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는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은 인정(人情)을 중시해온 우리의 전통적 법 감정을 대변하지요. 역사 속에서 우리의 법치는 기본적으로 가해자와 피해자를 모두 인간적으로 인식하는 온정주의(溫情主義)에 뿌리를 두고 있어요. 아무리 큰 죄를 짓더라도 진정 뉘우치는 모습을 보이면 쉽게 용서하는 게 우리의 양속(良俗)처럼 돼 있는 게 사실이에요. 그래서 세상이 이만큼 평화로울 수 있었다고 해석하는 건 별문제예요. ‘주취감경(酒臭減輕)’이라는 게 있어요. 술에 취해서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저지른 범죄의 경우 죄인의 심신미약을 인정하여 벌을 가볍게 해주는 조치이지요. 범죄자의 사정까지 헤아리고 살필 정도로 온정주의가 법치의 한복판에서 위력을 발휘해온 것은 어쩌면 미덕일 거예요. 그러나 범죄가 날로 지능화하고 흉포화하는 오늘날 이런 느슨한 풍조는 정말 괜찮은 걸까요? 지하철 신당역에서 여성 역무원이 자신을 스토킹해 오던 동료 남자 직원으로부터 살해를 당하는 끔찍한 사건이 발생했어요. 쉽게 얘기하면 악마적 성품의 남자가 일방적인 구애 끝에 ‘짝사랑’하던 여성을 잔인하게 죽인 사건이에요. 잊을만하면 발생하곤 하는 유사한 강력 사건들을 보노라면 현행법과 제도가 세태
드라마 ‘판관 포청천(包淸天)’은 권력에 굴하지 않은 중국 북송의 명신 포증(包拯)의 생전 일화를 소재로 하는 사극이지요. 수십 년 전부터 우리 국민을 사로잡았던 드라마는 버전을 달리하면서 지금도 유선방송에 꾸준히 등장하고 있어요. 법치(法治)의 기본인 ‘만인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원칙이 너무나 안 지켜지고 있는 세상에서 포증의 속 시원한 “작두를 대령하라!”는 호령이 오래도록 시청자의 기억을 사로잡고 있는 것 같군요. 드라마 장면 중에 기억에 남는 것은 소위 나라의 최상급 권력자인 황족(皇族)의 범죄까지도 가차 없이 법대로 처단하는 판관 포증의 서슬 퍼런 처결이에요. 황족에게는 용(龍)작두, 관리등급에는 호(虎)작두, 일반 백성에게는 개(犬)작두를 동원하는 즉결처분 형식의 작두형이 박진감을 더해주지요. 끔찍하지만, 판결과 동시에 작두를 열어 곧장 사형에 처하는 장면은 엄정한 법치에 목마른 민심을 흔연히 적셔주는 대목이에요. 민주주의가 만개했다는 이 시대에 이 나라 대한민국에 제대로 된 법치가 확립돼 있다고 믿을만한 근거는 과연 충분할까요? 요즘 TV 매체에 등장하는 변호사들을 비롯한 법률가들의 활약이 크게 늘었어요. 예전부터 여의도에 진출해 금배지를 다는
정운찬 전 국무총리는 서울대학교 총장을 마친 직후인 2007년 ‘가슴으로 생각하라’라는 책을 출간했어요. 이 책에서 정 전 총장은 “상대가 예상하는 것보다 더 큰 가슴을 열어 보일 때 진실한 대화가 가능하고, 상대가 기대하는 것보다 더 넉넉한 가슴으로 상대를 대할 때 비로소 상대방을 내 편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고 충고하고 있어요. “어려운 때일수록 가슴으로 생각하고, 힘든 일일수록 가슴으로 승부해야 한다”고도 말하지요. 