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의 이름은 무엇일까요? 영어로는 May Day. 저는 대한민국에만 있는 기념일은 아닙니다. '하루 8시간만 일하게 해달라'는 지금으로선 당연한 요구를 쟁취하려 했던 1886년 미국 노동자들의 투쟁을 기념하는 하루로 전 세계적으로 노동자들의 노동조건 및 지위 향상을 위한 기념일입니다. 우리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정확히 내릴 수 없다. 정치, 사회적으로 양분화가 심각한 우리나라의 현실에서는 이렇게 당연한 질문에 대한 답도 정치, 사회적 분쟁으로 결말이 난다. 자본주의 아버지라 불리는 아담스미스(Adam Smith)는 그의 저서 국부론(An Inquiry into the nature and causes of the Wealth of Nations)에서 “부의 원천은 노동이며, 부의 증진은 노동생산력의 개선으로 이루어진다.”고 역설했다. 즉, 이념과 체제가 다르다 할..
우리의 영혼에는 신성이 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이 깨달음은 나에게 믿음과 용기와 희망을 준다. 영혼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 어느 누구도 영혼보다 위대할 수는 없다. 무서워하고 싶은 자는 무서워하라. 영혼은 자기 본원의 나라에 살며 공간을 초월하고 시간을 초월한다. (에머슨) 신은 모든 사람들 속에 살고 있지만 모든 사람이 신 속에 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여기에 사람들의 고뇌의 원인이 있다. 불이 없으면 등잔을 켤 수 없듯 신 없이 인간은 살 수 없다. (바라문의 가르침)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내 것이다. 창조도 파괴도 내 생각에 따라 일어난다. 세상은 다만 껍데기일 뿐이고 그 핵심은 바로 나다. 그런 내가 티끌이 티끌로 돌아가는 것을 어찌 두려워할 필요가 있으랴. 나는 티끌이 아니다. 그러니 신에게 복종하며 편안하게 이 세상에서 살라. (페르시아 금언)..
최근 중국이 지난해 인구가 전년에 비해 1200만명 늘어난 14억1178만명으로 세계 최대라고 공식 발표했다. 그런데 신생아수는 18%나 줄고 합계출산율도 1.3명으로 떨어졌다. 이르면 2022년부터 인구가 감소세로 전환돼 2023년에는 인도(출산율 2.3명)에게 1위 자리를 내줄 것이라는 전망이 중국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인구 감소(고령화)는 아직 기술보다는 노동력에 의존하면서 세계속으로 굴기하려는 중국에게는 매우 민감한 문제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중국이 미국을 추월하지 못한다면 그 결정적인 요인으로 인구 감소를 꼽을 정도다. 국민의 평균연령이 낮은 젊은 나라일수록 생산과 소비, 투자가 왕성한 조화를 이루며 GDP경제성장을 견인한다. 량젠장(梁建章) 베이징대 교수는 “신생아 1인당 100만 위안(약 1억7500만 원)을 지급하자”는 제안까지 하..
