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대선의 계절이 돌아왔다. 민주당은 예비경선을 마치고 대선후보를 6명으로 압축했다. 선거는 정당 혹은 후보자 간의 ‘프레임 전쟁’이다. 프레임(틀짓기)은 사람들이 세상 혹은 사건을 바라보는 방식이다. 지킬 것이 많은 기득권 세력은 프레임을 만들고 미디어는 이를 널리 유포하고 강요한다. 우리는 가랑비에 옷 젖듯이 자신도 모르게 ‘그들의 프레임’에 함몰되는 경우가 많다. 가령 유권자가 국회의원 등 정치인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것은 전형적인 ‘시민참여’ 방식이다. 하지만 미디어를 통해 ‘문자폭탄’이라는 말을 자꾸 듣다 보면 ‘가만히 있어!’에 익숙해질 수 있다. 송영길 민주당대표는 뜬금없이 ‘대깨문’ 운운하며 일갈한 데 이어 박정희를 소환하는 등 ‘당대표 리스크’를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반면에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로..
현재의 한국정치 사회구조, 조금 좁혀서 정치상황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1970년대~1990년대의 미국 민주당의 흐름을 복기하면 조금 도움이 된다. 그 학습을 위해 출판사 모던 아카이브가 출간한 카툰 북 《버니》를 참조했음을 미리 밝힌다.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하야하기 전 닉슨은 월남전의 여파로 재선이 불투명한 상태였다. 때문에 1972년 그가 재선에 성공한 것은 꽤나 놀랄 만한 일이었는데, 그건 베트남전을 비롯해서 중남미에서 연이어 일어난 좌파 혁명의 성공과 그 분위기로 인해 미국 사회가 오히려 보수화된 결과이기도 했다. 미 국내에서의 지난(至難) 했던 반전 시위가 피로감을 가져온 것도 일부 사실이다. 이때부터 미국 민주당은 급격하게 우클릭한다. 민주당 내 우파 그룹은 처음엔 DNC (Democratic National Committee : 민주당 전국위..
오늘 아침 사람들이 꽉 들어찬 화물열차가 수용소에 들어왔어. 비가 내리고 있었고, 여기저기에 판자들이 부서져 작은 구멍이 나 있더군. 그런데 갑자기 한 구멍을 통해 어머니의 모자와 아버지의 안경과 미사의 창백한 얼굴이 보이는 거야. 나는 소리지르기 시작했고 가족들이 나를 보았어. 지금 우리에게 일어난 일은 대재앙이야. 지난 24시간 동안 유대인들이 연이은 해일처럼 밀려들어와 수용소가 넘쳐나고 있어. 네게 이 말은 꼭 해야겠어. 오늘 나는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미샤 때문에 충격을 받았어. 아버지는 완전히 무기력하고, 만 하루 만에 웃옷의 칼라가 훌쩍 커진 것처럼 보이고, 까칠한 흰 수염이 애처로워. 하지만 우리가 오늘 아침 빗속에서 몇 시간이나 기다리다가 여호수아기에서 놀라운 인용구를 찾아냈을 때 아버지는 작은 성경을 흔들어댔어. 아버지와..
코로나 팬데믹으로 지난해 한차례 연기한 데 이어 취소와 강행 사이에 논란의 곡예를 거듭한 도쿄올림픽이 오는 23일 시작된다. 인류의 스포츠 축제인 올림픽이지만 개최지 일본 도쿄는 폭풍 전야 같다. 한국의 2배 인구를 조금 넘는 일본은 최근 하루 확진자가 2000명대를 기록하고 있고 도쿄는 최고 단계인 '감염 폭발(4단계)' 기준을 크게 넘어섰다. 입국하는 외국 선수단에서 감염자도 나타나고 있다. 12일 도쿄 지역에 올림픽 전 기간과 겹치는 다음 달 22일까지 긴급사태가 선포됐다. 무관중 경기가 대부분이고 도쿄 내 음식점 등은 오후 8시에 영업 종료를 권고받고 있다. 125년만에 첫 ‘무관중 올림픽’이다. 일본에게 현재의 상황은 지난해 한차례 연기할 당시보다 좋지 않다. 지난해는 세계적 대유행으로 불가피한 명분이 있었지만 지금의 도쿄올림픽 여건은 일..
