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역동성을 상징하는 단어 ‘빨리빨리’는 옥스퍼드 사전에도 등재될 만큼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고유명사가 되었다. 외국인들이 한국에 와서 가장 먼저 배우는 단어가 ‘빨리빨리’라는 사실은 우리가 얼마나 속도와 효율에 진심인 민족인지를 방증한다. 이러한 압축 성장의 에너지는 한강의 기적을 일구어냈지만, 동시에 우리 사회에 짙은 그늘을 남겼다. 세계 최고의 자살률, 급격한 가족 해체, 그리고 홀로 죽음을 맞이하는 고독사는 우리가 앞만 보고 달려오는 동안 무엇을 놓치고 짓밟아 왔는지를 아프게 증언하고 있다.
여기에 인공지능 AI 혁명이라는 거대한 물결이 밀려왔다. AI는 인간이 수십 시간에 걸쳐 하던 일을 단 몇 초 만에 처리하며 인간이 추구해 온 속도의 가치를 근본적으로 뒤흔들고 있다. 이제 단순히 지식을 축적하거나 일을 빠르게 처리하는 능력은 더 이상 인간만의 경쟁력이 되지 못한다. 그렇다면 속도의 경쟁이 사라지는 자리에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존재해야 하는가?
필자는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동아프리카 탄자니아의 지혜를 빌려오고 싶다. "하라카 하라카, 하이나 바라카." 번역하면 "서둘러 하는 일에는 복이 없다"는 뜻이다. 모든 것이 빛의 속도로 변하는 디지털 시대에 이 오래된 격언은 오히려 혁신적인 삶의 이정표가 된다. 그들에게 ‘복’이란 성과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여유 속에서 타인과 관계를 맺으며 얻는 평온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탄자니아 사람들의 삶을 지탱하는 방식은 '뽈레뽈레'라는 한 단어로 요약된다. 스와힐리어로 ‘천천히’를 뜻하는 이 말은 게으름에 대한 예찬이 아니라 속도의 강박 대신 여유 속에서 현재를 음미하며 꾸준히 걸어가는 태도를 말한다. 그들의 걸음은 산책하는 이의 그것과 같다. 천천히 걷는 사람은 길가에 핀 이름 없는 들꽃에 멈춰 설 줄 안다. 구름의 무늬를 보며 상상의 나래를 펴고, 바위에 걸터앉는 여유가 있다. 무엇보다 곁에 있는 이와 눈을 맞추며 안부를 묻고 대화하는 것을 소중히 여긴다. 그것이 바로 ‘뽈레뽈레’ 정신이다.
AI가 우리를 노동의 속도에서 해방시켜 준다면, 그로 인해 생긴 시간의 빈자리는 ‘의미 찾기’와 ‘관계 맺기’로 채워져야 한다. 우리 사회의 관계 단절은 기술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서로의 보폭을 맞추어 걷는 마음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바쁜 일상 속에서는 보이지 않던 가족의 지친 표정과 이웃의 슬픔은 오직 여유의 속도에서만 선명하게 읽을 수 있다. 서로의 걸음을 기다려 줄 때 우리는 비로소 서로를 이해하고 공동체의 가치를 회복할 수 있다.
탄자니아 사람들은 서로의 걸음을 기다려 주는 배려 속에서 공동체는 단단해지고 삶은 비로소 깊어진다고 믿는다. ‘공감의 느림’을 통해 우리는 ‘어떻게 더 빨리 성과를 낼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더 깊이 사랑하고 연대할 것인가’를 치열하게 고민해야 한다.
삶의 깊이는 속도가 아니라 그 시간을 누구와 어떻게 나누었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천천히 가는 길에서 우리는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고, 더 많은 이의 손을 잡을 수 있다.
뽈레뽈레 정신은 우리에게 나지막이 속삭인다. “천천히 가도 괜찮아. 복은 여유 속에 있어. 정말 중요한 것은 이 순간 함께하는 사람들이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