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유럽 스칸디나비아반도에 서식하는 들쥐 레밍(Lemming)은 이따금씩 떼 지어 달려가 벼랑에서 떨어져 죽는 집단자살 행태로 유명하다. 이들의 행위는 당초 왕성한 번식력으로 순식간에 늘어나는 개체 수를 조절하려는 이성(理性) 행위로 해석됐다. 임신 기간은 20일, 한꺼번에 낳는 새끼 수가 2~8마리에 출산 후 두 시간이면 다시 임신이 된다. 그러나 학자들의 본격 연구로 ‘지독한 근시’와 ‘떼거리 본능에 따른 과속 질주’가 원인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일사불란(一絲不亂)은 민주주의의 반대편에 있다. 만장일치(滿場一致) 역시 독재국가나 전체주의 국가의 상징이다. 민주주의의 본질은 다양성의 보장에 있다. 다양성을 슬기롭게 소화해내는 방법으로 인류는 민주주의를 고안해냈다. 생각이 다른 사람의 의견을 존중하고, 양보하고 배려하는 문화가 곧 민주주의다. 때로는 시끄러울 수밖에 없지만, 논리적 설득 과정을 통해서 구성원들을 성장시키고 조직을 건강하게 만드는 것이 민주주의의 특장점이다. 불명예스러운 탄핵의 역사를 만들어낸 박근혜 정권의 몰락은 일사불란의 정치, 배제의 정치, 독식의 정치가 빚어낸 비극이었다. 지난 2015년 2월 초 당시 여당의 원내대표 유승민은 국회 대표
1995년 지방선거 얘기다. 서울시장 선거 초반 여론조사에서는 민주자유당 당내 경선에서 이명박 후보를 꺾고 본선에 올라온 정원식 전 23대 국무총리와 민주당의 조순 후보의 대결은 크게 기울어진 운동장이었다. 그때만 해도 TV토론이 그렇게 익숙하지 않은 시절이었음에도, 두 후보 간 3회의 맞장 토론이 성사됐다. 명성 높은 경제학자 출신인 조순 후보가 달변가 정원식 후보에게 상대가 되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압도적이었다. 첫 번째 TV토론이 시작되자 과연 정원식 후보의 수려한 말솜씨가 토론회장을 압도했다. 그러나 두 번째 토론회가 지나가면서 판세는 요동을 치기 시작했다. 어눌한 듯한데도 왠지 신뢰감이 더 가는 쪽은 조순 후보 쪽이었다. 세 번째 토론회가 펼쳐질 즈음에는 여론이 완전히 뒤집혀 있었다. 물론, 선거가 종합적인 전술 전략이 다 총동원되는 게임인 만큼 TV토론만이 변인(變因)이었다고 말하긴 어려울 것이다. 선거결과는 이솝우화에 나오는 ‘토끼와 거북이’ 종장과 똑같았다. 민주당 조순 후보의 득표율은 무려 42.35%를 찍었고, 민자당 정원식 후보는 20.67%에 그쳐 33.51%를 얻은 무소속 박찬종 후보에게마저 뒤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 이변은 이후
중국 헌법 제9조와 10조는 토지의 국가 소유를 명시하고 있다. 9조는 “광산, 하천, 삼림, 야산, 초원, 황무지, 갯벌 등 자연자원은 모두 국가 소유다”라고 못 박고 있다. 이어지는 10조 역시 “도시의 토지는 국가 소유다”라고 적시하고, “어떤 조직이나 개인이 침범하거나 매매, 어떤 방식으로든 전매해서는 안 된다”고 밝히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그럼에도 중국에서는 ‘국가 소유’ 토지 위에 전 세계 어느 나라보다 빠른 속도로 아파트와 초고층 빌딩, 특급호텔들이 우후죽순처럼 올라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중국인 중 그 누구도 중국 헌법의 ‘토지공개념’을 믿지 않기 때문이다. 중국 사람들은 사용기한이 만료되더라도 개인이 수십 년간 살던 아파트를 정부가 회수해가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보편적으로 ‘토지공개념’이란 토지의 개인적 소유권은 인정하되 이용은 공공복리에 적합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이 개념을 무턱대고 적용하는 것은 국가가 지나치게 개인의 재산권이나 자유를 속박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않다. 그러나 ‘토지공개념’이 지향하고 있는 ‘공공복리’의 이상은 차용할 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다. 좀처럼 답을 찾지 못하고