류시화. 그를 생각하면 ‘인도’가 떠오른다. 써내는 책마다 베스트셀러라는 건 진즉 알았다. 하지만 나는 오랫동안 이 사람을 90년대 이후 불어온 인도 열풍에 편승한 상업주의 작가라고 의심해왔다. 그가 쓴, 이름이 생각 안 나는 인도 여행기를 읽은 기억이 있다. 적당히 재미있고 적당히 영적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대중영합적인 책이구나"라는 심증이 더 강해졌다. 며칠 전 딸아이 보라고 도서관에서 ‘하늘호수로 떠난 여행’을 대신 빌렸다. 반납하기 전에 소파 위에 놓인 책을 심심풀이로 들쳐봤다. 의외로 흡인력이 강했다. 술술 읽혀졌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나는 말 그대로 마음이 '덜컥' 흔들리는 듯 충격을 받았다. 47페이지 '세 가지 만트라' 대목이었다. 왜 그랬을까. 류시화가 명상 수행을 위해 북인도 히말라야 산록을 찾았을 때 이야기다. 산모퉁이 납작바위 위..
경기도내 지역 YWCA가 운영하는 가정폭력 피해자 비공개 보호 시설에 ‘취득세 8500만 원’이라는 폭탄이 떨어졌다. 이 시설엔 가정폭력 피해자 15명과 그 자녀, 시설 직원이 머물고 있는데 얼마 전 좀 더 넓은 공간으로 이전했다. 이전이 필요했던 이유는 많은 인원이 생활하기에 비좁았던 탓도 있지만 노출될 위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약 10년 전 노출이 돼서 이전한 일이 있었다. 게다가 코로나19로 좁은 공간에서의 감염위험이 커지자 대출까지 받아가면서 6억 원에 주택을 매입, 이전을 결정했다. 그런데 이전 과정에서 8500만 원이라는 세금폭탄을 맞은 것이다. 2012년 사회복지시설로 분류돼 취득세 감면을 받아왔지만 2019년에 개정되어 지난해 시행된 지방세 특례법은 이 시설의 세제 감면을 인정하지 않았다. 세제 감면 대상 사회복지시설 가운데 여..
작업실에 놀러 온 음악광 친구가 유튜브 뮤직으로 이것저것 찾아 듣는다. 귀에 익으면서 낯선 선율이 심장을 훑고 지나간다. 무슨 음악인가 물었다. “시타르” “라비 샹카?” “아니 딸. 아누쉬카 샹카. 시타르 별로라면서?” “딸 건 좋네 ” 월드뮤직이 낯선 이에게 선문답으로 들리겠다. 정리하자면 친구가 틀었던 음악은 아누쉬카 샹카(Anoushka Shanker)의 시타르(인도전통악기) 연주인데 그의 아버지 라비 샹카(Ravi Shanker 1920-2012)는 세계적인 시타르 연주자다. 대가인 라비 샹카의 시타르 연주에 관심 보이지 않았던 내가 딸의 시타르 연주에 반응하자 의아했던 것이다. 친구가 음악광다운 한 마디를 보탠다. “하긴 월드뮤직은 전통, 민속만 고집하면 안 돼. 섞어야지” 시타르를 처음 만난 건 20년 전, 인도 배낭여행할 때다. 북서부 타르..
