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반응 없는지 대기하셨다가 안내사항 받고 가시면 됩니다.” 잔여백신 당일예약에 성공했다. 스마트폰 앱에서 잔여백신 조회와 당일예약을 반복했는데 드디어 잡았다. 얀센이냐 아스트라제네카냐 가릴 여유는 없었다. 백신 접종이 시작된 지 105일 만에 접종자 수가 1000만 명을 넘겼다. 국민 5명중 1명이 백신을 한 번이라도 접종했다. 나도 먼저 편해지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잔여백신은 사전예약자가 접종 당일 예약을 취소하거나 최소 잔여형 주사기를 사용했을 때 추가로 생기는 물량이다. 잔여백신 안내를 예약해둔 병원에서 알림이 오기 전에 지도에 뜬 표시를 보자마자 클릭했다.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 운영 종료시간이 저녁 6시라고 표시돼 있었지만 지금 출발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예방접종 예진표를 써서 접수했다. 정보 수신 동의에 ‘예..
홍범도만큼 파란만장한 인생을 산 사람도 드물다. 1868년 평양의 서문 밖에서 머슴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머슴, 군인, 종이공장 노동자, 승려, 포수, 의병, 광산 노동자, 독립군, 농부, 부두 노동자, 혁명가의 삶을 살았고 마지막 직업은 극장 수위였다. 그가 한 일은 수없이 많지만 한 단어로 그를 규정해야 한다면 독립군일 것이다. 그보다 더 오래, 그보다 더 많이 일본군과 싸우고 그보다 더 크게 일본군을 이긴 사람은 없었다. 27세에 강원도 단발령에서 황해도 출신의 동지 김수협과 함께 일본군 12명을 처단한 이래 봉오동과 청산리 전투에서 대승을 거둔 52세까지 그는 싸우고 또 싸웠다. 그 과정에서 그는 가족 모두를 잃었다. 아내는 일제의 고문으로 죽고, 큰아들 양순은 그와 함께 일본군과 싸우다 열일곱 살 나이에 전사했다. 작은아들 용환은 그와 함께 만주를 유랑..
1. 천하일통 금계국 아침저녁으로 걷는 반석천엔 시방 금계국과 개망초 천국이다. 노란 금계국에 하얀 개망초가 제법 근사한데, 볼 때마다 끌탕 치는 소리가 절로 나오는 까닭은 무엇인가. 금계국 때문이다. 북미가 원산지인 이 꽃은 이르면 오월 중순부터 팔월까지 오래도록 노란 꽃을 피운다. 국화과 식물이 대개 그렇듯이 해열 효과가 있고, 부종을 제거하고, 간열을 내리는 데도 쓸 수 있지만, 한약재로 널리 쓰이는 건 아니다. 문제는 이 금계국이 전국을 뒤덮고 있다는 점. 한반도의 혹독한 겨울 추위를 견디며 월동해 다음 해에도 꽃을 피우는 여러해살이 식물이라서일까, 번식력이 강해서 아무 땅에 심어도 잘 자라기 때문일까, 남도 해안가에서 경기도 천변, 강원도 국도변까지 금계국 천지다. 그야말로 야생화 끝판왕으로 전국을 뒤덮고 있는데, 실은 우리나라 식물 생..
코로나19로 세금을 내지 못하는 생계형 서민체납자가 늘었다. 코로나19로 인한 사업부도나 휴·폐업, 실직 등의 경제사정으로 재산이 없고 소득도 없는 체납자들은 세금을 내기가 어렵다. 세금 뿐 아니라 공공요금도 못내는 이들이 많다. 더불어민주당 이소영 의원에 따르면 주택용 전력 체납액도 지난해 말 기준 138억 원에서 올 4월 기준 143억원으로 5억원 늘었다고 한다. 이의원은 코로나19로 인해 가계 사정이 어려워진 탓으로 보고 있다. 이에 경기도는 생계형 체납자 2000여명을 발굴해 이 중 절반을 복지 서비스에 연계해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생계형 체납자의 압박감을 덜고 희망을 주기위한 조치다. 반면에 고액 악성 체납자는 철저히 추적해 징수하거나 압류 등의 강력히 대처하고 있다. 도는 ‘세금 체납은 공동체 질서를 해치는 불공정’이라며 징수..
사회 질서의 개선은 도덕적 완성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내가 이렇게 붓을 들고 있는 방의 창문 밖으로, 코에 코뚜레가 꿰여 말뚝에 매어 있는 커다란 소 한 마리가 보인다. 소는 풀을 뜯어먹다가 저도 모르게 자신이 매여 있는 고삐를 말뚝에 감아버렸다. 소담스럽게 자란 풀을 눈앞에 두고도 배를 주리고 어깨에 달라붙는 파리를 쫓기 위해 목을 흔들지도 못한 채 죄수처럼 가만히 서 있다. 그는 몇 번이나 빠져나갈 양으로 몸부림쳐보지만, 그때마다 슬픈 신음소리를 지르다가 지금은 얌전해져서 조용히 괴로워하고 있다. 엄청난 힘을 갖고 있으면서도 어떻게 하면 자유로워질 수 있는지 이해할 만한 자각도 없이, 많은 풀 앞에서 배를 주리며 지극히 연약한 생물에게 비참하게 당하고 있는 이 소의 모습은, 내 눈에는 마치 노동자들의 상징처럼 비친다. 모든 나라에서 땀을 흘..