단순한 상식의 잣대로 보면 “가슴으로 생각하라”는 말은 형편없는 궤변이에요. ‘생각’은 ‘가슴’이 아니라, ‘머리’로 한다는 것은 최소한의 과학이거든요. 그런데 “가슴을 움직여야 성공한다”는 말은 지혜로운 조언인 게 맞아요. 연애든 사업이든 상대방의 가슴, 그러니까 마음을 움직여야 성공하는 법이거든요. 그러고 보면 ‘가슴으로 말하라’는 충고는 가슴을 움직이려면 생각 자체를 머리로만 해서는 안 된다는 말로 의역이 가능할 것 같군요. 당 윤리위로부터 6개월 당원권 정지 처분을 받고 위기에 몰린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기자회견 형식으로 마구 쏘아댄 포탄으로 인해 대통령실을 포함한 여권(與圈) 전체에 포연이 자욱하네요. 여의도식 정치 문법을 깡그리
감당하기 힘든 패배나 위기를 맞이할 적에 특별한 용단을 보여줌으로써 난관을 헤쳐나가는 것은 인간사회에서 종종 목도되는 일이지요. 비상의 시기에 비상의 방법을 쓰는 것은 어쩌면 요긴한 지혜일 거예요. 그러나 작금 이 나라 정치에 걸핏하면 등장하는 ‘비대위(비상대책위원회)’ 정치에는 아무 문제가 없는 걸까요? 임금이 질병이나 고령으로 정사를 제대로 돌볼 수 없게 될 때 누군가 왕 대신 정사를 돌보는 것을 대리청정(代理聽政)이라고 하지요. 또 임금이 어린 나이로 즉위했을 때 왕대비나 대왕대비가 정사를 돌보던 일을 수렴청정(垂簾聽政)이라고 해요. 그런데 대리청정이나 수렴청정의 이면에는 상상을 초월하는 추악한 모략들이 수두룩 일어나 나라를 풍전등화로 몰아넣은 역사도 없지 않았어요. 지난해 재보궐 선거에서부터 대선·지방선거에서 내리 3연패를 당한 더불어민주당이 ‘비대위’ 체제를 벗어나지 못하는 건 다소 납득이 가는 일이에요. 그러나 윤석열 정부 출범 80여 일 만에 ‘비대위 체제’라는 초유의 사태를 맞을 정도로 집권 여당 국민의힘이 난파 직전에 몰린 일은 희한한 사태예요. 더욱이 연일 쏟아지는 내홍 파열음의 진원이 당권을 장악하기 위한 아귀다툼이라니 참으로 어이가 없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전임자들과 비교해 미디어에 비우호적이라는 평가를 받지요. 최근에는 마음에 안 드는 질문을 해대는 기자를 공박하다가 말썽이 나기도 했어요. 언론을 매개로 하는 미국 대통령의 대국민 접촉은 대단히 활발해요. 인터뷰뿐만 아니라 심야 토크쇼에 출연해 장기자랑까지 하지요. 공식 기자회견에다 미디어 스테이크아웃(Media Stakeouts), 미디어 풀스프레이(Media Pool Spray)라고 하는 약식회견을 수시로 갖는답니다. 일본에도 윤석열 대통령이 하는 도어스테핑(Doorstepping) 비슷한 관행이 있어요. ‘부라사가리’(매달린다는 뜻의 동사 부라사가루에서 파생)라고 부르는 일상적 약식 기자회견인데요, 2001년 취임한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전 총리 때부터 계속했다니 역사가 좀 됐지요? 언론기피형인 아베 전 총리나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전 총리 등도 매달 10여 차례 응하며 이 관행을 이어왔대요. 윤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 도입한 도어스테핑 관행을 놓고 구설수가 끊이지 않는군요. 특유의 직설화법에다가 초보 정치인으로서의 미숙함 등이 빚어내는 이런저런 논란 때문에 대통령실에선 여간 고민이 아닐 거예요. 이것저것 꼼꼼히 따지지
