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은 비뚤어져도 말은 바로 하랬다’는 옛말이 있지요. ‘입은 비뚤어져도 주라(朱螺)는 바로 불어라’도 같은 뜻이지요. 사람들이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서 워낙 이치에 닿지 않는 고약한 말들을 많이 지어내니 이를 경계하자고 내놓은 교훈일 거예요. 비뚤어진 입으로도 바른말을 하고 나발도 바로 부는데, 어찌 멀쩡한 입으로 곡변(曲辯)을 늘어놓는 사람이 이리 많으냐는 탄식의 의미도 보이는군요. 요즘은 뉴스마다 시사평론가들이 따라붙네요. 개 중에는 언론계에 오래 활약하여 전문성을 갖춘 이들도 있지만, 소위 기계적인 균형을 맞추려고 등장시킨 정당 소속 ‘말꾼’들도 수두룩하지요. 그런데 어떤 경우든, 지식인이랍시고 방송 프로그램에 나온 멀쩡한 양반들이 하나같이 현란한 말재주로 ‘저질 청백전’을 벌이는 모습이라니 거저 혀를 내두르게 되는군요. 신기한 것은 그 어떤 주제를 놓고 토론을 해도 자기 편 주장에 꿰맞추어 편견투성이 궤변을 지어내는 솜씨들이 하나같이 기가 막히는 수준이라는 사실이에요. 어느 쪽이라고 할 것도 없이 별별 논리들을 다 동원하여 읊어대는 변명과 반박이 멀쩡한 사람 홀리기에 딱 좋은 논법들이네요. 조금만 맑은 귀로 들어보면 영락없이 교묘한 ‘궤변’이거나 불
조선 건국에 깊이 관여한 무학대사와 삼봉 정도전이 궁궐의 좌향을 놓고 치열하게 맞섰다는 역사는 유명한 얘기이지요. 무학은 “인왕산(仁旺山)을 주산으로 유좌묘향(酉坐卯向)이나 해좌사향(亥坐巳向)으로 대궐을 지어야 한다”고 한 반면에 삼봉은 “북악산을 주산으로 임좌병향(壬坐丙向-정남에서 동쪽으로 약 15도 틀어진 방향)으로 지어야 한다”고 주장했어요. 그러니까 무학은 인왕산을 뒷산, 낙산을 앞산, 북악산을 좌청룡, 남산을 우백호로 삼자 한 것이고 삼봉은 북악산을 뒷산, 남산을 앞산, 낙산을 좌청룡, 인왕산을 우백호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는 뜻이에요. 이 대결은 결국 왕실이 ‘도선비기’와 같은 주장을 한 정도전의 견해를 받아들임으로써 종지부를 찍었어요. 그래서 조선의 대궐은 임좌병향으로 지어지게 된 거예요. 하지만 그 이후로도 풍수학적인 논쟁은 끊임없이 일어났지요. 지금의 경복궁은 자좌오향(子坐午向=정북 방향을 등지고 정남향을 바라보는 방향)을 하고 있는데 임진왜란 이후 복원하는 과정에서 바뀌지 않았나 추정되지요. 만약 경복궁의 좌향이 원래대로 임좌병향으로 유지됐다면 조선은 그렇게 허망하게 망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말도 나오지요.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청와
다언삭궁(多言數窮)이라는 사자성어가 있어요. 노자(老子)의 도덕경 제5장에 나오는 ‘말이 많을수록 자주 궁색해지니 속을 지키는 것만 못하다(多言數窮 不如守中)’는 구절이 그 유래랍니다. 일상생활에서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일수록 곤경에 처하게 되는 경우를 보는 일이란 그리 귀하지 않지요. 남아일언중천금(男兒一言重千金)까지는 아니더라도, 과연 속에 든 것도 없이 말만 많은 사람이 인정을 받거나 실속을 차리기는 힘든 건 사실이잖아요? 