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원히 사라지지 않고 괴력을 발휘할 것만 같았던 폭염의 여름을 한발 물러나게 하는 가을비가 내리고 있다. 필자에게 있어서 가을하면 생각나는 것들 중 하나는 꽃보다 눈부신 황금물결의 억새밭이다. 억새는 우리나라 전국의 산과 들에서 자라는 다년생 초본으로 그 삶의 모습이 역경을 헤치고 살아낸 우리나라 민중과 많이 닮아있다.
억새는 위태로운 대롱 끝에 매달려 바람따라 나부끼는 참을 수 없이 가벼운 존재로 보이지만 이는 힘과 크기로 대변되는 전통적인 강함의 개념을 정면으로 반박하고 있다. 억새의 강인함은 오히려 바람부는 대로 휘날리며 꺾이는 척하다가 휘어지고, 휘어지는 척하다가 제자리로 돌아오는 그 유연함에 있다. 이는 단순한 물리적 속성이 아니라 의식적이고 전략적인 생존기술이다.
억새는 어쩌다 바람에 못이겨 허리가 꺾인다해도 금방 생명이 끊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곁에 있는 다른 억새들에 기대어 마지막까지 공존한다. 이렇듯 억새는, 개별의 힘은 약하지만 서로 협력하여 삶을 이어가는 상호의존성이 바로 진정한 강함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억새는 결국 강함이란 고립된 개체의 속성이 아니라 공동체 안에서 서로를 지지하며 함께 존재하는 능력이라는 것을 역설해준다.
억새의 생애주기 전체를 보면 진정한 강인함이란 순간적인 것이 아니라 시간을 관통하는 종단적인 특성임을 보여준다. 한때 억새도 찬란한 황금빛나는 시절이 있다. 바로 억새의 전성기이다. 그러나 억새가 쇠락하는 모습을 보면 비장미가 넘쳐흐른다. 반짝이던 털끝 하나 남김없이 뽑히면 억새의 외양적 아름다움과 생명의 징후는 사라진 완전한 상실의 상태가 된다. 더구나 날씨가 추워지면서 더이상 끌어올릴 물 한방울 남지 않는 척박한 겨울이 되면 생존에 극도로 적대적이고 어떠한 자양분도 없는 환경에 맞닥뜨리게 된다.
이 모든 절망 속에서도 여전히 빈 대롱으로 꼿꼿이 서있는 억새, 다음 봄을 기다리고, 빛나는 가을을 준비하는 억새야 말로 정말 억세다. 이 강인함은 억새가 무엇을 가졌는지(물, 씨앗, 색깔 등)가 아니라 무언인가(자세, 형태, 굽히지 않는 존재감)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진정한 억셈은 전성기가 아니라 쇠락 이후의 끈질김 속에서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다. 노화, 상실, 소멸에 직면한 존재로서의 억새는 존엄하다. 왜냐하면 결국 살아내어 전성기의 황금물결을 이루기 때문이다. 모든 기능이 정지되고 모든 것을 빼앗긴 절대적 고독 속에서도 ‘꼿꼿이’ 서있는 빈 대롱의 이미지는 그 자체로 저항적인 선언이다. 이는 존재의 힘이 기능적 유용성을 넘어선다는 실존적 철학으로 이어진다.
가을이 오는 이 시점에서 나 자신의 개인적인 인생여정과 우리나라의 역사를 되돌아보는 것은 필요하고도 자연스러운 일이 아닌가 생각된다. 우리는 지금 황금지절에 있을까, 아니면 빈대롱으로 버티는 시간 속에 있을까? 황금지절이라고 자만하지 말고, 상실의 시대라고 포기하지 말라는 억새의 억센 음성이 들려오는 것만 같다.
이번 가을에는 아아~ 으악새 슬피우는~ 노래라도 부르면서 억새밭에 가서 그들의 삶에서 한수 배워봄이 어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