오는 2050년쯤이면 미세플라스틱 오염으로 인해 서해의 4분의 1 이상이 해양생물들이 살기 어려운 ‘죽음의 바다’가 될 수 있다는 예측이 나와 주목된다. 불과 30년도 채 남지 않았다는 얘기다. 세계자연기금(WWF) 연구에 따르면 우리는 1인당 매주 평균 5g의 미세플라스틱을 섭취하고 있다고 한다. 한 사람이 신용카드 한 장과 맞먹는 미세플라스틱을 매 주일 섭취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미세플라스틱 공해의 심각성이 극에 달해 드디어 말로 떠들기만 해도 되는 시간이 다 지나간 것이다. 대책을 세우고 즉각 행동에 돌입해야 한다. 벨기에와 스웨덴, 네덜란드 등의 환경학자들이 참여한 공동연구팀은 지난해 말 전 세계 바다의 미세플라스틱 위험도를 평가한 결과를 국제학술지 ‘환경오염(Environmental Pollution)’에 발표했다. 미세플라스틱은 지름..
창업활동은 경제성장정책과 산업정책뿐만 아니라 사회복지 차원에서도 매우 중요한 성장동력이며, 여기에 창의성과 기업가정신이 곁들여져 국가 경제의 역동성이 결정되게 된다. 창업활동의 강력한 엔진이라 할 수 있는 혁신활동을 기반으로 창업 스토리를 잘 정리하고, 조직의 정체성을 명확히 함으로써 시장의 기대에 부응하고 사회적가치와 경제적가치를 창출할 수 있으며, 이를 위해서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끊임없이 발굴하고 사업화 실천을 해나가야 한다. 기업 경영에 있어 전략적 선택과 균형잡기는 창업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키워드이다. 퍼스트 무버(First Mover)가 될지 패스트 팔로워(Fast Follower)가 될지, 회피 대상으로 위험을 바라볼지 아니면 기회로 삼을지, 사회적경제와 자본주의경제 또는 전통적 사회적기업과 소셜벤처 사이 어느 위치에..
파블로 피카소 탄생 140주년을 맞아 그의 작품 110점이 서울에 왔다. 이번에 전시된 진품 중 가장 눈길을 끄는 그림은 단연 ‘한국에서의 학살’. 이 작품은 피카소의 ‘반전(反戰) 3대 걸작’ 중 하나로 꼽힌다. 널리 알려진 ‘게르니카’의 한국판이라고나 할까?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10월 중순부터 12월 말까지 황해도 신천에서 일어난 양민학살을 그렸다. 부녀자와 어린이를 포함해 주민의 4분의 1이 떼죽음을 당했다. 도대체 누가 이런 만행을 저질렀나? 남과 북의 ‘공식 기억’이 서로 다르다. 남한에서는 공산당을 지목하고, 북한에서는 미군에게 책임을 돌린다. 스페인의 프랑코 정권에 저항해 프랑스로 망명한 피카소는 1944년에 공산당원이 되었다. 그런 그가 1951년 1월에 ‘한국에서의 학살’을 그렸으니, 여기 묘사된 학살의 주체는 미군으로..
이웃에 살고 계신 이중길 전 서울예술고등학교 교장 선생님은 특별한 분이지요. 오래전에 퇴임하신 선생님은 트래킹 마니아들에게는 전설적인 인물이에요. 지난 2012년 칠순의 연세에 유럽을 가로지르는 5600㎞ 어마어마한 길을 걸어서 완주하신 놀라운 기록을 갖고 계시기 때문이랍니다. 매일 25~67킬로미터씩 걷는 불가사의한 도보의 결과였다고 하니 말이 안 나올 지경이지요. 선생님이 들려주신 유럽횡단 에피소드에는 신기한 내용이 많지만, 인상적으로 남아있는 것은 ‘파이팅(Fighting)!’이라는 응원 구호 이야기예요. 굳이 비유하자면 중국의 ‘짜유(加由)!’ 정도가 될 텐데요, 유럽 여행 중에 아무 생각 없이 ‘파이팅!’이라는 구호를 써먹었다가 상대방이 정말 싸우자는 건 줄 알고 표정이 새파래지는 바람에 곤경을 겪었다더군요. 말씀을 듣고 보니..
지구에서 가장 많은 산소가 만들어지는 곳은 어딜까요? 질문을 던지자 아이들이 신나서 대답한다. "숲이요!", "아마존 아닌가요?" 대체로 나무와 관련된 답들. 바로 답을 말해주지 않고 한참 뜸을 들이고 있으니 눈치 빠른 아이 하나가 숲이 아닌 다른 곳인 거 같다고 답을 정정한다. 아이들을 둘러본 후 정답이 '바다'라고 말하자 교실이 혼란의 도가니에 빠진다. 바다에 들어가면 숨을 쉴 수 없는데 어떻게 바다에서 산소가 나오냐는 아이부터, 책 어디선가 아마존이 지구의 허파라고 써 있는 걸 봤다는 아이까지 다양한 반응이 나온다. 한껏 흥분한 아이들을 진정시키면서 바다에서 산소가 발생하는 원리를 설명한다. "바다에는 작은 플랑크톤이 사는데 그 친구들이 번식하면서 산소를 배출합니다. 우리가 숨쉬는 산소의 절반 이상은 바다에서 옵니다." 우리반 친구들과 환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