20대 대통령선거가 1% 차이도 아닌 고작 0.73% 차이로 당락이 갈리면서 대단원의 막을 내렸군요. 어느 쪽도 흔쾌하지 못한 성적표를 받아든 여야 정치권 표정들이 야릇하네요. 길게는 선거 기간 1년 내내 쏟아낸 말 중에 몹쓸 말들이 얼마나 많았는지를 헤아려보면 기가 막히지요. 상대방을 향해 날린 용감무쌍한 악담들의 잔해 또한 참담할 지경이네요. 선거판은 ‘말’로 시작해서 ‘말’로 끝나는, 그야말로 말의 성찬(盛饌)이에요. 특히나 까다로운 유권자들을 온갖 꾐수를 동원하여 더 홀리는 쪽이 이기는 게임이 돼버렸으니 오죽할까요. 이미 오래전부터 선도(先導) 기능을 상실한 한국 정치판에서 선거는 때마다 막말 혈투로 흘러가곤 해왔지요. 이번 선
약팽소선(若烹小鮮)이라는 사자성어가 있어요.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치대국약팽소선(治大國若烹小鮮)’의 준말인데요, 직역하면 ‘큰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작은 생선을 삶듯이 해야 한다’쯤이 될 거예요. 살이 연해서 부서지기 쉬운 작은 생선을 요리할 때와 같이, 정사(政事)를 다루는 데도 차분하게 기다리며 세심하게 살피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는 의미를 품고 있대요. 바야흐로 20대 대통령선거가 막바지로 치닫고 있네요. 워낙 ‘비호감 대선’이니, ‘막장 드라마’니 하는 악평이 지배한 선거전이어서 난생처음 보는 험궂은 장면들이 넘쳐나고 있지요. 국민의 마음을 싱숭생숭하게 만드는 감동적인 비전도 딱히 없고, 시대정신을 표상하는 구호도 없어요. 시종일관 네거티브로 점철된 선거전이 유권자들의 시름만 깊어지게 만든다는 한탄이 나올 정도예요. 그래도, 사뭇 전개되는 팽팽한 진영 대결 구도만큼은 예나 마찬가지인 듯해요. 상대방의 약점만 골라 침소봉대하는 흠집 내기 일변도, 나라 살림 따위는 안중에도 없이 우선 환심을 사고 보자는 식의 포퓰리즘 난무, 정치 수준을 높일 개혁 프로그램 경쟁의 실종 등을 특징으로 정리해도 될 것 같네요. 최선도 차선도 아닌 차악(次惡)을 골라야 하는
우리가 쓰고 있는 주7일 짜리 요일제(曜日制)의 근원은 하나님이 6일 동안 천지를 창조하고 7일째 하루를 쉬었다는 구약성서 창세기 편이죠. 거기에다가 땅을 중심으로 해와 달, 그리고 눈에 보이는 다섯 행성이 시간을 관장한다고 여긴 고대 바빌로니아의 점성술이 결합한 개념이에요. 요일 개념이 없었던 조선 시대에 관청에서는 1일·8일·16일·23일 그리고 연 24회의 절기마다 업무를 보지 않았다지요. 요일 개념이 우리나라에 도입된 건 1895년 갑오개혁 때예요. 오랜 기간 계속되던 ‘주6일 근무제’가 ‘주5일제’로 넘어간 게 2003년이었으니까 한 20년 됐네요. 그런데 요즘 20대 대통령 선거 한복판에서 ‘주4일제 근무’가 화두로 떠올랐어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주4.5일제’를 정책으로 꺼내자, 정의당 심상정 후보가 ‘주4일제’를 공약으로 내놓았지요. 어떻게든 더 쉬고 싶은 현대인에게 달콤한 유혹인 건 분명해요. 유럽에서는 이런 변화의 흐름이 진작부터 나타나고 있어요. 가장 앞서가고 있는 나라는 아이슬란드예요. 이미 지난 2015년부터 주4일제를 시범적으로 도입해 현재 국민의 약 90%가 주35~36시간만 일하고 있대요. 스페인도 지난해 일부 기업에 임
