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사이 여론의 뜨거운 주목을 받는 곳은 대통령실이다. 나경원 전 원내대표와의 갈등에 이어 안철수 의원에 대해서도 “의견”을 피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대통령의 당무 개입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이런 비판의 타당성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를 먼저 고려해야 한다. 하나는 대통령의 정치적 중립과 선거 중립을 구분해야 한다는 점이다. 대통령은 행정부의 수반이기 때문에, 총선과 대선 그리고 지방선거 등에서는 엄정한 중립을 지켜야 한다. 선거를 관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 선거에서의 중립이라고 정의한다. 하지만 정치적 중립은 다르다. 대통령은 정당의 당원이다. 우리가 편의상 “1호 당원”이라고 부르는 엄연한 정당의 구성원이라는 것이다. 여당이 여당으로 불리는 이유도, 대통령이 속한 정당이기 때문이다. 만일 대통령이 정치적 중립을 위해 탈당해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여당도 함께 사라지게 된다. 이렇듯 대통령은 정당의 구성원이기 때문에, 당의 문제에 대해 얼마든지 의견을 피력할 수 있다. 물론 대통령의 의견은 다른 정당 구성원들의 발언보다, 영향력이나 파급력이 클 수 있지만, 그렇다고 대통령의 당 문제에 대한 의견 피력을 불법 혹은 탈법적 시선으로 바라봐서는 안 된다. 두 번째로 지적하고 싶은 점은, 윤석열 대통령이 정치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됐다는 점이다. 과거 대통령들도 여당의 문제에 대해 의견을 개진했겠지만, 이번처럼 드러나지 않았던 이유는, 과거 대통령들은 정치를 오랫동안 한 인물들이어서 여당 내에 자기 계파가 있었고, 자신의 의견을 직접적으로 피력하지 않아도 주류라고 할 수 있는 대통령의 계파가 알아서 움직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치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윤 대통령은, 당내에 자신의 마음을 읽고 알아서 움직이는 계파를 가지고 있지 않다. 친윤이라 불리는 이들이 있기는 하지만, 과거 대통령들이 가졌던 계파와는 다른 수준, 다른 성격의 존재라고 평가할 수밖에 없다. 결국 윤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들과는 다르게, 자신의 입장과 생각을 “거의 직접적”으로 피력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측면들을 고려하면, 당무 개입이라는 비판은 분명 정확한 비판은 아니다. 하지만, 대통령실의 후보들에 대한 “입장 표명”은 과한 측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유승민 전 대표에 대해 집중적으로 비판하더니, 그다음에는 여론조사에서 수위를 달리던 나경원 전 원내대표에 대한 비판에 집중했다. 이제는 비판의 대상이 안철수 의원이 되고 있다. 마치 범윤 혹은 비윤 후보가 여론조사에서 수위를 달리기만 하면, 집중 비판의 대상이 된다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하다. 이런 일련의 행위를 긍정적으로 보기는 힘들다. 입장을 개진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지만, 수위를 달리는 후보들을 돌아가면서 비판의 대상으로 만드는 것은 과하다는 인상을 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대통령실은 이제라도 이런 여론을 의식해 수위를 적절히 조절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식물성장에 필수 영양소인 질소의 발견은 화학에 위대한 성과이다. 공기속 질소를 얻으려면 전기가 필요하다. 전기는 물로 만들어진다. 물의 길을 따라 생겨난 것이 화학공업도시 흥남이다. 흥남을 만든 노구치 시타가우(野口遵)는 1873년 일본 이시카와현에서 태어나 도쿄제국대학 전기공학을 전공한 화학기술자이다. 암모니아합성기술 특허권을 구매하여 노베오카(1923년), 미나마타(1909년)에 암모니아합성공장을 세웠다. 비료수요가 높아지자 자원이 풍부한 조선에 눈길을 돌리었다. 화학공업도시로 천혜의 자연지리적 조건을 갖추고 있는 함흥-흥남은 해발 2,000m가 넘는 산맥에서 내려오는 풍부한 강수량과 석탄과 석회석이 풍부하고, 저렴한 토지와 노동력, 대륙과 해양을 잇는 교통이 편리하다. 이러한 이유로 노구치는 1927년 함흥에서 12km 떨어진 흥..
