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에 살고 계신 이중길 전 서울예술고등학교 교장 선생님은 특별한 분이지요. 오래전에 퇴임하신 선생님은 트래킹 마니아들에게는 전설적인 인물이에요. 지난 2012년 칠순의 연세에 유럽을 가로지르는 5600㎞ 어마어마한 길을 걸어서 완주하신 놀라운 기록을 갖고 계시기 때문이랍니다. 매일 25~67킬로미터씩 걷는 불가사의한 도보의 결과였다고 하니 말이 안 나올 지경이지요. 선생님이 들려주신 유럽횡단 에피소드에는 신기한 내용이 많지만, 인상적으로 남아있는 것은 ‘파이팅(Fighting)!’이라는 응원 구호 이야기예요. 굳이 비유하자면 중국의 ‘짜유(加由)!’ 정도가 될 텐데요, 유럽 여행 중에 아무 생각 없이 ‘파이팅!’이라는 구호를 써먹었다가 상대방이 정말 싸우자는 건 줄 알고 표정이 새파래지는 바람에 곤경을 겪었다더군요. 말씀을 듣고 보니 정말 우리는 ‘파이팅!’을 아무 데서나 남발하고 사는 것 같아요. 우리가 무심코 쓰고 사는 언어습관 중에는 ‘전투적’이거니 ‘적대적’인 게 적지 않습니다. 그 가운데 ‘틀리다’라는 말은 참 심각해요. ‘다르다’라고 말해야 할 때 ‘틀리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예요. 텔레비전 속에서도 그렇고, 길거리에서도 그렇게 말하는
좀처럼 보기 힘든 정치권의 신진돌풍 ‘이준석 태풍’에 ‘꼰대 정치’가 외통수에 걸려 전전긍긍하고 있군요. 국민의힘 당 대표 경선에서 본선에 오른 5명의 후보 중에서 내로라하는 다선(多選) 경력 정치인들이 36세의 청년 이준석 하나를 어찌하지 못해 쩔쩔매는 중이네요. 이준석은 지난달 28일 열린 예비경선에서 예상을 깨고 1위 테이프를 끊었어요. 일반 국민 여론조사에서 51%, 당원 여론조사에서 31%의 지지를 얻은 겁니다. 이준석 돌개바람은 예비경선을 통과하면서 오히려 더 거세어지고 있네요. 여론조사업체 PNR리서치가 머니투데이와 미래한국연구소 의뢰로 실시해 발표한 조사에서 응답자의 무려 40.7%가 이준석을 차기 국민의힘 당 대표에 적합한 인물로 꼽았군요. 2위인 나경원 전 의원(19.5%)과의 격차는 무려 21.2%포인트에 달하네요. 예비경선 전인 지난달 22일 조사에선 이 전 최고위원 지지율이 26.8%, 나 전 의원은 19.9%였거든요. 흔히들 여론조사는 ‘트랜드(추이)’를 봐야 한다고 하잖아요. 참으로 무서운 기세입니다. 폭발한 민심이 당심을 강력하게 견인하는 양상이네요. 이준석 쓰나미는 여야를 막론하고 관록의 기성정치인들을 벌벌 떨게 하고 있습니다.