나는 수용소에 내가 가든 다른 누가 가든 상관없고, 가장 중요한 것은 수많은 사람들이 수용소에 가야만 한다는 사실이라고 말한다. 그렇게 말하면 다른 사람들이 흥분할 때가 많다. 그렇다고 내가 체념의 미소를 지은 채 파멸의 품속에 떨어지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다. 전혀 그렇지 않다. 단지 피할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뿐이다. 그리고 그럴때 조차 궁극적으로 그들은 우리에게서 중요한 것을 빼앗을 수 없음을 확실히 알기에 버틸 힘을 얻는다. 나는 결코 피학증 같은 것 때문에 수용소에 가려하거나 지난 몇 년간 내 경험의 기반이었던 소중한 것들에서 분리되고 싶어 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겪어야만 하는 일에서 내가 면제된다고 해서 행복하지는 못할 것이다. 사람들은 나 같은 사람은 살아남아서 해야 할 일이 많고 남에게 줄 것이 많기 때문에 숨어야 할 의무가 있다고 계속 말한다. 하지만 내가 남에게 무엇을 주어야 한다면, 내가 어디에 있든 줄 수 있다는 걸 안다. 친구들과 함께 여기에 있듯 강제수용소에 있든 상관없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과 운명을 함께하기에는 자기가 너무 좋은 사람이라고 여긴다면 그건 순전히 교만일 뿐이다. 그리고 만일 신도 내가 할 일이 많다고 생각하신다면, 다른 사람들이 모두 겪어야만 하는 고통을 나도 함께 겪은 후에도 그 일을 하게 될 것이다. 또 내가 귀중한 인간인지 아닌지는 오직 훨씬 더 힘든 상황에서 내가 하는 행위에 의해 분명해질 것이다. 그리고 만일 내가 살아남지 못한다면 어떻게 죽는가에 의해 내가 진정 어떤 사람인가 밝혀질 것이다. ... 우리가 열린 창문 앞에서 최근의 추이에 대해 말할 때 고통에 시달리는 그의 얼굴을 살펴보고 생각했다. ‘오늘밤 우리는 서로의 품 안에서 흐느끼겠구나.’ 실제로 우리는 서로의 품 안에 있었지만 울지는 않았다. 다만 마지막 황홀경 속에서 그의 몸이 내 몸 위에 누웠을 때, 내 속 깊은 곳으로부터 절망과 근본적인 인간의 슬픔이 밀물처럼 차올라 내가 그 속에 잠겼고, 나 자신과 다른 모든 사람들에 대한 연민이 가득 일어났다. ... 어둠 속이라서 그의 맨등에 얼굴을 묻고 몰래 눈물을 흘릴 수 있었다. (주위 강권에 못 이겨 유대인위원회 행정비서직 지원 후...) 나는 마치 배가 난파되어 끝없는 망망대해에 작은 판자 하나만 떠 있고, 자기가 살자고 다른 사람들은 바닷물 속으로 밀어내어 그들이 익사하는 것을 지켜보느니, 차라리 바닷물 위에 떠서 하늘을 바라보고 누운 채로 잠시 흘러가다가 기도하면서 물속으로 가라앉는 걸 택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고 싶다./ 출처 : 《에티 힐레숨》 패트릭 우드하우스. 이창엽 옮김. 한국기독교연구소. 2021(에티 힐레숨 1914-1943 네덜란드에서 태어나 아우슈비츠 유대인 수용소에서 숨지다)
최근 북한 동향중에 우리가 궁금해하는 몇 가지 사항이 있다. 우선 김정은 총비서가 코로나19로 인한 국가비상방역태세하에서 당 간부들의 태만과 무능으로 발생했다고 하는 국가와 인민의 안전에 위기를 조성하는 ‘중대 사건’이 무엇인지, 그리고 극심한 식량위기를 토로하면서 인민들의 어려움 해소를 위해 직접 서명해서 시행했다는 ‘특별 명령서’의 내용이 무엇인지, 그리고 무척 수척해 졌다고 북한 매체에서 보도되고 있는 김정은 총비서의 건강상태는 어떤지가 대표적인 궁금 사항이라고 할 수 있다. 남북 대화가 활성화되고 북한이 개방사회라면 이러한 우리의 궁금증은 많은 부분이 해소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현재의 남북관계 상황과 북한의 폐쇄성으로 인해 이를 기대하기 어렵다. 북한의 내부 동향을 파악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이제 갓 마흔이다. 스물아홉에 고향 함경도 청진을 떠났다. 대부분의 탈북민들처럼 그도 몇 개국을 경유하여 목적지 서울에 도착했다. 태영호나 지성호처럼 황송한 신분(국회의원)이 된 이들도 있지만, 대다수는 어렵게 산다. 10년이 지났다. 그 사이, 그는 이화여대 국문과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일본에서 공직자로 일하던 남편을 만나 가족을 이루었다. 그리고 2년간 일본에 살면서 남편과 함께 통일에 대한 그림을 그렸다. 지금은 신촌에서 네 살 된 딸 하나와 다복하게 살고 있다. 객관적으로, 탈북민들 가운데 이 정도로 안착한 경우는 전체의 1%에도 미치지 못할 것이다. 빛나는 명함의 주인공은 아니지만, 좀 다른 시각으로 보면, 그는 정치 경제 분야에서 세속적으로 크게 성공한 소수의 탈북자들과 질이 다른 성취를 해왔다. 이는 점점 더 탄탄해지고 규모도 더..