‘난방비 폭탄’의 지원책을 놓고 정부·여당이 고심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의지에 따라 기초생활수급자·차상위 계층을 넘어 중산층으로 대상을 확대하는 문제 때문이다. 중산층은 전 국민의 60% 정도다. 취약계층에 중산층이 더해지면 천문학적 추가 재원이 필요하다. 추가경쟁예산(추경)을 편성해야 하는데, 적자국채를 발행하면 1000조원대의 국가채무는 더 늘어난다. 지난 대선과정에서 문재인 정부의 코로나19 재난지원금 범위 확대 문제를 놓고 여야가 대립했다. 그러나 중산층을 포함한 현 정부의 난방비 지원 문제는 지난달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언급한 국민 80% 대상 7조2000억원 ‘에너지 고물가 지원금’안과 크게 다르지 않다. 대선때는 이 대표의 ‘기본소득’을 놓고 각계에서 치열한 논의가 벌어졌다. 이같은 일련의 복지 대상 확대 논..
서양화가 장욱진(1917~1990)의 그림에는 주로 나무와 새, 소, 달, 산, 사람 등이 등장하는데 표정 하나하나가 우스꽝스럽다. 어느 하나 특출 난 것 없이 두루뭉술하다. 모두 어깨동무를 한 것 같다. 이 때문인지 장욱진의 그림 세계를 불교적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수행의 십우도(十牛圖) 중 마지막 단계인 입전수수(入廛垂手)를 연상케 한다는 것이다. 입전수수는 이른바 깨달음을 성취하고 난 뒤 중생 속에서 아픔을 함께하는 보살도의 단계다. 한자 '전(廛)'이 말뜻을 잘 나타낸다. '전빵(전방)'의 '전'자와 같은데 가게를 상형한 것이다. 가게는 저잣거리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입전수수는 저잣거리에서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으로 쉽게 풀이가 된다. 저잣거리에서 대중들과 함께 한 이들이 어디 한 둘이겠느냐만 한 사람만 꼽으라면 우리는 신라시대의 원효를 드는데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머리를 기른 채 저잣거리에서 춤을 추는 퍼포먼스를 서슴지 않았다. 부처가 대중 속에 깃들어 있다고 보았기 때문에 승려와 신도, 엘리트와 대중, 권력자와 피지배층이라는 이분법이 들어설 틈이 없었다. 당대의 지배 이데올로기에도 초연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 이후는 원효 지우기 시대였다. 특히 조선은 억불숭유 정책으로 원효의 많은 것들을 사장시켰다. 중국과 일본이 그의 저서를 깊이 연구하면서 보급했던 것과는 너무 대조적이다. 그런데도 원효는 지워지지 않았다. 이 땅에 살았던 대중들의 가슴에 살아남았기에 입에서 입으로 이어져왔던 것이다. 원효가 잊혀지지 않고, 장욱진의 그림이 갈수록 사람들에게 널리 사랑받는다는 건 한 편으로는 유감스런 일이다. 시대와 반비례해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위화감, 정확히 표현하면 엘리트와 대중 사이의 간격이 넓어졌다는 반증이기 때문이다. 우리 시대가 원효가 살았던 신라 후기보다 못한 사회라고 누가 감히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위화감의 정도라는 척도로 보면 생각은 달라진다. 최근 민주당 최고위원 서영교 의원이 70대 시민을 명예훼손과 모욕 혐의로 고소한 것은 상징적이다. 이태원 참사 분향소에서 자신에게 "악성 세비(歲費) 기생충" 이라고 말했기 때문인데 이는 서 의원 일행이 화이팅을 외친 데 따른 항의에서 나온 해프닝이다. 표현에 있어 지나친 감이 있지만 이는 권력에 대한 주권자인 시민의 견제감시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서 의원의 고소는 엘리트와 대중의 좁힐 수 없는 거리감 그 한 단면이어서 씁쓸하기만 하다. 사실 작금 정치인들이 대중을 대상화하는 장면을 목격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그들은 크고 작은 행사장에서 사진 찍기 등 이미지 연출은 기본이고 자화자찬을 긴 시간 동안 아무런 거리낌 없이 늘어놓는다. 대중은 그저 객일 뿐이다. 이들 뿐 아니라 국민 소득 상위 10% 안에 드는 기술 관료와 대학교수 등 전문직 종사자들, 일테면 이 나라 엘리트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지식인이 아니라 샐러리맨, 학력 네트워크를 통한 문화자본 특권층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엘리트와 대중 간 간격은 더욱 굳어져 고착화 단계가 아닌가하는 착각마저 인다. 대중의 힘이 만만치 않은 시대에 난센스가 아닐 수 없다. 장욱진의 그림이 빛나 보이고 원효가 그리운 것은 우연이 아닌 셈이다. 입전수수란 말이 혁명의 언어가 아니기를 바랄 뿐이다.