집의 기본개념이 ‘거주’에서 ‘투자’로 바뀐 세월이 짧지 않은 나라에서 주택을 둘러싼 새로운 ‘흑백’ 논리, ‘선악’ 편견의 포퓰리즘이 판을 치고 있다. 정치권이 나서서 은연중에 1주택이나 무주택자는 선(善)이고, 2주택 이상 다주택자는 악(惡)이라는 이미지를 떡칠하는 데 여념이 없다. 노출되지 않는 천문학적 현금이나 주식 부자는 용서해줄 만하고, 두 채 이상 집을 가진 ‘집 부자’는 용서 못 할 파렴치한으로 몰아가는 이율배반적 여론재판이 판을 친다. 우리 사회에서 집은 ‘얼마나 빨리 소유하고, 어떻게 부의 축적과 확장으로 연결해 나가느냐’는 개념의, 이른바 퀘스트(Quest·온라인 게임에서 이용자가 다음 단계로 나가기 위해 수행해야 하는 임무 또는 행동)로 존재한다는 해석이 있다. 집 평수를 더 늘릴 필요가 없는 사람들의 최종 퀘스트는 집의 자가 증식을 추구하는 ‘투자’ 단계로 나아간다. 투자수익률로는 부동산을 따라갈 재테크 종목이 없는 이상한 나라의 불행한 사이클이다. 자기 팬티 끈 끊어진 줄 모르고(또는 숨기고) 상대방을 향해 주먹질에 열중하다가 곱빼기 망신을 당하는 인사들이 늘고 있다. 스스로가 다주택자이면서 다른 편 다주택자들을 골라 시시콜콜 물어뜯
“태영호 의원이 사상 전향 여부를 저한테 다시 물어보는 것은 아직 남쪽의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는 것이라고 말씀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국회에서 펼쳐진 통일부 장관후보자 인사청문회장에서 태영호 미래통합당 의원의 불편한 ‘사상 전향’ 질문 공세를 점잖게 받아넘긴 이인영 통일부 장관의 답변은 백미(白眉)였다. 태 의원의 거듭된 질문에 “그 당시에도 주체사상 신봉자가 아니었고 지금도 아니다”라고 못 박은 답변도 시원했다. 태영호는 우리 사회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는 탈북 고위급 인사다. 논란이 있지만, 태영호의 부친은 김일성의 전령병 활동 경력을 가진 항일 빨치산 1세대 태병렬 인민군 대장이고, 부인 오혜선 씨도 김일성의 빨치산 동료로서 노동당 군사부장이었던 오백룡의 일가로 알려졌다. 탈북 당시 태영호는 주영(駐英) 북한 대사관에서 10년간이나 일한 서열 2위의 베테랑 외교관이었다. 태영호의 탈북 동기에 ‘북한 체제에 대한 회의감’이 빠질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류경식당 종업원 집단 탈북 사건 이후 25세 이상 해외 거주 외교관 자녀의 평양 소환령이 떨어져 맏아들이 평양에 돌아가야 할 상황에 놓인 것이 결정적 계기였다는 설명이 가장 인간적이다. 볼모
“안녕하세요? 김윤희 학생 맞으시죠?” 다세대주택 골목 입구 계단에 앉아 있던 30대 초반 가량으로 보이는 남자가 벌떡 일어나 다가오며 말을 걸어왔다. 백육십 센티미터를 겨우 넘길까 말까 한 작은 키의 남자는 흰색 와이셔츠, 노타이에 짙은 잿빛 양복 차림이었다. 남자의 어깨엔 커다란 카메라가 걸려 있었다. 그의 얼굴을 쳐다보던 윤희의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검은 뿔테 안경……. 순간적으로 아프리카 박천수 사장이 떠올랐다. 윤희는 콩닥거리는 가슴을 누르며 뒤로 물러섰다. “네. 그런데… 누구시죠?” “저는 동천신문 백종원 기자라고 합니다.” “무슨 일이신가요?” “제보를 받고 취재를 하러 왔습니다. 곧바로 물어볼게요. 카페 아프리카에서 알바 일을 하셨지요?” “…예?” 이를 어째야 하나, 판단이 곧바로 서지 않았다. 다리에 힘이 빠지고 온몸이 달달 떨리기 시작했다. 그가 다시 목소리를 낮추며 물었다. “박천수 사장에게 당하신 것 맞나요?” 하늘이 노래지는 느낌이었다. 어떻게든 벗어나야 할 것 같은데 머릿속이 마구 헝클어지고 있었다. 백종원 기자라는 사람의 몸이 부풀어 오르더니 갑자기 커다란 코뿔소로 변했다. 그의 코에 걸린 커다란 검은 뿔테 안경이 무지막지한
‘사이다’는 대표적 무색 탄산음료다. 예전엔 초등학교 시절 소풍을 갈 적에나 맛보던 귀한 마실 거리였다. 처음에는 사과를 발효시켜 만든 사과술을 뜻했던 사이다는 1853년 영국 해군에 의해 일본에 전래됐다고 한다. 1868년 영국인 노즈 안드레가 일본 요코하마에서 복합향료를 사용한 ‘샴페인 사이다’라는 이름의 제품을 개발했고, 1905년 고종 광무 9년에 우리나라에 ‘사이다’라는 이름으로 들어온 것으로 돼 있다. 지방선거 TV토론회에서 ‘친형 강제입원’ 의혹과 관련해 허위 사실을 공표한 혐의로 재판에 회부됐다가 대법원의 ‘파기환송’ 결정으로 벼랑 끝에서 살아 돌아온 이재명 경기지사의 비상(飛翔)이 범상치 않다. 이 지사는 각종 정치현안에 대해 특유의 ‘사이다’ 발언을 시리즈로 내뿜고 있다. 불과 며칠 사이에 대권 잠룡 선호도에서 장기간 1위 자리를 굳혀왔던 이낙연 의원을 오차범위 안까지 따라붙고 있다. 20일 리얼미터가 YTN 의뢰로 전국 성인 1천 명에게 실시한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 조사(신뢰수준 95% 표본오차 ±3.1%포인트)를 보면, 이낙연 의원은 23.3%, 이재명 지사는 18.7%로 각각 집계됐다. 둘의 선호도 격차는 4.6%포인트로, 이 지사의