종편 방송을 중심으로 불붙은 ‘트로트’ 신드롬이 실로 대단한 광풍이군요. TV조선이 시작한 트로트 경연 열풍에 거의 모든 방송사가 영향을 받고 있는 형국입니다. 발라드·재즈·록 등은 물론 아이돌 출신들까지 오디션 프로그램에 앞다투어 몰려드는 풍경이 일상이 됐네요. 배우들이 트로트 가수를 꿈꾸는 일도 귀한 일이 아닙니다. 트로트 경연에 나온 유명 발라드 가수가 회한의 눈물을 흘리는 모습은 가슴을 짠하게 만들더군요. 자신이 추구하는 음악 장르를 바꾸는 일이 쉽지 않을 텐데, 어쨌든 도전하는 모습은 참 대단합니다. 평생을 걸고 해온 음악을 버리고 트로트에 뛰어드는 행태에 대한 일부의 비판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음악은 장르마다 특징이 있고, 독특한 매력도 따로 있긴 하지요. 그 가치를 지키는 일도 소중하지만, 다양한 도전을 끝내 비난할 이유가 따로 있지는 않을 거라고 봅니다. 논란은 또 있어요. 어린아이들이 어른들의 정서를 담은 성인가요들을 부르는 모습이 불편하다는 시각입니다. 얼핏 들으면 일리가 있어요. 그러나 이미 열린 문화 속에 살고 있는 아이들에게 트로트를 금지곡으로 막아놓고 동요만 부르라고 강요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니지 않을까 싶네요. 사랑의 기쁨, 이별
어떤 형제가 함께 길을 가던 중 아우가 금덩어리 두 개를 주워서 하나를 형에게 주었습니다. 강에 이르러 배를 타고 건너는데, 아우가 갑자기 금덩어리를 강물에 던져 버립니다. 형이 까닭을 묻자 아우는 “그동안 형을 사랑했는데, 금덩어리를 나누고 보니 갑자기 미워하는 마음이 생겨요. 그래서 버렸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형도 “네 말이 과연 옳다” 하고는 자기 금덩어리도 강물에 던져 버립니다. 양천강(陽川江 경기도 김포군 공암진 근처)을 무대로 전해오는 ‘형제투금(兄弟投金)’ 설화 내용이지요. 며칠간 ‘100억대 횡령’이라는 제목으로 주요 뉴스에 등장해 세간의 관심을 끌던 방송인 박수홍 형제 사건이 결국 소송전으로 번졌네요. 박수홍이 전 소속사 대표인 친형 박진홍을 상대로 고소를 했군요. 박수홍 측은 “친형과 30년 전부터 매니지먼트 명목으로 법인을 설립한 후 수익을 7:3의 비율로 분배하기로 약정했지만 지키지 않았다”고 주장합니다. 이런 종류의 추담(醜談)들이 대개 그렇듯이, 양 측이 뒤엉켜 폭로전을 시작했네요. 박수홍의 친형 박진홍 측은 언론 인터뷰에서 “박수홍과의 갈등이 박수홍의 1993년생 여자친구로 인해 시작된 것”이라고 다른 얘기를 꺼냈군요. 또
LH 땅 투기 사건이 온 나라를 뒤죽박죽으로 만들면서 온갖 이슈를 다 삼키고 있네요. 양파껍질 벗기듯이 까도 까도 또 나오는 처참한 양상입니다. 정치권은 상대방을 할퀴려는 이전투구(泥田鬪狗) 소재로나 쓰고 있군요. 권력과 금력, 그리고 정보력이 세상을 지배하게 된 지는 이미 오래됐잖아요. 전수조사가 어쩌고, 특검이 어쩌고 난리가 났네요. 정치권 공방의 속셈을 헤아리기란 어렵지 않지요.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이 민심을 달래기 위한 사탕발림 정책들을 막 쏟아내는군요. 급기야는 “LH를 당장 해체해야 한다”는 과격한 목소리도 있네요. 어째 세월호 사건 뒤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이 부르대던 “해안 경찰 해체” 극약처방 쇼가 떠오릅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말한 대로 부동산 투기는 오랜 세월 은밀한 ‘그들만의 리그’에서 횡행해온 ‘적폐(積弊)’ 맞습니다. 남김없이 때려잡아야 한다는 말에도 공감합니다. 그런데 그게 정말 가능할까요? 대추나무에 연 걸리듯이 얽혀있는 권력자들과 재벌들과 정보 귀족들의 조직적 저항을 막아낼 수 있을까요? 차명으로, 또는 기기묘묘한 수법으로 소유권을 분산해놓았을 기득권 타짜들의 보호막을 도대체 어떻게 뚫겠다는 흰소리입니까? 아무리 고민해봐도 이런