우리나라에 “처녀귀신” 이야기가 그토록 오래 전해내려온 까닭은 달리 있지 않았다. 고을의 힘센 자들이 사건을 덮었기 때문이다. 그 처녀귀신 이야기가 쌓이고 쌓이면 어떤 이야기가 태어나게 될까? 《춘향전》이렷다. 죽은 다음에 해결하면 뭐하는가? 살아생전에 한이 생길 일을 풀어야 세상이 제 도리대로 돌아갈 것이다. 장원급제하여 어사로 밀행하고 있던 이몽룡은 거지꼴로 변장하고 관아에 들어선다. 백성들은 가난에 쪄들어 있는데 사또 변학도는 여기 저기 고을 수령들을 불러다가 상다리 부러지게 생일잔치를 벌였겠다. 거지 이몽룡은 밥값으로 시 한 수 읊는다. “금준미주(琴樽美酒)는 천인혈(千人血)이요, 옥반가효(玉盤佳肴)는 만성고(萬姓膏)라. 촉루낙시(燭淚落時) 민루락(民淚落)이요, 가성고처(歌聲高處)에 원성고(怨聲高)라.” 원님 생일 잔치에 뭔 난데 없는 소리인가? “금 술잔에 담긴 맛좋은 술은 수많은 백성들이 흘린 피요, 옥으로 만든 쟁반에 그득 담긴 보기에도 입맛 다시게 하는 안주거리는 백성들의 고혈을 짜낸 것 아닌가? 술상 밝힌 촛농 떨어지면 백성들의 피눈물도 떨어지고, 너희들이 신이 나 난리 부르스치는 자리마다 한맺힌 소리 드높은 줄 모르느냐?” 이 모든 사태를 속 시원하게 바로 잡는 딱 한 마디, “암행어사 출도야~~~!” 탐관오리(貪官汚吏)의 권세를 꺽지 못하면 사랑이고 민생이고 자시고 없다. 억울한 백성만 피눈물 흘릴 뿐이다. - 처녀귀신 면한 춘향이의 정치학 출세욕으로 따는 벼슬이라는 게 공직의 책임을 다하기보다는 사욕을 있는 대로 차릴 권리를 잡는 자리가 되고 만 것은 예나 지금이나 그리 차이가 없다. 어느 고을에 벼슬에는 관심도 없다는 듯 폼을 잡고 사는 자가 있었는데 그를 사람들이 북곽선생(北郭先生)이라 불렀다. 전하는 바에는 당대 보수파 노론의 왕초 송시열을 빗댄 말이라고 하는데 그 진위를 알 도리는 없다. 어쨌거나 이 북곽선생은 나이 사십에 손수 교정(矯正)한 책이 만 권이요, 지은 책이 일만 오천 권에 이르렀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어느 날 호랑이를 덜컥 만난다. 호랑이는 꼴은 선비인데 냄새가 독하다며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든다. 호랑이가 사람을 잡아먹으면 신이 된다는데 그 좋은 먹잇감을 앞에 두고 입맛이 도통 다셔지지가 않는 것이다. - 백성들을 논밭으로 삼는 탐관오리(貪官汚吏) 연암 박지원의 《호질(虎叱)》 이야기다. 호질(虎叱)은 “호랑이가 꾸짖다”라는 뜻이다. 그럼 어디 그 꾸지람을 들어나 볼까? “무릇 제 소유가 아닌 것을 취하는 것을 ‘도(盜)’라 하고 생명을 잔인하게 해치는 것을 ‘적(賊)’이라 한다. 너희들은 밤낮으로 허둥지둥 쏘다니며, 팔을 걷어붙이고 눈을 부릅뜬 채 노략질하고 훔치고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심지어는 돈을 형(兄)이라 부른다. 