자세를 바꿀 때 심한 어지럼을 느낀다면 양성돌발체위현훈(소위 이석증) 일 수 있다. 주부 양 씨(55세, 여성)는 최근 기상할 때 갑자기 주변이 도는 느낌이 들면서 구역과 구토감이 들어 병원에서 검사한 결과, 이석증 진단을 받았다. 이석증은 내이에 있는 평형기관 중 주머니처럼 생긴 ‘난형낭’에 붙어 있던 이석이 떨어져 세반고리관으로 들어가 어지럼을 일으키는 질환이다. 주요 증상은 자세를 바꿀 때 주변이나 본인이 도는 느낌, 몸이 땅으로 꺼지는 느낌과 구역, 구토 증상이다. 이석증은 대부분 한쪽으로 누웠을 때 증상이 더 심한 편이다. 어지럼을 덜 느끼는 쪽으로 누워있는 것이 일시적인 증상 완화에 도움이 될 수 있지만, 반드시 병원을 찾아가야 근본적인 치료를 받아야 한다. 이석증은 대부분 특별한 원인 없이 생긴다. 이석은 탄산칼슘으로 이루어져 나이가..
필수노동을 제공하는 취약계층 노동자 중에 아파트 경비원들이 있다. 이들은 심성이 어긋난 일부 입주민으로부터 폭언과 폭행을 당하기도 한다. 아파트에 사는 것이 큰 벼슬이라도 되는 것처럼 ‘갑질’을 해대는 못난 입주민도 있다. 입주민의 괴롭힘에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던 경비원이 극단적 선택을 한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아파트경비원의 노동환경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자 정부는 2021년 10월 21일 ‘경비원 갑질금지법’을 전면 시행했다. 이를 위반하면 1000만 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하지만 여전히 청소, 제설작업, 재활용품 분리 배출, 안내문 게시 등 ‘경비’ 외적인 업무들을 수행해야 한다. 경비원들이 겪는 고통은 이것 뿐 아니다. 근무환경이 매우 열악하다. 쉴 곳이 마땅치 않다. 이미 수원시는 2015년 7월부터 아파트 경비원..