국민의힘 윤석열 대통령 후보가 던진 ‘선제타격론’과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추가배치’ 공약이 논란을 빚고 있네요. 윤 후보의 입에서 ‘선제타격’이라는 말이 나오자마자 민주당이 발끈하는군요. ‘전쟁광’이라는 과격한 말까지 나왔어요. 사실 ‘선제타격론’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 공격 징후가 현저할 경우”를 상정한 질문에 대한 즉석 답변인데, ‘억까’식 비난은 좀 과하다는 느낌이 있네요. 그런데 지난 3일 TV 토론회에서 윤 후보가 한 ‘사드 추가배치’ 발언은 엉성하기 짝이 없어요. 북한의 핵미사일로부터 수도권 방어를 위해서 다양한 요격미사일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는 얘기라면 비난할 이유는 없지요. 하지만 하필이면 비판과 논란의 여지가 많은 ‘사드’를 수도권 주변에 배치하겠다니 벌집을 건드린 셈이 되고 말았군요. 문득 윤 후보 참모들의 수준을 의심케 되네요. 군사전문가들의 견해를 종합하면, 우선 ‘선제타격론’은 북한군의 ‘발사징후’를 포착하기가 어렵다는 차원에서 미더운 대안이 못 된다고 해요. 국민을 안심시키려는 정치적 허세나 꾐수는 될지언정 현실적인 대안은 아니라는 얘기죠. 윤 후보의 ‘사드 추가배치’ 공약도 그래요. 실효성은 물론이고 선거전략 상으
조선 태조 이성계의 문자점(問字占) 이야기는 유명하지요. 왕이 되기 한참 전에 함경도 안변(오늘의 강원도 안변군) 지역에서 앞에 놓인 많은 글자 중 ‘물을 문(問)’ 자를 짚고 점괘를 물으니 점쟁이가 “큰 대문 안에서 커다란 밥상을 받을 것이므로 왕이 될 팔자”라고 말하며 큰절을 올렸대요. 그런데 그때 옆에 있던 거지가 같은 글자를 짚자 “문(門) 앞에서 입(口)을 딱 벌리고 있으니 천생 거지 팔자”라고 핀잔하더래요. 비슷한 에피소드로 복자점(卜字占) 이야기도 있어요. 암행어사가 ‘점 복(卜)’ 자를 짚으니 “마패를 차고 암행어사가 될 팔자”라고 하던 점쟁이가, 지나가던 거지가 옷까지 바꿔 입고 같은 글자를 짚자 대뜸 “쪽박을 찬 거지 팔자”라고 멸시했다죠. 우리 정치인 중에 점을 치기 위해 철학관이나 무당을 찾는 이들이 유독 많다는 사실은 다 알려진 불편한 진실이에요. 유구한 역사를 지닌 명리학(역리학)을 들여다보면 나름대로 상당한 논리적 체계를 갖추고 있어요. 불가측(不可測)한 요소들이 특히나 많은 선거를 앞두고 그들이 운세 풀이를 탐닉하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르죠. 손바닥 왕(王)자 논란으로 곤욕을 치른 국민의힘 대선주자인 윤석열 후보가
조희팔은 2000년대 희대의 사기 사건 주범이죠. 그는 지난 2004년부터 4년여 사이 전국에 10여 개 다단계 판매 업체를 차려 무려 5조 원을 가로챘지요. 검경(檢警)은 조희팔이 2011년 12월 중국에서 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고 결론 지었지만, ‘죽음’마저도 사기극일 개연성이 높다는 의심이 좀처럼 사라지지 않고 있지요. 코로나19 팬데믹이 기승을 부린 지난해 전국에서 발생한 사기 사건은 34만7675건으로서 전년 대비 무려 14.2%나 늘어났대요. 