메뚜기로부터 밥을 빼앗고, 누에로부터 그 옷을 빼앗고, 벌을 가두어 그 꿀을 긁어내고 심지어는 개미알로 젓갈을 담가서 제 조상에 제사 지낸다고 하니, 그 잔인하고 박정함이 너희보다 더한 것이 있겠느냐?” 정약전이 《자산어보》 쓰는 것을 도운 어부 창대가 관직에 올라 보니 관리들의 온갖 협잡질과 백성들 등골 휘게하는 현실을 보고 “백성들은 땅을 논밭으로 삼는데 양반들은 백성들을 논밭으로 삼는구나”라는 말 그대로다. 양반과 관리들이 한통속이 되어 죄다 긁어간다는 걸 이리 비유했다. 이른바 “삼정(三政)의 문란”이라며 농민들의 골수를 빼먹었던 게 뭐였는가? “전부(田賦)”라고 해서 지주부호 양반의 기름진 옥토(沃土)는 탐관오리와 결탁해 나쁜 땅 박토(薄土)로 장부에 기록해 세금포탈을 하게 하고, 농민들의 손바닥만한 땅은 높은 등급으로 기록해 징세를 했던 것이다. “군포(軍布)”는 또 뭐였는가? 병역세인데 뱃속의 아기는 물론이고 이미 사망한 자에게까지 거두어내 “백골촉루(白骨髑髏)의 세(稅)”라는 말이 생겼다. ‘촉루’라는 한자가 어렵기는 한데 그 또한 해골이라는 뜻이다. 친족이나 이웃까지도 얽어서 군포를 거두니 이를 족징(族徵), 인징(隣徵)이라고 불렀다. “환곡(還穀)”은 본래 춘궁기에 나라가 곡물을 내주고 추수기에 이자없이 돌려받는 구제책이었는데, 이게 강제로 받아가게 하고는 고리대금처럼 이자를 붙여 등골을 휘게 하는 작태로 변했다. 곡물을 받지 않은 사람까지 장부에 기입해 세금을 닦달한 백징(白徵)까지 있었으니 강탈이 아니고 뭔가? 해서 호랑이는 또 한번 크게 꾸짖는다. “너희들이 먹는 것을 보면 그 얼마나 어질지 못한가! 덫과 함정으로도 부족하여 새 그물, 노루 그물, 작은 물고기 그물, 큰 물고기 그물, 수레 그물, 삼태 그물 등을 만들었으니, 최초에 그물을 만든 자야말로 천하에 가장 큰 화를 끼쳤도다.” 짐싣는 수레까지 가져간단다. 빠져나갈 틈없는 촘촘한 약탈이다. 18세기 말과 19세기 초 이름을 숨긴 채 공개리에 내건 “괘서(掛書)”사건이 벌어지게 되는 까닭도 양반과 탐관오리의 결탁에 숨통이 끊어질 듯 괴롭던 백성들의 현실을 말해준다. 1811년 황해도 곡산의 농민들이 관청을 습격했던 것이나 같은 해 평안도 지역에서 일어난 홍경래의 봉기 등도 모두 이런 현실에 대한 농민전쟁의 씨앗들이었다. 1862년 진주 농민 반란은 조선 땅 천지를 격동시켰고 이런 현실을 위로부터 혁파하고자 했던 갑신정변(1884년)에 이어 1894년 동학 농민전쟁에 이르기까지 민중이 깨우친 것은 탐욕스러운 권력을 먼저 무너뜨리지 못하면 민생은 도탄에 빠진다는 사실이었다. “선(先)개혁 후(後)민생론”이다. 봉단이는 갖바치 양주팔의 조카딸이다. 갓바치라고 하기도 하고 갖바치라고 하기도 하는 이 직업은 백정이다. 그런데 양주팔은 글 꽤나 읽어 백정학자(白丁學者)라고 불리웠고 후에는 조광조와 교류까지 하는 사이가 된다. 봉단이와 양주팔 사이로 숨어 들어간 한 사나이가 있었으니 홍문관 교리 이장곤이었다. - 농민봉기와 림꺽정 연산군의 갑자, 무오사화로부터 기묘, 을사로 이어진 사화는 사대부 선비들의 목숨을 들었다 놓았다 했다. 