미래학(未來學)은 절대적인 실증이 불가능하다는 점 때문에 무책임한 엉터리 학문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하지요. 그러나 선진국일수록 ‘미래 연구’가 활발한 흐름을 보면 미래를 정확하게 예측하는 일은 지극히 현실적인 탐구 영역이 틀림없어요. 미래사회를 시사(示唆)하는 변화 조짐을 찾아내려는 학문이 미래학이라면 넓은 의미에서 ‘미래학은 곧 현재학’이라는 개념도 오류는 아닌 듯해요. 그러나 인류의 미래 전망은 결코 장밋빛이 아니에요. 발목을 잡는 가장 심각한 한계는 급격한 환경파괴지요. ‘산업 만능주의’에 빠진 인류는 지구촌의 자연환경이 급속하게 피폐해지는 현상을 장기간 무시해왔어요. 기후 변화가 초래하는 생존환경 황폐화, 산업 혁명이 불러온 대기오염 같은 치명적 변화에 대한 대응에 여전히 마지 못해 흉내나 낼 정도로 소극적인 게 사실이지요. 핵전쟁 위협은 또 어떤가요. 지난해 발발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는 지구촌이 여전히 위태롭기 짝이 없는 화약고라는 사실을 입증하고 있잖아요. 침략국 러시아를 상대하는 일에도 나라마다 다른 셈법이 작동하니 정의냐, 불의냐의 가치관도 완전히 헝클어졌지요. 러시아의 ‘핵 공격 위협’을 귓전으로도 듣지 않는 듯한 국제사회의 분위기는 정말 괜찮은 건가요? 우리도 그래요. 북한은 몇 해 사이에 실질적 핵보유국이 돼버렸어요. 아산정책연구원과 미국 랜드(RAND)연구소는 지난해 4월 북한이 오는 2027년까지 핵무기를 최다 242기까지 보유할 수 있다고 전망했어요. 전면전이 난다면 개전 초기 한반도에 약 78발의 핵탄두가 떨어질 수 있다는 무시무시한 예측도 했지요. 그런데도 태평한 우리 국민의 일상은 국제적인 불가사의라네요. 오픈에이아이(OpenAI, openai.com)가 개발한 대화 전문 인공지능 ‘챗GPT’는 기술사회에 던져진 가공할 핵폭탄이군요. 무려 1750억 개의 매개 변수를 활용한 2020년 GPT-3 버전에 강화학습으로 더욱 업그레이드한 GPT-3.5를 기반으로 개발한 괴물이라는군요. 챗GPT’가 방대한 전문 지식을 담은 에세이와 논문을 순식간에 써 내려가는 능력이 확인됐다니 기가 막히네요. 구글이 ‘챗GPT’의 대항마 앤스로픽에 4억 달러를 투자하기로 했고, 삼성·하이닉스도 들썩거린다는군요. 네이버도 생성형 인공지능(AI)과 자사 검색 역량을 접목한 ‘서치GPT’를 출시하기로 했네요. ‘챗GPT’는 그야말로 인류의 삶을 송두리째 뒤집는 진정한 ‘게임 체인저’가 돼가고 있다는 느낌이에요. 우리는 과연 무한변수가 뒤섞이는 세상에서 미래를 제대로 예측해 대응하고 있는가요? 환경오염과 핵폭탄 재앙에 정직하게 맞서고 있나요? 챗GPT의 등장으로 일대 혼란에 빠진 예술계와 학계, 교육계는 또 어떤가요? 지금이야말로 정밀한 미래학을 바탕으로 이 지독한 ‘미래 불감증 증후군’으로부터 신속히 벗어나야 할 때 아닌가요?
2018년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유해발굴조사단’이 충남 아산시의 야산 중턱을 파헤쳤다. 아산지역 부역혐의 학살사건 현장이었다. 이곳에서 유해 208구를 수습했다. 어른 유해 중 85%가 여성이었고, 나머지 58구는 어린이였다. 현장에는 부녀자들이 착용했던 비녀와, 구슬 같은 아이들 장난감이 드러났다. 난리통에 남자들은 어디론가 흩어지고 남은 여성과 아이들이 구슬을 손에 움켜쥔 채 군인들의 보복살인에 쓰러진 것이다. 집단광기가 아니면 설명이 불가능한 현장. 끌려가다 콩밭에 아기를 안고 몸을 던져 겨우 살아난 사람이 있었다. 살았어도 산 목숨이 아니었다. 평생의 트라우마와 한으로 온전히 숨쉬기조차 버거운 한평생이었다. 전쟁이라서 그랬다고? 