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년 전 조선왕조 천주교 신유박해(1801년) 사건 때 정약용 선생은 일가족이 천주교에 연루되어 집안은 풍지박산이 되고, 정약용 선생은 전남 강진에 유배를 간다. 그 곳에서 선생은 용기를 내어 자신의 열정을 학문으로 승화시키게 된다. 지방 수령과 목민관이 지켜야 할 올바른 마음과 몸 가짐의 자세, 업무지침에 관련된 내용의 '목민심서'를 1818년에 지었다. 이 책에서는 12 편의 내용으로 되어 있다. 이 중에서 필자는 목민관들의 마음을 다스리는 규율인 ‘율기(律己)’에 관심이 있다. 먼저 바른 몸가짐(칙궁(飭躬), 청렴한 마음(淸心), 집안을 다스림(齊家), 청탁을 물리침(屛客), 씀씀이를 절약함(節用), 절약한 자금으로 백성들에게 은혜를 베푸는 것(樂施)으로의 내용이다.
또 '목민심서'의 서문에 보면 선생의 본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 “....오늘날의 백성을 다스리는 자들은 오직 거두어들이는 데만 급급하고 백성을 부양하는 방법은 알지 못한다. 이 때문에 지위가 낮은 아랫 사람들은 여위고 병들어 줄지어 굶어죽은 시체가 구덩이를 메우지만, 다스린다는 자들은 바야흐로 고운 옷과 맛있는 음식에 자기만 살찌고 있으니, 어찌 슬프지 아니한가.” 위 서문과 같이 당시 백성들 위에서 군림하며 지배하려고 하였던 지방의 수령과 목민관은 백성들을 수탈하여 호화주택에서 살지만, 백성들은 굶주리며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들이 수없이 많음을 알 수 있다. 아마도 선생은 1803년 가을에 강진에서 애절양(哀絶陽)의 한시(漢詩)를 짓고 나서 15년 만에 '목민심서'를 발간하였다. 이 시의 주인공인 농부는 죽은 부친과 아이를 낳은 지 사흘만에 이들이 군포에 배정되었고, 못바친 이들 군포(軍布) 때문에 키우던 소를 관리에게 강탈당하였다. 억울한 마음에 참상(慘狀)을 벌인 농부의 소식을 듣고 정약용 선생은 이 시를 지었다. 그 내용은 우리의 마음을 매우 아프게 한다. “부자집들 한 평생 내내 풍악을 울리고, 이네들 한톨 쌀 한치 베 내다 바치는 일이 없다. 다 같은 백성인데 왜 이다지 불공평하나?”
그렇다면 지금의 대한민국 사회는 어떠한가? 200년 전이나 지금이나 한국사회의 실정은 별반 차이가 나지 않아 보인다. '목민심서'의 내용을 보면 많은 교훈을 우리들에게 주고 있다. 2024년 12월 3일 윤석열의 반헌법적 비상계엄과 그 불법 계엄을 조사 • 처리하는 사법기관의 재판과정과 국회 청문회에서 벌어지는 행정부 장·차관 들의 기회주의적 태도와 무책임, 사법기관 간부와 헌법재판관들의 파렴치한 행패를 보노라면 필자의 마음이 매우 무거워진다.
인간의 본 마음을 알려면 평상시 보다는 긴박한 비상시국에서 그 사람의 마음 마음속을 잘 알 수 있다. 양심의 소리를 듣고 싶어했던 기대는 산산이 깨어졌다. 하늘이 부여하였던 인간 본래의 소박한 마음을 전혀 발견할 수 없다. 커다란 실망과 충격이 이 사회 모두를 강타하였다. 그래서 정약용 선생은 이런 상황을 미리 예측하고 '목민심서'를 구상했으리라. 오늘날 위기에 빠진 대한민국을 구하며 이 나라를 더욱 발전시킬 수 있는 인재들의 핵심이 바로 엘리트 공무원들이다. 오늘날 한국사회가 보다 발전된 민주복지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목민심서'를 읽고 예스런 고전의 향기에 듬뿍 취해 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