심지가 바른 이교리 역시도 말 한마디로 연산군의 미움을 받아 목숨은 건졌으나 거제도로 귀양살이를 간다. 연산이 사화를 불러 일으킬 기세를 보이자 ‘지당하옵니다’라고 하지 못하고 “임금의 자리는 높은 까닭에 위태하옵니다. 덕이 아니면 누리기가....”했다가 단칼에 유배길이 되었다. 유배처에서 자칫 죽을 판이 된다는 소식을 듣고 야반도주를 하여 겨우 겨우 함경도땅까지 갔다가 처녀 봉단이를 우연히 만나 마음이 빼앗긴다. 서울 어느 대감집 하인으로 있다가 죄를 지어 쫓겨나 팔도강산 여기저기 돌아다닌다며 신분을 속이고 그곳에 기거하게 되고 봉단이의 아버지이자 집주인 양주삼의 아우 양주팔과는 비슷한 연배라 친구가 된다. 훗날 중종반정으로 조광조와 함께 직에 돌아간 이교리의 입지를 돌아보자면 봉단이와의 사랑으로 이어진 개혁파의 의도치 않은 밑바닥 연대였던 셈이다. 벽초 홍명희의 《림꺽정》, 그 시작의 무대다. 연산은 중종을 왕으로 옹립한 반정(反正)으로 몰락하고 중종 사후 권력이 배다른 형제인 인종으로 가는가 명종으로 가는가에 따라 외척의 권력향방이 결정되는 상황이었다. 인종의 모친 장경왕후나 명종의 모친 문정왕후나 모두 파평윤씨 집안이었으나 어디 권력이 그리 순순하게 나누고 살 수 있는 물건인가? 장경왕후의 오빠 윤임(尹任)과 문정왕후의 아우 윤원형(尹元衡)은 이른바 대윤(大尹), 소윤(小尹)으로 불리는 사이였으되 권력쟁취를 놓고는 원수지간이었다. 인종이 권력승계를 하자 대윤의 승리로 마무리되나 했지만 인종이 일찍 세상을 떠나자 왕위는 열두 살 명종에게 갔고 당연하게도 문정왕후가 수렴청정을 하자 소윤 윤원형의 세상이 되었다. 윤씨가문의 외척세도가 하늘을 찔렀고 반대파는 죽임을 당하기를 그야말로 파리목숨이었다. 이러면서 이들과 연결된 탐관오리의 약탈은 막을 길 없이 조선팔도를 짓눌렀다. 그러자 어찌 되었을까? 바로 이 때에 황해도 경기도 그리고 함경도에 이르기까지 가난한 백성들과 함께 고을관아를 습격, 창고를 털어 빈민에게 나누어준 림꺽정의 활약시대가 열렸다. 그에게 병법을 가르친 이가 다름 아닌 백정학자 양주팔이고 림꺽정의 아버지는 양주팔과 친구가 된 홍문관 이교리의 부인 봉단이의 사촌이다. 얽히고 설켰다. 성호 이익이 조선 3대 도적(의적)이라 불렀던 홍길동, 장길산, 그리고 림꺽정이었다. 그러니 그와 개혁파 홍문관 교리 이장곤, 조광조, 양주팔의 세계가 하나로 어우러져 위에서, 그리고 아래로부터 세상을 뒤집는 개혁으로 도탄에 빠진 민생을 구하고자 했던 것이다. 조선시대의 농민들이 겪었던 일이 오늘과 상관이 없는가? 아니다. 체제는 달라졌지만 돌아가는 정치의 원리는 달라지지 않았다. 개혁과 민생은 다른 것이라 선전하는 자들이 있다. 속도조절하자고 한다. 뻔한 속셈이다. 개혁하지 말자는 것이다. 자기들의 특권을 건드리지 말라는 것이다. 민생의 요구가 해결되는 것은 “자기들이 먹고 남은 것만 가지고 ‘공정’하게 싸우면 된다”고 세뇌한다. 이들이 강조하는 “공정의 실상”이다. 