“박천수가 팬티를 어떻게 끌어 내렸니?” 죽고 싶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그 순간을 다시 떠올리는 일 자체가 고역인데, 형사는 서류파일을 들고 앉아 무표정한 얼굴로 한 시간째 꼬치꼬치 이상한 것까지 거듭 캐물었다. 윤희는 지옥만큼이나 고약한 면접시험장에 앉은 것 같은 기분으로 형사를 마주하고 있었다. 박태호의 집으로 찾아가서 한바탕 난리를 치고 유리창 몇 개를 더 때려 부순 아버지는 이번에는 경찰서를 찾아가 왜 박천수를 잡아 처넣지 않느냐고 고래고래 호통을 쳤다. 그래서였는지 다음 날 오전에 동천경찰서 조사과 최 형사라는 사람이 서류파일을 들고 병실로 찾아와 피해자 신문이라는 걸 시작했다. 중년의 형사는 질문 자체를 조금 미안해는 것 같기는 했다. 그러면서도 윤희에게 아주 구체적인 답변을 들으려고 했다. 조사는 한 가지를 물어서 답변을 들으면 곧바로 받아적고, 다시 묻고 하는 방식으로 이어졌다. 윤희가 답변을 머뭇거리자 형사는 약간 짜증 섞인 목소리로 채근했다. “어쩔 수 없어. 이게 우리가 하는 조사 절차야. 현장 상황을 세세하게 정리해야 하니까 이렇게 물을 수밖에. …그래, 박천수가 팬티를 어떻게 끌어 내렸냐?” “그냥… 팬티 끈을 움켜쥐고 아래로 확…
‘인간은 두 종류밖에 없다. 하나는 자기를 죄인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의인(義人)이며, 다른 하나는 자기를 의인이라고 생각하는 죄인이다.’ 철학자 파스칼의 말이다. 그는 ‘인간은 신과 악마 사이에서 부유(浮遊)한다’는 말도 했다. 우리는 한 인간의 삶을 놓고 아는 만큼만 평가한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이 나라에서는 선악의 개념도 아적(我敵)의 가름에 종속된 지 오래다. 지독한 진영논리에 중독된 가치관들이 세상인심을 곧잘 구렁텅이로 몰아넣는다. 고(故) 박원순 서울시장이 남기고 간 숙제가 무겁고 또 무겁다. 13일 공개된 생전 박 시장의 성추행 의혹은 충격적이다. 그 기간이 무려 4년 동안이었다는 점도 그렇거니와 언어로, 문자로, 때로는 물리적으로 지속해온 추행의 양태는 상상을 초월한다. 그가 이 나라 최고의 명성을 지닌 인권변호사요 시민운동가가 아니었다면, ‘서울대 우 조교 사건’이라고 불리는, 지도교수의 성추행 사건을 만천하에 드러낸 선각자가 아니었다면 충격이 좀 덜했을까. 일방적 주장이긴 하지만, 박 시장은 피해자를 수시로 집무실 또는 휴게실 침대로 불러 “셀카 찍자”, “안아달라”고 하며 신체 접촉을 꾀했고, 다리에 든 멍 자국을 보며 “호-해 주겠다”며
“아악! 왜 이래요, 사장님! 아악! …사람 살려!” 마지막으로 화장실 청소를 마치고 가운을 막 교복으로 갈아입고 난 뒤였다. 탈의실로 쓰고 있는 주방 옆 작은 창고에서 나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잠시 황홀한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을 무렵, 카페 문이 거칠게 열리면서 누군가 뛰어들어와 윤희에게 달려들었다. 굵은 뿔테 안경을 쓴 남자…박천수. 작은 도시 동천에서 그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시내 한복판 번화가에서 가장 큰 건물인 이 그랜드 빌딩 건물주의 아들이자 윤희가 아르바이트로 일하는 2층 카페 아프리카의 대표이기도 했다. 박 사장은 일이 있다면서 초저녁에 일찍 카페를 나갔었다. 문을 닫으려는 가게에 다시 들어서는 박천수를 보자 윤희는 ‘뭐 잊어버리고 간 것 있으세요, 사장님?’하고 물어보려고 입을 막 열려는 참이었는데, 다짜고짜 와락 끌어안고 홀 바닥에 구른 것이다. 있는 힘을 다해 박 사장을 떠밀면서 윤희는 다시 한번 외쳤다. “사장님! 아니, 아저씨! 이러지 마세요! 대체 왜 이래요?” 그러자 박천수가 윤희의 교복 상의를 거칠게 벗겨 내렸다. 투두둑 하고 단추 뜯어지는 소리가 났다. 박천수가 덜덜덜 떨리는 목소리를 냈다. “윤희야, 제발 좀 가만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