전쟁이 멈춘 지 70년이 지난 현실에서도 엄연히 학살은 일어난다. 2019년 무소불위의 검찰권력을 개혁하고자 나선 법무부장관의 가족을 향해 검찰이 벌인 가혹한 수사를 떠올리면 나는 ‘학살’이란 표현 이외에 다른 단어를 찾을 수 없다. 무차별적인 압수수색, ‘딸의 어릴 적 일기장을 뒤지고 봉사활동 시간을 추적하는가 하면 생활기록부까지 까발리던 일을 떠올리면 ‘사냥’이란 말밖에 떠오르는 말이 없었다. 알량한 표창장을 빌미로 엄마를 4년 징역 살리고도 모자라 지금 와서 인턴활동 증빙이 부족하다 하여 추가로 1년 징역을 더 때린, 이제 아빠까지 2년 실형선고로 화룡점정을 찍는 사법부가 집단광기가 아니면 또 뭐란 말인가? 그들은 어떻게 이 정도 건으로 온 가족을 생매장할 생각을 했을까? 권력을 등에 업고 사람을 짓밟을 때 상대가 고통에 못 이겨 비굴해져야 스스로 합리화되는 법이다. 반대로 상대가 굴하지 않고 당당할수록 부끄러움은 가해자의 몫인 법. 어떻게 살아내나 안타깝기만 하던 조국 전장관의 딸 조민씨가 뉴스공장 인터뷰에 나왔다. 피해를 줄까 봐 다니던 병원마저 그만두고 “제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의사면허에 집착하지 않겠습니다. 의사 조민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행복할 자신이 있습니다. 저에게 의사면허는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수단이었지 목표가 아니었습니다. 재판이 끝날 때까지 제가 가진 의료지식을 의료봉사하는데만 사용하겠습니다”라고 백척간두에서 한 발 더 성큼 내디뎠다. 조민씨 앞에서 국가권력은 한없이 비루해져 버렸다. 어려워도 사람을 보면 희망이 구름처럼 피어오른다. 요즘 ‘김장하선생 신드롬’이 화제다. 한평생 한약방으로 번 돈을 가난한 아이들과 지역 언론과 각종 단체, 힘없고 약한 자들에게 아낌없이 베풀고 학교까지 지어서 국고에 헌납한 사람, 그러면서 단 한 번도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묵묵히 걸어간 김장하선생님이다. 궁금한 것이 그분은 어떻게 스물세 살 새파란 시절부터 그런 뜻을 세우고 평생을 살아갈 수 있었을까? 내가 그 나이 때 어땠는지를 생각하면 ‘역시 사람은 타고나는 것인가’하는 좌절감마저 들었는데.. 이번에 조민씨의 인터뷰를 접하면서도 비슷했다. 개인의 전 생애가 부정당하는 고통 속에서도 저렇게 밝고 곧은 심성의 젊은이라니.. 걱정했던 국민들이 조민씨에게 거꾸로 위로받는 형국이니, 검란이 부른 전쟁통에 조민이란 빛나는 젊은이를 얻었다는 자위를 해본다. 책 제목처럼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결국 전쟁통이더라도 희망은 여성의 따뜻한 낙관주의에서 나올 수밖에 없다. 조민씨에게 감사한다.
김진표 국회의장의 강력한 선거제도 혁신 의지가 정가 최대의 관심거리로 등장하고 있다. 김 의장은 최근 국회 사랑재에서 ‘초당적 정치개혁 의원 모임’ 참여 여야 의원 30명을 초청해 만찬 간담회를 열고 개혁 의지를 재다짐했다. 지난 2일 기준, 여야 의원 138명이 동참하고 있는 이 모임이 당리당략을 벗어나 국가백년대계를 헤아리는 용단으로 선거제도 개혁의 숙원을 풀어내길 기대해 마지않는다. 소중한 기회를 최대한 살려 국민 여망을 받들어야 할 것이다. 김 의장은 이날 만찬 간담회에서 ‘2월 중 정개특위의 복수 안 제시, 3월 중 의원 300명 전원위원회 집중 토의, 200명 이상의 동의로 선거제 개혁안 마련’이라는 자신의 제도 개혁 로드맵을 거듭 확인하고 “여야가 합심해 합리적인 선거제도를 만들어낸다면 사표 비율을 줄이고 대표성을 개선할 수 있다..