금준미주와 옥반가효를 부패와 특권의 사슬 속에서 전부 차지하는 자들의 세도를 꺾고, 이들의 죄악을 징치(懲治)하지 못하는 세상에서 진정한 민생이 어찌 가능하겠는가? 독일의 시인 하이네가 남긴 시 “슐레지엔의 직조공”의 한 대목이다. “침침한 눈에는 눈물도 마르고/베틀에 앉아 이빨을 간다/독일이여 우리는 짠다, 너의 수의를/ 세 겹의 저주를 거기에 짜 넣는다/우리는 짠다, 우리는 짠다!/(중략)두 번째 저주는 왕에게, 부자들의 왕에게/우리들의 비참을 덜어 주기는커녕/마지막 한 푼마저 빼앗아 먹고 그는 우리들을 개처럼 쏘아 죽이라 했다/우리는 짠다, 우리는 짠다!” 그런 세상은 이 시가 이어 말하고 있듯이 “오욕과 치욕만이 번창하고 꽃이란 꽃은 피기가 무섭게 꺾이고 부패와 타락 속에서 구더기가 살판을 만나는 곳” 이 된다. 개혁을 늦추고 민생을 하자는 자들은 개혁이건 민생이건 뭐든 제대로 하고 싶은 생각은 일절 없다. 자기들이 다 뜯어먹을 때까지 마냥 기다리라는 소리니까. 자기네 사건을 덮어줄 자들이 건재해야 자기들 독차지가 되니까. 그건 우리에게 “장송곡”이다. 힘겹게 여기까지 왔다. 그런데 그렇게 이룬 이 시대의 수의(壽衣)를 베틀에 앉아 짜고 싶지 않다면, 뭘 해야 할까? 촛불을 다시 들 때이다.
“방역당국이 감염자 수를 조작하고 있다.” “백신접종 후 수십 명이 사망했다.” “백신이 바닥났다.” 코로나19로 가뜩이나 힘든 상황에서 주류 언론까지 나서서 코로나19 관련 가짜뉴스를 퍼트리고 있다. 가짜뉴스란 “객관적 사실관계를 의도적으로 조작한 허위 정보”(허위조작정보)를 의미한다. EU에 따르면 경제적 이익을 얻거나 고의로 공중을 속이기 위해 제작, 유포된 정보다. 가짜뉴스는 동서고금을 통해 늘 존재했던 신문과 방송의 오보나 편파보도, 유언비어와 달리 출처조작 등을 통해 ‘의도적으로’ 대중을 기만하고 그 결과로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거나 경제적 이익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명백한 범죄행위다. 지난 2016년 영국의 브렉시트 투표와 미국 대선은 ‘가짜뉴스 경연장’이었다. 브렉시트 당시 널리 유포된 대표적 허위정보는 영국이 매..
1800년 5월 그믐에 정조는 교시를 발표했다. 오회연교(五晦筵敎)였다. 앞으로 본격적인 개혁정치를 하겠다는 정조의 야심에 찬 선언이었다. 재위 26년 만의 결단이었다. 즉위 초 조정은 결코 그에게 호락치 않았다. 권력을 장악한 노론세력은 아버지의 죽음과 밀접한 관계가 있었고 정조에 우호적인 남인과 소론은 미약했었다. 그런 불리한 조건 속에서 정조는 스스로 부하를 만들어 써야 했다. 그래서 만든 제도가 초계문신(抄啟文臣)이었다. 과거 급제한 자들 중 당파색이 옅은 젊은 인재를 선발해 규장각에서 3년 동안 특별교육을 시킨 후 관직에 나가게 한 것이다. 그들과 함께 정조는 조선 후기의 찬란한 진경문화시대를 열었다. 중국 일색의 문화를 조선중심으로 바꾸었으며 실생활에 적합한 실용적인 정책들을 개발해 위민정치를 실시하였다. 사병화되고 있던 오군..