지난달 25일 이 나라 법치에 중대한 진화(進化)의 싹을 보여 준 소중한 판결이 있었군요. 대법원 1부(주심 이흥구 대법관)가 비폭력·평화주의 신념으로 예비군 훈련을 거부한 사람에게 처음으로 무죄를 선고한 겁니다. 시중에 말이 많네요. 너도나도 병역 면제를 위해 양심을 악용하면 어쩔 거냐는 걱정이 흐드러졌네요. 분명 그런 우려는 있습니다. 하지만 국민의 양식을 언제까지 ‘짐승’ 수준으로 보는 편견으로 갈라 세우고 난도질할 건가요? 지난 2013년 2월 제대하여 예비역에 편입된 A씨는 2016년 11월부터 10여 차례나 예비군 훈련, 병력 동원훈련을 거부했습니다. 예비군법과 병역법 위반 혐의로 14번이나 고발돼 재판을 받아온 그는 훈련 불참 사유로 ‘타인의 생명을 빼앗는 전쟁 군사훈련에 참석할 수 없다는 신념에 따른 행위’라고 강변해왔답니다. 우·무죄를 가른 법리적 판단기준은 ‘진실성’ 여부였습니다. 같은 날 대법원에서 같은 혐의로 재판을 받은 B씨는 ‘유죄’ 판결을 받았거든요. B씨의 경우는 군사훈련과는 본질적 관련성이 없는 ‘권위주의적 군대 문화, 군대 내 인권침해·부조리’ 등을 병역거부 사유로 들었지만 ‘진실성’을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이에 앞서 얼마 전
일부 고급아파트에서 배달노동자들을 짐짝 취급하고 있다는 뉴스가 가슴을 저리게 하네요. 성 소수자들의 축제인 ‘퀴어 페스티벌’을 둘러싼 정치권의 논란도 실망스럽습니다. 우리 국민의 천박한 ‘차별의식’ 잔재를 보여주는 인권 후진국 현상이어서 씁쓸합니다. 인류는 ‘차별’에서 ‘평등’으로 끊임없이 진화해 왔지요. 구시대적 ‘차별주의’는 일소돼야 합니다. 지난해 한 아파트 경비원이 몰상식한 입주민의 반복적인 폭언과 폭행에 시달리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비극이 있었지요. 고통을 호소하는, 고인이 남긴 처절한 육성과 CCTV녹화 장면 속에서 피의자가 힘없는 경비원을 밀치고 때리고 모욕하는 장면은 참담했습니다. 최근 배달노동자들을 차별하고 천대한 일부 아파트의 미개한 ‘갑질’ 소동은 어떤가요? 오토바이 출입을 아예 금지해 배달물건을 들고 먼 거리를 걸어 들어가야 한다지요. 배달노동자들을 화물 엘리베이터로 몰아낸다는 소식은 듣는 귀를 의심케 합니다. 배달비 몇 푼 벌려고 시간 싸움을 벌여야 하는 노동자들의 처지를 왜 그렇게 못 헤아려주는 걸까요? 오는 4월로 예정된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여야 후보들의 뜨거운 전쟁이 시작됐군요. 그런데 그들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