수많은 정권교체 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미국의 정권교체기 인사논란은 의외로 잠잠한 편이에요. 지명된 인물을 놓고 국회 안에서 ‘교통위반 딱지’, ‘표절’, ‘주민등록법 위반’ 등의 문제를 놓고 지지고 볶는 일이 뉴스가 되는 일은 상대적으로 적어요. 논란 여지가 있는 인물들은 아예 지명되기 어려운 인사시스템 덕분이에요. 그 기능 한복판에 플럼북(Plum Book)이라는 지침서가 있어요. 겉표지가 자두색(Plum)이어서 붙인 이름이어서 붙여진 이 지침서의 정식 명칭은 ‘미국 정부 정책 및 지원 직책’이래요. 플럼북에는 연방정부의 장·차관을 비롯한 9000여 개 주요 직위의 명칭, 현직자 이름, 임명 형태, 보수 등급과 직급, 임기 여부, 임기 만료일 등에 관한 인사 정보를 담고 있대요. 상·하원이 인사관리처의 지원을 받아 함께 펴내기 때문에 당리당략이 개입할 여지가 아주 좁다니 참 부러운 시스템인 듯해요. 윤석열 대통령이 박순애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과 김승겸 합동참모본부 의장 임명을 강행했네요. 정치자금 유용, 위장전입, 부동산 투기, 자녀 특혜 채용 등 숱한 의혹이 제기된 김승희 복지부 장관 후보는 뭇매를 못 견디고 끝내 자진사퇴를 했군요. 정권이 바뀔 적마다
‘족제비가 대장간에 들어가 쇠붙이 조각을 핥았습니다. 입에서 피가 흐르기 시작했지만, 족제비는 계속 핥았습니다. 족제비는 피가 쇠붙이 조각에서 나온다고 생각했고, 결국 혀를 못 쓰게 됐습니다.’ 톨스토이의 어린이를 위한 우화 ‘족제비’ 편이에요. 때로는 짧은 우화 속에 깜짝 놀랄 만한 비유나 교훈이 들어있는 경우가 있죠. 우연히 이 우화를 읽다가 문득 권력에 취한 우리 정치권의 우스꽝스러운 정쟁 놀이 모습이 떠올랐어요. 정치는 ‘말’로 하는 것이니 ‘혀’는 곧 정략을 상징하지요. 낫이나 도끼 따위 벼린 권력에 베인 자기 혀에서 나오는 피 맛을 정치의 달콤한 맛이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곧 정치꾼들이에요. 야릇한 그 맛에 취한 그들은 날로 혀를 더 요란하게 움직여 요설(妖說)들을 지어내게 되지요. 한번 대장간에 들어가면 혀를 쓰지 못할 때까지 날카로운 쇠붙이를 핥게 되는 이 불가해한 중독의 본질은 무엇일까요? 전당대회준비위원회(전준위) 구성을 마치고 본격적인 전대 준비 체제로 들어간 더불어민주당 각 정파가 본격적인 ‘룰 전쟁’을 시작했군요. 지난 6·1지방선거 중에는 ‘586 퇴진론’이 여론을 흔들더니, 이번에는 ‘세대교체론’이 등장했네요. 노역들을 억지로 물러
우리는 흔히 ‘민주주의는 나와 다른 남을 존중하는 사상’이라는 말에 동의하지요. 반대할 권리, 반대하는 사람의 의견을 소중히 여기는 풍토야말로 선진적인 민주주의의 이상이라는 개념은 백번 옳은 관점이에요. 인위적으로 그리되는 것이 아니라, 의회의 찬반이 51대 49로 만들어지고, 어떤 경우에도 51이 49를 무시하지 않는 정치구조를 지향할 때 성숙한 민주주의는 달성된다고 해도 지나침이 없어요. 그런 측면에서 볼 때 민심의 추가 심하게 흔들리면서 걸핏하면 싹쓸이 투표 현상이 나타나곤 해온 근래의 우리 선거사는 선진적인 민주주의를 구가해왔다고 평가하기가 어려운 게 사실이에요. 