 31분 현재까지 양국 정상 간의 통화는 이뤄지지 않았다. 백악관은 트럼프 대통령이 “시진핑과의 통화를 서두르지 않겠다”며 “적절한 시점에 하겠다”고 언급했다고 전했다.
문제는 양국의 상호 관세 인상으로 완재품의 가격이 오르면 반도체 등 중간재의 수요가 줄어들며 우리 경제가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점이다. 게다가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철강 및 반도체에 대한 관세 부과 조치를 언급하면서 수출 둔화 우려는 한층 커졌다. 무역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에 대한 악영향이 확대되면 원·달러 환율이 1500원까지 치솟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민경원 우리은행 연구원은 보고서를 통해 2월 원·달러 환율 고점 전망치를 기존 1460원에서 1500원으로 조정하면서 "향후 환율 전망은 무역분쟁 시나리오에 종속되며, 단기적으로 달러 강세에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예찬 상상인증권 연구원은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이 시행될 경우 강달러 가능성이 매우 높다”며 “2월 환율은 1400원 후반에서 움직이며 상단은 1500원으로 본다”고 내다봤다.
문다운 한국투자증권 연구원 역시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전개 양상에 따라서 민감하게 환율이 급등하거나 급하게 상승폭을 반납하는 등 변동성 장세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가능성은 제한적이지만 일시적인 오버슈팅시에 유의미한 상단은 1500원까지 열어둘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환율이 여전히 불안한 모양새를 보이면서 오는 25일 기준금리 결정을 앞둔 한은의 고민도 커지고 있다. 금리 인하를 통해 경기 부양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지만, 금리 인하로 인해 오른 환율은 물가 상승을 부추기는 요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소비자물가는 환율 상승으로 인한 석유류 가격 상승의 여파로 1월 들어 2%대 상승률을 기록했다.
한은이 공개한 지난달 금융통화위원회 정례회의 의사록에 따르면 한 금통위원은 "대내외 불확실성 확대로 인해 성장의 하방 리스크와 외환 부문 리스크가 모두 커진 상황에서, 기준금리를 빠르게 인하할 경우 환율에 추가적인 부담을 주면서 물가 상방 압력이 높아지고 기대와 달리 국내 금융 여건과 성장에 긴축 효과를 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우려했다.
[ 경기신문 = 고현솔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