지난 1958년부터 3년간 중국에서는 무려 3천여만 명이 굶어 죽는 희대의 참극이 일어났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어마어마한 메뚜기 떼들이 논밭의 곡식들을 모두 먹어치웠기 때문입니다. 자연재해였을까요? 아닙니다. ‘인재(人災)’였습니다. 마오쩌둥(毛澤東)이 펼친 ‘제사해(除四害) 운동’의 여파였죠. 이 운동은 들쥐, 파리, 모기, 참새 등 네 가지 해충을 제거하는 국민운동을 말합니다. 마오쩌둥은 쓰촨성(四川省)을 방문했을 적에 “참새가 먹는 곡식이 엄청나다”는 보고를 듣습니다. 마오는 즉각 참새를 없애라고 지시했고, 정부 주도로 참새 소탕 작전이 벌어집니다. 관료들은 참새 100만 마리를 잡으면 6만 명분 곡식이 절약된다는 계산까지 내놓습니다. 그래서 ‘인민의 적’ 참새가 박멸 대상 1호가 됩니다. 그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천적 참새가 사라진 들판은 메뚜기 떼가 장악했습니다. 곡식이란 곡식은 메뚜기가 다 먹어치우니 수확할 게 없었습니다. 결국 이 ‘참새 박멸’ 정책은 3천만여 명의 아사(餓死)라는 사상 유례없는 비극으로 이어집니다. 소련에서 급히 참새 20만 마리를 수입했지만 속수무책이었지요. ‘생태계의 먹이사슬’을 무시했던 마오쩌둥의 무지가 빚어낸 참극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청마(靑馬) 유치환의 명시 ‘행복’이 문득 떠오르네요. 청마는 돌싱 시인 정운(丁芸) 이영도를 지독하게 짝사랑하여 무려 5천 통이나 되는 연서를 날린 시인으로 유명하죠. 정치권 화두 중 하나인 ‘이익 공유제’ 뉴스를 읽다가 다시 ‘기부문화 선진국’ 생각에 빠져들던 끝이었습니다. 모두가 죽을 쑤는 코로나 시대에, 오히려 돈을 많이 번 기업들로 하여금 피해 기업들을 돕도록 하자는 아이디어라고 했던가요. 문재인 대통령도 신년 기자회견에서 “자발적”이라면서 정부의 “강력한 인센티브”를 언급했네요. 참 좋은 뜻이 담긴 아이디어인데, 왜 자꾸만 ‘준조세’의 쓰라린 기억이 떠오를까요. 결국은 ‘울며 겨자 먹기’로 동참하지 않으면 안 될 상황을 만들던 케케묵은 ‘억지 춘향전’이 되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왠지 구태처럼 보입니다. ‘기부문화 선진국’ 미국 얘기가 생각납니다. 미국을 세계 최고의 강대국으로 존재하게 하는 힘이 바로 최상 수준으로 발달한 ‘기부문화’라는 사실은 상식입니다. 미국에서 ‘기부 정신’은 가정과 학교의 2세 교육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덕목입니다. 미국의 부자들은 기부 경쟁에서도 치열합니다. 정부에서
한 방송국의 심층 프로그램이 촉발한 ‘정인이 사건’에 대한 논란이 새삼스럽게 신년 정국을 뜨겁게 달구고 있네요. 고작 생후 16개월 된 아기 정인이가 악마 같은 양모(養母)에게 짓밟혀 사망한 지 80여 일이 지난 다음에야 온 사회가 들고일어난 시끌벅적 난리가 몹시도 불편합니다. 왜냐면, 이렇게 들썩들썩 법석을 떨다가도 시간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모두 돌아서서 까맣게 잊어버릴 거라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지요. 눈웃음이 예쁜, 천사 같던 아기 정인이는 과연 누가 죽인 걸까요. 정인이는 2019년 6월에 태어났지만, 친부모 양육이 어려워 그해 7월 일단 위탁모에게 맡겨집니다. 그리고 이듬해인 2020년 2월에 입양단체에서 일한 경험이 있다는 새엄마 J모에게 입양됩니다. 그런데, 불과 1개월 이후부터 새엄마는 장시간 아이를 빈집에다 버려두는 등 16차례나 방임합니다. 비극은 잇따라 일어납니다. 5월 25일 정인이의 몸에서 멍 자국을 발견한 어린이집 교사가 아동학대 의심 신고를 합니다. 하지만 경찰은 잘 키우라는 당부만 하고 보냈습니다. 6월 29일 무더운 날 승용차 안에 방치된 정인이를 발견한 시민이 신고했지만, 이번에도 경찰은 그냥 넘어갑니다.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