이른바 일방적인 승리를 불러오는 ‘몰표’ 현상이 잦다는 것은 민주주의가 성숙하지 못한 나라에서나 나타나는 난맥상이거든요. ‘절대다수’라는 조건은 흔히 ‘일당 독주’의 유혹으로 이어지지요. 여차하면 ‘독재정치’의 빌미로 작동할 위험성마저 높아지는 거예요. 6·1 지방선거 결과를 놓고 전국적으로 지역성 몰표 현상이 크게 개선됐다고 말하기는 어렵겠네요. 보수정당이 호남에서 15% 이상을 획득했다는 자위도 없지는 않지만, 대체로 지역 쏠림은 크게 개선되지 않았어요. 그러나 서울과 경기도 등의 선거결
조선시대 실용주의 사상인 ‘실학(實學)’을 논하자면 그 중심에 목민심서(牧民心書)를 지은 다산 정약용 선생을 먼저 세울 수밖에 없지요. 과연 “민생의 의사가 국정에 반영될 수 있도록 정치구조를 개선해야 한다”고 한 그의 주장은 절대왕정 국가에서 대단한 용기로 평가받을 만해요. 그런데 다산 선생의 국가 개혁 욕망을 자극했다는 반계(磻溪) 유형원 선생의 책을 읽다가 가슴이 뛴 적이 있답니다. 다산보다 무려 140년을 앞서 태어난 반계가 남긴 반계수록(磻溪隨錄)에서 놀랍게도 ‘노비제도의 폐지’ 주장을 보았던 거예요. 조선 망국의 원흉이 국가 생존력을 떨어뜨린 신분제도라는 사실을 깨달을 즈음이었지요. 물론 오늘날처럼 ‘만민 평등’을 주창한 건 아니에요. 반계 선생은 중국의 예를 따라 ‘한 집에 기거하면서 노동을 제공하여 그 대가로 의식과 품삯을 받도록 하는’ 고공제도(雇工制度), 그러니까 일종의 ‘고용노동제도’를 대안으로 제시했더군요. 반계를 읽자니 일찍이 조선 왕들이 유형원의 사상을 받아들이고 실용주의(Pragmatism)를 진화시켰더라면 역사가 달라졌을 거라는 생각이 새록새록 들더라고요. 새 정부가 출현할 적마다 한번은 등장하곤 하는 ‘실용주의’라는 용어가 윤석
춘추시대 진나라 중군위의 직에 있던 기해(祁奚)가 나이 70에 이르러 고령을 이유로 왕 도공(悼公)에게 사직을 청했어요. 기해를 붙잡을 수 없음을 안 왕은 적합한 후임자 천거를 부탁했대요. 그러자 기해는 놀랍게도, 원한 관계에 있는 해호(解狐)라는 인물을 추천했대요. 도공이 깜짝 놀라 “어찌 원수지간인 그를 추천하시오?”하고 묻자 기해는 “왕께서는 제게 적임자를 물으셨지, 제 원수가 누구냐고 묻지 않으셨잖습니까?”하고 태연하게 대답하더래요. 20대 대통령선거전 승자인 윤석열 당선인이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인수위)를 꾸리고 운영하는 중이지요. 초대 국무총리와 국무위원 후보자 인선이 끝나고, 국회가 티격태격 인사청문회를 시작한 걸 보니 정권 교체 시점이 도래했음을 실감하게 되네요. 별로 감동적인 인물을 발굴해내지 못하고도 꿋꿋한 모습인 윤 당선인의 이미지에 만만찮은 뚝심이 흘러넘치네요. 그러나 안타깝게도, 정국은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극심한 대결국면으로 치닫고 있군요. 문재인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에 4.9 대선 패배의 내상이 상당히 깊어 보여요. 특히나 0.73%라는 ‘박빙(薄氷)’의 격차가 현실 비수가 되어서 정부 여당의 폐부를 깊이 찔러버린 형국이에요. 패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