같은 기간 전체 범죄 중 무려 21.9%나 된다니 가히 국제적으로 ‘사기 공화국’이라는 딱지가 붙을 만해요. 대체 사기범죄가 이렇게 넘쳐나는 요인은 뭔가요? 최근 사기꾼들의 범죄 수법이 점점 교묘해지고 있다는 사실이 걱정이에요. 피해대상도 노인이나 아이, 퇴직자, 취업준비생 등 경제적 취약계층으로 확산하고 있어요. 정부 재난지원금과 지원 대출 등을 빙자해 현금인출이나 계좌이체를 요구하는 피싱, 코로나 안내문자와 유사한 내용으로 속여 악성코드가 심어진 문자의 링크를 클릭하도록 유도하는 스미싱도 있군요. 범인이 잡힌다고 해도 대부분 취약계층인 피해자의 손해회복이 쉽지 않다는 점에서 ‘사기’는 악랄한 범죄예요. 민사
의복문화가 ‘맞춤복’ 시대에서 ‘기성복’ 시대로 급변해온 역사는 자본주의 번영의 상징이죠. 주변에서 ‘맞춤복이 기성복보다 낫다’는 인식은 이제 사라졌어요. 큰돈을 들이더라도 제대로 된 맞춤복 한 벌 장만해서 오래도록 입는 게 지혜였던 시대에서, 괜찮은 기성복 마련해서 적당히 입다가 새 옷 사 입는 게 미덕인 시대로 바뀐 거죠. ‘요새는 기성복이 맞춤복 못지않게 잘 나온다’는 말도 심심찮게 나돌잖아요. 이런 시대변화 때문일까요. ‘새것’을 너무 좋아하는 풍조가 만연하고 있어요. 쉽게 ‘새것’을 손에 쥘 수 있는 시대가 되면서 사람들의 가치관도 바뀐 것이죠. 이런 사회적 현상에 영악하게 편승한 게 정치권에 등장하는 ‘새 인물’ 영입 경쟁이에요. 대선·총선·지방선거 가릴 것 없이 각종 선거에서 새 얼굴을 선보여 표심을 홀리려는 시도가 끊임없이 나타나고 있어요. 내년 3월 20대 대선을 앞두고 펼쳐지는 여야 정치권의 선거전에 토라진 청년·여성들의 표를 훔치기 위한 인재 쟁탈전이 특징적으로 나타나는군요. 새 물을 끌어들여 썩은 담수(潭水)를 정화하는 시스템을 시비할 이유는 없지요. 하지만, 선거철마다 경쟁적으로 꾀해지는 ‘새 얼굴’ 영입전은 조잡한 이미지 정치의 소산
온 국민의 기대를 안고 출범한 공수처(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가 안타깝게도 만신창이가 돼가고 있네요. 애초부터 비토해온 일부 정치권의 발목잡기를 뚫고 어쨌든 닻을 올린 공수처 아닌가요? 공수처는 일본 정·관계의 정수기 역할을 해온 도쿄지검 특수부 신화를 모델로 삼고 희망을 걸어온 특별한 수사기관이잖아요. 그런데 어렵사리 출범한 공수처가 ‘대통령선거’라는 폭풍 앞에서 속절없이 흔들리고 있군요. 왜 이렇게 됐을까요? 공공연하게 ‘공수처 폐지’ 구호가 나도는 선거판의 흐름이 불편하기 짝이 없네요. 일부에서 “공수처 수장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도 등장했군요. ‘무능’을 그 이유로 들지만, 그게 정말 문제의 핵심일까요? 하긴 공수처가 고발 사주 의혹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압수수색’조차도 합법을 인정받지 못할 정도로 허술했으니까 그럴 만도 해요. 더욱이 핵심 인물인 손준성 검사를 상대로 법원에 신청한 영장이 세 번씩이나 기각됐잖아요. 법원에서 손 검사에 대한 영장 실질심사를 하는 중에 여운국 공수처 차장이 했다는 “공수처는 아마추어”라는 말은 실망스럽기 짝이 없군요. 하지만 정말 치명적인 뉴스는 여 차장이 “고발 사주는 대장동 넘는 국기문란”이라는 사견을 펴다가 재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