"사장님, 2-3일씩 수시로 철야근무하는 것은 제게 즐거운 일입니다. 그런데, 신혼의 아내에게 연락할 길이 없어 상 차려놓고 저를 기다리다가 밥도 못먹고 잠드는 일이 너무 잦습니다. 오늘은 퇴근시켜주십시오." 일반 가정집에 전화가 없을 때였다. 다음 날 전화가 생겼다. 혼다기연의 엔진개발 핵심 기술자였던 야기 시즈오씨의 젊은 날 추억 한 토막이다. 선생은 일을 지시하고 집에 가지 않고 관련팀을 돌며 젊은 기술자들과 밤을 세운다. 수시로 '터무니 없는' 목표를 제시하고, 그 성취를 위하여 모두가 달려들도록 분위기를 조성한다. 끝내 성공한다. 그 불가사의한 경험들이 누적되면서 신뢰는 두터워지고 존경심은 높아진다. 3류들은 80점짜리를 이루어놓고 만족해하며 파티를 벌인다. 선생은 스스로 "성공이란 99%의 크고 작은 실패 끝에서 거두는 결실이며, 1%는 강한 정신력"이라고 역설한다. 혼다인들은 선생의 신념을 자신의 것으로 만든 특별한 집단이다. 이는 주입시켜 되는 일이 아니다. 월평균 잔업 300시간의 기술자들 가운데 노동강도에 불만을 가진 사람은 없었다. 1960년, 세계 최초로 연구소를 별도법인화 했다. 생산판매와 연구개발을 분리한 뒤, 주로 연구소에서 기술자들과 함께 했다. 매출액 5%를 연구법인으로 보낸다. 혼다의 RND 예산총액은 토요타 보다도 더 많다. 2022년 기준, 매출 150조원, 종업원수 20만명이 넘는다. 이 회사의 기술자들은 각각 엔진이건 크랭크샤프트건 소음이건 한 분야만 파고들어 세계 최고가 되었다. 직급도 없다. 모두 연구원이다. 청구예산은 대부분 존중되어 집행된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고 만족도 높은 기술자들은 혼다연구소 사람들이다. 모두가 신바람 나서 일하는 사풍(社風)은 '오야지'ㅡ혼다맨들은 선생을 이렇게 부른다. 선생도 그 애칭을 좋아했다ㅡ의 삶에서 우러나온 진액이다. 신입사원들은 첫날 "멸사봉공'(滅私奉公)하지 말라. 자신을 위해서 일해야 회사의 성장에 기여하는 것"이라는 선생의 당부를 듣는다. 애사심과 주인정신을 강조하면 실은 위선과 아부가 득세한다. 혼다 소이치로는 1906년 시즈오카 현에서 가난한 대장장이의 아들로 태어났다. 초등학교 겨우 마치고 15세에 도쿄로 나가서 자동차 수리점에 취직한다. 6년만에 당시 세상에 나와 있던 자동차 엔진은 모두 뜯어서 고치고 재조립하는 숙련공이 되었다. 마흔 살(1946년)에 100만엔으로 혼다기술 연구소를 차린다. 2년 후 평생 동지인 후지사와 다케오와 의기투합, 1973년 함께 은퇴할 때까지 환상적인 콤비로 동업했다. 회사에 자식들 끌어들이지 않았다. 학벌을 무시하고 오직 끈기와 실력을 존중했다. 은퇴 후에는 최고기술고문 직함으로 있으면서 사망할 때(1991년)까지 재단에만 관여했다. 2륜차는 세계 1위, 4륜차는 세계 Top5의 실적을 달성했다. 1988년에는 F1 경기에서 16전 15승을 거두었다. 그 후 미국 유럽 회사들이 흥미를 잃게 될 것을 우려하여 F1에서 철수했다. 2015년, 마침내 그의 꿈이던 제트기까지 생산 판매하기에 이른다. 이 세상 그 누구도 믿지 않은 도전이었다. '꿈의 힘', Power of Dream! 혼다 소이치로의 신념이었다. 첨언:1990년대 국내 자동차업계에 일본 자동차업계 임원출신들을 영입하는 붐이 있었다. 우리 회장이 한 말이 생각난다. 일본의 경영컨설턴트가 혼다차 임원출신은 뽑지 말라고 했다는 것이다. 이유인 즉, "그들은 폐계 ㅡ알을 낳지 못하는 닭ㅡ다. 회사에 모든 걸 다 쏟아놓고 나와서 귀사에 줄 게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30년만에 혼다 소이치로 선생을 다시 읽으며 그 말을 마침내 확실하게 이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