지난 주 오마이뉴스가 보도한 '임상훈의 글로벌리포트'를 읽고 필자는 놀랐다. 포털을 통해 접했다. ‘“한국이 또 입증할 것” 국내언론과 상반된 해외의 극찬’이란 제목의 기사였다. 기사에 대한 나의 평가가 주관적이지는 않을까 우려했다. 댓글을 확인했다. 4500개가 넘는 댓글이 붙었다. 기사를 다른 사람에게 추천한 독자는 1만3000회를 넘겼다. 댓글은 ‘진짜 기사를 읽었다’는 찬사가 주조였다. 독자들의 반응을 한 번 더 검증하기 위해 오마이뉴스 홈페이지를 통해 기사를 다시 봤다. 기사가 끝나고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기'에는 37만5000원이 후원됐다. 이 언론사 다른 기자에게 확인 했더니 이 금액은 최고수준이라고 귀띔했다. 기사는 ‘어둡던 코로나19 터널의 끝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는 희망을 담은 문장으로 시작한다. 미국, 프랑스, 영국..
인천시는 지난해 11월 12일 '2025년 수도권매립지 종료'를 선언한 바 있다. 하지만 오세훈 서울시장은 수도권매립지 연장 뜻을 시사했다. 이에 최근 이재현 인천 서구청장이 서울시장에게 공개 서한문을 보냈다. 이 청장은 언제까지 이 좁은 나라에서 지금과 같은 대형 매립장에만 의존해 쓰레기를 처리해야하느냐고 물은 뒤 “하루빨리 ‘수도권매립지를 계속 사용하기 위한’ 협의가 아닌 ‘수도권매립지 종료와 쓰레기 선진화를 위한’ 협의”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청장은 서울을 글로벌화 하겠다는 공약이 실현되려면 쓰레기 선진화가 반드시 전제조건이 돼야 한다고 못 박았다. 이 청장은 30년 넘게 환경 분야에서 종사한 환경전문가이기도 하다. 그는 서한문을 통해 오시장에게 대안을 제시했다. ▲발생지 처리 원칙에 입각, 서울 내 쓰레기는 자치구별로..
오월은 금방 찬물로 세수한 스물한살 청신한 얼굴이라고 피천득은 쓰고 있다. 연한 살결에 비취가락지를 하고 기다리는 신부와 같은 오월에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날이 있어 가정의 달이다. 자식과 부모와 스승이 모두 있는 사람에게 오월은 특별한 의미가 있을 것이다. 꽃을 준비하고 아름다운 문장을 고르고 특별한 이벤트를 준비하는 남쪽에서의 오월은 분주하다. 고향 이북에는 피천득의 오월에 대한 아름다운 수필도 이벤트도 없다. 그러나 오월에 만들어 먹는 평안도 나박김치가 특별히 맛있었다는 기억은 남아있다. 남쪽보다는 훨씬 겨울이 긴 탓에 함경도 지역은 오월이면 마지막 겨울 김치를 먹고 있을 때 서해안에 위치한 평안도는 조금 따듯하니 새싹이 돋아나는 무를 움에서 꺼내 나박김치를 담근다. 물맛이 좋아 물김치를 많이 담그는가보다. 나박김치는..
나는 자주 주검을 마주한다. 요즘 나의 직업은 장의사다. 영구차에서 내리는 유족들을 내가 제일 먼저 맞이한다. 그들은 모두 피곤에 찌든 표정으로 온다. 삼일간의 장례와 마지막 화장터에서의 이별이 유족들을 탈진하게 만들었다. 무표정한 얼굴에는 슬퍼할 기력마저도 남아있지 않다. 영정사진과 위폐와 유골함이 앞장서고 유족들은 추적추적 내리는 비처럼 늘어져서 뒤를 따른다. 나는 영정사진 속 고인을 가름한다. 수목장에서 내가 파는 땅은 지름 30센티, 깊이 50센티 정도이다. 먼저 삽으로 뗏장을 둥그렇게 떼어낸다. 뾰족한 모종삽으로 황토 사이에 끼어있는 돌을 골라낸다. 무덤은 좁고 깊다. 반듯하다. 무덤에 한지를 깔고 고운 모래를 부어 주검을 맞이할 준비를 마친다. 화장터에서 나온 골분은 따뜻하다. 영정사진 속 고인만큼 골분의 무게는 다르다. 어떤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